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정신에도 불구하고 ‘토착왜구’는 바이러스보다 더 끈질기다
다음은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 정도 지난 1919년 4월 5일 <매일신보>에 실린 이완용의 사설이다.
오 조선 동포여
옛말에 죽기로 각오하면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의 조선인민들은 살 수 있는데 죽으려 하니 이 어찌 된 일이오?
내가 알기 쉽게 말해줄 테니 여러분은 정신 차리고 잘 듣도록 하시오.
독립운동이라는 선동이 미친 짓이라는 건 여러 유명인사들의 말이 끊이지 않아도 알아듣지를 못하니 지금 내가 또 말해도 듣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겠고
나는 반대로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겠소.
조선 독립이 다가온다는 말이 독립될 희망이 있긴 있다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조만간 독립이 된다 할지라도 만세 삼창한 후에는 그냥 집에 돌아가하던 일을 계속할 거면서 나중에 희망이 있다고 해서 지금 하던 일을 놓고 만세만 부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소?
처음에 몰지각한 얘들이 선동하고 그 후에 각 지방에서 소문을 듣고 치안을 어지럽히는 지라 당국에서 즉시 엄중히 진압하려면 피해가 생기기 때문에 몰지각한 사람들을 집에 돌아가게 하려고 관대한 수단을 사용하여 1차 경고와 2차 경고를 내렸으나 아직도 깨닫지 못한 불쌍한 이들이 여전히 몰지각한 행동을 하니 그것에 대해 책임을 물은 후 따르지 않으면 몽둥이를 들 수밖에 없소.
물론 이건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첫째 어린것들을 선도하고자 함이오. 둘째 어린것들이 다른 이들을 오염시키지 못하게 하고자 그런 것이오.
이차 경고에도 따르지 않을 뿐 아니라 관청에 쳐들어와 난폭한 행동을 하는 이에게는 엄중이 조치할 수밖에 없다오.
얼마 전 어느 곳에서는 많은 백성이 죽고 다쳤다 하는데 그 죽고 다친 백성 중에서는 독립이란 걸 주창한 자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그냥 잘 모르고 단순 가담한 걸로 나는 믿고 있소.
농사 때가 다 돼었으니 그냥 생업에 종사하는 자에게는 안락이 있을 것이오.
선동에 낚여 경거망동을 일삼는 자는 죽거나 다칠 것이니 이게 바로 살 수 있는데 죽으려는 것이 아니겠소?
자기가 죽으려는 것뿐만 아니라 그런 경거망동으로 주변사람들까지 죽고 다칠 수 있으니 이 무슨 일이겠소?
눈뜨고는 못 보고 귀로도 듣지 못할 일이지 안심하고 진정하시오.
이것도 다 한때이니 내 말을 잘 듣도록 하시오.
내 권고에 만약 이견이 있는 사람은 나와 만나보지 않겠소?
논조가 윤석열의 '건폭 타도'와 비슷하다. 특히 다음과 같은 말은 100년의 시공을 뚫고 동시성을 보장하고 있다. 특히 다음 말을 보면 더욱 모골이 송연해진다. "관대한 수단을 사용하여 1차 경고와 2차 경고를 내렸으나 아직도 깨닫지 못한 불쌍한 이들이 여전히 몰지각한 행동을 하니 그것에 대해 책임을 물은 후 따르지 않으면 몽둥이를 들 수밖에 없소. 물론 이건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첫째 어린것들을 선도하고자 함이오. 둘째 어린것들이 다른 이들을 오염시키지 못하게 하고자 그런 것이오." 윤석열 정권도 건설 노동자들의 생존 투쟁을 몰지각한 행동으로 보고 경고를 거듭하고 있다. 게다가 결국 말을 안 들으면 몽둥이로 내치겠다는 것 아닌가? 이완용의 '정신'은 100년이 지나도 이 사회에 굳건히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똑똑하니 무지한 너희들은 내 말을 들을지어다. 아니면 치도곤을 안기겠다는 것 아닌가? 백성들을 쥐어짜서 가렴주구 하며 자신은 날마다 주지육림에 빠져 쾌락에 몸부림치고 그다음 날 술이 덜 깬 머리로 관청에 출입하며 백성을 탄압할 방법에만 골몰하던 조선의 썩어빠진 탐관오리의 정신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도 결코 죽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논쟁에 자신 있으니 누구든 덤벼보라는 결론은 입방정 달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한동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다음은 다시 한 달 정도 지난 1919년 5월 30일 자 <매일신보>에 실린 이완용의 사설이다.
