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역성혁명론을 다시 떠올려본다.
윤석열의 발언은 후보 시절부터 계속 문제를 일으켰다. 그런 그가 지난 4일 출근길에 한 말은 이제 어느 선을 넘은 느낌이다. “선거 때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지지율은 별로 유념치 않았다.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제가 하는 일은 국민을 위해 하는 일이니 오로지 국민만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그 마음만 가지고 있다.” 도대체 지지율을 문제 삼지 않는다면서 그가 위하는 국민은 누구란 말인가? 지금도 그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대구경북의 60대 이상 늙은이들만 국민인가? 그들만 생각하고 앞으로 나간다면 김건희의 비선 측근이 사달을 일으켜도 무방하다는 말인가?
처음부터 윤석열은 스스로 공언한 대로 자기가 원해서 그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잘한다고 하니까 후보가 되었고 영남과 강남을 기반으로 하는 ‘콘크리트’ 수구 세력과 소아적인 이대남의 광적인 지지에 힘입어 겨우 0.73%p라는 전대미문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당선된 자다. 그런 그를 싫어하거나 무심한 이들이 국민의 절반이 넘는 현실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국민통합이다. 그러나 취임 이후 그가 보여준 언행은 통합과는 거리가 전혀 멀다. 그리고 그의 배우자가 보여주는 행태는 이미 이성적 판단의 선을 넘었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김건희와 윤석열의 사주를 보면서 결코 최고의 권좌에 오를 수 없고, 설사 오른다고 해도 그 권력이 5년짜리도 안 될 것이라는 암시를 강하게 받았다. 길어야 2~3년 간다고 예견되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 숫자도 다 채우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짐은 남이 아니라 스스로가 보여주기 마련이다.
사주팔자를 논할 때 결국 무너지는 것은 스스로의 언행 때문이다. 사주 용어로 개운이라는 것은 있다. 곧 운이 아무리 나빠도 마음공부를 하고 매우 겸손하게 살면 피흉추길(避凶趨吉)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워낙 악운을 타고난 사람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짓을 반드시 하고 스스로 무너지게 된다. 특히 그런 사람일수록 분수에 맞지 않게 높이 오르면 떨어지는 깊이도 더욱 크기 마련이다.
그래서인가? 수구 세력 측은 한동훈을 띄우기에 분주하다. 이미 플랜 B를 마련하고 있는 모양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검찰 권력의 정상에 올라온 윤석열을 문정부의 대항마로 내세워 성공을 거둔 방법을 한동훈에게도 적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특히 윤석열 띄우기와 문 정권 타도에 앞장서 변죽을 울렸던 조중동의 수작이 이번에도 먹힐 것으로 수구 세력은 단단히 믿고 있는 모양이다.
미국 주간지 <TIME>이 규정한 대로 표풀리스트인 윤석열을 일단 밀어보았으나 벌써 그 밑천이 드러난 상황에서 수구 세력에게 별 뾰족한 수가 있을 리가 없다. 특히 김건희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설쳐대도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상황은 윤석열의 장래를 매우 어둡게 만들고 있다. 김건희의 언행은 시튼(Ernest Thompson Seton, 1860~1946)의 <동물기>(Wild Animals I Have Known)에 나오는 수늑대 로보의 짝인 블랑카를 떠올리게 만든다.
로보는 1891년부터 4년 정도에 걸쳐 미국 뉴멕시코 주에서 수천 마리의 가축들을 죽여서 농장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전설적인 늑대이다. 워낙 영악해서 그를 잡으려는 인간의 술수에 결코 넘어가지 않았다. 그 당시 거금인 1천 달러의 현상금을 노린 사냥꾼들도 로보를 잡지 못했다.
