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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Sep 21. 2020

넥카강가의 중세 향기가 어린 대학도시 튜빙엔

독일 10개 대학도시를 찾아서 시리즈

튜빙엔 구도심 전경


튜빙엔은 넥카강가에 자리 잡은 인구 9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이다. 그런 도시에 학생이 27,000명 정도 되니 문자 그대로 대학도시라고 할 수 있다. 튜빙엔대학교(Eberhard Karls Universität Tübingen)는 1477년 에버하르트 백작이 설립하였다.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여전히 신학과 의학, 그리고 법학과 사회학에서 높은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튜빙엔대학교는 독일의 10대 우수대학교에 속하고 있다. 독일 노벨상 수상자도 11명을 배출하였다. 현재 개신교 신학부, 가톨릭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 철학부, 경제-사회학부, 수학-자연과학부의 7개 학부에 30여 개 학과가 운영되고 있다. 도시 전체에 대학 건물이 산재해 있어서 문자 그대로 대학도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인문학부는 도서관과 더불어 대부분 시내에 있고 자연과학부는 북쪽 산자락인 모르겐슈텔레(Morgenstelle)에 있다. 법학과, 의학과, 약학과가 특히 인기가 높다. 특히 시내에 있는 중앙도서관은 1499년부터 이미 잘 알려질 만큼 유서 깊은 건물에 있다. 대학병원도 운영되고 있는데 특히 소아과와 정신과로 유명하다.  1990년 설립된 국제 학문윤리연구소(Internationales Zentrum für Ethik in den wissenschaft)는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는 연구소이다. 이외에도 양성평등연구소, 생물학연구소, 나노기술연구소가 있다. 그리고 중국연구소와 대만 유럽 연구소도 튜빙엔대학교에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연구소가 운영되고 있다. 말하자면 연구 중심 대학교로 잘 알려져 있다.  

    

튜빙엔 라트하우스(시청사)


독일 대학교는 학교 차이가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한국과 같은 명문대병은 없다. 따라서 치열한 입시 전쟁도 없다. 그러니 학원도 없다. 학생들은 고등학교까지 학교에서만 공부한다. 한국처럼 밤 11시 또는 새벽 1시까지 학원 수업을 받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학문적 수월성(academic excellence)을 포기한 것은 전혀 아니다. 국제적으로 그 학문적 수월성을 재는 PISA 테스트라는 것이 있다. OECD가 세계 78개 국가의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수학, 과학, 읽기 테스트를 실시하여 그 결과로 국가별 학력 수준을 비교하는 시험이다. 2018년의 경우 중국, 싱가포르, 마카오, 홍콩이 1위에서 5위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 공동 6위, 캐나다 대만이 공동 8위, 핀란드가 10위이다. 참고로 독일은 19위를 차지했다. 이 결과를 놓고 보면 동북아시아 삼국 곧 한국, 중국, 일본이 PISA 테스트의 금은동메달을 휩쓸고 있다. 사실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도 이런 테스트 결과에 깊은 인상을 받아 한국의 교육에 대하여 종종 공개적으로 긍정적인 발언을 하여 한국을 기쁘게 한 적이 있다. 물론 이는 수학, 과학, 읽기 과목만을 비교한 것이기는 하지만 학문적 수월성을 측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는 테스트로 각 국가에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튜빙엔 시내에 선 임시 장터


그런데 독일은 이 테스트에서 500.3점으로 간신히 상위 20개 국가에 속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만 비교해 보아도 9위이다. 상위권이라고 보기에 힘든 성적이다. 그러나 흔히 한 국가의 학문적 수준의 척도가 되는 노벨상의 경우 독일인 미국(383명)과 영국(132명) 다음으로 3위(108명)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28명으로 8위이고, 중국은 8명으로 한 참 아래이다. 그리고 독일의 수상자들은 대부분이 과학자들이다. 그럼에도 독일은 교육 개혁을 계속 추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에는 PISA 충격의 사건이 있었다. 2001년 31개국을 대상으로 한 PISA 테스트에서 독일 학생들은 OECD 회원국 평균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 충격으로 독일에서는 교육 개혁에 관하여 격렬한 논의가 있은 다음 실질적인 개혁 조치가 이루어졌다. 먼저 교육 성취 표준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2005년부터 2016년 사이에 3세 이하 어린이를 위한 교육이 두 배로 늘어났다. 그 결과 2009년 PISA 테스트부터 독일의 성적은 상위권으로 올라갔다. 독일은 단순히 성적만 올린 것이 아니다. PISA 테스트 대상자로 독일 학생만이 아니라 취약계층인 이민자 자녀들도 포함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 평등 교육을 위한 조치를 취하였다. 이 과정에서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교에 대해서도 정부 보조금을 줄이거나 삭제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낮은 학교를 지원하여 전체적인 수준이 더 올라가도록 노력한 것이다. 이는 미국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PISA 테스트에서 독일이 2015년에 20위권에 오른 반면에 미국은 최하위권인 49위에 머물렀다. 게다가 학교 개혁을 명분으로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교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지원 중단 조치를 취했다. 능력 위주의 사회정신에 따른 것이다. 이는 교육 분야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낙오자나 취약한 이들도 안고 가는 독일과 크게 대비되는 조치이다. 그 근본이 철저한 무상교육이다. 그리고 뒤처진 학생을 위한 추가적인 교육도 무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네카강다리에서 바라본 구도심 건물