요즘 각 지방을 소식을 들으니 소요사태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데 혹자는 말하길 군대가 증파되어 그 무력진압에 기인함이라 하나 나는 여러분이 진심으로 지난 잘못과 오늘의 시국을 깨달아서 그런 줄로 알고 기분이 상쾌하오.
소요사태 당시 본인의 경고는 조선독립이야기가 허망하니 경거망동해서 죽거나 다치는 화를 당하지 말라고 여러분을 구하기 위함으로 글을 쓴 것이었소.
오늘날 여러분이 지은 죄를 후회하는 때가 왔으니 본인은 다시 한마디 하과 하오.
이는 조선독립설이 허망하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깨닫게 하여 우리 조선민족의 장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서요.
이번 조선독립설은 1차 대전의 여파라 할 수 있소.
최근 외국에서 수입된 소위 민족자결주의가 조선에 부적당하다는 언론은 다시 본인이 말 안 해도 알거니와 예로부터 조선과 일본은 고대이래 동종동족으로 같은 뿌리를 두고 있음은 역사에도 적혀있소.
그런고로 일한 합방으로 말하자면 당시 안으로는 구한국의 사세와 밖으로는 국제관계가 어쩔지라도 역사적으로 당연한 운명과 세계적인 순리에 맞춰 동양평화가 확보되는 것이 조선민족의 유일한 활로이기에 단행된 것이오.
또한 지리적으로 볼 때도 일한 공동의 이해와 공동의 존립을 위하여 이빨과 입술의 밀접한 관계에 있으니 양국이 흥망성쇠를 같이 하자는 정신으로 단행된 것이니 민족 자결주의 같은 게 현실화되면 일한이 다시 분리되어 양자가 모두 자멸할 것이니 이를 선택할 이유가 없소.
이를 여러분은 제발 깨달으시오.
아아 우리 조선이 국제경쟁이 과격하지 않을 때도 독립을 완전히 유지하지 못했음은 여러분도 아는터 하물며 오늘날처럼 1차 대전으로 인해 전 세계가 개조되는 시대가 닥쳤으니 우리가 이만 천여방리에 불과한 강토와 천백여만 정도의 인구로 독립을 의논함이 어찌 허망하지 않겠소?
이는 분명 여러분이 세계의 대세를 아리 못하고 그냥 평상시 감정이 쌓였다가 소문을 듣고 폭발한 것이니 본인은 여러분의 그 마음을 다 이해하오.
여러분 다시 냉정한 두뇌로 우리 민족의 장래와 동양평화의 영원한 대계를 깊이 헤아리고 생각해서 현제 우리의 실력과 형세를 보고 나아갈 바를 잊지 마시오.
만약 혹시 앞뒤 못 가리고 다시 독립 운운하며 경거망동하는 인간들이 있으면 그들은 우리 조선민족을 멸망케 하며 동양평화를 파괴하려는 우리의 적으로 보는 게 마땅하오.
본인이 들은 바에 의하면 내지인(일본인)은 항상 말하기를 야마토민족은 최후의 한 명이 피흘릴지라도 동양평화를 위한 영원한 계획을 변치 않겠다며 국가의 존망을 걸고 싸운 청일전쟁, 러일전쟁 양 전쟁의 의의가 모두 동양평화를 위해서였다고 말하니 여러분은 일체의 감정을 버리고 과거의 역사를 보시오.
우리 조선인이 동양평화를 위하여 과거 무슨 노력을 한 적이 있소?
