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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ug 01. 2021

간음한 여자와 페미니즘

페미니즘의 새로운 시대가 열려야 한다.

언제부터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한국의 적폐 언론이 페미니즘을 화두로 사회적 갈등을 양산하는데 혈안이 되어 왔다. 사실 언론이라는 것이 사회적 갈등, 사고, 분쟁, 전쟁, 천재지변이 일어나야 신나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니 어쩔 수 없어 보이기는 한다. 적폐 언론들을 타파할 방법은 없다. 현대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의 보호를 받고 있기에 거의 신성불가침 한 영역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가치를 특정 정치 세력과 놀아나는 적폐 언론의 이데올로기 놀음에 희생시킬 수는 없는 일이기에 몇 자 적어본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일부 여성이 자신의 몸뚱이와 성을 천민자본주의의 정신으로 매춘 시장에 내다 팔고, 그것도 모자라 불법적인 이득을 취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의심이 드는 정황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범죄 행위와 관련되기에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적폐 언론은 이를 페미니즘의 이슈로 몰아가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으니 괘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사실 간음과 관련하여 남성보다 여성에 더 혹독한 징벌을 내린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간음한 여성에 대한 판단과 관련하여 매우 오래된 일화가 신약성경의 요한복음에도 나온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 본다.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앞에 내세우고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의 모세 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예수에게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있었다. 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는 고개를 들고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치십시오.” 하고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썼다. 그들은 이 말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예수가 고개를 들고 그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습니까? 당신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그 여자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는 “나도 당신 죄를 묻지 않겠습니다. 어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십시오.” 하고 말했다. (요한 8:3-8:11)


사실 이는 매우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요한복음 초기본에는 들어있지 않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가 기존의 요한복음에 나중에 끼워 넣은 이야기이다. 이 일화의 전후에 나오는 이야기는 간음한 여자와 아무 관련이 없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편집한 자가 그냥 적당한 곳 '아무데나' 집어 넣은 일화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요한복음은 나머지 3개의 복음, 이른바 공관복음과 상호 연관이 안 되는 내용이 많지 않아 학자들도 별도로 취급하는 문서이다. 예수가 ‘특별히’ 사랑한 제자였던 요한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가 직접 썼을 리가 절대로 없는 복음이다. 요한복음이 쓰이기 시작한 것이 예수 사후 150년 정도인데 이때면 요한이 사망하고도 충분히 오랜 세월이 흐른 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무엇보다도 신의 외아들인 예수를 신격화하고 더 나아가 신과 동일시하는 신학을 바탕으로 하고 그러한 신성한 존재를 탄압한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를 바탕으로 쓰인 것이기에 그 역사적 사실성에서 의심이 가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인간적 차원의 ‘예수 이야기’의 근거로 삼기에는 많이 부족한 문서이다. 그런데 남녀차별과 관련된 간음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하필 이 문서에만 담겨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유대교 율법학자들이 내세우는 모세의 율법은 무엇인가? 이는 구약성경 신명기 22장에 나오는 것이다. 이 또한 인용해 본다.


어떤 자가 남의 아내와 한자리에 들었다가 붙잡혔을 경우에는 같이 자던 그 남자와 여자를 함께 죽여야 한다. 이런 부정한 짓을 이스라엘에서 송두리째 뿌리 뽑아야 한다. 약혼한 남자가 있는 처녀를 다른 사람이 성읍 안에서 만나 같이 잤을 경우에는 둘 다 그 성읍 성문 있는 데로 끌어내다가 돌로 쳐 죽여야 한다. 그 처녀는 성읍 안에서 당하면서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죽일 것이요, 남자는 이웃의 아내를 범했기 때문에 죽일 것이다. 이런 부정한 짓을 너희 가운데서 송두리째 뿌리 뽑아야 한다. 약혼한 남자가 있는 처녀를 다른 남자가 들에서 만나 겁탈했을 경우에는 그 여자를 겁탈한 남자만 죽여야 한다. 그 처녀는 죽을죄를 지은 것이 아니므로 손댈 것까지는 없다. 이것은 이웃에게 맞아 죽은 것과 꼭 같은 경우이다. 그 일을 당한 곳이 들이므로 약혼한 그 처녀가 소리를 질러도 와서 건져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만나 억지로 함께 자다가 붙잡힌 경우에는 그 처녀와 잔 남자가 처녀의 아비에게 오십 세겔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몸을 버려놓았으므로 내보내지 못하고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한다. (신명기 22:22-29)


