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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Sep 27. 2021

독일에 좌파의 바람이 불 것인가?

좌파가 장악해도 독일 정국의 급진적 변화는 없다.

4년마다 치러지는 독일 총선이 마침내 끝났다. 최종 개표 결과가 나와야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몇 가지 보인다. 무엇보다 실질적으로 현재의 대연정(GroKo)을 주도한 기민/기사 연합(CDU/CSU Union)이 2017 총선에 비해 거의 9%p나 추락한 24%에 머물고 말았다. 스스로 물러나는 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이 80%를 상회함에도 그의 인기가 당에 반영되는 것은 무리였나 보다. 무엇보다도 기민당의 연방 총리 후보인 라셰트(Armin Laschet)의 연이은 실수가 결정타가 되었다. 사민당은 26%대로 안정적인 1위를 고수했다. 녹색당도 거의 15%대에 육박하여 여론조사와 비슷한 득표율을 보였다. 4월에 비해서는 많이 줄어든 것이지만 녹색당 역사상 총선에서 보인 최고의 득표율이다. 이로써 독일 정국은 연정의 선택지가 6개 이상이 되어 역대 총선에 비하여 가장 ‘풍부한’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연정을 이루든지 간에 16년 만의 정권교체는 분명해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사민당이 대연정으로 정권에 참여하여 왔으니 만약 대연정을 그대로 끌고 간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야당이 정권을 잡는 의미의 교체는 아니게 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그리고 독일 언론의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적적록(좌파당, 사민당, 녹색당) 연정이 이루어진다면 독일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 될 것이다. 통일 30년 만에 동독의 공산당의 후예들이 포함된 좌파당(Linke)이 정권에 참여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기민/기사 연합을 배제한 연정의 경우의 수는 현재 2개이다. 곧 신호등 연정과 적적록 연정이다. 이는 각 당의 고유색을 조합하여 만들어 낸 명칭으로 신호등은 사민당, 녹색당, 자민당 연정, 적적록은 사민당, 녹색당, 좌파당이 이루는 연정을 지칭한다. 그런데 자민당은 기민/기사 연합보다 더 우 편향된 정당으로 원래 좌파인 사민당과 근본적으로 결이 다르고 무엇보다 자민당과 녹색당은 원수지간이기에 이 조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념적으로 남는 것은 적적록 연정이다. 현재 독일 언론에서는 이 조합을 놓고 입방정이 한창이다. 심지어 이웃 국가인 오스트리아의 보수 정권의 총리도 우려를 표명하고 나설 정도이다. 극좌 정당인 좌파당이 정권에 참여한다면 극좌 세력이 통일 이후 최초로 독일의 집권 세력이 되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다. 과연 이러한 ‘순수’ 좌파 정권의 수립이 가능할 것인가? 적적록 연정을 이룰 경우 예상 득표율은 45.3%에 머물러 소수 정권을 이루게 되어 아슬아슬하지만 의석수로는 집권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지역구 의석에 더불어 정당 지지율에 따라 비례대표도 선출한다.  그래서 정당 지지율이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된다. 현재의 지지율 대로라면 비록 좌파당이 지역구에서 충분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여도 정당 지지율이 높으면 의석을 추가로 확보할 길이 열리게 된다.  또한 5%의 기준을 넘지 못하여도 지역구 3석 이상을 얻으면 원내 진출이 가능하다. 그래서 좌파당의 연정 파트너의 가능성이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사실 올해 초만 해도 기민/기사 연합의 지지율은 36%로 녹색당(Grüne)의 18%와 사민당(SPD)의 16%를 합친 것보다 높았기에 무난히 재집권에 성공할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던 정당별 지지율이 4월을 지나면서 요동을 치더니 5월 초에는 녹색당이 26%의 지지율로 현재 연정을 이루는 기민/기사 연합(24%)과 사민당(15%)을 능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독일 정가에는 단순히 정권교체만이 아니라 시대정신의 교체가 올 것이 예측되었다. 곧 녹색당, 사민당, 좌파당의 좌파 연정, 이른바 적적록 연정의 가능성이 가시화된 것이었다. 그러나 녹색당의 연방총리 후보인 베어보크(Annalena Baerbock)가 저서의 표절 의심에 이어 잇단 설화에 휘말리면서 녹색당의 인기가 급격히 추락하였다. 그래서 다시 기민/기사 연합의 지지율이 7월 말에는 29%대를 회복하며 녹색당(19%) 사민당(16%)을 능가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8월 28일을 분수령으로 그동안 계속 3위에 머물렀던 사민당의 지지율이 23%로 기민/기사 연합과 동률을 이루고 녹색당은 18%로 하향세를 멈추지 못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선거를 이틀 앞둔 9월 24일 사민당이 25%로 기민/기사 연합(22%)과 녹색당(16%)에 앞서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기민당의 라셰트의 어처구니없이 이어지는 실책이 직접적 원인이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사민당의 연방총리 후보인 숄츠(Olaf Scholz)의 신뢰감을 불러일으키는 개인적 행보가 촉발한 개인적 인기가 큰 역할을 하였다.     