동양평화를 위한 노력은 고사하고 자신의 평화도 남의 힘에 의지하다 오히려 동양평화를 무너뜨리려는 난리를 야기한 근본적 이유를 만든 역사가 있을 뿐 아니오?
여러분 이는 우리가 피하지 못할 사실이오.
고로 본인은 지난번 경고문에 살 수 있는데 죽고자 한다는 건 실은 동양평화의 큰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경거망동을 일으켜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무지몽매한 도배에게 경고함이었소.
옥황상제도 동양을 돌아보면 공동존립과 공동의 이해를 위해 두땅의 분립을 불허하실 테니 우리 조선인은 반드시 일한병합의 의의와 그 정신을 유효하게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고 이는 우리의 장래의 행복을 도모하는 최고의 상책이라고 깊이 믿어야만 하오.
병합 이후 10년간의 총독정치의 성적을 보면 인민이 향유한 복지가 막대함은 내외국인이 공감하는 바이나 그날부터 금일까지 방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에 비해 여러분의 국민성은 날로 나아졌으니 이전에는 제국신민으로서 얼마나 모자란 점이 많았는지 알 수 있겠소.
여러분들이 원하는 지방자치, 참정권, 병역, 교육, 집회, 언론등의 문제가 많으나 소요가 아닌 여러분의 생활과 지식에 따라 정당하게 요구하면 동정을 얻을 수 있지 않겠소.
본인의 소신을 기탄없이 펼치자면 실은 당국에서도 수년 내로 여러분들에게 권리를 주려는 연구가 수년 내 이루어진다는 안건도 있으니 단 그 시행이 빠르고 늦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 본인이 결코 당국을 위해 변호하는 말이 아니라 각 신문, 잡지상에 여러분보다 일본인들이 먼저 조선인들에게 권리를 주자고 주장했음은 여러분도 잘 알 것이오.
혹자는 일부 조선인들이 이번 소요를 야기하여 일본인들이 이를 보고 조선인 모두에게 반감을 가지리라 말하나 이는 자신의 지난 과거의 잘못을 깨닫는 동시에 나타는 일시적인 심리이니 여러분들은 결코 의심하여 걱정하지 말고 여러분의 최고 급한 일인 실력을 양성하는데 힘쓰시오.
일부 일본인 중에도 동양평화의 대계를 이해하지 못하여 천황폐하의 일시동인(一視同人)의 성지를 망각하고 조선인을 대함에 일본인이 우월하다는 태도가 있다 하나 여러분 우리가 일본인에 비해 아직 실력의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없으니 도량을 크게 하고 저들에게 가급적으로 반성을 촉구하며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며 결코 일시적인 감정의 기복으로 천황폐하의 성지를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외다.
해외에 있는 조선인중에도 혹자는 신정치 이후의 조선의 사정에 어두워 독립을 이야기하며 약간의 금전으로 의외의 행등을 일삼아 우리에게 화를 미치게 하니 현명하신 여러분 오늘 이후로 이와 같은 불의의 일이 혹 있을지라도 이번일(3.1 운동)을 되돌아보고 근신해야 할 것이오
여러분의 복지를 증진하고 앞길을 개척하며 욕망을 충족시키는 원동력은 실력양성에 있으니
여러분은 실력양성에 먼저 힘써야 할 것이외다.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난 직후에 쓴 글에서 이완용의 생각이 드러난다. 이는 친일이 아니라 ‘외세 의존적 기생충 정신’의 발로일 뿐이다. 그 당시 우연히 숙주가 제국주의를 추구하던 일본이었을 뿐이다. 역사가 증명하는 대로 섬나라 쪽발이들은 단 한 번도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 적이 없다. 어쭙잖은 유럽 짝퉁의 제국주의를 동아시아에서 펼쳐보려다가 미국에 개쪽이 났을 뿐이다. 그리고 미국에 죽도록 두들겨 맞고 난 후유증으로 아시아에서 미국의 충직한 개가 되기로 결심한 지 오래다. 그러면서 근거 없는 우월감으로 아시아의 다른 모든 국가와 민족을 우습게 하는 허세병에 걸린 나라다. 그런 쪽발이들이 어찌 한국인의 복지를 위해 노력을 했겠는가? 그러나 이런 이완용의 궤변을 여전히 그대로 답습하는 '토착왜구'가 서울대에도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자들에게 배운 '새끼 토착왜구'들이 사회 곳곳에서 숭일이라는 전염병을 오늘도 퍼뜨리고 있다. 이완용이 한 말을 여전히 지껄이는 그 '토착왜구'라는 바이러스말이다.