모세의 율법을 보면 요한복음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의 일화가 뭔가 이상하다. 율법에 분명히 ‘간음한 남자와 여자 모두 돌로 쳐 죽이라’고 나오는데 율법학자들은 여자만 데리고 나와 쳐 죽일지를 묻고 있다. 남자는 어디 갔는가? 상식적으로 가부장제도가 정착된 모세 시대보다는 좀 더 코즈모폴리턴적인 예수 시대에 여성에 대한 대우가 개선되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전혀 아니었고 오히려 더 악화된 것이다. 모세의 율법에서는 간음의 상황과 연관된 여성이 성폭행의 대상이 되었다는 개연성이 있을 경우 오히려 배상을 받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 시절의 현실은 여성만의 죄를 묻고 있는 것이다. 남성중심주의 사회의 악이 사라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 일화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예수가 이 사건에서 한 말, 곧 ‘죄가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죄인들이 자기변명을 하는데 이용해왔다는 사실이다. 너는 룸살롱 가본 적 없어? 넌 다른 여자와 간음한 적 없어?라고 묻는 것이다. 그런데 통계적으로 보면 이런 반론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2015년 서울신문과 마크로밀엠브레인이 공동 조사한 결과에 보면 19세 이상 기혼 한국인의 24.2%가 간통을 경험했다. 숫자로만 보면 기혼 남녀 가운데 약 640만 명이 간통을 최소한 한 번을 했다는 말이다. 연령별로 보면 50대 이상의 고소득 고위공무원이나 임원급 남성이 룸살롱이나 나이트클럽에서 간통을 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통계적으로 50% 이상이다. 그러고 보니 예수 시절과 변함이 없다. 그 당시에도 가장 나이가 많은 이들부터 돌을 내려놓고 조용히 물러났다고 하지 않던가? 대부분은 일시적인 감정(권태 30%, 성적 매력 40%, 분쟁 20%)에 휩쓸려 간통을 하지만 이성의 직업과 재력을 보고 의도적으로 간통을 하는 경우는 여성(7.6%)이 남성(3.4%)보다 거의 두 배가 되었다. 요즘 항간에 떠도는 ‘쥴리’가 ‘챨리’보다 더 많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만 유별나게 간통을 즐기는가? 그렇지는 않다. 간통을 포한한 외도에 관한 2010년 영국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면 태국인의 50% 이상, 그리고 대부분의 서양 선진국 국민의 40% 이상이 외도를 하고 있다. 한국은 이 통계에서 17위(33%)로 외도를 하는 이들의 숫자가 국제적으로 볼 때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다. 그렇다고 ‘안심할’ 것은 없지만 말이다. 참고로 일본은 간통을 즐기는 사람이 30%로 한국보다 조금 뒤져 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간통죄가 폐지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근사한 개념으로 간통죄 폐지의 근거를 제시했지만 실제로는 이미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간통이 법적으로 통제할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성적 자기 결정권이 왜 페미니즘, 더 나아가 여성의 권리와 연결되어 해석되고 있는가? 역설적으로 그것은 바로 한국이 여전히 강력한 유교적인 가부장제도, 남성중심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부장제도에서 모든 사회악 특히 갑을 관계의 폐해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흔히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이 '여성 해방'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이는 직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본 뜻을 살린 잘 된 번역이다. 흔히 조선 600여 년 동안 여성의 권리가 철저히 억압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1592년 임진왜란 이전과 이후의 조선 사회는 여성의 권리에 관하여 판이하게 달랐다. 다시 말해서 원래 조선이 여성을 특별히 억압하던 사회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왜구 침략의 영향으로 조선의 사회적 변동이 극심해지면서 여성에 대한 박해가 심화된 것이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수입된 이른바 일식 ‘요정 문화’가 한국 여성의 성 상품화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룸살롱의 전신인 이 요정에 정계와 법조계의 고위관리, 대기업 임원, 언론사 간부들이 들락거리며 부패의 고리를 형성하면서 ‘남자 잘 잡아’ 팔자를 고치려는 이른바 ‘창녀 문화’도 등장한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돈 많고 잘 나가는 여자를 잘 잡아 팔자 고치려는 창남들도 간간이 보이기는 한다. 비록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조만간 이들의 숫자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것은 요정의 전신인 일본의 ‘료테이’(料亭)는 원래 고급 음식점으로 창녀가 아니라 귀한 요리로 손님 대접을 하는 일을 중시하던 것이었는데 바다를 건너더니 한국에서는 창녀의 성접대를 더 중시하는 형태로 변형되었다. 이것도 일제의 한국 전통의 기녀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보인다.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한국에는 기녀 문화가 있었다. 그리고 기녀는 철저히 관청에서 다루던 공식적인 직업인이었다. 그러나 1907년 일제가 조선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관기 제도를 폐지하자 기생들이 일본에서 수입된 사설 요정에 소속된 천기, 곧 창녀로 생계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일제의 만행은 오늘도 룸살롱에서 이어지고 있다.


