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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Oct 22. 2021

윤석열의 '개 사과'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슬픈 운명이여

윤석열의 지지자들은 정녕 ‘묻지 마 투기꾼’인가?


‘일일 일 망언’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은 윤석열의 최근 워딩을 그대로 옮겨 본다.



“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     



이는 마치 살인강도를 저지른 자라도 살인과 강도질한 것만 빼면 나머지는 ‘다’ 잘했다는 말과 같지 않은가? 검찰에 오래 머물다 보면 이런 시각을 가지게 되는가? 김웅이 ‘고발 사주’와 관련된 명백한 녹취록이 나와도 말을 계속 바꾸며 변명하는 것을 보면 검찰이라는 곳은 이 세상과 전혀 다른 사유가 이루어지는 공간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내로남불’을 능가하는 ‘아시타비’(我是他非), 곧 ‘나는 옳고 남은 틀리다.’라는 유아독존적인 생각만 하는 인간을 양성하는 곳이 검찰인가?  


아니면 윤석열은 니체가 말하는 '선악의  피안'(Jenseits von Gut und Böse)으로 자기 정신줄을 내어 준 사람인가? 아니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존재가 되어 '진리고 나발이고 이기면 장땡이다'라는 신 실용주의 사고방식에 젖은 것인가? 그래서 암브로시오라는 세례명을 지닌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오순절 교파인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신삥 개신교 성경 들고 가서 남들 뻘쭘한 데 두 손을 교차로 잡고 기도하고 절에도 가고 천공 도사의 말씀에 감동도 받고 손바닥에 부적도 새기고 그러는 것인가? 우주의 모든 기라는 기는 다 모아볼 작정인가 본데 그래도 악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전두환을 놓고 정신줄을 놓는 것은 정말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한국에는 정치 윤리의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사인방이 있다. 곧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이다. 그런데 이승만과 박정희의 공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고 이명박은 윤리 이전에 실정법 차원에서도 죄인으로 판결이 난 인물이다. 그러나 전두환은 사형선고를 받기는 했지만, 사면을 받아 떳떳하게 버티고 있다. 그래서인가? 윤석열은 ‘자신 있게’ 전두환에게 배울 것이 있기에 벤치마킹을 해야 한다면서 “국가 지도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지금 미얀마의 군사독재정권이 하는 것처럼 전두환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민을 상대로 총부리를 겨눈 것도 합당하다는 말이겠다.     


윤석열의 ‘실언’ 시리즈는 이제 책 한 권으로 정리하여 분석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그 실언 시리즈를 관통하는 윤석열의 태도는 아시타비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한 말을 끝까지 ‘책임지는’ 신공을 발휘하는 중이다. 지난 대선 후보 토론에서 보여준 대로 윤석열은 바보가 아니다. 여전히 전두환을 ‘통이 큰 의리남’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TK 지역을 중심으로 건재하고 있다. 대구 바닥 민심을 탐색하는 기자에게 윤석열이 ‘때 묻지 않은’ 검사 출신 정치 신인이라는 확신에 찬 답을 하는 할머니가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러한 이른바 바닥 민심에 낚시질하는 법을 윤석열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절대로 사과하지 않고 ‘유감’ 표명만으로 버티는 것이다. 오늘 나온 그의 말을 그대로 적어본다.      


    

“설명과 비유가 부적절했다는 많은 분의 지적과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유감을 표한다.”    


      

참으로 건방지기 짝이 없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서 윤석열은 사과하라는 여론을 비꼬듯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돌잡이 사진을 올려놓고는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참조: https://news.v.daum.net/v/20211021141902925?f=p)        


  

“석열이 아가는 조금의 갈등도 없이 양손 가득 사과를 움켜쥐고 바로 입에 갖다 대기 시작했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얼굴만큼 큰 사과를 베어 물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석열이형은 지금도 과일 중에 사과를 가장 좋아한답니다.”     



그러더니 한술 더 떠서는 아예 개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고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참조: https://news.v.daum.net/v/20211022083333546)   


        

“오늘 또 아빠가 나무에서 인도사과 따왔나 봐요. 토리는 아빠 닮아서 인도사과 좋아해요.”      