다음은 이완용이 죽기 얼마 전에 <禁断の歷史>에 공개한 실질적 유언이다.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생명이 꺼져가는 마지막 소멸의 기점에서 역사의 증언을 남기고자 이 글을 남깁니다.
역사란 흑백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회색과 회색의 혼돈으로 저는 시대와 마주하여 그 시대를 극복하고자 부단히 애썼습니다.
왕조를 섬기고 백성을 위함이 일국의 재상으로서 달성 도달해야 할 최종 과업인 즉 본인은 그 숙명을 전력으로 짊어졌습니다.
시대와 정세가 한국의 자존독립을 미몽으로 만들고 가느다란 빛 한줄기 마저 비춰주지 않을 때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촌로로서 여생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하루에도 수백 번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신민의 복리증진과 왕조의 존엄을 못 본척하는 것이 어찌 일국 총리대신으로서의 올바른 처신이 되겠나이까.
몸에 맞지 않은 옷이었으나 입어야 했고 하기 싫은 일이었으나 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영악한 주둥이 대가리를 들이밀고서라도 나라의 발전과 식산흥업, 공업의 발달, 정세의 안정을 꾀하고 문명개화 통치의 길로 나아가게 함이 맞다고, 그리할 수밖에 없다고 이 외줄 타기 같은 국제열강의 무리 앞에서 저는 황제의 윤허를 얻어 합방을 할 수밖에 없었나이다.
그 후 수십 년 이 조선 땅에 철마가 달리고 서구의 이코노미라고 하는 경세제민의 부흥이 이 땅을 채우며 조선인을 더 똑똑하게 더 강하게 세계인으로서 설 수 있게 하였나이다.
그러나 그 모든 문명개화를 뒤로하고 결국 나는 매국노요 망국의 재상으로 내 무덤에 침이 뱉어질 운명이나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사랑하는 조선 동포여, 이 매국노의 무덤에 침을 뱉고 조선의 앞길을 밝혀준다면 저승에서 나는 덩실덩실 춤을 추겠습니다.
죽어도 못 변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진리를 이완용이 잘 보여주었다. 그런데 글쓰기를 즐기는 내 개인적인 평가를 하자면 이완용은 글을 참 잘 쓴다. 조선의 관리 가운데 명필가로 이름이 났고 업무 능력도 탁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세술에 달인이었다. 친청, 친미, 친러를 섭렵한 후 결국 친일로 정착하여 문자 그대로 집안을 일으키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나라가 망해도 자기와 자식만 잘살면 되는 이른바 ‘한국적 엘리트’의 면면한 전통을 제대로 일으킨 자다. 지금도 21세기 한국 사회에 넘치는 그 잘난 엘리트 말이다. 나라와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내 자식이 명문대 들어가고 의대나 로스쿨 나와서 연봉 수십억을 벌고 40세 이전에 수백억, 수천억 재산을 모아 국회에 진출하고 고관대작이 되어 만만한 서민 앞에서 집 자랑, 부동산 자랑, 재산 자랑, 사치품 자랑으로 떵떵거리며 벽에 똥칠할 때까지 잘 먹고 잘 살다 죽어버리는 삶을 추구하는 그 잘난 엘리트들이 넘치는 나라 아닌가? 이완용은 그런 한국 엘리트 전통의 기초를 든든히 닦아 주었으니 그 엘리트들이 그에게 그토록 관대한 것 아닌가?
