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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Jan 29. 2022

윤석열의 지지율이 왜 아직도 높으냐고?

원래 한국의 수구 세력이 늘 다수였고 무속은 오랜 전통이었다.

대선 상황이 점입가경이다. 그러나 분명히 윤석열이 우위를 점령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여론 조사의 조작을 지적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승기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자가 윤석열이다. 국민의힘은 이 추세를 유지하려고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하고 있다. 4자 토론을 패스하고 양자 토론만 그것도 공중파 중계 없이 하겠다고 떼를 쓰고 있다. 대구 보선에 공천 안 하겠다고 선언한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윤석열의 나팔수가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한 다음 복당 하겠다고 뻔뻔하게 선언한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 애들 장난도 아닌 이런 짓이 허용되고 민주당도 막을 도리가 없다. 그저 끌려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대체 그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윤석열의 언행의 무수한 실수, 김건희의 7시간 51분이 밝혀준 무속 중독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에 대한 지지는 공고하기만 하다. 더구나 윤석열이 감옥에 집어넣은 박근혜의 아성인 대구경북에서도 윤석열에 대한 ‘묻지 마’ 지지는 변함이 없다. 국민들이 속고 있는 것이라고? 국민들의 수준이 낮은 것이라고?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파당적 사고의 유산이라고? 다 일리가 있는 분석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한국인들의 정치적 성향이 이유일 뿐이다. 한국인들의 다수는 뼛속까지 수구적이다. 지킬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가진 것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나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가난한 사람들조차 그 가난한 상황이 비정상적인 것이고 부자가 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단 방법을 가지지 않고 부자가 되고 권력을 잡고 떵떵거리고 사는 것을 꿈꾼다. 가난한 사람이 좌파적이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참다운 의미의 진보가 없다. 다만 주어진 상황에 철저히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보수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심지어 입으로만 진보를 외치는 자들도 뼛속까지 보수적이고 일단 획득한 것을 지키려는 수구적인 의식에 지배당한다. 사회적 대의나 공동선을 위하여 ‘내 것’을 희생하는 진보적 사고를 가진 이들은 거의 없다. 이런 토양에서 윤석열의 지지율의 근본 원인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김건희가 한국의 모든 도사들을 만나고 심지어 ‘신딸’이 된다고 해도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을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강남좌파와 입진보자들의 위선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은 이제 수구의 아이콘이 되었고 그 인기가 점점 더 공고화되고 있다. 이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진보 세력이 문자 그대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자기희생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럴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중이 고기 맛을 보면 더 정신을 못 차리는 법 아니던가? 일단 권력의 맛을 본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그러니 권력을 장악한 진보세력은 수구와의 대결에서 패배할 가능성을 내재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가. 민주당은 윤석열보다는 김건희 공격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김건희의 무속과 관련된 스캔들을 최대한 부각시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 또한 패착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고? 한국인들의 DNA가 무속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은 다종교 국가이다. 불교와 기독교가 한국의 종교계를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온 모든 종교는 ‘토착화’되었다. 다시 말해서 종교의 종류와 무관하게 대부분이 무속과 다름 없이 기복적이다. 그 증거를 보고 싶으면 입시철의 절과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된다. 입시 성공을 비는 기도회가 종교 교파를 초월하여 모든 절, 성당, 예배당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이른바 효험 있는 절, 성당, 예배당 소문이 나면 문자 그대로 ‘대박 명소’가 되어 버린다. 특히 한국에 들어온 지 거의 2천 년이 되어가는 불교의 절을 보면 어디까지가 무속이고 어디까지가 순수 ‘불교’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이다. 불교와 삼신당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집안의 안녕, 승진, 합격, 재물의 융성을 부처 앞에서 비는 관행이 무당이 굿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부처가 언제 이 세상에서 출세와 영달을 빌라고 했다는 말인가? 기독교는 어떤가? 천상 예루살렘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이른바 ‘삼중축복’을 노골적으로 비는 교회가 이른바 정통 교단이란다. 다른 교단도 나을 것이 없다. 신자가 헌금만 하면 ‘성직자’가  뭐든 다 신에게 기도해준다. 그러면서 무속을 미신이라고 경멸한다. 종교계도 한국에 만연한 ‘내로남불’이 판치고 있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가치의 전도가 한국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자행되고 있다. 정치계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솔직히 정계에 발을 디딘 인물치고 ‘점집’을 기웃거리지 않은 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것을 국민이 다 알고 있다. 김건희가 큰 소리친 것처럼 말이다. 또한 일반 시민들 가운데에서도 평생 ‘점’과 완전히 무관한 자가 얼마나 될까? 한민족은 처음부터 무속적인 DNA를 지닌 민족이다.  


