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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Jan 06. 2023

독일어 공부법이 따로 있다.

영어보다 쉽다고?

나는 독일로 떠나기 전에 일명 괴테하우스를 1년 정도 착실하게 다녀 B1과정을 통과했다. 그래서 독일에 가서도 말이 전혀 안 통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공부를 시작하려는 유학생에게 B1는 택도 없는 수준이라 어학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일단 입학한  대학교 부설 연구소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3~4개월) 동안 최대한 실력을 끌어올리는 실험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필기시험으로 그 ‘실험 쥐’를 선발한단다. 그래서 응모하여 합격하여 자발적인 실험 쥐가 되었다.     


그 후 어학 과정은 말 그대로 ‘드릴링’이었다. 교사 두 명이 번갈아 가면서 학생들을 들볶았다. 아마도 그들에게도 학생들의 실력을 일정 수준에 올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나 보다. 그 덕분에 나의 독일어 실력은 비약적으로 늘었다. 그래서 어학시험을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고 바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에 독일어를 따로 배울 기회도 없었지만 필요도 없었다. 이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은 외국어 학습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교사의 열정과 교재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아보니 그 과정은 문자 그대로 실험이었고 비용도 너무 들어 단발의 과정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내 뒤로 오는 유학생들에게 좋은 기회가 없어진 것이 무척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돈만이 아니라 시간과 열정을 절약할 수 있던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   

  

독일로 이민을 가든 유학을 하든, 중요한 것은 다른 외국과 마찬가지로 언어다. 한국에서 아무리 날고 기던 사람이라도 일단 외국에 가서 말을 못 하면 문자 그대로 ‘무능력자’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독일이든 미국이든 언어 능력이 문자 그대로 알파요 오메가다.     


그런데 영어는 한국에서 유치원 때부터 배우기에 만만해 보이는 언어로 여겨진다. 그러나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도 영어로 작문은 고사하고 말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그런가? 많은 자칭 전문가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입시 영어와 현실 영어는 다르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입시 영어는 긴 지문을 최대한 빨리 읽어 그 대강을 파악하고 암한 문법적 지식과 추리력을 동원하여 ‘정답’을 찾는 훈련일 뿐이니 말이다. 듣기 평가도 결국 지문의 내용을 이해하고 추리하여 ‘정답’을 찾아내는 능력을 측정할 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영어는 읽고 듣기보다는 쓰고 말하기 능력을 더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 능력이 전혀 훈련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영어를 못하게 된다. 게다가 영어는 매우 빨리 변하는 언어다. 실질적으로 만국 공통어가 되어버려서 영국 영어, 미국 영어만이 아니라 호주 영어, 인도 영어, 더 나아가 유럽대륙 영어와 그 밖의 다양한 영어가 존재한다, 그래서 새 어휘의 숫자도 매년 늘어난다. 게다가 어법도 변한다. 영어는 이제 마치 유기체처럼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문법도 좋게 말해서 ‘유연’하다. 그래서 과거의 문법으로는 ‘틀린’ 표현도 통용되기 일쑤다. 그래서 영어는 매우 어렵다. 하루라도 ‘새 영어’를 안 배우면 영어에 가시가 돋치는 일이 발생할 정도다. 현재 알려진 영어 어휘의 수는 약 25만 개다. 그러나 한국의 대부분의 영한사전은 10만 단어 정도를 담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졸업하면 약 5천 개의 단어를 배우게 된다. 대학교에 가서 추가로 배우는 경우 최대 5천 단어를 더 알게 된다. 그래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교를 졸업하면 1만 단어를 소화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이상적인 경우일 뿐 ‘시험’이 끝나면 다 잊게 된다. 한국 교육제도에서는 시험의 종료와 더불어 뇌의 메모리 유효 기간도 종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사람의 어휘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일단 미국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서 5천 단어를 소화한다. 미국에서 ‘정상적으로’ 대학교를 졸업한 ‘미국 사람’은 약 10만 단어를 소화한다. 문자 그대로 ‘쨉’이 안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영어를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10년 이상 배운 영어도 읽고 듣는 것 위주로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쓰기와 말하기는 연습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 데다 사회에 나가 다시 배우기에는 시간과 돈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저 자기 업무와 관련된 최소한의 능력만을 키우는 것도 벅찬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어는 매일 훈련하지 않으면 잊게 된다. 외국어는 더욱 그렇다. 모국어인 한국말도 몇 년 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버벅거리는 것이 현실이니 당연한 일이다.   

    

이에 비해 독일어는 ‘쉽다’. 물론 내가 해 보았으니 하는 말이다. 그러면 나는 독일어로 듣고 읽기만이 아니라 쓰고 말하기도 원어민 수준으로 잘하냐? 그것은 절대 아니다. 늦은 나이에 독일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어찌 원어민이 될 수 있겠는가? 노암 촘스키가 말한 대로 인간의 언어 능력은 13세 무렵에 고정되어 버린다. 그 이전에 배워야 모국어 수준의 언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으로 외국을 나가게 되면 평생 공부해도 원어민 수준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영어와 독일어를 번역하는 일로 밥벌이를 해온 입장에서 독일어가 영어보다 쉽다고 감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독일어 기본 어휘는 약 40만 개다. Dudencorpus가 측정한 것으로는 어휘 숫자가 이보다 훨씬 많아 약 1,740만 개다. 영어보다 ‘무지막지하게’ 많다. 그러나 쉽다.     

 

Dudencorpus가 찾아낸 가장 긴 독일어 단어는 다음과 같다.  