    

이 정도의 멘탈이라면 거의 강철이 아니라 텅스텐에 가까운 것인가? 국민을 문자 그대로 ‘개’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전두환 옹호 발언에 대하여 사과하랬더니 개에게 사과를 던져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사진과 글이 문제가 되면 한결같이 나오는 변명이 있다. '실무자의 실수'란다. 그런데 뭔가 고약하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은 매우 사적인 소셜미디어 아닌가? 사진에 첨부된 글도 '공식적인' 실무자가 내부적 검토와 절차를 거쳐 쓴 어투가 아니라, 상당히 '무식한' 사람의 '사사로운' 말투다. 그러다가 언론에서 문자 그대로 난리가 나자 '개 사과' 내용을 삭제하더니 아예 인스타그램 계정을 '폭파'시켰다.(참조: https://news.v.daum.net/v/20211022122809161) 그 '실무자' 정말 정말 지 맘대로다. 애도 아닐 것으로 보이는 자가 도대체 왜 이 모양일까?


그런데 실수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그 실무자가 누구일지, 정체가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매우 사적인 돌사진이나, 그보다 더 사적 공간인 집안에 있는 개 사진을 맘대로 찍어서 쓸 수 있는 그 '실무자' 말이다. 그리고 개와 윤석열의 관계에서 항상 윤석열이 '아빠'란다. 그것도 '개 아빠'... 정말 신기한 족보이다. 그럼 '개 엄마'도 있다는 말인데... '오빠'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감히 윤석열을 개 아빠로 당당히 부를만한 위치에 있는 자가 누구일까?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윤석열과 그 측근의 통제가 전혀 안 되는 인물인가 보다. 그 개 눈에 비친 그림자를 확대해 보니 남녀가 보인단다.(참조: https://news.v.daum.net/v/20211022152420046) 한 밤중에 윤석열과 김건희가 자는 집에 쳐들어가 사과 들고 정답게 사진 찍을 만한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 게다가 해시태그에는 경상도 사투리로 전라도를 조롱하는 '일베'스러운 암시를 잔뜩 늘어놓은 '실무자'는 과연 누구일까?(참조: https://news.v.daum.net/v/20211022151914890?f=p) 맘대로 사진 올리고 맘대로 글 쓰고... 그러다 짜증 나면 폭파시키고... 정말 호기심이 하늘을 찌른다. 누군가 말이다. 그러다 불현듯 <시튼의 동물기>에 나오는 늑대 '로보'의 짝이었던 '블랑카'가 떠오른다. 소수의 무리를 이끌며 뉴멕시코의 가축 수천 마리를 문자 그대로 도륙하던 전설적인 로보도 결국 '천방지축'이던 어리석은 블랑카를 덫으로 잡아 이용한 인간의 지혜를 이기지 못했다. 서열이 매우 엄격한 늑대 사회에서 우두머리인 로보가 세운 위계질서를 마음대로 '파괴한' 그 털과 얼굴이 눈처럼 흰 비앙카 말이다.


그래도 윤석열은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기는 한가 보다. 그는 여전히 경상도 지역에서 텅스텐보다 강도가 높은 절대 지지를 확보하는 중이니 말이다. 그러니 경상도 사나이 전두환을 칭찬하고도 진정한 사과 아닌 먹는 사과 타령이나 할 밖에. 그동안 시리즈로 이어져 온 그의 진심이 담긴 실언 아닌 ‘실언’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묻지 마 지지자’들이 닦아놓은 콘크리트 지지 기반을 굳게 믿는 윤석열이다. 게다가 꼰대들은 평생 모은 돈으로 겨우 마련한 집을 20~30대에 마련하지 못한다고 불평불만인 MZ세대가 정부를 욕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의 심기만 살살 달래서 어오면 그만 아닌가? 뭐가 두렵겠는가?


경상도 인구가 1,200만 명이다. 전라도는 500만 명이다. 상대가 안 된다. 윤석열의 처지에서는 어차피 인기가 없는 전라도는 버리고 확실한 경상도의 표를 긁어모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에서 유력 후보인 홍준표나 유승민이나 다 경상도다.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니 ‘영끌’을 해서라도 경상도를 사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계산서가 나온 것이다. 더구나 이낙연이 꾸물거리면서 원팀에 심드렁해진 사이 그의 지지자들이 반 이재명 연대를 하고 난리를 피우는 상황 아닌가? 윤석열로서는 기고만장해도 될 판이다. 자기를 ‘묻지 마 투기꾼’처럼 밀어주는 경상도와 화가 난 MZ세대와 분열된 진보 세력을 보면 그림이 딱 나오지 않는가?    


