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cis Lee Oct 03. 2021

윤석열에게는 안수기도보다 주술이 더 어울리나?

제발 꼰대 욕 좀 그만 먹여라!

김건희가 관상 앱을 주제로 한 사실상 ‘엉터리로 보이는’ 박사논문으로 수모를 당하는 것이 애처로웠나 보다. 그래서 윤석열이 주술을 사용하여 아내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왼손 바닥에 王자를 그리고 나와 토론을 하는 모습이 TV 화면에 잡혔다. 그것도 3~5차 토론회까지 세 차례나 반복되었으니 우연은 아닐 터이다.


가십을 좋아하는 한국 언론이 이를 앞 다투어 보도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윤석열이 변명을 하면 할수록 더욱 군색해지고 있다. 10월 3일 자 <이데일리>에 나온 그의 변명을 그대로 인용해 본다.


“처음에는 손바닥에 가로로 줄을 긋고 점 세 개를 찍기에 왕자 인 줄도 몰랐다. 세 번째 토론 때 글씨가 커서 ‘왕자입니까’ 물었더니 ‘기세 좋게 토론하라는 뜻’이라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윤 후보는 “옛날에는 아이들이 열나고 아프거나 중요한 시험을 보러 갈 때 집안 어른들이 ‘병마를 물리쳐라’, ‘시험 잘 보라’는 의미로 손바닥에 왕자를 써주기도 했다”며 새긴 글자에 특별한 의미는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주술적 의미가 있었다면 부적을 만들거나 해서 숨겼겠지, 다 보이게 손바닥 한가운데 적었겠나. 토론하는 날만 그렇게 쓴 것만 봐도 말이 안 되는 얘기”라며 주술 행위 의혹은 부인했다.


일단 이 문장 자체에서 논리적 일관성이 전혀 없다. 처음엔 자기 집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사람의 친구인 같은 동네에 사는 ‘할머니 팬’이 토론에 당당히 임하라는 의미로 손에 가로로 줄을 긋고 점 세 개를 찍었단다. 뭔가 이상하다. 임금 王은 가로 줄이 세 개 아닌가? 그 가로줄 사이에 점을 세 개 찍다니? 세 줄을 점으로 이어도 두 개만 찍으면 되는 데. 한 줄을 긋고 점을 세 개 찍었다는 말인가? 그런데 손바닥에는 뚜렷한 임금 왖가가 보인다. 그렇다면 그 점이 옆으로 길어져 선이 되는 기적이라도 일어난 모양인가?


그런데 그다음 말이 더욱 가관이다. 흔히 병마를 물리치고 시험 잘 보라고 손바닥에 王을 써 주었다고? 옛날에? 내가 윤석열과 나이가 반년 정도 차이 나는 연배이니 그가 말하는 옛날이 내 옛날인데 내게는 도통 없는 기억이다. 게다가 병을 물리치고 시험을 잘 보는데 손바닥에 다른 부적을 그리지 않고 그저 王을 그렸다고? 말이야 방귀야? 그다음 변명은 거의 신선하기까지 하다. 주술이라면 '부적'을 만들어 숨겼을 것이란다. 어찌 되었든 간에 결국 윤석열은 손바닥에 王을 쓰는 것에는 주술적인 의미가 있고 이를 힘든 일에 닥친 ‘어린애’에게 행하는 관습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부적이 뭔지도 아는 모양이다. 관상으로 박사를 받은 아내를 둔 사람답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윤석열은 자신을 비난하는 홍준표에게 역공을 가한답시고 그의 개명을 물고 늘어진다. <국민일보> 10월 3일 자 기사를 인용해 본다.


"이날 윤 전 총장 캠프 측 김시흥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이름이다. 그걸 역술인에게 맡기고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분이 홍 후보 아닌가”라며 “홍 의원이 본인의 개명이야말로 ‘주술적’이란 지적에 뭐라 변명할지 궁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뭔 소린가 보니 홍준표가 원래 '홍이표'였으나 5세 때 홍역에 걸려 죽어가는 아이를 무당이 굿을 해 살려 낸 다음 무당에게 팔았다는 의미로 '홍판표'로 개명했단다. 게다가 나중에 검사가 된 다음 법원장이 이름이 이상하다고 해서 '준표'로 바꾸었단다. 그 역사도 흥미롭지만 이를 물고 늘어지는 윤석열 캠프의 수준은 정말 우습지도 않다. 홍준표 시절에 개명은 자주 있었던 일이다. 트집 잡을 일이 아니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큰 병이 날 경우 손발에 문자를 적어 ‘방법’을 쓰는 것도 우리나라 토속신앙이다. 그러나 죽음을 넘나드는 경우에만 사용한다. 그래서 61살의 멀쩡한 초로의 남자 손바닥에 쓰는 일은 절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윤석열이 지독한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경우 빼고는 말이다. 게다가 윤석열의 아내야 말로 결혼 직전까지는 박사논문에 버젓이 올라와 있는 이름인 '김명신'에서 '김건희'로 개명하여 잘 나가는 검사와 결혼까지 하지 않았던가? 개명의 역사를 캐자면 윤석열 측도 만만치 않은 사연이 있을 법도 하다. 더구나 ‘쥴리’ 의혹이 말끔히 정리되지 않은 마당에 말이다.


