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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Feb 26. 2023

<조선일보> 10년 보면 영재도 ‘개돼지’가 되나?

한국 ‘네오콘’의 형성 과정이 밝혀졌다.

<조선일보>를 뿌리로 하는 수구 찌라시의 ‘정통’을 면면히 이어가는 <뉴스1>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정순신의 아들이 자신의 학폭 문제로 한참 시끄러울 때인 2018년 2월 28일에 다름과 같은 글을 남겼단다.(참조: https://v.daum.net/v/54n2Nto5ja)

         


그는 "주변 친구들이 절 되게 보수적이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밖에서 정치 얘기를 잘 안 했다"며 "근데 여기 들어와서 되게 다양한 애들하고 말해보고 의견 들어보니까 제가 되게 보수적이더라. 아마 뭐 그 영향에 있는 집안 분위기도 있을 거고, 10년 가까이 조선일보를 본 제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기가 보수가 된 이유가 ‘뇌물도 받아먹는’ 검사 집안 분위기와 <조선일보> 덕분이었다는 커밍아웃을 한 꼴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윤석열이 당선된 결정적 이유가 20대 가운데 이른바 ‘청년 보수층’ 때문이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그들이 이른바 ‘한국의 네오콘’을 자처하며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분노와 반발심으로 윤석열을 지지한 결과로 이 나라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다.  

   

지난 대선 당시 매우 정확한 적중률을 보인 출구 조사에서 이른바 ‘MZ세대’에 속하는 18~29세 집단은 윤석열(45.5%)보다 이재명(47.8%)을 선택했다. 그러나 남녀를 구분해 보면 현격한 차이가 났다. 남성의 58.7%가 윤석열을 지지했고 이재명이 얻은 지지는 36.3%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것이 0.73%p의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21대 총선에서 20대 남성의 민주당 지지율이 47.7%이었던 것과 비교해서 엄청난 하락(-11.4%p)이었다. 이재명을 지지한 20대 여성의 경우도 21대 총선(63.6%)에 비해서는 5.6%p나 빠진 수치이다.      


요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MZ세대의 의식이 2년 만에 급격이 변하게 된 이유가 반드시 <조선일보>만은 아닐 것이다. MZ세대 가운데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무늬만 유료 부수 100만 일뿐 인쇄하자마자 띠지를 풀지도 못하고 폐지공장으로 넘겨지는 양이 엄청난 그 ‘찌라시’를 소셜미디어에 중독된 MZ세대가 제대로 볼 리가 없다. 그러나 정순신의 아들의 고백 대로 집안의 영향으로 그런 허접한 찌라시를 탐독하고 어느 사이 세뇌가 되는 ‘젊은이’도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무엇인가? 1919년 3.1 독립만세 운동의 여진이 남은 1920년 창간될 때만 해도 민족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했었다. 처음에는 일제 식민 정권에 의해 정간까지 당했다. 그리고 총독부의 강권으로 송병준에게 판권을 넘겼다. 그러나 반일 독립 정신으로 무장된 기자들의 기세에 눌려 송병준은 뒤로 물러나고 남궁훈을 사장으로 임명하였다. 다시 1924년에는 신석우가 조선일보를 인수하고 4대 사장으로 이상재가 취임하여 독립운동의 정신이 이어졌다. 그러나 금광 개발로 하루아침에 졸부가 된 방응모가 9대 사장이 된 다음부터 친일 매국노의 앞잡이가 되고 말았다. 해방 이후에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과 같은 독재자는 물론 이명박과 박근혜를 ‘묻지 마!’ 식으로 지지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능력이 매우 의심스러운 윤석열에 올인하고 있다.   

   

현재 <조선일보>는 비공개 법인으로 방 씨 일가가 지배하는 가족 회사로 운영되고 있다. 방상훈, 방성훈, 방우영, 그리고 방 씨 일가가 세운 방일영문화재단이 <조선일보> 주식의 75%를 장악하고 있다. 언론 기관은 사회적 공기임에도 사기업처럼 방 씨 일가가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구조를 가진 것이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언론 기관은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조선일보>가 ‘수구의 가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동안의 행적을 보면 그런 이데올로기는 그저 생존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의 정신은 오로지 방 씨 <조선일보>의 만수무강일 뿐이다. 이데올로기에는 ‘개 사과’나 주어 온 역사가 그 사실을 증명한다.     