그런데 과연 전두환은 쿠데타와 5.18만 빼면 나무랄 데가 없나? 그의 죄악은 언론에 이미 보도된 대로 삼청교육대와 이한열을 비롯한 많은 민주 투사들을 실질적으로 죽음으로 몰고 간 자이다. 그것도 모자라 재벌들을 협박하여 정치자금을 명분으로 거액의 돈을 착복한 자이기도 하다. 전두환은 나무랄 데가 너무 많은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를 ‘의리의 사나이’로 여기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 이명박이나 노태우보다 낫다는 것이다. 그리고 윤석열이 말한 대로 전두환 시절에 경제가 좋았고 그 이유가 인재를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 알았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든다. 정말 그런가? 전두환 시절의 호경기는 국제 경제의 호황 덕분이지만 무엇보다 박정희가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국제 유가가 폭등하여 경제 발전을 제대로 이룩하지 못한 것에 대한 기저효과가 더 크다.      


사실 박정희는 김일성의 북한과 체제 경쟁으로 하면서 경제 발전을 가장 중요한 변수로 삼았다. 그래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보기 힘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공산주의 국가, 특히 소련과 중국, 북한의 계획경제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북한은 1957년부터 인민경제발전 5개년계획, 제1차 7개년계획, 6개년계획 등의 이름으로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와 유사한 4차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우리나라가 잘살게 되었다는 ‘신화’가 존재하지만, 이는 어느 모로 반드시 맞는 말이 아니다. 박정희가 살아 있는 동안 남한은 경제적으로 사실상 북한에 대부분 뒤졌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에 가서야 겨우 북한을 따라잡기 시작한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 원인으로는 남한의 경제가 발전한 것도 있지만 특히 중공업 중심으로 진행된 북한의 계획경제 체제가 1980년대에 들어 심각한 무역 적자에 시달리며 붕괴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1989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북한의 경제는 급격히 무너지게 되었다. 반면에 남한은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어 20여 년 만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더구나 전두환은 박정희와 달리 연임을 위해 불법을 자행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전두환이 박정희와 비교되며 더 나은 정치를 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의 정치는 군사독재정권의 전형적인 정실 인사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의 쿠데타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14명이 장·차관을 지냈다. 총선에도 간섭하여 측근 7명을 국회의원을 시켰다. 청와대 고위직에도 8명을 앉혔다. 대표적인 정실 인사를 한 것이 전두환이다. 특히 전두환의 친동생 전경환은 전두환이 재벌들에게서 착취한 비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유명하다. 윤석열은 도대체 전두환의 어떤 면모를 보고 자신 있게 벤치마킹하겠다고 한 것인가? 아니 윤석열은 검찰 시절에 한동훈 같은 자기 ‘라인’을 총애하던 버릇이 있어서 전두환과 ‘동류’ 의식을 느낀 것인가?


전두환의 측근 사랑은 퇴임 후에도 지속되었다. 최측근인 허화평이 여전히 대표로 있는 미래한국재단의 설립 자금 94억 원은 재벌을 등쳐서 빼앗은 돈이다. 허삼수도 전두환 후광으로 변함없이 호의호식 중이다. 전두환의 오른팔이었던 장세동은 전두환이 베풀어준 ‘사랑’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12.12 쿠데타 때 모두 ‘가난한’ 군인이었던 자들이 강남, 분당, 과천에서 수십억 원대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결코, 군인 연금으로는 유지할 수 없는 삶인데 말이다. 사정이 이런데 어찌 전두환이 잘한 부분이 있다고 두둔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문제는 윤석열이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행동을 하든지 국민의힘에서 아무도 제재를 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재명과 달리 윤석열은 아직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도 아닌 위치에 있는데 말이다. 윤석열이 국민의힘을 갈아엎어버린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해도 아무도 대들지 못한다. 명색이 당대표인 이준석마저도 윤석열의 눈치만을 보고 있다. 아직도 윤석열이 여전히 검찰에서처럼 정치 사찰을 하는 줄로 아는 모양이다. 그 근본적 원인은 역시 경상도를 중심으로 한 보수 세력이 여전히 윤석열에게 ‘묻지 마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보수주의에 윤석열이 바르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사실 경상도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보수’의 본산이다. 조선 시대부터 이황을 시조로 하는 영남학파는 주리론을 주장하며 이이를 시조로 하는 기호학파와 성리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영남학파는 후에 남인 세력의 중심이 되었고 주기론을 내세우는 기호학파는 서인 세력과 노론의 중심이 되었다. 사실 이황의 주리론은 사단칠정론 논쟁에서 패배한 이론이었다. 인간의 본성이 사단이고 칠정은 부차적인 것으로 해석하던 이황은 결국 나중에 자신의 이론을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남인은 결국 서인에 패배하고 노론이 득세했으나 안동 김 씨의 세도 정치에 밀려 결국 노론도 몰락해 버린다.


