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의 나라는 인제 그만 가버리면 좋겠다.
한국 부자 마을의 대명사인 압구정동의 재건축이 시작될 모양이다. 그 가운데 현대 9차, 11차, 12차 아파트 단지가 속한 압구정 2 구역 재건축 설계도를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와 함께 DA건축이 만들었단다. DA건축은 재건축 디자인 주제를 프랑스 파리 근처에 있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꿨다나. 그래서 단지 중앙에 있는 한강과 연결되는 약 36,000평 크기의 공원을 아파트 6개 동이 'ㄷ'자 형태로 감싸는 구조여서 모든 가구가 한강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기존 1,924 가구를 약 2,700 가구로 늘인다고 하니 부자들의 숫자도 늘어날 모양이다.
그런데 베르사유 궁전을 두 번 가본 내 눈으로는 조감도를 아무리 뜯어보아도 베르사유 궁전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돈 자랑 집 자랑의 연속으로만 느껴진다. 압구정 전체가 이 모양으로 설계가 진행된다면 서양의 이름난 궁전을 다 모방할 모양인가? 분명히 그 안에 들어 살 인간들은 다 전형적인 동양인의 외모를 지니고 주로 한국말만 유창하게 하는 한국인일 텐데 왜 하필 베르사유인가? 물론 그 가운데 일부는 ‘미국물’을 먹고 들어온 ‘리터니’도 있겠지만 그들이 프랑스 문화와 언어를 알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재건축, 증축, 확장 말고는 베르사유궁과 압구정 아파트의 공통점이 전혀 안 보인다. 그래도 굳이 베르사유라고 집주인들이 우긴다면야 할 말은 없겠다. 베르사유궁은 이른바 ‘태양왕’으로 불리는 루이 14세가 자신의 권력을 뽐내기 위하여 대대적으로 확장한 궁전이다. 루이 14세는 권력과 금력의 절정을 누리고 살다가 결국 베르사유궁에서 7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런데 유럽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화려한 이 궁의 유지를 위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던 부르봉 왕가는 결국 시민들을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끌어 왕조의 멸망을 앞당겼다. 그의 후손인 루이 16세는 38세의 나이로 프랑스 역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요틴에 목을 잘려 사망한 사람이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 아니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사치의 귀결은 결국 죽음이니 말이다.
신현대 9차 매매가는 현재 59평형 기준으로 70억 원이다. 전세가 19억 원 정도이고. 가장 ‘싼’ 39평형도 36억 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전세는 8억 원 정도다. 물론 이 정도 가격이라도 베르사유궁에 비하면 '껌값'도 안 된다. 그러나 2022년 기준 근로자 평균 임금 352만 원(세전)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세금도 안 낸 채로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39평형을 사려면 85년이 걸린다. 문제는 한국 근로자의 평균 근속 연수가 7년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다시 그대로 적용해 보면 한국의 평균 임금을 받는 평균 근로자는 무려 12대에 걸쳐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이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맞벌이하면서 한 사람의 돈을 모두 저금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계산이다. 한 마디로 한국의 대다수 국민은 신현대 9차 39평 아파트에 살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아파트도 모자라 이제 재건축을 통해 값을 올려볼 심산이란다. 그것도 베르사유궁 급으로 말이다. 배 아프냐고? 그러면 너도 돈 벌어 사면되지 않냐고? 그런 질문과 조롱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을 보니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단지 이외에 사는 사람은 압구정 주민과 다른 민족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압구정으로 달려가 그 아파트 단지 입구에 서서 출입하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얼굴이 평면이고, 피부색이 누렇고, 머리가 검거나 짙은 갈색인 동양인, 아니 한국인이다. 물론 개중에 적지 않은 사람, 특히 여자들의 코가 기형적으로 크고 눈도 500원짜리 동전처럼 동그랗다. 그러나 대부분은 내가 늘 보아오던 그냥 한국인 얼굴이다. 결국 신현대아파트 단지에도 나 같은 한국 사람이 사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자기 집은 고사하고 한 끼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결식아동의 숫자가 30만 명에 이른다. 그 가구원이 평균 4명 이상이라고 쳐도 현재 한국에는 120만 명에서 최고 200만 명의 한국인이 하루 한 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내 곁에 그런 사람이 있어도 나만 짝퉁 베르사유궁에 살면 행복할까? 부러우면 너도 돈 벌어 압구정에 들어오라고?
