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정순신과 조국은 여러모로 닮았다. 1965년생 조국이 1966년생 정순신보다 한 살 많지만 둘 다 부산 출신이다. 고등학교도 조국은 혜광고, 정순신은 대동고로 모두 부산에서 나왔다. 그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조국은 고시패스를 못하고 학계로 진출했다. 정순신은 37회 사시에 합격하여 검사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조국은 결국 법무부 장관이 되어 법조계에 발을 담갔다. 그러나 나라를 혼통 뒤흔드는 입시비리로 사달을 겪고 결국 아내는 감옥에 딸은 학력 박탈의 벌을 받았다. 정순신은 외아들 정윤성의 학폭으로 사달을 겪고 결국 권력의 정상으로 오를 수 있는 출세길이 좌절되었다. 아마 자신이 잠시 출세하느니 아들을 서울대 로스쿨에 보내는 것이 낫다는 계산이 바로 나왔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써먹었던 방법을 이번에도 그대로 사용하는 중이다. 더구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외아들 아닌가? 조국은 그나마 인생 망친 딸 말고도 아들이 하나 더 있으니 좀 더 나으려나? 암튼 둘 다 아들을 애면글면 무척 사랑하는 아버지로 보인다. 그런데 그 사랑이 사달을 일으켜 나라가 흔들릴 지경이 되는 것도 둘 다 똑같다.
진영 논리에 빠진 자들은 여전히 조국이 마치 조국을 구할 전사나 되는 듯이 떠받들지만 조국이나 정순신이나 도긴개긴, 초록은 동색이다. 둘 다 이른바 ‘아빠 찬스’라는 대한민국 사회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조국이나 정순신이나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국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들이 오픈북 시험을 힘들어하기에 아내와 우주의 기를 모아 ‘조금’ 도와준 것밖에 없단다. 그것도 모자라 딸의 명문대 진학과 출세를 위해 아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입학에 도움이 되는 문서 몇 개 적당히 만들었단다. 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졌어도 반성을 안 한다. 정순신은 학폭이라는 범죄를 아들이 저질렀음에도 ‘법꾸라지’ 정신을 최대한 발휘하여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간다. 결국 명문대 진학률이 비교적 높은 민족사관학교에서 아들이 최대한 길게 머물며 입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버틴 것 아닌가? 그런 식으로 오로지 자기 자식의 영달을 위해 사법 체계의 약점을 이용해 놓으면서도 육체적 학폭과 언어적 학폭을 섬세하게 구분해보아야 한다는 법리 논쟁을 전개한다. 결국 서울대 법대 들어가서 배운 것이 겨우 그 정도라는 말 아닌가? 학폭을 당한 아이는 에진작 학교를 떠나고 자살 시도까지 할 정도의 폐인이 되어도 내 새끼만 서울대 가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을 어디 정순신만 가지고 있을까 싶지만 말이다.
인간은 사회에서 의사, 판사, 검사, 교수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조건도 충족하지 못한 자들이 설쳐대는 나라에서 사는 평민의 심정은 분기탱천을 넘어서 모든 것을 다 뒤집어 놓고 싶은 정도다.
한국은 ‘국영수’를 중심으로 한 공부 같지 않은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학교에 입학하고 국가가 인정하는 시험에 합격하여 고관대작이 되면 윤리 도덕은 물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염치나 양심이 없이 살아도 아무렇지 않은 나라가 되어 버렸다. 조국과 정순신이 그들의 삶의 궤적으로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이데올로기가 별 의미가 없다. 이른바 ‘강남좌파’인 조국이나 이른바 ‘수구 세력’의 핵심인 정순신이나 저울에 올려놓으면 조금도 기울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좌우로 철저히 갈려 조국 편은 조국이 구국의 영웅이고 정순신 패거리는 그 정도 가지고 뭔 난리냐고 이른바 ‘커버 치기’에 혈안이 된다.
