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다른 날도 아닌 8. 15 광복절의 기념사에서 '빨갱이 타령'을 반복했다. 즉각 야당과 여러 원로들의 반발이 나왔다. 그러나 이른바 수구 세력은 기다렸다는 듯이 변죽을 울린다. 그러다 사흘도 안 되어 슬그머니 잊는다. 참 기억력이 이리도 짧은 사회가 되어버리다니... 정말로 이제 좀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 이 좁은 땅덩어리에 인구도 걷잡을 수 없을 줄어들고 있는데, 여기서 빨갱이와 토착왜구 갈라서 살면 행복한가? 50년 후 대한민국 인구가 3천만 명대로 줄었을 때도 여전히 빨갱이 타령하려나?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 나서서 빨갱이 타령을 하다니. 기가 막일 따름이다. 문맥을 읽어보니 정부에 맞서는 세력은 모조리 빨갱이고 나라를 뒤집어엎을 수 있는 수준이란다.
과연 그런가? 대한민국의 좌파의 능력이 그 정도였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을 보면 좌우만이 아니라, 빈부, 남녀, 동서, 노소로 모래알처럼 철저히 부서진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그 가운데 물론 골수 좌파가 있다. 그러나 그 좌파는 극히 일부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눈에는 오로지 좌파만 보이는 모양이다. 범인 때려잡는 일만 오래 하다 보니 윤석열 정권을 반대하는 많은 국민은 모조리 잠재적 범죄자, 더 나아가 잠재적 빨갱이로 로 보이는 것인가?
과연 현대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좌파’라는 수식어를 붙일만한 정치 세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해 보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좌파는 사라진 지 오래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승만 정권 때 한국전쟁을 전후로 하여 대한민국의 좌파는 절멸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박정희의 군사독재 시기에 반독재 투쟁 과정에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좌익 사상 연구가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문자 그대로 살벌한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좌파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다.
민주당은 결코 좌파가 아니라 보수 정당이다. 정의당도 좌파라기보다는 진보 세력에 가깝다. 흔히 말하는 좌파는 서양 특히 유럽에 굳건한 뿌리를 둔 유서 깊은 정치 세력이다. 대표적인 것인 현재 독일의 총리 숄츠가 이끄는 연합 정권의 다수당인 독일사회민주당(SPD)이다. 그리고 독일에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가 아예 동서독 분단 시절의 공산당 세력이 포함된 좌파당도 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좌파라고 불려야 손색이 없을 것이다.
독일사민당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정계에서 여러 차례 정권을 장악하고 이제는 보수 정당의 색채가 더욱 강해졌지만 그 뿌리는 사민당의 정식 명칭인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곧 ‘독일 사회민주주의당’이 보여주는 대로 사회주의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속 노래하는 자유민주주의와는 결이 전혀 다른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는 자유민주주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아니어도 민주주의 국가로 잘 살아간다. 독일과 같은 많은 유럽 국가처럼 말이다.
Die Sozialdemokratie war von Anbeginn die Demokratiepartei. Sie hat die politische Kultur unseres Landes entscheidend geprägt. In ihr arbeiten Frauen und Männer unterschiedlicher Herkunft, verschiedener religiöser und weltanschaulicher Überzeugungen zusammen. Sie verstehen sich seit dem Godesberger Programm von 1959 als linke Volkspartei, die ihre Wurzeln in Judentum und Christentum, Humanismus und Aufklärung, marxistischer Gesellschaftsanalyse und den Erfahrungen der Arbeiterbewegung hat. Die linke Volkspartei verdankt wichtige Impulse der Frauenbewegung und den neuen sozialen Bewegungen.