이완용은 1858년 7월 17일 현재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에 있는 빈한하기 이를 데 없는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26년 2월 11일 6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위의 유서도 1926년에 쓴 것이다. 옥인동에 있던 그의 집은 3천 평이 넘었다. 죽을 때 재산이 현재 가격으로 약 500억 원 정도에 이를 정도로 자수성가에 성공한 자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사주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흑석동에 있는 방상훈의 4,600평 집만 해도 시가가 5천억 원이다. 게다가 민주당 김의겸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방상훈과 그 일가의 재산은 부동산만 2조 5천억 원에 달한다. 이완용은 68세에 죽었다. 당시 조선의 평균 수명이 35세였으니 장수한 셈이다. 1948년 생인 방상훈의 나이가 75세다. 한국 남자 평균 수명이 80.6세이니 이제 5년 남았나? 아니면 이완용이 당시 평균 수명보다 32년을 더 산 것을 참조하면 107세를 넘길 수도 있나? 뭐 하늘만 알 일이다. 물론 점을 보면 수명이 나오지만 천기누설이니 말하지 않겠다.
다시 이완용으로 돌아가 보자.
신기하게도 이완용은 일본어를 전혀 못 했다. 그 대신 영어가 매우 탁월하여 일본인들과 대화도 늘 영어로만 했다. 원래 조선에서 육영공원을 다니며 영어를 배웠지만 미국에 파견되어 2년 5개월 동안 근무하며 영어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그래서 그는 일본 인맥이 거의 없었다. 다만 영국에 유학하여 단 1년 만에 탁월한 수준의 영어를 익힌 이토 히로부미(1841~1909)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영웅이신 안중근 의사님께서 1909년 10월 26일 이토를 처단하여 말동무를 잃고 나서는 데라우치(1852~1919) 총독과만 주로 교제할 정도로 인맥이 좁았다. 그러나 데라우치도 1919년 사망하고 보니 더욱 외롭게 지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대한민국 역사의 최악의 친일 매국노로 각인되어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갑자기 이완용을 소환한 이유는 2023년 3월 1일 104회 3.1절 기념식에서 윤석열이 읽은 기념사가 저잣거리에서 비판적으로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 기념사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50만 재외동포와 독립유공자 여러분 오늘 104 번째 3.1절을 맞이했습니다.
먼저,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순국선열들과 애국지사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04년 전 3.1 만세운동은 기미독립선언서와 임시정부 헌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로운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이었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갈망했던 우리가 어떠한 세상을 염원하는지 보여주는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지금의 세계적 복합 위기, 북핵 위협을 비롯한 엄혹한 안보상황, 그리고 우리 사회의 분절과 양극화의 위기를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될 것이 자명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그 누구도 자기 당대에 독립을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에, 그 칠흑같이 어두운 시절에,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진 선열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조국이 어려울 때 조국을 위해 헌신한 선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3.1 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특히,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우리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 협력해서 우리와 세계시민의 자유 확대와 공동 번영에 책임 있는 기여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104년 전,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외친 우리 선열들의 그 정신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가 이룩한 지금의 번영은 자유를 지키고 확대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보편적 가치에 대한 믿음의 결과였습니다. 그 노력을 한시도 멈춰 선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이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선열들에게 제대로 보답하는 길입니다.
영광의 역사든, 부끄럽고 슬픈 역사든 역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지키고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조국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을 기억하고 우리 역사의 불행한 과거를 되새기는 한편, 미래 번영을 위해 할 일을 생각해야 하는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기미독립선언의 정신을 계승해서 자유, 평화, 번영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일단 기념사의 양을 보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근대사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획을 그은 일대 사건인 31절 기념사인데 겨우 320 단어다. 한글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함초롱바탕체 11포인트 줄간격 160%로 정리해 보니 A4 2장, 200자 원고지 7.6매 분량에 불과하다. 작년 문재인 정부 때의 기념사와 비교해 보았다. 동일한 포맷으로 살펴보니 1,471 단어, A4 7장, 200자 원고지 33.3매 분량이다. 엊그저께 연대에서 기습적으로 한 축사보다 이미 양적으로 부실하다. 연대 축사는 403 단어 200자 원고지 11.4매 분량이었다.
