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에게서 박철언의 그림자가 보인다고?

천만에! 그저 토사구팽을 당하는 것만 같을 것이다.

by Francis Lee

윤석열 정권은 이제 이재명 구속에 실패한 한동훈의 처리 문제로 골치가 아프게 생겼다. 2년이 다 되도록 자기의 황태자 이미지 메이킹에만 심혈을 기울일 뿐 이재명 대표를 기소는커녕 구속도 못 하는 무능력의 극치를 보여준 한동훈의 용도 폐기의 순간이 다가온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의 구속을 위해 검찰이 2년이나 심혈을 기울인 공작이 결국 사실상의 실패로 끝났다. 검찰과 국민의힘은 재판부의 판결에 반박하는 뒤끝을 보이지만 솔직히 검찰, 특히 한동훈의 완패를 보여준 중대한 사건이다. 판결 내용을 보면 그 사실이 더욱 명확해진다. 한마디로 구속할 만한 직접 증거가 없다는 말이다. 결국 그동안 이재명 대표가 줄기차게 주장해 온 미리 프레임을 짠 ‘검찰의 탄압’을 법원이 간접적으로 증명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 어마어마한 검찰 조직이 2년 가까이 작업을 해 왔으나 직접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말이다. 결론은 둘 중의 하나다. 한국 검찰이 무능하거나 증거가 없다는 말이다. 그 어느 것이 진실이든 모든 것이 한동훈의 책임이다.


그래서 이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조직의 패배라기보다는 한동훈 개인의 패배라고 볼 수 있다. 이번 구속영장 기각은 그동안 여권에서 차기 대선 후보로 강력히 밀고 수구 세력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얻어온 한동훈이 거의 치명타를 입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물론 차기 대선은 아직 3년 반의 시간이 남았다. 정치계에서 3년 반은 거의 영원의 시간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결국 한동훈의 용도는 폐기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과거 실질적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황태자’로 군림했던 대선배인 박철언처럼 토사구팽을 당할 것으로 보인다.


박철언이 누구인가? 노태우 군사정권에서 강력한 차기 대통령감으로 자타가 공인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한동훈의 서울대 법대, 검찰, 정부의 대선배이기도 하다.


박철언이 1942년생이니 이제는 여든을 넘긴 ‘노인’이다. 그러나 노태우 군사정권 시절에 그는 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을 정도의 권력과 명성을 누리던 자였다. 박철언은 한국의 정치 엘리트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에서 경북 상주 출신으로 지연을 충족하고,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으로 학연을 충족하고, 사시 합격과 검사의 과정을 거치며 엘리트의 실력을 보여주고 노태우의 처남이라는 혈연도 충족한 완벽한 사박자 축복을 받은 자다. 학연, 지연, 혈연에 더해 진짜 실력도 갖추고 젠틀맨의 매너까지 갖춘 완벽한 엘리트였다. 그것도 모자라 전두환이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고 북한과 다름없는 허수아비들의 만장일치 추대로 박정희가 애용한 이른바 ‘체육관 대통령’이 되자 청와대 비서실에 들어가 정무비서관과 법무비서관으로 권력의 핵심에 들게 된다. 1985년에는 전두환의 심복인 당시 안기부장 장세동의 부름으로 특별보좌관이 되어 북한 정권의 실세와 접촉하는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박철언은 1987년 사조직인 ‘월계수회’를 조직하여 매형인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노태우 군사정권에서는 청와대 정책보좌관을 거쳐 13대 총선에서 이른바 전국구, 곧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여의도에 입성하게 되었다. 이후 소련과의 접촉으로 이른바 북방정책을 주도하게 된다. 또한 북한도 수시로 방문하여 남북 관계 개선의 주역을 담당하였다.


