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rancis Lee
Mar 13. 2022
‘윤핵관’에게서 이완용의 유령이 보인다고?
수구 언론의 종말이 더 잘 보인다.
“힘없는 다리를 부축해 달라고 남에게 부탁한 것이 어떻게 나라를 팔아먹은 일이라고 매도당해야 하는가. 아들아. 내가 보니 앞으로 미국이 득세한다. 너는 친미파가 되거라.”
을사오적의 으뜸인 이완용이 1926년 죽기 직전에 아들에 남긴 유언으로 알려진 유명한 말이다. 사실 이완용은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하였다. 원래 친러파였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바로 진영을 바꾸어 친일파가 되고 그것도 모자라 나라를 일본에 넘기는데 앞장서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이완용이 죽어가는 자리에서 아들에게 친미파가 되라는 훈계까지 했다. 정말 박쥐가 따로 없다.
그런데 2022년 대한민국의 정치계에도 이완용 뺨치는 박쥐가 많이 보인다. 검찰총장 후보였던 윤석열을 매섭게 몰아치던 자들이 이제는 ‘윤핵관’이 되어 겨우 5년짜리 권력을 휘둘러보려고 칼을 갈고 있다. 이완용이 죽은 지 100년이 가까워졌지만 박쥐 같은 기회주의자였던 그의 유령이 아직도 대한민국 하늘 위에서 특히 그 잘난 ‘엘리트’들 머리 위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이완용이 누구인가? 몰락한 가난한 양반 가문 출신으로 머리가 별로 좋지는 않아 25세에 가장 수준이 낮은 병과에 그것도 그저 그런 성적으로 합격하였음에도 파격적으로 정7품에 임명되었다. 이는 그의 아비인 이호준이 대원군 파에 속해 있다가 민비 파가 득세하자 신속하게 진영을 옮긴 덕분이었다. 눈치껏 세력가에 붙어서 인맥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그 아비에 그 아들답다. 아니 그 아들에 그 아비답다고 해야 하나? 현재 ‘윤핵관’들이 보이는 행태와 어쩌면 그리 잘 일치하는지. 한국의 ‘엘리트’들의 이런 탁월한 변신술은 영원할 모양이다.
오늘날 고시와 마찬가지인 과거에 합격한 이완용은 당대 최고의 엘리트가 밟아야 하는 규장각, 홍문관, 의정부, 군마사의 모든 요직을 거치게 되었다. 그러다가 갑신정변 이후에도 수구 세력인 민비 파와 기존의 줄을 적당히 맺으면서도 개화파의 정신이 강하게 깃든 ‘육영공원’이라는 엘리트 양성소에서 신문물 교육을 받고 매우 우수한 성적을 보이며 고종의 눈에 들어 마침내 조선 관직의 최고 품계인 당상관에 속하는 정3품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그가 이 자리에 오르는데 단 5년밖에 안 걸렸다. 이런 초고속 승진은 조선 역사 전체에서 이완용이 거의 유일하다. 조선에서 학연, 지연, 혈연과 더불어 눈치 빠르게 철새처럼 진영을 옮겨 다니는 것이 얼마나 출세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이완용이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전통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조금의 변화가 없어 보인다. 현재 ‘윤핵관’들이 몸소 잘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출세 덕분에 이완용은 치부도 엄청나게 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던 그의 집의 크기는 현재 조선일보 사주의 집 크기와 비슷한 3천 평이었고, 그가 소유한 땅은 지금 여의도 면적의 2배인 1,300필지에 이르렀다. 그의 위세는 문자 그대로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드릴 정도였다. 그래서 그의 장례식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 정2위대훈위 후작’이라는 어마어마한 직함에 걸맞게 장례위원이 50명에 이르고 조문객이 1,300이 참석하여 성대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장례 행렬에는 고종의 장례 행렬에 버금가는 인파가 몰렸다. 아마 그 당시 엘리트의 머릿속에는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로 영원히 머물 것처럼 보였으리라. 그래서 이완용을 벤치마킹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을 것이다.