도대체 연대 졸업식에서 할 말이 3.1절 축사보다 더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 연대 교수인 아버지 연구실에서 방학 숙제하고 수학 문제 푼 추억이 그리 중요한가?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 모인다는 자기 학교 놔두고 분명히 그보다 ‘한 단계 낮은’ 다른 학교 교정에서 고민과 사색을 한 것은 무슨 연고인가? 설마 이것도 그 잘난 ‘아빠 찬스’인가? 아니면 말고 지만 말이다.
다음은 연대 졸업식 축사 전문이다.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만큼 의미 있고, 영광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거기에는 좌절, 도전, 용기, 이 모든 것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졸업생 여러분은 마침내 그 일을 해냈습니다.
여러분의 성취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성취를 도와주신 부모님과 가족들, 서승환 총장님과 교수님들께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의 성취를 축하하게 된 것은 제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입니다.
연세의 교정은 제게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방학 숙제를 하고 수학 문제도 풀었습니다.
또, 아름다운 연세의 교정에서 고민과 사색에 흠뻑 빠졌고 많은 연세인들과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연세 정신은 시대를 밝혀주는 등불이었고 우리 역사의 고비마다 연세인들은 큰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여러분, 저는 그동안 국정운영과 국제관계에 있어 자유,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고, 이를 공유하는 국가 간 연대와 협력의 중요성을 역설해 왔습니다.
저는 이 보편적 가치의 공유와 실천에 우리 미래가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혁신을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나라를 보십시오. 자유와 창의가 존중되고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는 곳에서 혁신이 탄생했습니다.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의 연대와 국제 협력에서 혁신이 탄생했습니다.
또, 정부와 민간 각 분야 지도자들의 전략적 리더십이 돋보이는 곳에서 혁신이 탄생했습니다.
저는 오늘 졸업하는 연세인 여러분이 앞으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 리더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경제학자 스탠리 피셔는 “하나의 모범 사례가 1,000개의 이론만큼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보다 앞서간 나라들의 혁신 사례를 치밀하게 연구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 제도를 혁신 선진국들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혁신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득권 카르텔을 깨고 더 자유롭고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고 함께 실천할 때 혁신은 이뤄지는 것입니다.
혁신에는 기득권의 저항이 따르게 돼 있습니다. 우리가 이를 극복할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있을 때 혁신을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유와 공정을 담보하는 법이 짓밟히고 과학과 진리에 위배되는 반지성주의가 판치고 기득권 카르텔의 부당한 지대추구가 방치된다면 어떻게 혁신을 기대하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졸업생 여러분은 우리나라의 미래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미래가 곧 나라의 미래입니다.
저와 정부는 여러분이 미래를 꿈꾸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를 더 자유롭고 공정하게 바꾸고 개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산업현장의 노사법치 확립,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 조성, 교육과 돌봄의 국가 책임 강화, 더욱 공정하고 다양한 교육 기회 보장, 첨단 과학기술 인재 양성,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연금 시스템 추진 등 노동, 교육, 연금의 3대 개혁은 우리 사회를 더욱 활기차게 하고 여러분의 꿈과 도전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졸업생 여러분, 미래는 여러분이 던지는 질문들에 달려있습니다.
질문의 수준이 곧 생각의 수준이라고 합니다. 생각이란 곧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도전할 것인지 질문하십시오.