아니 나는 안 벌고 안 들어가련다. 그냥 밥 못 먹은 ‘결식’ 아동을 ‘걸식’ 아동 취급하는 이 사회를 고발하는 일에 내 힘을 쏟아보련다. 어쩌다 대한민국은 이리 갈가리 찢긴 나라가 되고, 어려운 이웃을 남 보듯 하는 나라가 되었을까? 짝퉁 베르사유궁에서 한강의 야경을 내려다보면서 스위스 치즈를 곁들여 프랑스산 포도주를 홀짝거리며 ‘나만 잘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 정말 행복할까? 유교의 대동 정신을 끔찍이 여겼다는 조선의 후예가 정말 한국인가? 과연 무엇이 잘 사는 것일까? 그저 서양의 짝퉁 얼굴과 짝퉁 건물과 짝퉁 자동차와 짝퉁 음식을 먹으며 나는 다른 한국인과 다른 인종이야! 그리 주장하고 싶어서 그러나?
나는 과거 독일 유학 시절에 이른바 ‘IMF 사태’를 경험했었다. 그런데 그 IMF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이미 독일 방송에서는 아시아, 특히 동남아시아의 분에 넘치는 사치를 경고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했었다. 그런데 그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지나갔다. 태국의 졸부가 자기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큰 BMW 자동차를 몰고 가는 장면이었다. 차가 어찌나 큰지 운전석에 앉은 그 ‘작은’ 태국인의 눈만 겨우 보였다. 그런데도 그 차를 자랑스럽게 몰고 있었다. 태국인을 비하할 의도는 없다. 그러나 그 장면을 설명하는 독일 해설자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차마 그 말을 여기에 옮기지는 않겠지만, 어떤 ‘동물’을 비유하는 말이었다. 그 방송을 본 지 얼마 안 되어 IMF 사태가 터졌고 아시아, 특히 동남아시아 경제는 초토화되었다. 그 혼란에 한국도 휩쓸려 들어갔고. 분에 넘치는 사치는 반드시 패망과 죽음을 가져온다는 사실은 프랑스나 아시아나 변함이 없는 진리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아시아인이 아무리 서양식 스타일로 지은 고대광실에 살아도, BMW 7er를 몰고 다녀도, 에르메스로 몸을 휘감아도, 페라가모로 발을 감싸도, 비프스테이크 미디엄 웰던으로 배를 채워도 아시아인은 유럽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여전히 서양 짝퉁이 되지 못해 안달이 난 한국인이 왜 이리 많은 것일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들의 논리는 늘 같다. 내가 피땀 흘려 번 돈 내 맘대로 쓰면서 나를 위로하는 플렉스 하며 사는데 네가 도와주었냐는 것이다.
그런데 왜 늘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 만든 고급 자동차를 타야만 하고,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만든 사치품 옷과 가방과 구두를 사서 걸치고 다녀야 하고, 스위스에서 만든 비싼 시계를 차고 다니고, 미국에서 만든 매우 비싼 반지와, 영국에서 만든 목걸이를 차고 다녀야만 ‘플렉스’가 된다고 생각하냐는 말이다. 그런다고 금발에 푸른 눈, 오뚝한 코에 눈부시게 하얀 피부를 지니고, 허리가 짧고 다리가 늘씬한 유럽 사람이라도 되나? 도대체 누가 그렇게 가르쳐 주었나? 정작 내가 10년 넘게 산 유럽에서는 대다수 사람이 그렇게 과소비하는 것에서 전혀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데 왜 한국, 그리고 중국에서만 그 난리를 피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설마 그 유명한 '압구정 콤플렉스'? 한국 최고의 압구정에 살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겠지?
언제나 정신을 차릴지. 아니면 영원히 정신을 못 차리나? 그래서 압구정 베르사유궁이 완공되면 이번에는 압구정 슈농소궁, 압구정 상수시궁, 압구정 쉔부룬궁, 압구정 샹보르궁을 지을까? 아니 중국처럼 차라리 유럽의 한 도시를 완전히 복제해 버리고 그 안에 파묻혀 살까? 그러면 직성이 풀리나? 이제는 정신을 차릴 때가 안 되었나? K-pop, K-culture가 그리 잘 팔린다는 데 언제까지 짝퉁 얼굴에 짝퉁 삶을 살려고 그러는지 정말 정말 모르겠다. 나는 왜 이리 모르는 것이 많은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