방응모가 사장이 된 이후 신문사 내부 분위기에 잠시 눌렸다가 바로 친일로 변절해 버렸다. 부사장 이광수가 한 때 민족개조론을 내세우다가 친일 앞잡이가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 방응모는 한국독립당에 입당하며 김구와 노선을 같이하더니 이승만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바로 노선을 바꾸어 반민특위를 적극 지지 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바로 북한의 기관지가 되어 김일성 찬양 찌라시를 뿌려대더니 1950년 10월 1일 이후 남한의 기관지가 되어 버렸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이승만 독재 정권의 비리에 대해 침묵하며 ‘묻지 마!’ 지지를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4.19 혁명이 일어나자 갑자기 이승만 하야 운동에 나서더니 1961년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자마자 군정 충성 맹세를 하느라고 날밤을 세웠다. 남로당과 연계된 박정희가 1963년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조선일보>는 박정희의 충견이 되어 ‘빨갱이 때려잡기’의 선봉에 서서 광분하기 시작했다. 이미 이승만 독재 정권 시절에 갈고닦은 솜씨가 있으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잘 먹혀들었다. 특히 영남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개돼지들’의 절대적인 지지 기반이 있어 무서울 것이 없었다. 박정희가 김재규가 쏜 총알 두 방을 맞고 불귀의 객이 되고 나서 눈치를 잠시 보던 <조선일보>는 12.12 군사 쿠데타도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을 충성을 다짐할 새 주군으로 모셨다. 그 당시 <조선일보>에서 전두환 찬양과 5.18 폄훼 기사로 전두환의 사랑을 듬뿍 받아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된 전형적인 ‘기레기’ 김대중이 바로 그 산 증인이다.  

   

사실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은 이전의 지도자들에 비해 깜이 안 되는 수준이다. 그래서인가? 김영삼 이후로 <조선일보>의 국가 지도자를 대하는 태도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말하자면 국민이 선택한 국가 지도자를 능멸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낮의 대통령 밤의 대통령’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다. 자기들이 미래의 대통령을 맘대로 뽑을 수 있다는 교만에 이르렀다. 실 국가 지도자를 우습게 본다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 본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조선일보>의 논조를 보면 국민은 없다. 오로지 방 씨 일가의 심기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그런 신문이 감히 ‘보수 정론지’란다. 지나가던 개가 사과를 던질 일이다.   

  

다행히 <조선일보>의 위력도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유가지가 100만 부에 턱 없이 모자라서 인쇄하자마자 신문을 내다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민 세금으로 나오는 지원금을 타먹기 위해 발행 부수를 조작하는 군색한 처지에 몰렸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조선일보>의 유가지 발행 부수 조작 사건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진실은 가릴 수 없는 법이다(참조: https://imnews.imbc.com/replay/straight/6173425_28993.html). 정권이 바뀌고 나면 <조선일보>의 비리는 다시 드러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조선일보>를 한국의 검사가 보고 그것을 따라 그 아들도 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검사는 경상도 출신에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언론계와 법조계를 경상도가 틀어쥐고 경제계를 압박하여 돈을 뜯어 내는 구조는 이제 거의 고착화되었다. 이를 막을 유일한 방법이 정치계가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뿐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조선일보>가 잘 알기에 정치적인 세력 변화에 민감하고 자기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눈에 핏발을 세우고 날뛰는 것이다. 어차피 국민 다수의 편에 서기에는 틀린 일이니 소수파지만 강경한 수구 세력과 한통속이 되어 잘 먹고 잘 살 방법만 모색하면 그만 아닌가?  

   

그런 <조선일보>를 읽고 보수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치기 어린 고백을 하는 정순신의 아들이 했다는 말을 보면서 이 나라 미래가 더 어두워져 보인다. 국내외 경제나 국제정치 차원에서 현재 대한민국은 문자 그대로 궁지에 몰려있다. 그런데도 앞으로 이 나라를 책임져야 할 이른바 MZ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이 아무 생각이 없다.     


애는 낳아 기르기 싫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떼돈을 벌어 자본가들이 만든 사치품을 소비하며 플렉스하고 마약과 술과 여행에 ‘찌든 쾌락’에 빠져 살다 죽겠단다. 어차피 인생은 한 번 뿐이니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다 죽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벌이가 시원치 않아도 무리해서 강남에 집 사고, 외제차 몰고 다니고, ‘명품’으로 몸을 휘감고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살면서 자기는 인생을 즐긴단다. 일부, 극히 일부 젊은이들의 일탈을 보고 과장한다고?    

 

젊은이들이 건강한 나라는 지금 대한민국과 같은 모습을 결코 보이지 않는다. 뇌물 받는 검사 아버지를 둔 아이가 친구에게 학폭을 가하고, 떼돈 벌어서 잘 먹고 잘살자고 몇 수를 해서라도 의대에 가고, 무리해서라도 떼돈 벌어 외제차 몰고 고가 아파트에서 집자랑하지 않는단 말이다. 그리고 일부가 그런 짓을 해도 나머지 대다수의 건전한 젊은이들은 ‘정상적인’ 삶을 선호하고 성실하게 노력한다. 그러나 요즘 저잣거리를 내다보면 그런 ‘정상적인 젊은이’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길이 없다. 그런 젊은이가 있다면 정말 만나보고 감격해서 펑펑 울어보고 싶다. 기껏 한다는 짓이 애늙은이 놀이다. 술담배와 계집질은 물론이고 마약도 서슴지 않고 손을 댄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어른들이 자기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단다. 기가 막히다. 그럼 한국의 젊은이들은 식별 능력이 전혀 없고 그저 보고 배운 대로만 하는 저급한 수준의 원숭이 AI 로봇이란 말인가?