국가는 여러분이 자유롭게, 멋진 꿈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할 만반의 준비를 해 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눈부신 성장과 새로운 도약이 여러분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약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 세계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책임 있는 기여가 여러분의 꿈과 도전, 그리고 미래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점도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입고 있는 졸업 가운을 벗고 교정을 떠나면 여러분의 앞에 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좌절하거나 무릎 꿇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해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해낼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젊음의 패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꿈과 도전, 그리고 용기와 패기를 강력히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연대 축사에서 윤석열은 미래는 졸업생이 던지는 질문에 달려있다고 했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가 말하는 보편적 가치인 자유, 인권, 법치를 들먹였다. 3.1절 기념사도 변함이 없다. 보편적 가치, 그중에서도 특히 자유를 내세웠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반드시 자유민주주의, 곧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고삐 풀린 자본주의와 직결된 이데올로기로 축소되었다. 과연 윤석열은 원래 자유만 좋아하는 인물인가?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그가 1988년에 쓴 A4 용지 기준 76 매인 석사논문의 제목은 <美國 Class Action에 있어 代表要件에 관한 硏究>다. class action은 한국말로 ‘집단소송’이다. 윤석열 스스로 이 논문에서 말한 대로 집단소송은 보통 사회적 약자가 거대 자본가 기업에 맞서 벌이는 것이다. 김건희가 했다는 ‘우리는 노무현 파였다’는 말이 그때는 사실이었나? 그가 석사논문을 쓸 무렵이 이른바 ‘고시 낭인’이던 때라서 건설 노동자, 농민, 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와 동병상련을 느꼈던 것인가? 그러다가 천우신조로 ‘고시 패스’하고 출셋길을 달리다 보니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은 모양이 된 것인가? 그때는 맞고 이제는 틀린 것이 되어버렸나? 아니면 뒷간 갈 때 마음과 올 때 마음이 달라진 것인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래서 맘 같아서는 윤석열의 석사논문을 철저히 분석하여 논문의 수준과 행간에서 묻어나는 그의 마음 읽어보고 싶지만 다음 기회로 넘겨보기로 한다.
다시 3.1절 기념사로 돌아가 보자. 서두부터 껄끄럽다.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유가족? 아직 살아계신 독립유공자 가족은 제외한다는 말인가? 그냥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 여러분’이 적절한 표현이다. 말 트집 잡자는 것이 결코 아니라 3.1절 기념사라면 단어 하나 토씨 하나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말은 특히 '아' 다르고 '어' 다른 언어 아닌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가슴이 아파 찢어지고 있는 유가족은 세월호 사태와 이태원 사태로 생때같은 젊은 자녀를 잃은 이들이다. 이들에 대한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그다음 눈에 뜨이는 문장도 생뚱맞다.
“지금의 세계적 복합 위기, 북핵 위협을 비롯한 엄혹한 안보상황, 그리고 우리 사회의 분절과 양극화의 위기를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주어가 없다. 전형적인 국민의힘 방식의 문장이다. 도대체 지금 벼랑 끝에 몰린 한국 사회의 위기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타개책을 마련할 주체가 누구인가? 바로 대한민국의 권력을 5년 동안 위임받은 윤석열 자신 아닌가? 그런데 국민 보고 생각해 보란다. 그럴 거면 국민이 왜 윤석열을 이 나라 지도자로 뽑았나? 그냥 우리 국민끼리 생각하고 ‘각자도생’하면 그만이지.
그런데 그다음 문장은 더욱 뜬금없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3.1 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보편적 가치 글로벌 어젠다가 무엇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마치 챗봇 GPT가 작성한 문장의 느낌을 줄 정도다. 단어들을 나열했지만 그 문장 자체가 아무런 깊은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윤석열은 다른 자리에서 여러 차례 보편적 가치를 자유, 인권, 법치로 못 박았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하는 학문적 인륜적 보편적 근거는 전혀 대지 못하고 있다. 그저 자신이 그리 말하고 싶어 말하는 것으로 만 보인다.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는 또 뭘까? 영어 울렁증이 심한 윤석열의 영어 사용법을 보면 그저 단어만 늘어놓는다. 한국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국제연합에서 글로벌 어젠다를 제시한 경우는 많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속가능한 세계 발전 보고서>다. 4년마다 나오는 이 리포트는 현재 작성 중이다. APCO에서도 <WHAT’S ON THE GLOBAL AGENDA?>라는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표한다. 이밖에도 많은 국가와 단체에서 글로벌 어젠다를 제시한다.