     

이러한 인본주의적 교육 개혁은 근본적으로 연대성의 원리와 보조성의 원리, 그리고 그에 앞서 인간 존엄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독일 헌법 제1조 1항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Die Würde des Menschen ist unantastbar. Sie zu achten und zu schützen ist Verpflichtung aller staatlichen Gewalt.  

   

직역을 해 본다.    

 

“인간의 존엄은 불가침 한 것이다. 이 존엄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 권력의 의무이다.” 

    

제2항은 다음과 같다.   

  

Das Deutsche Volk bekennt sich darum zu unverletzlichen und unveräußerlichen Menschenrechten als Grundlage jeder menschlichen Gemeinschaft, des Friedens und der Gerechtigkeit in der Welt.”   

   

또 직접 번역해 본다.  

   

“그래서 독일 민족은 불가침적이며 양도될 수 없는 인권을 세계의 모든 인간 사회, 평화, 정의의 토대가 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한 교육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독일에서는 종래에는 터부로 여겼던 대학교 간의 경쟁을 고무하는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또한 독일 고유의 사회적 시장경제의 원칙과도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다. 곧 미국의 자유방임주의적인 고삐 풀린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에 맞서 자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에서는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효율의 극대화를 추구하지만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을 통하여 정의로운 결과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교 사이의 선의의 경쟁을 추구하되 그것이 학연의 폐해를 가져오는 학교의 서열화를 지양하는 것이다. 그것이 독일의 교육이다. 그래서 튜빙엔대학교가 독일의 수백 개의 대학 가운데 탑 텐에 속하는 대학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이 대학에 구름처럼 몰려드는 현상은 안 보이는 것이다. 자기가 다니기 편한 대학교에 다니면 그만인 것이다.  

    

휄더린 투름


지리적으로 튜빙엔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수도인 슈투트가르트에서 남쪽으로 30km 정도 떨어져 있고 공항은 그보다 더 가까이에 있다. 그러나 철로나 도로도 모두 슈투트가르트로 가야만 전 유럽과 연결된다. 그래서 교통이 불편한 곳이다. 아우토반도 슈투트가르트에 가서야 연결되기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자동차로도 가기에도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그런 외진 곳에 있기에 중세 대학도시로서의 면모를 그대로 간직할 수도 있었다. 너무 조용하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만 같은 조용한 도시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북적대고 소란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도시도 나름 관광지로 정착되어 있어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학생들 덕분에 튜빙엔의 평균 연령은 독일에서 가장 어리다. 2015년 기준으로 39.1세에 “불과”하다. 그래서 도시는 매우 늙었지만 거리는 젊은이의 활기로 넘친다. 그러나 이곳 젊은이들은 그 활기를 거리에서 쏟기보다는 주변의 아름다운 숲에서 산책하며 이야기하는 데에 많이 투여한다. 튜빙엔 북쪽 언덕 넘어 계곡으로 내려가면 베벤하우젠(Bebenhausen)이 있다. 1183년 루돌프 백작(Rudolf von Tübingen)이 지은 수도원이 있던 곳으로 개천을 따라 좋은 산책로가 나 있다. 한참 계곡을 따라 산책하고 돌아와 초입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기분 좋게 하루를 마감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슈투트가르트로 가는 길에 숲이 우거진 쉔부흐(Schönbuch) 자연공원이 있다. 아름드리나무가 늘어선 이 깊은 숲 사이로 난 27번 지방도로를 따라 슈투트가르트까지 가면 그림 같은 마을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자전거 길도 잘 발달되어 마운틴바이크가 있으면 슈투트가르트까지 운동 삼아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산이 가파른 곳이 많아서 단단히 각오는 해야 할 것이다.   