    

이런 맥락에서 나는 정순신의 아들이 했다고 알려진 <조선일보>를 10년 본 덕분에 보수가 되었다는 말을 경멸한다. 더구나 그런 아이가 한국 최고의 명문대에서 삶의 본질에 관한 학문을 탐구하며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을 기르는 학과에 진학하여 공부를 한다는 사실에 전율까지 느낀다. 정순신처럼 그 아들도 그저 남 탓이나 하면서 무슨 진리를 탐구하겠나? 그저 법과대학원, 아니 그 잘난 서울대 로스쿨에 진학하기 위해 오늘도 서울대 텝스와 법학적성시험 준비에 불철주야 노력을 기울이겠지. 그리고 진학에 유리한 학과의 복수 전공은 당연히 했을 것이고.


그렇게 로스쿨에 진학하여 무사히 졸업하여 정순신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 고백한 대로 자기 아버지와 같은 ‘뇌물 받는 검사’가 될 것이다. 그러면 정순신의 손자도 늠름하게 학폭을 저지르고 정순신의 아들은 대법원까지 소송을 진행하여 그 손자가 자신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걷게 만들 것 아닌가? 이렇게 하여 악의 재생산 구조가 완성되면 대를 이어 ‘수구 세력’에 충성하는 집안이 완성되겠지? 나라가 망하든 말든 <조선일보>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논조를 아마 정순신의 아들이 배우고는 그것을 보수의 정신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그런 면에서 <조선일보>를 잘 따라 배웠다고 하겠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려고 한국 최고의 대학을 나온 검사 집안의 애가 이 모양인가?    

       

막막할 때 주로 참조하는 독일을 보자. 독일의 유구한 전통의 보수 정당인 기민/기사 연합(CDU/CSU Union)에서 젊은 보수 정치인을 양성하는 공식 조직으로 ‘융에 우니온’(Junge Junion, JU)이라는 것이 있다. 현재 회원 수가 9만 명이 이르러 독일은 물론 유럽 전체에서 IG Metall Jugend 다음으로 막강한 조직이다. 이 조직 출신으로 기라성 같은 보수 정치인이 중앙 정계에 입문하였다. 많은 지역구 의원도 이 조직 출신이다.     


'융에 우니온'은 1947년 1월에 기독교 신자들이 중심이 돼 당내에서 설립된 조직이다. 1950년대에 당의 쇄신을 요청한 적이 있으나 먹혀들지 않았다. 특히 보수적인 권위주의를 대표하던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876~1967)와 에어하르트(Ludwig Erhard, 1897~1977)가 집권하던 시기인 1949년부터 1966년까지는 문자 그대로 어른들 앞에서 찍소리도 못 내는 허수아비 집단이었다.   

  

그러다가 기민당/기사당 연합이 실권해 야당의 위치에 서게 된 1969년부터 비로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후 '융에 우니온'은 1973년 조직의 목표를 '인간적 사회'로 정하고 개혁을 시도한다. 이어 구동독 지역의 청년조직인 자유독일청년단(Frei Deutsche Junge, FDJ)과의 접촉을 추진한다. 1980년에는 동서독 연합 청년단체 수립을 제안하는 데 이르기까지 했다.     


이는 우리나라에 비유한다면 전두환 시절의 민정당 청년 조직이 북한 노동당 청년 조직과 연합해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내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독일사회민주당이 끈질기게 추구한 동방정책, 곧 공산권과의 화해정책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다시 기민당/기사당 연합이 장기 집권(1982~1998)을 하게 된 콜 수상(Helmut Kohl, 1930~2017) 정권 아래에서 다시 힘을 상실하게 된다.(인용 참조: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78048)     

 

그런데 한때 국민의힘이 이 조직을 벤치마킹하여 차기 보수 정치인을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어디로 갔는지 꽁지도 보이지 않는다. 현재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출로 사분오열 직전까지 갔는데 ‘한국식 영유니온’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국의 젊은 보수를 제대로 길러야 할 국민의힘이 이 모양이니 정순신의 아들이 <조선일보>의 수구 논조를 10년 동안 보고 배운 결과 극단적 이기주의가 이른바 ‘보수 정신’이라는 사고방식에 젖어 학폭이 얼마나 큰 패륜인지도 모르고 서울대 로스쿨 진학에 올인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자가 한국의 잘난 법조인이 되어 ‘뇌물 받는’ 검사가 되는 전통, 아니 폐습이 이어지는 한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고 배겨 날 재주가 있겠는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의 정신을 개혁하는 혁명이 필요한 이유를 정순신의 ‘학폭’ 딱지가 붙은 아들이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하늘은 저토록 맑고 푸르기 그지없는 데 왜 이 사회는 이리도 거지 같은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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