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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사진에 따귀 날리는 대한민국 노인 대표?

대한민국의 분열은 끝이 없다.

by Francis Lee

나도 어느 사이 은퇴도 하고 ‘어르신’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 이 나라에 대한노인회라는 것도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그 단체의 회장이라는 자가 대한민국의 ‘천만’ 노인의 대표로 민주당 김은경 사진의 따귀를 날려도 되는 자격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도대체 그 회장이라는 자가 무슨 자격으로 대한민국 ‘천만’ 노인을 대신하여 그런 만행을 저지른다는 말인지 한 마디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현실이다.


물론 김은경이 입을 가볍게 놀린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민주당은 노인 폄하의 전통이 유구한 정당인 것도 맞는 말이다. 정동영과 류시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입놀림의 전통은 깨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따귀를 날린 것으로 민주당의 노인 폄하는 오히려 정당화되었다. 이 나라 노인의 수준을 잘 보여주었고 그런 수준이면 면박당해 마땅하다. 정말 대한민국의 노인이 된 것이 이리 창피한 일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유교의 전통에서 노인은 무조건적인 공경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가부장제가 특히 발달한 한국에서는 나이를 무척 따지는 관습이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한 살이라도, 아니 한 달이라도 더 늙은 것이 권력이 되는 희한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러나 늙은이는 많아도 어른은 없는 나라가 또한 대한민국이다, 그런 현실을 바로 그 회장이라는 자가 오늘 만천하에 잘 보여주었다.


물론 그 회장이라는 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오늘 저녁에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며 주변 노인들 앞에서 무용담을 펼치겠지? 그러면서 자기가 어른답게 행동한 것으로 내세우고. 나이 든 나조차도 한국의 ‘노인’이 이런 정도의 저질일 줄은 정말로 몰랐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김은경은 노인회를 찾은 자리에서 여전히 변명하고 있었다. 자기가 한 말이 이런 파장을 불어올지 몰랐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식한 망발인가? 노인회 회장이나 김은경이나 저울에 올려놓으면 똑같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그런 자가 민주당을 개혁한다고? 개악이나 안 하면 다행일 것이다.


과연 김은경이 한 발언이 정확히 무엇이었나? 사과하러 와서도 억울하다고 할 만한 수준이었나? 다음은 김은경이 7월 30일 ‘2030청년 좌담회’에서 단상에 올라 공개 발언한 내용의 일부다.


“둘째 아이가 22살 된 지 얼마 안 된 아이인데, 그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인지, 2학년 때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어요. 왜 나이 드신 분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해?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생각할 때는 ... 평균 여명을 얼마라고 보았을 때 자기 나이부터 ... 평균 여명까지 해서 비례적으로 투표를 하게 해야 한다는 거죠. 그 말은 되게 합리적이죠. 근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인 1표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그게 참 맞는 말이에요. ... 우리 미래가 훨씬 긴데 왜 미래가 짧은 분들과 똑같이 표결을 하냐는 거죠. 되게 합리적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인 1표 선거권이 있으니까 그럴 수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투표장에 젊은 분들이 나와야 그 의사가 표시된다라고 결론을 했던 기억이 나요.”


중간중간에 말을 생략했지만, 전체적으로 핵심을 요약한 것이다. 전체적인 맥락을 본다면 김은경이 억울해할 만하다. 이성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정도 의견 표명은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정동영이나 류시민의 발언에 비하면 양반이니 말이다.


정동영은 2004년 3월 열린우리당 당의장 시절에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렸다.


“미래는 20대, 30대들의 무대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 그분들이 꼭 미래를 결정해 줄 필요는 없단 말이에요. 그분들은 어쩌면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되고 ...”


그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정국 후폭풍으로 한나라당은 멸문지화 지경이었다. 그러나 정동영의 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입 덕분에 기사회생했다. 그 당시 열린우리당이 200석을 넘길 것으로 예상했으나 152석에 그쳤다, 한나라당은 121석을 확보하여 기세를 올렸다. 20년 전 발언이니 정동영이 말한 20~30대는 지금 40~50대다. 그런데 묘하게도 현재 민주당 지지 세력의 핵심 연령층과 정확히 일치한다. 갈라 치기의 역사가 매우 깊다.