직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회민주당은 처음부터 민주정당이었다. 사회민주당은 우리나라의 정치문화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다양한 출신[을 배경으로 하고], 여러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지닌 여성과 남성이 사회민주당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 선포 이래 사회민주당은 자신을 유대교와 기독교, 인본주의와 계몽주의, 마르크스주의적 사회 분석과 노동운동의 경험에 뿌리를 둔 좌파 민중당이라고 간주한다. 여성운동과 새로운 사회운동은 이 좌파 민중당에 중요한 자극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독일사회민주당은 ‘마르크스주의적 사회 분석과 노동운동에 뿌리를 둔 좌파 민중당’이라는 말이다. 한국의 수구세력의 표현대로라면 빼도 박도 못하는 ‘빨갱이 정당’이다. 그런데도 그 안에는 종교와 남녀, 이데올로기의 구분 없이 모든 사상과 이념이 수용되어 당을 구성하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역사가 긴 이 정당은 독일의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고 지금도 남기고 있다. 이 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그 누구도 독일을 빨갱이 나라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무한한 발전을 위해 변형된 정치체계인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만을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내세우고 그에 반대하는 것은 모조리 ‘빨갱이’로 여기는 세력이 대한민국에서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모두 나온 유럽에서는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요소를 절충한 사회 제도를 실행하고 있다. 복지 제도는 모조리 사회주의 요소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른바 고전적인 순수 자본주의 국가는 선진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자본주의의 반대는 공산주의다. 그런데 아직도 자본주의의 반대가 독재라고 알고 있는 멍청한 사람들이 많다. 유럽의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공산당이 합법적인 정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공산당 출신이 시장이나 국회의원도 한다. 그럼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빨갱이 국가인가? 이제 좀 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나? 대한민국은 유럽에 버금가는 선진국이니 말이다.
서양의 근현대 정치사를 보면 좌파나 우파나 사회 발전에 모두 필요한 세력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럽 국가의 국민이 좌파를 여전히 용인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역사적 체험에서 나온 지혜이다. 우파든 좌파든 문제는 독재다. 어느 한 정치 이념이 사회를 지배하는 유일한 이데올로기가 되면 사회적 효율이 떨어지고 부패하게 된다. 그 부패의 짐은 결국 국민들이 짊어져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정치에는 늘 균형과 견제가 필요한 것이다. 서양에서 이런 지혜가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문자 그대로 피 튀기는 권력 투쟁의 결과로 나온 타협의 산물인 것이다. 근대 민주주의 역사에 획을 그은 프랑스 대혁명 이전에도 영국을 포함한 대륙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벌어진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유혈 권력 투쟁은 궁극적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물론 중국의 5천 년 역사에서도 민중 봉기는 무수히 일어났었다. 그러나 이 봉기가 기득권층의 몰락은 가져왔지만 계급제도라는 프레임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결국 기존의 틀 안에서 권력자의 자리바꿈 현상만 되풀이된 것이다. 중국 역사의 최초의 민중 봉기인 진나라 말기의 진승과 오광의 난은 결국 항우와 유방의 권력 싸움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후한 말기의 황건적의 난은 결국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낳았다. 서진 말기의 영가의 난은 오호십육국 시대를 거쳐 결국 수나라가 수립되는 결과를 이끌었다. 당나라 때 벌어진 황소의 난은 궁극적으로 송나라의 건국을 재촉하였다. 홍건적의 난은 명나라의 건국을, 이자성의 난은 청나라의 건국을 이끌었다. 태평천국의 난은 결국 중화민국의 수립을 가져왔다. 물론 이 난들이 모두 민중이 일으킨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난이 일어난 궁극적 원인은 모두 대부분 농민이었던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지배층의 악행이었다. 이에 반발한 민중들의 절대적인 지지로 세력이 확대되어 전국적인 봉기로 이어진 것이다. 중국에서의 난은 어찌 되었든 이렇게 정권 교체를 가져왔다.
그러나 중국의 계급주의적 유교 문화에 철저히 종속된 한국의 역사에서는 혁명은 고사하고 실질적인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권력 투쟁의 역사는 전무하다. 물론 고려시대부터 민중의 지지를 얻은 여러 난의 있었지만 정권을 타도한 경우는 없었다. 고려 왕조가 들어선 것도 엘리트들의 권력 싸움의 결과였고 조선 역시 최고 지배층 계급에 속한 이성계의 쿠데타로 수립된 것이다. 이승만은 ‘빨갱이 프레임’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고, 박정희는 이성계에 이어 한반도에서 두 번째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다음 이승만과 마찬가지로 ‘빨갱이 프레임’으로 군사 독재 정권을 유지하였다. 그의 뒤를 이은 전두환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역시 ‘빨갱이 프레임’으로 독재 권력을 휘둘렀다. 그것도 모자라 정권을 유지하려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노태우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말았다. 마치 바이러스처럼 이 빨갱이 프레임은 여전히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물론 한반도에도 1894년 갑오경장으로 공식적인 근세를 시작한 이후 민중의 봉기가 여러 차례 있었다. 1894년 농민봉기, 1919년 조선독립봉기, 1946년 10월 봉기, 제주 4.3 봉기, 4.19 혁명, 5.18 광주민중봉기, 6.10 시민혁명이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체제의 수립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기득권 세력의 교체만을 가져왔을 뿐이다. 결국 한국에서 사회적 발전의 프레임의 근본적 변화는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민중봉기도 체제를 무너뜨리고자 할 의도가 없었다. 1894년 이른바 동학혁명으로 알려진 농민봉기조차 유교적 왕조의 틀을 고스란히 유지할 것을 주장하였다. 한국에서는 민중봉기조차 기존의 권력 구조에 순응하여 파이를 나누어 먹는 것에만 몰두한 것이다.