우스운 것은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요정 문화’의 척결이었다. 요정이 정치적 부패의 발원지라는 명분에서였다. 그러나 군사독재 정권에서 요정은 오히려 더 번창했다. 그러다가 군사 독재 정권의 권력 실세와 연관된 이른바 ‘정인숙 사건’이 터지면서 요정 문화가 본격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런데 요정의 계보를 이어 1970년대 초반에 광화문에 들어선 ‘이명싸롱’과 후암동의 ‘민의집’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룸살롱 문화가 한국에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이 룸살롱은 1980년대 강남 개발과 더불어 마치 독버섯처럼 급격히 펴져나갔다. 특히 법조타운이 있는 서초동, 그리고 돈이 모이는 신사동, 역삼동에 고급 룸살롱이 들어서고 이어서 테헤란로에 돈이 모여들자 이 길을 중심으로 룸살롱이 번창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현재는 선릉역 일대가 한국 최대의 룸살롱 지대가 되어 일제의 ‘료테이 문화’의 변태적인 형태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기가 막힐 따름이지만 일제가 한국 전통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도입한 요정 문화의 기괴한 변종으로 한국의 권력과 돈의 중심지에 독버섯으로 잘 버티게 된 것이 바로 룸살롱이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강남의 모든 것이 한국의 모든 고급문화의 표준인 것처럼 여겨지면서 룸살롱도 서울에서 먼 지방 오지에까지 문자 그대로 독버섯처럼 퍼져나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중앙정부만이 아니라 지방정부에서도 부패 관리와 지방 토호들의 협잡과 이권 거래의 장소로 이용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고위관리만이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들이나 자영업자들도 애용하는 곳이 되었다. 그러자 룸살롱 업계에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른바 ‘텐프로’를 내세우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차별화 전략이겠다. 그러나 이도 곧 만연해지면서 경쟁이 치열해지자 이번에는 ‘풀살롱’이 등장했다. 이처럼 한국의 룸살롱의 변이는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기가 막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는 오로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기현상이다. 유럽에도 술집과 창녀 굴이 있지만 한국의 룸살롱같이 ‘풀코스’가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술집에서는 술만 마시고 창녀 굴에서는 성매매만 한다. 그것도 주로 합법적인 직업인으로서의 매춘부와 말이다. 도대체 왜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국인들이 특히 간통과 외도를 즐기는 민족도 아닌데 말이다. 그 답은 복합적인 것이다.