이는 김건희의 이른바 ‘신딸’ 논란으로 더욱 분명하게 확인된 불편한 진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김건희만 무속적이라고, 더 나아가 ‘무당’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는 말인가? 대한민국 자체가 무속의 나라인데 말이다. 그러니 김건희가 지금 일으킨 사달은 궁극적으로 김건희의 책임이 아니다. 김건희를 둘러싸고 권력의 맛을 보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모든 관계자들이 ‘무속’ 귀신에 들려 있는 것이다. 김건희는 그런 욕심에 눈이 먼 이들의 죄를 대신하여 욕을 혼자 고스란히 다 먹고 있는 것이다. 어느 모로 김건희는 ‘거룩한 희생양’이 되어 가고 있다. 한반도 자체가 무속에 물든 상황에서 이는 윤석열 지지자들에게는 일종의 ‘마녀사냥’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김건희는 마녀로 희생당할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이른바 영빨이 상당한 여자이다. 잘못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민주당이 빨리 간파하고 선거 전략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없다. 한국에서는 무속을 들먹여서 성공한 경우가 없다. 한국인의 대부분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철지히 ‘무속’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당장 대한민국의 국기도 <주역>의 태극 팔괘도를 채용한 것이다. 태허에서 음양이 나오고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 오행과 팔괘가 이루어진다. 원래 주역에 나오는 팔괘는 乾, 兌 離, 震, 巽, 坎, 艮, 坤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팔괘를 다시 조합을 하면 우주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64괘가 완성된다. 이것으로 천하의 변화를 설명하고 더 나아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늘은 운행은 쉬는 법이 없어서 늘 변화한다는 것이 <주역>의 핵심 정신이다. 그리고 이런 주역의 정신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의 태극기에 극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태극기를 최초로 사용한 것은 다름 아닌 박영효(1861~1939)로 알려져 있다. 박영효가 누구인가? 조선 25대 왕 철종의 사위이며 고종의 매제이다. 조선 시대 정통 고위 관련 집안 출신이다. 무당이나 점쟁이가 아닌 것이다. 갑신정변과 갑오경장을 주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본에서 20년이나 망명생활을 했다. 박영효가 1882년 3차 수신사의 자격으로 일본으로 가는 배 안에서 당초 고종의 명령으로 역관인 이응준이 만든 국기 초안을 수정하여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태극기를 완성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응준이 이미 조미 통상 수호조약(1882년 2월)에서 사용한 초기 태극기는 물론 박영효의 태극기는 태극 팔괘도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라 태극의 모양이 현재의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정부 수립 이후 사용하던 태극기의 감과 리의 위치를 1949년에 서로 바꾸었고 1997년에는 태극의 색조를 좀 더 밝은 색으로 수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 태극기 이전에 조선 시대에는 이미 ‘어기’에 태극 팔괘를 넣어 사용해왔었다. 그리고 군기인 좌독기에도 동일한 태극 팔괘도가 사용되었다. 이른 간편화 한 것이 오늘날의 태극기이다. 그만큼 조선 시대에 사서삼경의 하나인 <주역>에 담긴 정신을 중하게 여겨왔다. 그리고 그 정신은 오늘날 기독교가 미신으로 폄하하는 무속적인 것이다.