그런데 동물 전문가인 시튼이 1년 동안 관찰한 결과 로보의 짝인 블랑카가 늑대 무리의 질서를 완전히 파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다. 블랑카는 유난히 털이 하얀색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통상 늑대 무리에서는 결코 우두머리를 앞서 나가는 일이 허용되지 않았다. 야생에서의 무리의 안전을 위해서는 극도의 경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튼이 관찰한 결과 오로지 블랑카의 발자국만이 로보를 앞서곤 했다. 철부지처럼 나돌아 다니며 무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짓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블랑카가 이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늑대 무리의 우두머리인 로보의 단짝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에 눈이 멀면 누구나 그리 되는 법 아닌가? 그래서 시튼은 먼저 블랑카를 잡아야 한다고 농장주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면 블랑카에 눈이 먼 로보를 쉽게 잡을 수 있다고 조언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작전은 성공을 거두었다. 사실 어느 무리에서나 ‘철부지’를 잡아 죽이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블랑카는 바로 잡혀 죽었고 그 사체의 가죽은 로보를 잡기 위한 미끼로 사용되었다. 예상대로 로보는 평소답지 않게 문자 그대로 미친 늑대가 되어 광분하였다. 결국 블랑카를 이용한 덫에 쉽게 걸린 로보는 천천히 고통스럽게 굶어 죽었다.
150년이나 된 전설적 늑대 이야기를 굳이 들출 필요도 없이 현재 윤석열과 김건희가 보여주는 언행은 ‘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야기하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현대 사회의 정치 제도에서 이런 윤석열과 김건희를 합법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처럼 강력한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나라에서 윤석열을 탄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박근혜의 선례에서 본 대로 그 과정에서 나라와 국민이 입는 피해는 어마어마하다.
물론 맹자가 말한 ‘역성혁명론’(易姓革命論)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논리이다. 사실 공자가 말한 ‘정명론’(正命論)을 극복한 이 역성혁명론은 왕정 정치를 옹호한 유교 사회에서 금기어가 되었지만 그 유효성이 부인된 적은 없다. 그리고 왕조가 바뀔 때마다 이 논리는 되풀이되어 사용되었다.
서경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民之所欲 天必從之 (書經, 泰誓上)
곧 국민의 뜻은 반드시 하늘이 따르는 법이라는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국민의 뜻은 반드시 지지율로 나타나게 되어있다.
순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荀子, 王制)
한 나라의 지도자는 배이고 국민은 물이다. 그래서 물은 그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그 배를 뒤집어 버릴 수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독재 국가의 독재자조차도 민의를 반영하는 ‘지지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윤석열은 대놓고 그 지지율을 무시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민의를 완전히 무시하겠다는 오만방자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그가 이런 말을 해도 당장 역성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는 현실이다. 민주사회에는 고도로 발달한 법절차가 있고 이 절차를 법대로 따르자면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하니 말이다. 그러나 민심을 잃은 자는 이미 군주의 자격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매우 힘이 없어 보이는 민중이지만 바로 그 민중이 하나로 뭉쳐 하늘의 뜻을 드러내면 군주를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는 법이다. 이 원리는 본래 <주역>(周易)에 나올 정도로 오래된 것이다.
이미 수천 년에 걸쳐 성현들이 국민의 뜻에 대하여 이리 자세히 말해주고 위정자들을 경계해 왔지만 윤석열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모양이다. 윤석열 주변에는 그저 교언영색에 침이 마를 정도인 간신배들이 똥파리처럼 득실거리니 말이다. 아무도 그에게 바른말을 해주지 않으니 그 모양이겠지? 아니면 윤석열과 김건희가 그 잘난 ‘5년짜리’ 권력에 벌써 잔뜩 취해 이미 고주망태, 인사불성이 된 것인가? 정권이 바뀐 지 100일도 안 되어 역성혁명을 떠올려야 하는 국민의 처지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참으로 지지리 복도 없는 민족이다. 국운이 열리나 보다 하고 안심하려면 꼭 이런 사달이 나니 말이다. 언제나 국운이 열릴까? 이런 마당에 어떤 자칭 도사 나부랭이는 김건희가 패션 외교, 영부인 외교를 하면 나라가 잘 된다는 흰소리나 해대고. 설마 그 말 믿고 스페인까지 날아가서 아무도 관심 없는 옷 자랑, 보석 자랑한 것은 아니겠지? 외교의 기본은 외국어 능력과 친화력인데 옷과 보석으로 몸을 처바른다고 될 일인가? 정말 나라가 미쳐 돌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어디 용한 무당이나 찾아가 살풀이 굿이라도 해야 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