    

Rinderkennzeichnungsfleischetikettierungsüberwachungsaufgabenübertragungsgesetz    

 

무려 79자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독일어를 어느 정도 배운 사람이면 이 단어의 뜻을 알 수 있다. 이 단어는 7개의 기존의 단어를 합성하여 만든 신조어다. 분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Rinder+kennzeichnungs+fleischetikettierungs+überwachungs+aufgaben+übertragungs+gesetz.


뜻은?


‘소고기+표식+식육 표찰 부착+감시+업무+위임+법’이다.


이처럼 독일어는 기본적인 뜻을 알고 나면 얼마든지 문자 그대로 무한한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시공간 안에 존재하는 사물만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 속에 있는 대상도 어휘로 개념화할 수 있는 놀라운 언어이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비교적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 언어다.    

 

어휘만이 아니라 문법이 쉽다. 영어는 일단 기본 문형이 27개나 된다. 그리고 그조차도 다양한 변형이 이루어진다. 게다가 앞에서 말한 대로 ‘진화’한다. 그러나 독일어는 일정한 패러다임이 거의 고정되어 있다. 한 단어에 부여되는 성, 수, 격, 시제, 태가 명료하다. 예를 들어보. 영어에서는 I, you, we, they 모두 go다. 그래서 문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문장 전체를 끝까지 읽어야 한다. 그리고 주어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독일어에서는 Ich gehe, du gehest, er/sie geht, sie gehen이다. 동사 어미만 보면 이미 주어를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명사가 대문자로 시작되어 문장 성분의 구분이 시각적으로 용이하다.    

 

다음으로 발음이 쉽다. 영어는 불어의 영향으로 철자대로 발음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name은 '네임'으로 읽는다. 그리고 native는 '네이티브'로 읽는다. 그러나 독일어는 Name는 '나메'다. Natur도 '나투어'다. 한 철자에 한 가지 발음이 원칙이다. 물론 독일어도 예외가 있다. Glaube는 '글라우베'이지만 Augsburg는 '아우크스부르크'다. g가 어미에 오면 ''로 발음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정말로 예외다.   

  

어휘와 문법만으로 외국어를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언어에 나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어를 배우고자 한다면 독일 친구를 사귀어 동거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독일에 가서 말이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으니 차선책으로 독일어와 접하는 기회를 최대한 늘려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유튜브에는 독일어 과정이 넘쳐난다.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영어만으로도 충분한데 독일어를 왜 배워야 하나? 그리고 아직도 국제어는 영어와 프랑스어 아닌가? 그리고 남미 시장을 생각한다면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이 나은 거 아닌가? 물론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유럽 특히 유럽 대륙에서 살아보면 왜 독일이 중부유럽의 중심인지 알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적으로 영향력이 감퇴된 것은 사실이다. 현재 독일군의 정식 명칭은 연방방위군(Bundeswehr)이다. 일본의 자위대와 비슷한 개념이다. 그리고 징집제도 사라졌다. 현재 군병력 수는 20만 명도 안 된다. 예비군도 100만 명에 못 미친다. 그러나 국방비 지출 순위는 2021년 기준 560억 달러(세계 7위)로 일본보다 높다. 그것도 GDP의 1.6%만 지출한 수준이다. 한국은 GDP의 2.8%를 국방비로 지출하는 데도 독일에 못 미친다. 그런데 독일이 무기 수출로는 세계 4위다. 중국과 맞먹는 수준이다. 인구와 경제에서도 유럽 최강의 국가이다.  

   

다시 독일어로 돌아가자.     


독일어 사용 인구는 1억 2천만 명으로 세계 10위다. 식민지 건설을 거의 못한 나라치고는 엄청난 숫자인 것이다. 게다가 과거 식민지에서 주인 나라의 언어를 쓰는 이들은 사실 허수이기에 그들을 계산하지 않은 순수 모국어를 기준으로 본다면 독일어의 순위는 더 높이 올라간다. 그리고 경제력으로 뒷받침되어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 특히 유럽만이 아니라 동유럽에서 ‘장사’를 하는 경우 독일어가 영어 못지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어와 더불어 독일어를 잘할 수 있다면 유럽에서 먹고사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물론 잘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독일어를 잘한다는 것은 읽고 듣는 것만이 아니라 쓰고 말하기를 잘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대로 독일어는 배우자마자 바로 발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언어다. 그래서 쉽다. 일단 배워도 발음이 안 되는 경우 실력을 키우는 것이 무척 어렵다.     


물론 독일어도 외국어이니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연습의 시작은 일단 듣고 따라 말하는 것이다. 일종의 파닉스 단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영어처럼 모음의 변화가 문자 그대로 ‘변화무쌍’ 하지 않기에 쉽다. 나는 오늘도 독일어 방송과 유튜브를 하루에 2시간 이상 시청한다. 서재에 가서 소리를 크게 하고 화면을 최대한 확대해서 말이다. 독일어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이것이 독일어를 비롯한 외국어 습득의 최선의 길이다. 독일어를 이어폰으로 귀만을 통해 들으면 잘 늘지 않는다. 몸으로 독일어를 느끼면서 배워야 빨리 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독일에 가서 독일사람과 부대끼며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배운 것을 되새김하는 것이다. 독일어 문법의 기본적인 패러다임은 하루 2시간 정도 배운다는 것을 전제로 두 달 정도면 마스터할 수 있다. 그다음은 몸으로 독일어를 습득하는 것밖에 없다. 그렇게 독일어를 배우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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