이것도 모자라는지 윤석열은 홍준표가 빨간 내복을 입고 다니는 것도 비난하고 나선다. 10월 3일 자 <뉴스1>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났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3일 지난 3차례 TV토론회에서 손바닥에 적힌 '임금 왕(王)'자 논란과 관련해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의원을 겨냥, "어떤 분은 속옷까지 빨간색으로 입고 다닌다는 소문도 다 난 분도 있다"고 반격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의 독립서점 '최인아 책방'에서 캠프 내 청년위원회·대학생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홍준표 캠프에서 윤 전 총장이 원래 점쟁이, 역술인과 가까웠다고 지적한다'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윤 전 총장의 발언은 홍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홍 의원은 1996년 정계 입문 이래 10년 넘도록 줄곧 빨간 넥타이를 고집, 겨울 내복이나 속옷도 붉은 계열을 즐겨 착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윤석열과 나의 시대에 자식이 처음 취업하여 첫 월급을 받으면 기념으로 어머니께 사다 드린 빨간 내복이 21세기 한국 정치판에서 문제가 되다니. 한국 정치판이 문자 그대로 ‘X판 오 분 전’인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이제 이 정도면 정말 막가자는 것 아닌가?


그러나 기왕 논쟁이 일었으니 정리를 해보자.


일단 역술과 주술은 범주가 전혀 다르다. 易術은 중국 사서삼경에 들어가는 周易, 곧 易經에 나오는 음양오행 사상을 인간의 삶에 적용하는 이치로 발전시킨 학문이다. 역술은 중국 역대 황제들은 물론 제후들도 매우 중요시 여겨서 자신의 휘하에 반드시 술사를 어 정치적 결단을 내릴 때 점사를 보고 결정하였다. 매우 이성적인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불교를 공식적으로 철저히 배격했음에도 궁중에서 불교 예식이 암암리에 거행되고 왕족 개인들의 개운을 위한 여러 주술적 행위가 이루어졌다. 백성들도 아이가 태어나면 사주를 보고 새해를 맞이하면 신년 신수를 보았다.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현재 기독교 신자들이 역술을 미신이라고 비난하면서도 그 상당수가 몰래 궁합도 보고 신수도 보는 것이 한국의 엄연한 현실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여전히 많은 부모가 전문가에게 작명을 부탁한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기독교가 한국의 주요 종교가 되었어도 인간은 나약하고 운명은 잔인하기에 역술과 주술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인들은 유독 사주, 관상, 궁합, 풍수에 약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기독교 자체도 주술의 문회에서 탄생한 종교이다. 예수가 탄생할 무렵 그를 찾아온 이른바 동방박사들은 사실 점성술사들이었다. 신약 성경에서 이들을 지칭한 그리스어 '마기오'(Μάγοι)는 박사가 아니라 그 당시 점을 보던 점성술사를 의미하였다. 오늘날 영어로 마술사를 의미하는 magician도 여기에서 나온 단어이다. 그 점성술사들이 예수에게 바쳤다고 전해지는 세 가지 선물, 곧 몰약, 향유, 황금도 주술적 의미를 지닌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예수의 탄생을 예견하고 예루살렘까지 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별점의 결과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기독교가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 헬레니즘적인 이성주의 결합하고 다른 종교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타 종교의 주술적 내용을 미신으로 격하시키고 기독교가 매우 이성적인 종교인 척 해온 것일 뿐이다. 지금도 가톨릭에서는 묵주와 기타 성물을 부적처럼 들고 다니는 신자들이 많다. 개신교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십자가를 차에 매달아 놓고 무사고를 비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런데 그 기독교의 내로라하는 목사들이 얼마 전에 윤석열을 위해 안수기도를 했단다. 그 면면을 보니 우습지도 않다. <이데일리> 10월 3일 자 기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윤 후보가 이처럼 공직 선거 출마를 희망하는 공인으로서 부적절한 ‘기원’ 행위에 연루된 것은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 9월 16일 윤 후보가 고 조용기 목사 빈소가 차려진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독교계 대표적인 보수 성향 목사들로부터 즉석 안수기도를 받은 것이 그 예다.


당시 계획에는 없었으나 현장에서 윤 후보를 만난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 명성교회 원로 김삼환 목사, 예장 백석 총회장 장종현 목사, 예장 합동 총회장 김종준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 이영훈 목사 등 한국 교계 대표적인 보수 성향 목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윤 후보에게 안수기도를 해줬다."


