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rancis Lee
Aug 18. 2021
이낙연의 소탐대실을 경계한다
정동영의 망령이 정말로 재림할 것인가?
황교익을 둘러싼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친일이라니?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인가 보다. 정치적 깊은 속내야 관찰자 입장이니 알 길은 없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복잡해질 때는 항상 적용되어야 하는 법칙이 있다 바로 오캄의 면도날이다. 곧 일이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른 길은 늘 단순 명료하다. 친일 여부와 음식 전문가의 공직 자격 논란이 이어지면 이낙연은 더욱 수렁에 빠지게 될 뿐이다. 고공 행진을 하던 이낙연이 급전직하로 인기가 떨어진 이유를 잊었나? 뜬금없이 박근혜 사면을 들고 나와 사달이 났다. 그런데 이제 뜬금없이 음식 전문가를 놓고 친일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 와중에 윤석열이 고양이 끌어안고 은근히 웃는 모습이 보인다. 기가 찰 노릇이다. 당장 이낙연이 나서서 이 논쟁을 수습해야 한다. 엄중한 사태이니 말이다.
여기서 정동영이 떠오른다. 노무현 대통령을 배신하고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선명한 좌파’의 어쭙잖게 차별화 전략을 쓰다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커다란 격차로 참패한 역사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이낙연의 출신지로 그의 든든한 지지기반인 친문의 중심지인 전라도 세력을 규합할 필요는 있겠다, 그러나 한 방울의 낙수도 없이 다 긁어모아도 25% 남짓이다. 정동영이 영끌을 해도 26%였다. 안 되는 것은 처음부터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는 반일 정서나 반미 정서를 잘못 다루면 역린이 되어버린다. 아무나 다룰 주제가 아니다. 단순히 친일 프레임만 씌우다가는 역공을 당한다. 그동안 한국에서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20%를 넘은 적은 없다. 그러나 일본 문화와 일본 상품은 미워하지 않는 것이 한국이다. 특히 MZ세대의 반일 감정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2021년 6월 국민일보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MZ세대가 가장 미워하는 것은 중국(51.7%)이다. 일본을 미워한다는 응답은 31.2%에 그쳤다. 특히 Z세대인 18~24세 응답자의 60.3%가 가장 싫어하는 나라로 중국을 택했다. 25~29세(46.7%), 30~34세(49.1%), 35~39세(48.8%)보다 응답률이 더 높았다. 그 가운데 서울 시장 보궐 선거에 결정적 역할을 한 18~24세 남성은 62.9%가 중국이 가장 싫다고 답했다. 일본을 싫어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런데도 만약 이낙연이 반일 감정을 대선에 이용하려고 한다면 지난번 박근혜 사면 소동과 마찬가지의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도대체 이낙연의 참모들은 왜 이런 식으로 헛발질을 하는 것인가? 혹시 그 캠프 안에 X맨이라도 있는 것인가? 한국에는 반일 감정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토착 왜구'의 발본색원에라도 나선다면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정작 '적'인 일본이 아니라 같은 한국 사람을 적으로 몰아 갈라 치기를 하는 것을 국민 전체가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국민의 갈라 치기의 폐해는 중국의 문화혁명과 크메르 정권의 킬링필드가 극명하게 보여준 바가 있다. 같은 국민은 갈라 치기가 아니라 끌어안아야 하는 대상이다. 이는 진리이다. 섣불리 선명성을 강조하며 '친일 매국노 청산'의 깃발을 들다가는 몰락하게 될 것이다.
대선에 나설 각오가 되어 있다면 영끌을 해야 한다. 더구나 지지율이 3위로 쳐져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이낙연이라면 선명성보다는 포용 전략이 급선무이다. 윤석열은 어차피 TK와 강남을 중심으로 한 보수 세력만 건져도 30%는 장담하는 형국이니 선긋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태생적 핸디캡이 있는 이낙연은 그럴 수 없다. 그런데 현재 이낙연의 행보는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한 사람이라도 내편으로 만드는 전략이 시급한 쪽은 이낙연이다. 그런데 반대로 가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3위의 조바심이 클 것으로 보인다. 뭔가 ‘큰 것’을 터뜨려서 현재의 정체된 지지율을 깨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큰 오산이다. 이낙연의 지지율은 총리로서의 면모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을 때 높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내려갔다. 그런 와중에 회심의 일격으로 여겨 박근혜 사면론을 던졌지만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단언컨대 황교익을 둘러싼 논쟁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될 것이다. 더구나 황교익의 입에서 “이낙연의 정치적 생명을 끊는 데 집중하겠다.”라는 발언을 이끌어 낸 것은 말할 수 없는 패착으로 기억될 것이다. 야당도 아니고 여당 인사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만들어 무슨 이익이 있다는 말인가? 설사 강력한 공격으로 황교익의 임명을 저지한다고 해서 무슨 이익이 있는가? 상처만 더 깊어지는 승리일 뿐이다.
국민들이 이번 사건을 보고 이낙연에 대한 인상을 다시 한번 ‘구기게’ 될 것이 뻔하다. 총리 시절 유연하고 촌철살인적인 화법으로 인기를 얻은 이낙연이다. 그런데 대선 후보나 되어서 지방정부의 ‘일개’ 공사 사장과 맞짱을 뜨고 있다. 격이 안 맞아도 한참 안 맞는다.
정동영이 실패한 결정적 이유가 무엇인가?
텃밭을 과신한 데에 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진보 세력의 다수가 전라도에 있다. 그러나 전라도가 진보의 전부는 아니다. 늘 최대 40% 내외일 뿐이다. 그리고 전체 유권자로 보면 25% 정도이다. 절대로 이것만 믿고서는 대권을 잡을 수 없다. 외연 확장은 윤석열이 아니라 이낙연이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외연 확장은 고사하고 진영 논리에 빠진다면 필패할 것이다. 어차피 지금도 3위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단순히 소셜 미디어에 댓글부대를 동원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구구절절 따지고 싶은 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구구절절 따지는 좁쌀영감식의 정치가를 가장 혐오한다. 더구나 대선 아닌가? 대통령은 말 그대로 통 크게 국민을 화합으로 이끄는 자 아닌가? 그런데 판이 너무 험해졌으니 이제 와서 물러나기도 멋쩍다. 진퇴양난이다. 그리고 이는 지난번 박근혜 사면론과 마찬가지로 자승자박의 모양새이다. 실수는 한두 번으로 그쳐야 한다. 이런 실수가 반복되면 이낙연의 실력이 드러나게 될 뿐이다. 지금이라도 사과해야 한다. 소탐대실하는 것은 소인이요 지고도 이기는 것이 군자의 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