그래서인가? 대한민국의 민중도 근본적인 사회 개혁보다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기득권층에 ‘기어올라’ Flex 하면서 잘 먹고 잘 살아보려고 그리고 그렇게 보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결국 집 자랑, 빌딩 자랑, 현금 자랑, 자동차 자랑, 보석 자랑, 옷 자랑, 학력 자랑, 지식 자랑, 직업 자랑, 얼굴 자랑, 몸매 자랑, 자식자랑으로 날밤을 샌다. 기득권층의 부도덕과 부조리에 대하여 손가락질하면서 어느새 그 기득권층이 누리는 삶을 지향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인격 자랑, 봉사 자랑, 지성 자랑을 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인격과 성질, 봉사와 쇼, 지성과 지식을 전혀 구분할 줄 모르면서 말이다.
그런 민중의 이중적 도덕성이 결국 이승만으로 시작된 독재 정권에서 즐겨 활용한 ‘빨갱이 프레임’이 2023년에도 여전히 한국 사회에 먹혀드는 기반을 마련해 준 것이다. 그래서 기생충 전문가도, 하나님도 까불면 죽이는 자도 이를 즐겨 사용하고 그들을 추종하는 ‘개돼지’들은 맞장구를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하물며 대통령마저 빨갱이 타령을 한다.
나는 결코 대한민국에 좌파나 우파 한 세력만의 독재를 원하지 않는다. 유럽의 역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사회의 발전은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의 적절한 균형과 견제가 이루어질 때에만 제대로 이루어지는 법이니 말이다.
그런데 2023년 대한민국의 몰골은 어떤가? 사분오열되어 서로가 철천지 원수가 되어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원수고, 남자와 여자가 원수고, 부자와 빈자가 원수고, 진보와 보수가 원수고, 좌파와 우파가 원수다. 누가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문자 그대로 End Game이 바로 이 한반도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다. 5천만 명 가운데 과연 이른바 ‘타노스의 저주’를 극복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싸움의 수준이 매우 저급하다는 것이다. ‘빨갱이’ 프레임에 갇혀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맘에 안 들면 그저 이 프레임만 덮어 씌우면 그만이다. 그리고 문제는 그렇게 프레임을 씌운 다음 책임을 안 진다. 그저 ‘개돼지’를 동원한 감정 배설을 하고 다음날이 되면 자신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조차 잊어먹는다. 그리고는 새로운 마음과 정신으로 다시 ‘빨갱이 타령’을 시작한다. 그러면 ‘개돼지’들도 새로운 마음으로 그 장단에 놀아나고.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검찰총장까지 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의 전당이 서울대 아닌가?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서울대의 슬로건이다. 그런데 현재 그 어마어마한 서울대, 그것도 서울대의 서울대라는 법대를 나온 대통령의 언행을 보고 조국의 미래를 묻는다면 무슨 대답이 나올까?
서울대의 교훈은 veritas lux mea이다. 하버드 대학교의 교훈 veritas를 베낀 형태이다. 과연 윤석열 대통령은 진리를 빛으로 여길까? 아니면 진리가 너무 눈부셔 아무것도 못 보게 된 것인가? 대통령이 급진적 발언을 하면 말리는 것이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다. 그런데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정말 수준 높은 정치 지도자와 오피니언 리더, 그리고 이른바 보수 언론은 대한민국에서 희귀 재가 아니라 아예 무존재가 아닐까? 참으로 지금 한반도를 불태우는 태양만큼이나 숨이 막히는 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