그런데 이 무렵 류시민도 중앙대에서 특강을 하면서 정동영과 비슷한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입방정을 떨었다.

“30, 40대에 훌륭한 인격체였을지라도, 20년이 지나면 뇌세포가 변해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된다. 제 개인적 원칙은 60대가 되면 가능한 한 책임 있는 자리에 가지 않고, 65세부터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류시민은 B급 정치인이라서 큰 문제없이 넘어갔다. 그러나 그의 가벼운 입 행진은 멈출 줄을 몰랐다.

노인 폄하 발언을 한 지 14년이 지난 2018년 대학로에서 한 특강에서 류시민은 20대 남성이 문재인 정권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대 남녀 성별 지지율 격차가 크게 나는 건, 문 대통령이 이성적인 관점에서 올바른 관점으로 정부 일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일이다. ... 20대[남성]들이 화를 내는 것도 이해할 측면이 있다. 우리가 군대도 가야 되고 특별히 받은 것도 없는데 자기 또래의 집단에서 보면 여자들이 유리하단 말이다. 자기들은 축구도 봐야 되는데 여자들은 축구도 안 보고, 자기들은 롤[온라인 게임]도 해야 되는데 여자들은 롤도 안 하고 공부하지. 모든 면에서 우리가 불리하다는 거다.”


참으로 참을 수 없는 가벼운 혀 놀림의 신공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입진보’의 화법 아닌가? MZ세대의 특히 남자 MZ세대의 고민을 이리 희화화할 수 있다니 놀랍다. 결국 나중에 그 20대 남성이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킨 주역이 된 것에 류시민의 가벼움이 정말 책임이 없을까? 갈라 치기는 수구 세력이 아니라 진보좌파를 자처하는 세력도 잘 한다는 것을 이 두 사람이 몸소 증명하고 있다. 더구나 류시민은 자기 발언에 대해 끝까지 반성을 안 했다. 아래는 그가 글로 쓴 자기변명이다.


“내 면전에서 재승박덕(才勝薄德)이라는 평을 해준 사람도 여럿 있다. 그렇다. 내게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지적을 받아들여 내 어법이나 행동방식을 교정할 의향이 없다. 더 중요한 정치인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류시민은 1959년생이니 이제 노인이다. 그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난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오만방자함이 바로 류시민을 포함한 ‘입진보’ 무리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바로 이래서 내로남불의 비난을 받는 것 아닌가?


정동영은 1953년생이니 스스로 말한 대로 이제 퇴장해야 할 나이도 훨씬 넘었다. 그래서인가? 요즘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나이를 보니 김은경은 1965년생이다. 나이로 보면 곧 정동영이나 피장파장 노인의 계보에 들어선다. 그러면 자기 논리대로라면 투표하지 말아야 하나?


내년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이런 설화로 나라가 뒤집히는 일이 더욱 빈번해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어떤 설화가 일어도 그 어떤 잘못을 해도 결국 진영논리는 먹힌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한국의 정치판에는 이성은 없고 패거리 문화만 기세등등해질 것이다. 여기에는 수구나 진보나, 남자나 여자나, 경상도나 전라도나. 부자나 빈자나. 꼰대나 MZ나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노인회 회장이라는 자가 김은경의 사진에 ‘귀싸대기’를 날리며 정신 차리라고 한 말이 차라리 애교스러울 정도다. 좌를 봐도 우를 봐도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노인과 애늙은이만 있고 어른은 없는 이 나라에서 살아야 할 날이 많이 남은 젊은이들에게 그냥 나라를 통째로 넘기면 나아질까? 어디를 둘러봐도 어차피 ‘어른’은 없으니 말이다. 내년 총선에서 과연 민주당은 어찌될까?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입만 놀리는 '입진보' 당으로 남는다면 참담한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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