여러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근원적인 것은 역시 임진왜란 이후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왜구의 영향으로 기형적으로 변형된 여성관이다. 한국 텔레비전의 사극을 보면 어마어마한 고관대작들이 이권을 놓고 거래하는 자리에서 기생이 술을 따르고 성접대를 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그런데 정말 조선 시대에 보편적으로 그랬나? 천만의 말씀이다. 그러나 적폐 언론 기관이 그런 식으로 역사를 왜곡하여 일제의 요정 문화의 전통을 ‘계승발전’시킨, 그리고 실제로는 겨우 몇십 년 되지 않은 ‘룸살롱 문화’를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포함한 한국의 적폐 언론을 개혁해야 할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텔레비전의 사극만이 아니라 현대극에도 등장하는 룸살롱 문화가 이런 독버섯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명분은 그런 '타락한' 문화를 고발한다는 것이지만 룸살롱 문화를 비판 없이 보여주는 것으로 ‘순진한’ 남성들과 여성들의 '환상'을 조장하는 면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한국에는 고유한 전통적 음주가무의 문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음주가무의 문화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만 룸살롱 문화가 정착되면서 음주가무가 퇴폐와 윤리도덕적 타락과 동일한 개념이 되어버린 것이다. 기가 막힌 일이다. 문화적으로 원래 음주가무는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집단의 인화와 단결을 위한 필수 요소였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서 음주가무는 음침하고 폐쇄된 공간인 룸살롱에서 ‘마시고 죽자’고 외치며 창녀와 매음을 하는 것으로 타락한 형태로 자리 잡고 말았다. 한국에서는 실정법으로 성매매는 불법이다. 그러나 룸살롱에서 특히 강남의 법조타운 근처와 테헤란로에서 매일 밤 벌어지는 술자리와 성매매가 뿌리 뽑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룸살롱에서 여자는 노리갯감에 불과하다. 남자의 기분을 맞추어 주기 위해 대작을 하고 남자의 성적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매매춘을 한다. 물론 그 대가로 룸살롱의 매상고를 단단히 올리고 있고 창녀 자신도 재산을 급속히 늘려가기는 한다. 잘 알려진 대로 룸살롱에서 일하는 창녀들의 수입은 일반 직장 여성에 비할 바 없이 높다. 이른바 ‘텐프로’나 더 소수인 ‘쩜오’들인 경우 잘 하면 몇 년 내에 수십억의 재산을 모으기도 한다. 그러니 성매매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신하는 여자들이 몰려들 밖에. 그리고 운이 좋으면 권력자나 재산가의 첩이나 정실이 되어 팔자를 고칠 기회도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이런 여자들은 분명히 사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창녀들을 페미니즘의 카테고리 안에서 다루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앞에서 말한 대로 가부장제도라는 기형적 사회제도 안에서 여성은 무조건 희생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룸살롱에 찾아가 자청하고 매음을 하는 창녀들에게 어떻게 인권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을 한다. 그러나 이는 사회윤리적 차원의 시각이 부족한 데서 나오는 편견이다. 설사 그 창녀가 타고난 매춘부의 성향을 지닌 자라 하더라고 그 성향을 실현할 수 있는 룸살롱을 찾아갈 수 있는 사회적 상황이 더 사악한 것이다. 예수는 악행을 하는 자보다 남을 악행으로 이끄는 자가 더 사악하다고 했다. 룸살롱과 창녀의 관계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악한 의지가 있더라고 그 의지를 발현할 기회를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건전한 사회인 것이다.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은 더욱 발전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성과 남성의 대립 현상의 극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권 증진의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미국에서 흑인 인권 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 페미니즘 운동이 인종차별 폐지 운동과 연대해서 전개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를 모범으로 삼아 이제 한국도 선진국에 들어섰으니 페미니즘 운동이 인권 존중 운동의 차원에서 이루어질 때가 되었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어 물질적으로 부자 나라가 되었다면 정신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삼성 가문이 총애해 마지않는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이 한 말은 진리이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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