그러면서 조국과 정순신은 고급 주택과 아늑한 사무실에서 편히 쉬고 있는데 이른바 ‘개돼지’와 ‘대깨문’이 서로 죽자고 싸운다. 이것이 미친 나라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문제는 부패한 한국의 엘리트와 그런 부패를 합법적으로 조장하는 법제도다. 그렇다면 먼저 그런 제도를 고치도록 국민이 나서야 한다. 법제도를 고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정신이 제대로 박힌 국회의원을 선출해 국회로 보내고, 그 후에도 그가 국민이 원하는 대로 입법활동을 하는지 감시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중요한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패거리 져서 서로를 ‘빨갱이’와 ‘수구꼴통’, ’문디‘와 ’깽깽이’, ‘한남’과 ‘된장녀’, ‘친북’과 ‘토착왜구’라고 욕하며 이전투구하는 데만 몰입해 있다.
그러니 정부와 국회 그리고 사법부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른바 대한민국의 ‘엘리트’들이 국민을 ‘개돼지’로 보고 윤리, 도덕, 염치, 양심 따위에는 ‘개 사과’를 던지는 것 아닌가?
이런 와중에 조국의 딸은 자유롭게 살며 이른바 ‘인스타그램 질’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아무 죄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떠들고 다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그 추종 세력이 문자 그대로 개떼같이 달라붙어 미모 찬양에 여념이 없다. 그 속내는 뻔하다. 김건희가 성형한 것으로 매우 의심되는 얼굴로 나대는 꼴이 보기 싫었는데 마침 이른바 ‘자연 미인’이 나타났으니 간접적으로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었으리라.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김건희의 ‘나대기’가 현저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물론 변희재의 말을 빌리자면 김건희의 정치 세력 확대책이 이른바 ‘검폭’ 세력에 밀려 완전히 실패하자 심란해졌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터진 정순실 아들의 학폭 사건도 비슷한 궤도로 흘러간다. 일단 아버지인 정순실이 고관대작의 자리를 마다하고 물러났으니 아들의 죄를 더 이상 묻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민과 마찬가지로 외아들 정윤성도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민이나 정윤성이나 어쩌면 그리 윤석열이 제시한 시대정신인 ‘자유’를 그리 사랑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런데 한국의 엘리트는 제멋대로 살면서 가끔 법도 어기고 ‘아빠 찬스’는 최대한 활용하며 제멋대로 하는 방종이 자유라고 아는 모양이다. 정말 이리 무식하기 짝이 없는 해석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고등학교 때 윤리 과목은 문자 그대로 ‘X구멍’으로 배우고 수능을 치르자마자 그 내용은 다 잊은 모양이다. 아니면 설마 요즘 윤리 선생은 ‘자유’의 참다운 의미를 가르치지 않는가? 더 나아가 그들도 자유가 뭔지 모르는가?
대한민국이 이런 혼란과 몰염치와 파렴치와 불의와 부정의 세상에서 벗어나려면 어찌해야 하나? 당연히 정신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혁명은 역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늘 민초가 시작했다. 그리고 마무리는 신진 엘리트가 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민초마저 돈악마에 빙의되어 혁명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저 50평 아파트, 벤츠나 베엠베, 골프, 해외여행, 40 이전에 30억 모으기 말고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런 나라니 조국의 조민 정순신의 정윤성이 멋대로 날뛰며 기고만장해서 ‘아빠 찬스’로 아빠가 간 길, 곧 대한민국의 잘난 엘리트의 길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자고 저 사달을 부리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 사회라는 물이 푹 썩었으니 저런 자들이 기고만장해 날뛰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한 대로 중병에 걸린 사회에 잘 적응해 살아가는 ‘적자’(the fittest)들이다. 나머지 ‘서민’도 어서 빨리 제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 그 적자를 만들어 볼 생각밖에 없고. 그러니 누가 감히 조국과 정순신 그리고 조민과 정윤성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는가?
인륜과 도덕 양심과 염치가 사라지고 오로지 ‘법대로’, ‘실력대로’만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어 버린 나라이니 조국 정순신, 조민 정윤성은 ‘무죄’다. 그러니 맘대로 살아라. 눈꼴이 신 것은 나 같은 서민의 몫일 뿐이니 말이다. 좌를 봐도 우를 봐도 우울하다. 하늘은 저리 맑으니 산책이라도 가야 하겠다. 일단 열불이라도 가라앉혀야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