그러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 법 아닌가?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사후에 이완용의 무덤은 지속적으로 훼손되어 결국 1978년 그의 증손자인 이석형이 파묘하여 그의 유골을 화장했다. 나중에 관도 불태워졌다. 그리고 그의 재산도 다 소멸되었으나 그의 증손자인 이윤형이 1997년 토지반환 소송에서 승소하여 30억 원을 얻어냈다. 그런데 그는 이 땅을 팔아 캐나다로 도망갔다. 나머지 식구들은 궁핍하게 살고 있는데 자기만 잘 살겠다고 말이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 법이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다 잘 죽으면 그만이라는 그 정신의 피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먼지로 사라진 이완용의 유령이 여전히 이 나라의 적지 않은 엘리트들의 영혼에 깃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친미를 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친미나 친중이 아니라 국익인데 말이다. 그런데도 친미를 내세우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이완용의 생각대로 자기가 잘 먹고 잘 사는 길은 이른바 ‘쎈놈’에게 붙는 것이라는 신념 아닌가? 정말로 노예 정신의 끝장을 보여준다. 니체가 말한 대로 노예 정신을 가진 인간과 주인 정신을 가진 인간이 있는 법인데 어찌 된 일인지 이 나라의 많은 엘리트는 특히 조선시대부터 노예 정신에 철저히 물들어 있어 보인다. 그 근본적 원인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한반도에서 진행된 역사만 보면, 특히 조선시대의 사대주의에서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완용이 몸으로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죽어서 부관참시되고 후손이 멸문지화를 당하면 어떤가? 살아서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지. 죽어서 저승에 가서 심판을 받는다고? 그러면 그때 가서 다시 갈아타면 그만이겠지. 이런 생각이 그런 종류의 엘리트들의 머릿속에 넘치는 것 같다.
특히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엘리트들에게서 그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그래서 경제제도도 미국식 신자유주의여야 한다고 핏대를 올리고, 정치도 친미, 그리고 더 나아가 아시아 지역에서 실질적으로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일본에 대해 친일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난리다. 그러면서 그 정치제도가 자유민주주의라고 떠들어댄다. 마치 소수의 거대 자본가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미국이 기형적으로 만들어낸 신자유주의와 자유민주주의만이 진리인양 말이다. 정말로 Made in USA는 똥도 좋은 것인가?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막상 ‘똑똑한’ 엘리트는 안방에 숨어서 입만 놀리는 데, ‘평민’들 가운데 툭하면 성조기를 들고 광화문과 시청 앞으로 뛰어나가는 자들이 많다. 이완용의 유령의 영적 능력이 ‘타락한’ 엘리트만이 아니라 ‘순진한’ 민초에게도 미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유령의 힘을 계속 퍼뜨리는 것이 다름 아닌 수구 언론들이다.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지만 1970~1980년대 조선일보의 친일 행보는 눈뜨고 못 볼 정도였다. 마치 일본을 따라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곧 망할 것 같았다. 결국 이런 수구 언론들이 순진한 민초들의 총기를 어지럽힌 것이다. 하기는 금광으로 떼돈을 번 친일 매국노인 방응모가 넘겨받았으니 친일 색깔을 지울 수 없겠지.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언론 개혁이 필요하지만 이번 20대 대선에서도 볼 수 있듯이 수구 언론들의 전횡은 도저히 막을 길이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언론의 현재와 예상되는 미래는 사실 절망적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현재의 민초들의 의식은 일제의 강점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계몽되어 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수구 언론이 여론을 장악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물론 20대 대선에서 수구 언론이 보여준 작태는 절망감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런 사달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이 ‘겨우’ 0.73%p 의 신승을 거둔 것이 오히려 희망을 준다. 19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시절의 조선일보의 거의 무소불위에 가까웠던 그 ‘힘’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이번 선거가 증명해 주었으니 말이다. 이준석이 깃발 들고 앞장서고 조선일보가 변죽을 울렸던 세대 갈라치기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60대 이상은 변함없이 수구적 양태를 보였지만 국민의힘이 심혈을 기울인 20대는 전체적으로 오히려 이재명을 많이 지지하였다. 그래서 이제 수구 언론의 수작은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희망을 지니게 된다, 원래 해뜨기 전이 가장 춥고 어두운 때라는 것을 명심하면서 말이다. 박쥐 같은 엘리트도 아니고 나치의 괴벨스처럼 선전선동에 기를 쓰는 수구 언론도 아닌 계몽된 민초들이 나라를 바로 세울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오천 년 동안 이기주의에 나라도 팔아먹은 가짜 엘리트에 맞서 이 땅과 이 민족을 결사적으로 지켜낸 민초들의 저항 정신이 여전히 살아있는 대한민국이다. 이완용의 유령에 물든 하찮은 ‘짝퉁’ 엘리트 정도로 넘어갈 나라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