그러나 그 후에도 영남학파의 후예들은 조선 시대 최대의 적폐인 서원을 중심으로 지역 토호로 군림하면서 붕당 정치의 폐단을 일으킨 것도 모자라 군역 회피와 탈세를 일삼으며 백성들의 착취에 선봉에 섰다. 애초 사당과 교육 기관의 역할을 하며 시작된 서원은 결국 지방 토호 세력 양반들의 탈세와 개인 재산 은닉의 수단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에 적폐가 되어 청산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 조치로 조선 8도에서 47개의 서원만 남고 천여 개가 사라졌는데 살아남은 것 가운데 30%에 달하는 14개나 경상도 지역에 몰려 있었다. 그 가운데 특히 서약서원은 김유신의 사당 기능까지 하였다. 조선 성리학의 유교 정신 함양 기관에서 신라의 관리의 영혼도 ‘모시고’ 있던 것이다. 신라가 완전히 망한 지 1,000여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김유신이 신적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참으로 보수 아닌 ‘수구’ 다운 정신이 아닐 수 없다.  수구는 영어로 표현한다면 보존(preservation)의 정신에 가깝다. 자신이 믿는 과거의 것이 아니면 다 부패 정부의 만행이니 깡통 안에 잘 보존해온 것을 다시 꺼내 쓰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참다운 의미의 보수는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회 발전의 측면에서 궁극적으로 진보주의와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보수주의’가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보수-주의(保守主義)「명사」 급격한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의 옹호와 현상 유지 또는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사고방식. 또는 그런 경향이나 태도.”     



참고로 이에 맞서는 진보주의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진보-주의(進步主義)「명사」 「1」 사회의 모순을 변화와 개혁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사고방식. 또는 그런 경향이나 태도.”          



그렇다면 현 정권의 잘못을 지적하고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는 윤석열은 보수가 아니라 진보 아닌가? 참으로 이상하다. 보수라면 현상의 유지와 기존 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점진적 개혁을 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변화와 개혁은 진보의 전유물이니 말이다. 그래도 그를 지지하는 이들은 윤석열이 진보든 보수든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인다. 참으로 이상한 정치 논리가 아닐 수 없다. 현 정권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데 보수주의자란다.  더 나아가서 문제는 과연 윤석열이 그런 보수의 정신을 대표할만한 인물이냐는 것이다. 오히려 그의 개인적 삶은 차치하고라도 그가 하는 발언들은 ‘보수의 가치’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가 보수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러니 한국에서 현재 회자 되는 '보수'는 사전적 의미의 보수가 아니다. 이들을 설명하는 데 더 적확한 단어는 ‘수구’이다. 과거 회귀적으로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지키는 자기중심적 사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윤석열은 분명히 탁월하다. 지금까지 자기가 내뱉은 말에 잘못을 구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해석과 변명을 하며 끝까지 지켜내니 말이다. 그리고 아내와 장모에 관련된 불법 부정이 있어도 여전히 변함없는 애정을 보이는 모습도 또한 ‘수구’ 정신의 현현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수구 세력의 윤석열 사랑은 계속 ‘수구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일인가? 아니다. 정치적 성향은 개인의 고유한 권리이다. 그러니 건드릴 수 없고 설득할 수도 없다. 결국은 헤겔이 말한 역사 발전의 원칙에 따라 수구와 진보의 변증법적 발전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정반합의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버텨낼 것이니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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