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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Feb 16. 2023

독일 의사 월급이 청소부보다 적다고?

결국 문제는 제도이다.

입시철이 마감되면서 다시 의대 진학이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이른바 SKY에 진학하고도 지방의대라도 들어가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는 숫자가 1,874명에 이른다는 뉴스가 나온다. 그러면서 언론은 국가 균형 발전의 전망이 어두워진다는 하나 마나 한 ‘진단’을 내린다. 그런데 이런 한국 사회의 ‘의대 쏠림’ 현상이 1990년대 말 이른바 ‘IMF 사태’ 이후 강화되었다는 말이 나온다. 멀쩡히 다니던 회사에서 강제 퇴직 당하고 심한 경우 자살로 내몰리는 사태를 마주한 한국 사회가 정신이 번쩍 들어 이른바 정년이 없는 직업인 의사와 변호사를 더욱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의사와 변호사는 정년이 없다. 종잇장 한 장을 들 힘만 있어도 일을 계속할 수 있다. 그리고 의료 사고가 나도 의사 자격증을 상실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법적 처벌을 받아도 몇 년 후면 슬그머니 변호사로 다시 활동할 수 있다. 세상 이렇게 좋은 직업이 어디 또 있을까? 그래서 진입 장벽이 높아도 기를 쓰고 의사와 변호사 되려는 것이다. 게다가 수입은 좀 높은가? 2020년 기준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의사 평균 연봉이 2억 3천만 원이다. 그리고 치과의사는 1억 9천만 원, 한의사는 1억 원, 그런데 간호사는 4천7백만 원이다. 같은 의료계인데 간호사의 급여는 의사의 4분의 1도 안 된다. 물론 간호사 되는 것보다 의사 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이유가 타당하게 들린다. 그런데 한국 의사의 수입이 국제적으로도 높은가? 즐겨 비교하는 독일 의사의 수입은 얼마나 되나? 소문에 따르면 독일 의사 수입이 청소부보다 낮다는 말도 있다. 정말일까?     


독일의 유명한 출판기업인 슈프링거가 작성한 자료를 보면 독일 의사의 평균 연봉은 2021년 기준으로 89,000유로, 한국 돈으로 1억 2천만 원 정도다. 곧 월급이 1천만 원 정도다. 그러나 세후 소득은 싱글일 경우 59,000유로, 약 7,600만 원, 월급 640만 원이다. 그래도 독일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초임은? 월 4,600유로, 약 600만 원이다. 그런데 이 돈을 다 받는 것은 물론 아니다. 2명의 자녀를 둔 부부의 경우 Brutto, 곧 세전 4,600유로를 받아도 Netto, 곧 실제 손에 쥐는 것은 3,300유로, 420만 원 정도다. 싱글이라면 세후 2,900유로, 약 370만 원으로 ‘확’ 내려간다. 독일은 전세가 없다. 자가 아니면 월세다. 그리고 독일에서 자기 집이 있는 사람은 46.5%로 문자 그대로 무주택자가 태반이다. 독일인의 평균 집 넓이는 92평방 미터, 28평이다. 평균 월세는 1,000유로 정도이고. 그렇다면 독일의 미혼인 의사는 월급의 3분의 1을 집세로 내고 나면 가처분 소득이 260만 원 정도라는 소리다. 더구나 뮌헨과 같은 대도시는 집세가 전국 평균의 2배에 이른다. 소득의 절반이 집세로 나간다. 그래서 이제 막 직업 세계에 들어선 독일 의사는 저축도, 집 살 계획도 세우기 힘든 것이다.  

   

물론 독일 의사가 정말 가난한 것은 아니다. 개업의인 경우 수입은 억대가 넘어간다. 사회적 명망과 직업적 안정도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평균 임금에 비해 5배, 심지어 개업의처럼 수십 배가 되지는 않는다. 2022년 기준 독일의 평균 임금은 4,100유로, 약 530만 원이다. 한국의 평균 임금은 2021년 기준 327만 원이다. 그래서 임금 격차가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게다가 독일의 변호사 수입에 비하면 의사는 더욱 비참해진다. 독일의 법무법인에서 월급 변호사로 일하는 경우 평균 연봉이 15만 유로, 2억 원 정도다. 대형 로펌에서 잘 나가는 경우는 50만 유로, 6억 5천만 원이 넘는다. 의사가 결코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있다. 그러나 세후 수입으로 계산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 싱글로 사는 경우 연봉은 276,000유로, 3억 6천만 원, 월 3천만 원이다. 그런데 검사나 판사라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지방자치제가 강력한 독일이라서 주마다 차이가 나기는 한다. 그래도 7만 유로, 약 9천만 원 정도다. 검사는 이보다 더 낮아 평균 5만 유로, 약 6,500만 원이다. 실수입은 한 달에 400만 원이 안 된다.   

  

의사와 판검사의 급여가 이리 ‘낮은데도’ 왜 독일 학생들은 열심히 의대와 법대에 가서 그 어려운 국가고시를 볼까? 일단 돈만 보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도 한국만큼 의사와 법조인 되기가 어렵다. 문자 그대로 머리를 싸매고 죽을힘을 다해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의사와 변호사가 되어도 떼돈을 벌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전공을 택할 때 성적만큼이나 자신의 특기와 세계관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독일에서 의대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해보면 의사가 되려는 첫째 근거가 병자를 도우려는 마음이다. 둘째가 인체에 대한 관심이다. 그다음이 사회적 명망과 돈이다. 한국처럼 일단 SKY의 공대에 들어갔다가 점수에 맞추어 지방의대를 가는 경우는 단연코 없다.     


의대 쏠림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견이 비등하고 있다.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이 의대 정원 확대다. 그러나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사회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 지금 시행하는 미국 짝퉁인 얼치기 신자유주의, 곧 고삐 풀린 자유시장경제 제도를 철폐해야 한다. 그리고 독일처럼 사회적 시장경제 제도를 도입하여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한다. 그래서 의사나 변호사가 떼돈을 버는 직업이라는 인식을 실질적으로 불식시켜야 한다. 독일은 의료보험도 발달해 있지만 법률보험도 발달된 나라다. 그래서 4인 가구의 경우 1년에 250유로. 32만 원만 내면 변호사 비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국처럼 변호사가 성공 보수료를 청하는 경우도 없다. 국가가 국민의 건강과 권리를 보호하는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적어도 의료와 법에 있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상 발생하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하부구조인 경제가 사회의 상부구조를 지지해 주는 법이다. 한국처럼 빈부 격차가 극심하고 학력과 지연을 바탕으로 한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주의와 분파주의가 극성인 나라에서는 분열과 분란이 그칠 수가 없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대 문제도 이러한 근본적인 경제 제도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만 해결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다들 지엽말단적인 의대 정원 문제에만 매달리고 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독일의 청소부 월급은 얼마냐고? 이 또한 주마다 다르지만 독일 전체 평균으로는 4,000유로, 520만 원이다. 초짜 의사와 비슷하다. 그러나 북부 독일의 브레멘 시의 경우 6,000유로를 넘기는 청소부도 많다. 독일 초짜 의사보다 돈을 더 버는 청소부가 독일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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