아내는 개명하고, 손에는 ‘王’을 그리고, 개신교 목사들의 안수기도까지 받았으니, 윤석열은 정말로 박근혜의 최순실 찜 쪄 먹는 수준으로 '우주의 기'를 모을 작심을 한 모양이다.


도대체 윤석열은 왜 이 모양일까?


윤석열에게 충고하기 전에 먼저 '안수기도'의 의미를 간단히 알아보자.


안수기도의 원형은 유대교의 세미카(סמיכה)이다. 이는 문자 그대로 손을 머리에 올리는 예식이다. 종교 예식이기에 축복이나 권위를 부여하는 의미를 지닌다. 기독교로 넘어와서 안수는 가톨릭의 예식에 흡수되어 세례, 견진, 치유, 축복, 성직 서품에서 거행되는 예식이 되었다. 구약의 민수기나 신명기에 보면 모세가 요수아에게 안수하자 요수아에게 지혜의 영이 가득 차게 된다는 구절이 나온다. 또한 모세는 70명의 장로에게 안수하고 이들이 다시 그들의 후계자들에게도 안수를 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사람만이 아니라 제물로 바치는 짐승의 머리에도 안수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곧 죽여서 제사에 쓸 양의 머리에 손을 얹어 편히 죽기를 기원한 것이다.


이에 비하여 기독교의 안수는 전적으로 성령을 받는 것과 직결되는 행위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교회의 직분을 부여할 때 성령의 은사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의 안수는 유대교와는 약간 다르다. 신약에 나오는 안수는 χειροτονήσαντες, 곧 손을 뻗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래서 반드시 유대교처럼 손으로 직접 몸이나 신체의 일부를 잡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개신교에서도 안수할 때 손을 대든 지 안대든지 한다. 더구나 요즘은 기독교 성직자의 성추행 추문이 전세계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시대 아닌가 말이다.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개신교 교파에 따라 안수 자체를 미신적인 것으로 여겨 금지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 특히 오로지 미국에서 수입된 made in USA 한국 개신교는 뭐든 미제가 제일일 줄 알아 미국에서 하는 대로 따라 한다. 미국의 주류 교파인 남부 침례교의 경우 성직을 부여할 때 머리에 손을 얹고는 한다. 그러나 안수 '우주의 기'를 모아 어느 사람에게 부여하고 그가 대통령이 되기를 간구하는 짓은 미국에서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본점'에서도 안 하는 ‘짓거리’를 '지점 교회'인 한국 개신교들은 종종 잘한다. 하긴 과거 이명박이 대통령 시절에 그를 무대 위에서 무릎을 꿇게 만든 개신교가 아닌가? 대통령도 무릎을 꿇리는 데 후보 정도야 이무것도 아니리라!


도대체 왜 이리 이른바 '외식하는 자'들이 한국 개신교에 넘칠까? 예수는 분명히 기도를 아무도 안 보는 데서 하라고 신신 당부했는데 도대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결정적으로는 순복음교회의 경우처럼 한국은 오순절교회의 영향을 단단히 받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른바 부흥회를 통하여 영적 열광의 분위기에 휩싸여 소란스럽게 신의 복을 구하는 기복주의적 신앙이 판치는 한국에서는 안수기도마저 확실한 성경적 근거도 없이 맘대로 복을 비는 행위로 변형하여 행하는 것이 한국의 개신교인 것이다.


도대체 예수가 언제 안수 기도로 정치가의 당선을 빌었는가? 그리고 서양의 어느 교회, 어느 성직자가 정치가의 무운을 빌었는가? 물론 사례가 있기는 하다. 이탈리아의 기독교 성직자는 파시스트 독재자인 무솔리니의 승리를 위해 기도하였고, 독일의 기독교 성직자들은 히틀러가 제삼제국, 곧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원한 천국을 성해 줄 것을 간절히 바라며 히틀러에게 신의 가호를 빌었다. 그래서 히틀러 군대의 전차도 축복한 것이다. 적을 철저히 죽여 달라고 탱크와 총에 신의 은총을 빌었던 것이 독일과 이탈리아 기독교 성직자였다. 물론 영국과 프랑스 미국의 기독교 성직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같은 신을 믿는 기독교 국가인데 서로를 잘 죽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안수하고 기도하고 간구하고 철야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개신교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에서 이제는 가톨릭은 물론 개신교 목사도 국가 지도자나 그 후보를 위하여 안수기도는 고사하고 덕담을 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독일에서 박사 학위 공부를 하며 11년 간 머무는 동안에 직접 경험한 바로도 그렇다. 현대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에 규정된 정교분리의 원칙에서 교회는 정치와 담을 쌓아야 마땅한 것이기에 그리 하는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목사들은 그런 ‘짓’을 되풀이 하고 있다. 신문기사를 또 인용해 보자.