기민/기사 연합의 연방총리 후보인 라셰트가 연속된 헛발질을 하는 동안 사민당의 숄츠는 은근한 인간적 행보로 독일 국민들에게 커다란 신뢰감을 주었다. 무엇보다 그가 현 정부의 재무장관으로서 쌓은 경제에 대한 전문성이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사민당이 여론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며 더 나아가 총선에서 승리한 것은 독일 정치사에서 19년 만의 일이다. 그만큼 사민당은 국민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해 왔다. 그 결정적 이유는 우편향의 보수화에 있다. 슈뢰더 정권이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구하면서 많은 진보 세력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이들은 결국 녹색당, 그리고 무엇보다 좌파당으로 몰려갔다. 그러다 마침내 좌파의 색깔을 분명히 한 연방총리 후보의 등장이 전세를 역전시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집을 떠났던 좌파들이 다시 사민당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게 되었다.     


숄츠는 누구인가?     


1958년 니더작센의 주도인 오스나브뤼크에서 태어난 숄츠는 17세인 1975년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사민당의 유서 깊은 청년조직인 유소스(Jusos)에 가입하여 일찍부터 정치의 길에 접어들었다.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유소스 전국위원장 직무대리를 역임했고 1989년부터는 ‘국제 사회주의 청년 연맹’의 부의장직을 겸임했다. 이때부터 그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고, 특히 유럽에서의 미국의 국익을 대변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1998년 총선에서 연방의회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2000년부터 함부르크 지방당을 이끌었다. 2002년에는 적녹 연정, 곧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 정부에서 사민당 사무총장에 선출되었다. 2009년에는 사민당 당대표 직무대행으로 선출되었다. 2011년부터 7년 동안 함부르크 시장을 역임한 다음 2018년부터는 기민/기사 연합과 대연정을 이룬 정부에서 재무장관직을 수행해 왔다. 그러면서 2019년에는 당대표로 선출되었고 마침내 2020년에 사민당의 연방총리 후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숄츠는 그의 청년기의 좌파적 정치 경력과는 달리 당내에서 보수파로 분류된다. 숄츠가 슈뢰더 정권에서 사민당의 노선을 근본적으로 바꾼 이른바 ‘Agenda 2010’의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부터이다. 이때 그는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67세로 높이는 것을 관철하고 실업 수당 지급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노동자들의 원성을 샀다. 그리고 독일의 전통적인 사회보장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한 이른바 ‘하르츠4 법률’(Hartz-IV-Regelsätze)의 입법을 사실상 주도하였다. 이때 그는 노조와 당내 좌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관철했던 것이다.   

   