조선 제일의 혀라는 별명을 얻으며 그저 2년 가까이 ‘이재명 대표 죽이기’에만 ‘올인’ 한 한동훈과는 전혀 달리 박철언은 완벽한 학연, 지연, 혈연에 더해 실질적인 정치 외교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찐 엘리트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박철언이 당연히 노태우의 후계자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생존 본능에 투철한 노태우가 퇴임 이후 자기가 살아남을 고민을 하자 박철언이 나서며 이른바 ‘3당 합당’을 통해 민자당 창당의 주역이 되었다. 그러나 민자당에서 사실상 차기 대선 후보로 밀기로 한 정치 감각이 절정에 이른 노정객 김영삼과 노태우 정권의 최고 실세이자 엘리트인 박철언은 기싸움을 벌이며 사사건건 대립하게 되었다.


김영삼과 박철언이 벌인 기싸움의 정점은 바로 '김영삼·고르비 면담 사건'이었다. 소련과 수교를 위한 사전 작업을 위해 1990년 모스크바에 박철언과 김영삼이 파견되었다. 그런데 출발 전에 김영삼 측에서 “소련 방문에 박철언 정무장관이 수행한다.”라고 발표했다. 그러자 박철언은 즉각 “정부 각료가 정치인의 외국 방문에 수행한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라고 반발하면서 싸움이 붙었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김영삼은 노태우의 친서를 들고 있는 박철언을 호텔에 남겨 두고 사진기자들만 데리고 고르바초프와 먼저 만났다. 언론에서는 김영삼과 고르바초프가 포옹하는 사진이 대서특필되었다. 박철언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박철언은 귀국 후 “김영삼은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이미지 관리만 하고 왔다.” “내가 입을 열면 김영삼은 끝난다.”라고 큰소리쳤다. 그러자 김영삼은 “내게 공작정치가 행해지고 있다. 공작정치를 하다가 망하지 않은 정권이 없다. 노태우 대통령이 주변 사람들을 잘못 쓰고 있는 것에 실망했다.”라고 맞섰다. 결국 노태우는 박철언을 정무장관직에서 경질해 버렸다. 토사구팽의 시작이었다. 그러자 박철언은 김종필, 박태준과 함께 의원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며 맞섰으나, 결국 김영삼과 벌인 권력투쟁에서 패배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구 갑에서 당선되었으나,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이 민자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자 외사촌 형 김복동과 함께 민자당을 떠나 정주영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으로 가서 대선 후보였던 정주영을 도왔다. 그러나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감옥에 들어갔다. 나중에 피선거권이 회복되자 1996년 15대 총선에서 자민련 후보로 대구 수성구 갑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그러다 결국 2001년 6월에 자유민주연합 탈당을 선언하며 정계를 은퇴하였다. 60이 다 된 나이였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박철언은 누가 뭐라고 해도 황태자를 자처할 만한 실력을 그의 삶으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한동훈은 어떤가? 윤석열 사단에 붙어서 충성을 다하여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그리고 한동훈은 엄연히 법무부 장관이라는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데도 검찰의 업무인 이재명 대표의 구속을 실질적으로 지휘했으나 이제 완패했다. 사실 검찰총장이 이 일을 지휘해야 하지만 언론에 검찰총장 얼굴이 거의 안 나왔다. 그래서 국민은 검찰총장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오히려 한동훈이 검찰총장인 것으로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사실 검사의 실력은 피의자 구속으로 판가름 난다. 증거가 확실하면 판사의 구속영장은 자동으로 발부되는 것이 한국의 사법계다. 구속영장 발부율이 91%에 달한다. 그런데 한동훈이 심혈을 기울인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 사실 서슬이 퍼런 이른바 ‘검찰 독재’ 국가에서 일개 판사가 그 정권에 맞선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이번에 당연히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기각된 것이다. 그것도 다름 아닌 증거 부족으로 말이다. 결국 한동훈의 실력이 이번 사건으로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한동훈 스스로 ‘차고 넘친다고’ 큰소리친 증거가 사실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2년 가까이 400번에 이르는 압수수색을 하면서 판결도 아닌 구속조차 못 하는 수준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장관으로 있으면서 보여준 언행은 정치력도 품행도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렇게 한동훈은 대선배 박철언과 감히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의 ‘품질’을 지닌 자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벌써 황태자나 된 것처럼 건방을 떨고 있었을 뿐이다. 한때 그런 건방지고 품격 없는 언행이 그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착각을 한 사람들도 이제는 그의 ‘거품 실체’를 알게 되었다.