 

 

네카강의 나룻배


시내 한가운데를 흐르는 네카강에는 초여름부터 사공이 있는 나룻배(Stocherkahn)가 운행된다. 배를 타고 강을 지나다 보면 시인이 살던 건물인 노란색의 휄더린탑(Hölderlinturm)이 보인다. 그리고 네카강 가운데에 네카섬(Neckarinsel)이 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 섬으로 연결되는 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좋은 산책로의 역할을 한다. 시내의 시청사(Rathaus)와 그 광장 그리고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슈티프트교회(Stiftkirche)를 보고 언덕을 올라가면 튜빙엔의 주인이었던 호헨촐러른이 지은 성(Schloß Hohentübingen)이 있다. 현재는 대학 건물로 사용 중이다. 다시 내려와 시내 광장에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중세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도 거의 파괴되지 않아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도심에 가격 대비 맛이 뛰어난 식당들이 많고, 디저트 가게도 많다. 부동산 가격이 독일에서도 매우 높은 지역인 만큼 은근히 고급스러운 분위기 있는 곳이 많다. 그러나 학생이 문화의 주축인 동네답게 대학 중심의 젊은이 위주의 행사가 많이 진행된다. 주말마다 시청광장 앞에서 열리는 장터에서는 근처 동네에서 재배한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살 수 있다. 내가 10년 동안 살던 동네라서 골목 구석구석을 다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이다. 골목을 다니다 보면 이곳에서 살거나 공부했던 명사들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천동설을 주장한 케플러(Johannes Kepler), 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쉘링(Friedrich Schelling), 슈트라우쓰(David Friedrich Strauss), 시인 훨덜린(Friedrich Hölderlin), 치매를 발견한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 핵산을 최초로 발견한 미셔(Friedrich Miescher), 기계식 계산기를 발명한 쉬카르트(Wilhelm Schickard), 그리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이었던 신학자 라칭거(Joseph Alois Ratzinger), 소설가 헤세(Hermann Hesse)도 모두 이곳에서 살고 공부하고 일했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며 공부를 해보고 싶다면 튜빙엔에 와볼 만하다.


그러나 강의실에 앉아 공부만 하고자 튜빙엔에 올 필요는 없다. 어느 하늘 맑은 여름날 시내에 있는 노천카페에 앉아서 여기에서 한 때 일했던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다가 잠시 눈을 들어 커피 한잔을 음미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단순히 노스탤지어만이 아닌 근원적인 그리움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 튜빙엔의 낭만을 조금은 더 깊이 맛보게 될 것이다. 사실 튜빙엔은 워낙 작은 중세 도시여서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번잡함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정말로 할 일이 공부 밖에 없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게다가 독일 사회 자체가 그렇지만 모든 것이 느리게 돌아가고 변화가 거의 없다 보니 권태감을 쉽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바로 그런 면모가 이 도시의 매력이다. 


 독일에 유학이든 출장이든 처음오면 사회의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간다는 인상을 강력하게 받게 된다. 서두르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어 보인다. 마치 영원의 시간이 슬로우 비디오로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관청일을 보든 병원에 가든 한 번 예약이 어긋나면 일주일 심지어 한 달을 그냥 보내게 된다. 그래서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조급증에 걸린 사람은 속에 불이 나게 된다. 튜빙엔과 같은 중세 도시는 시간을 더욱 그렇게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그러다 보면 마치 광속으로 달리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 여행을 하고 돌아온 사람처럼 모든 것이 다 지나가 버린 것을 갑자기 자각하게 된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유학 생활 11년이 정말로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신선 노름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게 된다는 속담을 절실하게 실감한 경험이었다.


 그러니 기왕 독일에서 유학을 할 생각이라면 마음은 느긋하게 그러나 행동은 신속하게 해야 한다. 더구나 겨울이라도 되면 해가 뜨는 낮 시간이 더욱 짧아져서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또한 긴 겨울 방학, 봄 방학, 여름 방학을 경험하다 보면 도대체 이 아이들은 공부를 언제 해서 졸업을 했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그들의 생활 리듬을 빨리 파악해서 적응하지 못하면 몇 학기를 허송세월로 보내게 된다. 그렇게 살아도 재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더욱 그리 된다. 그러니 독일에서 공부를 할 마음이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 정신을 차리는 연습을 미리 해야 할 것이다. 슬로우 비디오로 진행되는 삶이 실제로는 순간적으로 지나가 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이다.


 일단 그런 깨달음을 얻고 독일식 시간 개념에 적응하게 되면 튜빙엔의 삶의 참 맛을 충분히 느끼고 즐기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너무 겁을 먹지는 말자. 독일도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이지 안드로메다는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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