그러나 총선 시기가 되자 그는 역변하여 기민/기사 연합이 요구한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의 68세 상향 조정을 반대하고, 연금 적자 부분을 세금으로 메꾸는 조치를 시행하여 연금 지급률을 최종 소득의 48%로 유지하는 계획을 당초의 2025년이 아니라 2040년까지 연장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현재 기민/기사 연합의 반대로 관철하지 못하고 있는 시간당 최저임금 12유로(약 16,000원)를 총선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좌파의 시각에서 그는 보수주의자이지만 독일 정치계에서 본다면 그는 뼛속 깊이 좌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는 그 누구도 좌파 연정이 가져올 변화의 바람에서 이른바 ‘빨갱이’ 공포를 느끼는 이는 전혀 없다. 물론 독일의 우파 언론을 자처하는 <빌트>(Bild)는 최종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좌파 집권에 대한 경계의 논조를 쏟아내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총선에서 11% 중반의 득표율로 선전한 자민당(FDP)의 행보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비록 녹색당에 밀려 4위의 정당이 되었지만 역대 독일 정치 무대에서 늘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해온 관록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당명 그대로 자유민주주의, 곧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며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답게 늘 실용주의 노선을 택하며 우파인 기민/기사 연합과는 일곱 차례 그리고 좌파인 사민당과 네 차례 연정을 수립하여 정권에 참여하는 ‘박쥐 신공’을 발휘해 왔다. 그러니 이번 정권에도 참여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일단 사민당과 녹색당이 주도권을 쥐고 있으니 자민당은 사태를 관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선거에서 혜성같이 등장인 독일을위한대안당(AfD)의 위세가 이번 선거에서도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2017년 총선에 비하여 2%p 정도 득표율이 떨어졌으나 좌파당의 추락(-4.3%p)에 비하면 상당히 우수한 성적을 거둔 셈이다. 더구나 지난 총선에서는 지역구를 단 3개만 건졌으나 득표율 덕분에 91석을 추가로 확보한 데 비하여 이번 총선에서는 많은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하였다. 다만 전체 득표율이 떨어진 만큼 의석수는 줄어들 것이 분명해졌다.     


결국 독일의 극우 세력은 여전히 전 국민의 10% 내외의 지지, 그것도 구동독 지역에서 큰 지지를 받으며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극좌 세력은 동독 지역에서조차 그 영향력이 감소했다. 이들의 행보에 못마땅한 지지자들이 결국 사민당과 녹색당으로 ‘돌아 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앞에서 본 대로 여전히 좌파 정권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한국의 총선은 작년에 진보 세력의 대승으로 마무리되었다. 초미의 관심사인 내년 대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미정이다. 독일 총선에서 본 대로 모든 것이 끝나야 끝난 줄 알게 되는 것이 선거이기 때문이다. 현재 선두 다툼을 하고 있는 여당의 이재명 후보와 야당의 윤석열 후보가 독일 선거에서 배울 점이 있는가? 


있다. 의원내각제를 택한 독일에서는 총선과 대선이 사실상 동시에 치러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정당의 지지율과 연방총리 후보의 지지율은 비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정당과 연방총리 후보의 케미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연방총리  후보가 얼마나 실수를 덜 하는지가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민/기사 연합의 라셰트가 연방총리 후보가 되는 과정에서 자매당인 기사당의 당수인 쇠더(Markus Söder)와 벌인 권력 다툼은 쓴 뒷맛을 남겨 그의 인기에 흠집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인기 하락은 무엇보다 그 자신의 ‘방정맞은’ 행동에 따른 것이다. 8월 달에 독일에 있었던 대홍수로 많은 희생자가 난 상황에서 연방 대통령이 성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측근들과 담소를 나누며 파안대소한 모습이 언론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그는 국민의 안녕에 무심한 정치가라는 낙인을 받게 되었다. 그 후 이어지는 자잘한 실수와 TV 토론에서 어설픈 모습을 보이면서 집권당 후보라는 메리트를 스스로 갉아먹으며 자멸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대권을 노리는 정치가라면 그를 반면교사로 삼을 만할 것이다. 대선에 나서는 정치가에게는 아무 생각 없이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 서울 시장 보권 선거에서 특히 남성 MZ세대가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다고 해서 어쭙잖은 MZ세대 환심 사기 행보를 보이는 대선 후보들도 보인다. 이들은 독일 사민당의 숄츠 연방총리 후보의 튀지 않으면서도 ‘어른다운’ 행보가 결국 독일 민심을 산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16년 동안 기민당의 메르켈이 이끌어 온 독일의 정권을 넘겨받게 될 그의 앞날에 건투를 빌어 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과거 진보 정당과 보수 정당이 번갈아 가면서 권력을 장악했지만 상대 진영의 정책을 다 뒤집지 않고 오로지 독일의 국익만을 위해 노력해온 독일 정당사를 회고해 보건데, 좌파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결국 독일에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해 본다. 좌우로 나누어 서로를 죽일 듯이 물어뜯는 경험은 이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충분히 해본 독일 국민은 무엇이 진정으로 나라를 위한 길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념 투쟁에 더 이상 넘어가지 않는다. 곧 진영 논리를 앞세운 좌우 대립보다는 국민과 국익이 먼저라는 것을 정치 수준이 높은 독일 국민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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