한동훈의 미래는? 당연히 토사구팽뿐이다. 이제 윤석열 정부가 버릴 카드로 분류될 것이다. 해바라기처럼 오로지 권력만 탐하는 MB 시절의 사골들이 잔뜩 모인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으려면 국면 전환이 필요하니 한동훈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워 버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윤핵관’과 ‘MB 사골’이 바라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안녕이 아니라 오로지 권력뿐이다. 정권이 바꾸어도 아무런 소신 없이 권력이 부르면 달려가는 자들이 한동훈에게 의리를 지킬 리가 만무한 일이다. 그리고 사실 굴러서 들어온 돌인 한동훈이 그동안 보여준 언행이 국민의힘의 ‘토박이’에게도 눈꼴이 시었을 것이다. 정치 바닥에서 패장의 친구는 없는 법이다. 이제 한동훈 앞에는 ‘과연 토사구팽이 될 것이냐?’가 아니라 ‘언제 토사구팽을 당할 것이냐?’의 질문만 놓여 있다. 호사가들은 적어도 올해 안이 아니냐는 말까지 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그때를 결정하는 것은 현재 한국의 정치를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는 ‘최고 존엄’의 의지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동훈은, 국민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의힘도 아니고 윤석열 정부도 아닌 그 최고 존엄에게 죽어라 매달릴 것이다.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대한민국 최초로 ‘북방정책’을 성공시키고 실질적으로 황태자의 품질을 보여주었던 박철언과는 ‘끕’이 전혀 다른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인 한동훈이라서 그가 무너져도 언론의 관심을 끌 수도 없을 것이다. 헤어스타일과 패션에 매우 민감하고, 유럽 출장 때 공항에 모인 기자들 앞에서 여봐란듯이 보여주고 싶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는 두꺼운 책의 번역본을 손에 들기까지 하면서 ‘관종’ 수준의 치기를 보여준 한동훈으로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더구나 그 당시 한글로 번역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는 제목이 인쇄된 하얀색 겉표지는 떼어버리고 “Ho Polemos ton Peloponnesion kai Athenaion”이라는 글씨가 두드러지게 보이는 빨간 양장본 표지를 일부러 보여주면서 말이다. 과연 한동훈은 그 글씨가 그리스어를 단순히 로마자 알파벳으로 음역 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하기는 몰라도 될 일이다. 한동훈에게는 ‘뽀대’가 훨씬 더 중요한 일로 보이니 말이다.


한동훈_펠로폰네소스정쟁사.jpg ⓒ 연합뉴스


실제로 그동안 언론은 한동훈의 ‘실력’보다는 무대뽀에 가까운 ‘조선 제일의 혀’와 도드라지는 ‘패션’에만 관심을 두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그런 관심을 끊어야 하니 마약쟁이 수준의 금단 현상이 보일 것이 우려될 정도다. 그저 마음 수양을 하면서 잘 견디기를 바란다. 정 힘들면 이미 토사구팽의 길을 미리 간 대선배인 박철언을 찾아 한 수 배우든지. 그러나 ‘끕’이 다른데 만나줄지나 모르겠다. 안 만나주면 이회창과 김기춘도 있고 우병우 같은 대타도 있다. 더구나 우병우는 1967년생으로 한동훈과 겨우 6살 차이밖에 안 나고 서울대 법대 재학 중 고시 패스라는 기록도 같으니, 격의 없는 대화도 가능할 일이다. 그러니 건투를 빈다. Bravo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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