이러한 태극기의 기본 정신을 담은 <태극도설>은 중국 송나라의 주렴계가 체계화한 것이다. 결코 미신이 아니다. 사실 유교는 우주론과 조론 그리고 내세에 관한 이론에서 매우 취약한 종교였기 때문에 추후에 불교와 도교의 요소를 도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렴계의 작품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이후에야 비로소 유교는 단순히 이상적인 사회론 만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사변 철학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원래 우주론과 형이상학의 이론으로 시작된 태극도설은 이후 <주역>과 더불어 점차 술업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곧 단순히 인간의 미래와 길흉화복을 점치는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점술의 역사가 한반도에서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고대부터 모든 문명권에서는 점술이 지배층이나 피지배층을 가리지 않고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심지어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조차 점술적인 예언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오늘날 매우 이성적인 종교로 간주되는 가톨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니 한국에서 현재 무속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오히려 어느 모로 과장된 논란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대선이라는 정당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건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 사회에서 유별나게 무속이 문제화된 것은 기독교 때문이다. 특히 개신교가 한국에 도입되면서 종래의 토속 종교를 모두 미개하고 원시적인 믿음 체계로 간주하며 적대시하고 유교적 제사마저 우상숭배로 배척한 것이 모든 사달의 원인이 된 것이다. 사실 종교학적 차원에서 유대교라는 토속 종교에서 시작된 기독교도 그러한 토속적인 조상 숭배의 요소를 갖추고 있음에도 이러한 배타적 교리를 내세워 기독교가 한반도에서 사실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기독교도 제도적인 차원에서 신과 인간을 중계하는 무당이나 다름없는 성직자를 두고 신에게 지상에서의 복을 바라는 기복적인 요소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종교이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기독교에서도 성직자에게 제물을 바치고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종교 예식을 거행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제물을 받고 복을 빌어주는 주술적 행위를 분명히 ‘자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마치 무속에서 행하는 기복 행위만이 미신이요 우상숭배인 것으로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김어준이 조국의 아내가 4년 형을 받고 아내 아닌 여자들과 놀아난 법조인이 무죄를 받은 것을 보고 분기탱천한다. 한국 사회의 정의가 사라졌단다. 그럴 말을 할 만도 하다. 김어준을 지지하는 세력, 곧 그를 먹여주는 세력의 입맛에 맞는 소리를 해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조국 사태’는 법적 공정성을 따지기 이전에, 분명히 국민의 역린, 특히 MZ 세대의 역린을 건드린 사건이다. 그러나 진보 좌파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반성을 안 한다. 만약 이번 대선에서 진보가 수구에 패배한다면 그것은 무속 때문이 아니다. 영험한 도사의 ‘방법’이나 무당의 신 내림을 방금 받은 무당의 굿판 때문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바로 좌파의 오만과 편견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도 좌파는 김건희의 무당 놀음에 ‘놀아나고’ 있다. 너무나 한심한 상황이다. 그리고 절망적인 상황이다. 


만약 지금이라도 진보 좌파가 ‘대역전’을 바란다면 분열을 멈추고 문자 그대로 ‘살신성인’의 자세로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인물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진보 좌파 안에서 편가르기에 몰두하고 있는 중이다. 조선 시대의 수구 세력의 당파싸움만 배우고 사회개혁과 민중의 개화에는 무관심하 채로 그저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혈안이 된 모습일 뿐이다. 수구 세력과의 차별화에 실패하였다. 그럴수록 국민의 정권 교체 열망을 커져만 갈 것이다. 그 열망을 잠재우는 길은 오직 하나이다. 곧 기득권을 포기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죽어야 사는 것이 진보 좌파의 근본정신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에서 그런 정신을 구현하는 진보 좌파는 단 한 명도 없어 보인다. 그저 잘난 자기 돋보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기득권 유지에 수구 못지 않은 신공을 발휘하면서 말이다. 그동안 한국의 진보 좌파는 너무 편하게 지냈다. 이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를 모양새이다. 그저 하늘의 운이 이재명에게 돌아가기를 바라는가? 답답한 마음에 주역 단사점을 쳐본다. 태위택괘가 나왔다. 역시 이재명은 토론에서 승부를 볼 모양이다.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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