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의 비둘기는 이미 다 날아가 버렸다.
조국 씨가 드디어 서울대에서 파면당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또 한차례 좌파 진영에서는 소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탄압받는 좌파 장수’의 이미지 메이킹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그래서 조국 씨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결국 내년 총선에 출사표를 던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파면 조치는 통상적으로 미리 통보되는 법이니 조국 씨가 평산 마을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제에 들러 대담을 나누면서 “과오와 허물을 자성하고 자책하며, 인고하고 감내하고 있다. …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길 없는 길’을 걸어가겠다.”라고 한 말은 이미 파면 후의 자기 행로를 암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조국 씨는 다른 길이 없기는 하다. 그의 팬덤이 바라는 것은 ‘복수극’이니 그 ‘길 없는 길’에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딸 바보 이미지만으로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민정수석 2년 2개월과 법무장관 한 달이 공직 경력의 전부인 조국 씨가 과연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가 될 수 있을까? 택도 없는 소리다. 일단 민주당 내에 지지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공천을 먼저 받아야 하는데 그의 연고지가 부산 서구인 상황에서 과연 부산 공천을 받을지 의심스럽다. 결국 수도권에서 자리가 안 나면 비례대표로 나설 공산이 크다. 강성 팬덤의 영향을 많이 받는 민주당으로서는 그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경심 씨만이 아니라 조국 씨 자신이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내년 총선에 나서는 것 자체가 위험부담이 매우 클 것이다. 물론 정치라는 것이 유기체라서 상황이 어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가족의 사생활이 이미 완전히 노출된 것도 모자라 조민이 자청해서 사사로운 면까지 다 유튜브에 공개하는 상황에서 조국 씨가 후보로 나설 경우 집중포화를 받게 될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면 수십 억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인세와 강성 팬덤의 지지로 수억에서 수십억의 돈을 모았으니 돈 걱정은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총선 출마 선언을 하면 후원금이 어마어마하게 쌓일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과 대립 구도를 형성하며 최악의 상황까지 몰린 조국 씨가 총선에 나온다면 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마한다면 문자 그대로 ‘길 아닌 길’을 가게 될 공산이 크다. 그리고 그 길을 가게 되면 이미 좌우로 분열된 한국 사회의 갈등은 그 절정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과거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대립 구도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는다. 그 검찰총장은 이제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랐다. 비록 국민의 30% 정도만 지지하지만 세계적으로도 매우 강력한 대통령제를 채택한 대한민국에서 이제 ‘실업자’ 조국 씨가 상대하기에는 대통령 윤석열은 너무나 멀리 그리고 높이 있다. 물론 이 구도에서 조국 씨는 ‘핍박받는 좌파의 선봉대’ 역할을 맡을 수도 있겠지만 언감생심이다. 평생 샌님으로 살 팔자의 사주를 타고난 조국 씨가 용호상박, 건곤일척의 싸움을 감당할 수 없다. 그저 남이 차려준 밥상에 앉아 숟가락을 얻는 일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 국민은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지녔다. 그래서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 좌파를 생래적으로 싫어한다. 그래서 해방 이후의 좌우 대결에서 좌파가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보수 세력이 강력한 좌파 척결 공작을 한 탓도 있지만 국민이 본능적으로 좌파를 싫어한다. 그리고 진보적인 가치도 매우 혐오한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수준은 아랍 국가보다 심한 정도다. 양성평등은 여전히 OECD 국가에서 최하위다. 아동의 권리 보호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보수적인 기득권 층 남자들의 세상인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어쭙잖은 좌파 진보 가치를 내세운다면 ‘박살’ 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전형적인 ‘강남 좌파’인 조국 씨가 좌파의 깃발을 들고 나온다면 한 판의 코미디가 전개될 수밖에 없다.
좌파 진보의 가치는 명백하다. 소수자, 곧 여성, 어린이, 가난한 자, 동성애자,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그렇지 않은 이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존중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소수자는 영원히 소수자, 약자로 머물 수밖에 없다. 기울어진 추를 바로 놓으려면 거의 혁명에 가까운 사회 변혁이 필요하다. 그런 변혁을 정치적 강단이 있는 지도자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고. 그런데 조국 씨를 내세운다고? 말도 안 되는 구도다.
현재 한국의 진보좌파는 바로 조국과 같은 ‘강남 좌파’가 선두에 섰기에 희망이 없다. 이석기는 사회적으로 ‘숙청’당했고 정의당은 페미 정당으로 몰락하고 있는 중이다. 중도 좌파를 자처하는 민주당은 자중지란으로 정신이 없다. 이제 이낙연이 귀국하면 더 꼴사나운 집안싸움이 전개될 것이다.
어찌 보면 한국의 진보좌파는 메인스트림에 진입하는 것에 실패한 ‘강남 좌파’로 망조가 들었다. 이를 고칠 만한 인물이 없다. 심상정도, 조국도 서울대까지 나오고 재산이 넉넉한 기득권 층이다. 그런 그들이 진보좌파의 이념으로 ‘구원’을 받아야 하는 서민을 구한다고? 그저 ‘입진보’의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런 ‘립 서비스’에 ‘놀아나며’ ‘조공’을 바쳐야 하는 한국의 서민들의 삶이 참으로 기구하다. 이제 한국의 서민은 그저 김광섭이 노래한 성북동 비둘기 처지가 된 것 같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착취적 자본주의로 구석에 몰린 서민이 이제 ‘강남 좌파’에 의해 마지막 남은 피 한 방울마저 빨려 스러져 버릴 모양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