"안수기도는 개신교 의식으로 목사가 사람 머리나 몸에 직접 손을 얹어 축복을 해주는 기도를 말한다. 당시 대표기도를 한 오정호 목사는 “대통령 후보로서 지혜와 명철을 주시고 자유민주주의가 지켜질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라”고 하는 등 노골적으로 윤 후보의 당선을 기원하는 기도를 했다.


이 때문에 교계에서는 선거 출마를 선언한 현직 정치인에게 유명 목사들이 안수기도를 해주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목사도 문제지만 특별한 신앙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윤석열이 그런 안수기도의 의미도 전혀 모른 채 받았다는 사실이다. 王의 의미도 모르고 손바닥에 짙은 매직으로 쓴 것과 정확히 맥을 같이 하는 행위이다.


동양의 주역에서 시작된 역술이 민간 신앙에 스며들면서 변형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경명주사로 쓴 '符籍'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부적을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승려들이 보급시켰다. 부적은 불교와 아무 상관도 없는데 말이다. 원래 부적은 중국의 도가의 도사들이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이 부적을 붙이고 다니는 것도 모자라 아예 물에 태워 그 재를 마시기도 했는데 궁극적인 목적은 불로장생을 하는 신선이 되기 위한 것이었다. 불교는 불노장생이나 신선노름을 전혀 안 하는 종교이다. 삼라만상의 본체가 일체 허상임을 알아 여여한 참 자아를 깨닫고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데 부적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한국의 적지 않은 승려들이 부적을 잘도 써댄다. 그것도 적지 않은 돈을 받고 판매하면서 말이다. 정말 기가막힌 일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것은 고사하고 땡감이 되는 것이 한국의 종교계이다. 기독교나 불교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런 도교의 부적이 그런 것이 한국에 들어와 변형되면서 피흉추길, 곧 복을 받고 흉을 피하는 방편으로 사용되었다. 말도 안 되는 짓이다. 도대체 한 인간에게 정해진 운명이 겨우 노란 종이에 붉은 물감으로 알아볼 수도 없는 글씨 아닌 글씨를 쓴 부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그리고 이름을 개명하며 팔자를 고칠 수 있다고? 게다가 부적을 손발에 붙여서 개운을 한다고? 나름 사주를 공부하고 점술업계 바닥의 생리를 조금은 안다고 자부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다 혹세무민하고 돈을 긁어모으려는 수작일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부적을 팔아먹고 작명과 개명을 핑계로 떼돈을 벌고자 하는 사악한 무리들이 횡횡하고 있으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가 그런 사기술에 놀아나면서 계속 변명만 늘어 놓다니.  


미개한 중생들이야 그런 미신을 믿을 수 있다. 어리석으니 말이다. 그러나 서울대 법대씩이나 나오고 검찰총장을 하다가 박차고 나와 살아있는 정권에 맞서겠다고 큰소리친 자의 행태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 짓이다. 윤석열... 한때 신선한 바람이었으나 이제는 이리 꾸질 한 꼰대가 되어 버렸나. 참으로 애석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확실히 그 주변에 이런 王자나 써주는 인간이 모이는 것을 보니 ‘똥파리’가 너무 많아 주체하기 어려워진 모양이다. 김종인의 통찰력이 새삼 놀랍다. 게다가 윤석열 캠프의 대변인이라는 김용남이 10월 4일 아침 <시선집중>에 나와서 한다는 변명이 윤석열이 손가락 위주로 손을 씻어서 王이라는 글씨가 안 지워졌단다. 이제는 웃음도 안 나온다. 똥파리도 잘 관찰해 보면 손, 아니 앞발을 수시로 마르고 닳도록 박박 닦는다. 똥파리도 발에 王을 쓴 유성 매직을 비롯하여 뭔가 더러운 것이 뭍으면 앞발을 청결히 하기 위해 그리한다. 그래야 발의 감각이 민감해져서 생존에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정말 윤석열 자신이나 그 주변의 파리들은 이제 변명아닌 변명을 그만했으면 좋겠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니 말이다.  


정신 차려라. 윤석열. 이제라도 망신살이 뻗치는 꼴을 보기 싫다면. 그리고 잘 모르겠거든 지금부터라도 배워라. 예수가 그 누구에게 황제나 왕이 되라고 안수한 적이 있는지. 부처가 악귀를 막는다고 부적을 써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외도’를 한 적이 있는지. 예수와 부처를 팔아먹는 것도 모자라 기복신앙과 부적을 팔아먹은 일부 사악한 종교인들의 술수에 넘어가지 말아 주기 바란다. 이 나라를 한 번 경영해 보고 싶다면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독일에 좌파의 바람이 불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