그런데 윤석열은 이 단어만 언급할 뿐 구체적인 내용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글로벌 어젠다는 우크라이나 전쟁, 국제 경제, 기후 변화, 양성평등, 전염병, 그리고 교육과 청년 실업 문제가 포함된다. 과연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러한 어젠다에 어떤 정책을 제시했는가? 그저 정권을 잡은 이후 정적 제거에만 혈안이 되어 지금까지 버텨왔다. 그렇게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물론 영남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개돼지’의 맹목적 지지 덕분이다. 그러나 그렇게 국론이 분열되는 동안 세계는 계속 변하고 글로벌 어젠다는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무런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윤석열 스스로 말한 대로 “여기서 우리가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될 것이 자명하다.” 이 말을 하면서도 이러고 있으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더구나 일본은 과거 죄악에 대하여 사과한 적이 없는 느닷없이 파트너란다. 이는 마치 학폭 가해자는 여전히 반성 안 하고 뻔뻔한데 피해자가 자청해서 숙이고 들어가며 앞으로 잘해보자는 꼴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일본이 한국을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말한 적이 있나? 도대체 한국을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고 한 수 아래로 보는 일본과 무슨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어떤 협력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동북아시아에서 자청해서 미국의 압잡이가 된 일본과 과연 대등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가 세계에서 얼마나 될까? 한미일 삼국 가운데 가장 힘이 센 미국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에서 자주 굴욕감을 느끼는 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자청해서 일본에 굴욕적인 태도는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과 일본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대국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알아서 길 필요는 전혀 없고 오히려 그런 것인 전략적으로 실수가 될 것이 뻔하다. 약소국이 국제 정치에서 살아남는 것은 줄타기다. 이른바 줄 것은 주고받을 것은 받는 정책이 최선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 윤석열 정권은 아무런 대책이 없어 보인다. 그저 미국에 가서 어설픈 미소나 ‘날리고’ 바이든 팔에 매달리고, 일본에는 대답 없는 구애나 ‘날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 식의 외교의 결과는 더욱 굴욕적인 반응만 낳을 뿐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같은 한국인에게는 서슬 퍼런 위협이 되면서 외국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윤석열 정권의 모습을 보면 마치 조선 시대의 권위주의적 가장의 모습이 연상된다. 집 안에서는 마누라와 자식 앞에서 호랑이처럼 굴면서 밖에 나가면 설설 기는 그 잘난 가부장 말이다.
지금까지 3.1절을 100년 넘게 기념해 왔지만 이처럼 어처구니없이 내용의 빈약하고 시대정신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기념사는 처음 본다. 정말 이런 식으로 4년을 더 보낼 생각을 하니 억장이 무너진다. 대선 승리 후 국정 운영을 장난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계속 받아온 나의 느낌이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과연 한국과 일본이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나?
현재 윤석열은 마치 문재인 정부 시절 대한민국이 자유를 억압당한 듯이 자유를 무당 주문 외듯이 하고 있다. 그러나 프리덤하우스가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세계자유지수 2022>(FREEDOM IN THE WORLD 2022)를 보면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최정상의 자유를 누리는 국가에 속한다. 수구세력이 찬미해 마지않는 미국과 동등한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더 이상 자유를 누릴 필요가 없는 수준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국민을 향해 자유만 외친다면 이는 결국 방종을 조장하겠다는 말 아닌가? 인권과 법치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는 인권과 법치에서 세계 최상의 수준에 있는 나라다. 오히려 윤석열 정권에 들어와 법치를 ‘검치’로 더 나아가 ‘검폭’으로 바꾸고 있기에 근심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울한 소식이 언론에 올라왔다. 3.1절인데도 세종시의 한 아파트 주민이 일장기를 달았단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에는 3.1절에 일장기를 달아도 제재할 법이 없단다. 일장기를 단 부부가 그들이 주장했다는 대로 의식 세계에서 일본 ‘닝겐’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일본 국가가 울리고 이제 일반 주택가에서 일장기가 올라가는 사태가 벌어져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할 말이 없다. 하나의 작은 소동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런 것이 바로 동시성의 원리에 따라 현재 한국을 지배하는 집단의식을 엿볼 수 있는 표징이 된다.
1년 만에 세상이 이리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1년 후에 다시 극적인 변화가 올까? 그저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