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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형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가 살길이라고?

윤석열 대통령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표징일 뿐이다.

by Francis Lee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난 지 1년 반이 되도록 사회는 분열에 분열만 거듭하고 경제는 파탄 직전이고, 한반도의 정세는 전쟁이 언제든 발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윤석열 정부는 사회 분열을 오히려 더 부채질하고 있고 야당은 윤석열 정부에 맞선 투쟁을 언제든 윤석열 탄핵 정국으로 몰아갈 태세다.


이 와중에 국민도 스스로 핵분열하듯이 분열되어 결국 한반도 자체가 핵폭탄이 되어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일 정도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순진한’ 국민이 정치 모리배들의 선전·선동에 놀아나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고 개탄한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가져온 폐해가 현재 윤석열 정부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견 그래 보이기는 한다.


한국의 제도에서 대통령은 과거 군주제의 왕과 맞먹는 권력을 지닌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사실 미국 것을 흉내 낸 것이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영국의 군주제에 진절머리가 나서 공화제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땅이 매우 넓고 철저한 지방 자치제도로 시작한 미국의 통합을 위해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주어 그가 여러 주로 이루어진 연방국인 United States of America, 곧 미합중국의 구심점이 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은 국가수반과 행정 수반을 겸임하여 개별 주가 딴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1910년 일본의 식민지가 될 때까지 군주제 국가였다. 그리고 1945년까지 식민지 상황에서도 한반도에 살고 있던 사람은 대일본제국의 천황 폐하의 신민이었다.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에 느닷없이 Made in USA의 제도가 한반도 남부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갑자기 Republic of Korea, 곧 한국 공화국이 되었다. 과연 그 당시 공화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되었을까? 그저 미군정이 심어준 정치 경제 문화 제도를 조선 시대의 백성, 일제 강점기의 신민과 마찬가지의 마인드로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인 것 아니었나?


미국의 대통령제는 유럽의 계몽주의 정신을 정치적으로 구체화한 역사적 산물이다. 그리고 영국의 군주제에 맞선 민주주의 정신을 지닌 선각자들이 투쟁을 통해 얻어낸 성과물이었다. 그에 비해 한국의 대통령제는 남이 하라고 해서 시작한 수입품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무늬만 대통령일 뿐 군주, 더 나아가 독재자가 되어도 막을 시민 정신이 없었다. 그런 시민 정신은 오로지 계몽주의적 교육과 기득권자들과의 투쟁의 역사를 통해서 확보되는 법인데 한국의 국민은 그런 기회가 전혀 없었다. 여기에 더해 한국전쟁을 통해 미운 놈은 모조리 ‘빨갱이’로 몰아가는 못된 버릇까지 들어서 사회적 계몽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사실 토착화가 제대로 되지 못한 제도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한국이 모방한 미국식의 강력한 대통령제는 철저한 지방 자치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실질적 지방 자치가 시행된 적이 없다.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면서 헌법에 지방 자치가 명시되었지만, 권력에 눈이 멀어 왕이나 다름없는 종신 대통령을 꿈꾸었던 독재자 이승만 시절부터 지방 선거도 중앙에서 다 뒤에서 조종하는 연극에 불과했다. 한국 최초의 지방 선거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에 최초로 시작되었다. 이때 선거도 온갖 편법과 비리로 점철된 후진국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일관되었다. 그러다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군사독재자 박정희가 1961년 ‘지방 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으로 아예 지방 자치를 제도적으로 차단하면 실질적 군왕의 자리에 올랐다. 명분은 북한의 ‘빨갱이’들의 농간을 막기 위해 남북통일이 될 때까지 유예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노태우 정권 말기인 1991년에야 다시 지방자치제가 부활하였다. 정작 현재의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5년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은 대통령제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한 대전제인 지방자치제를 시행한 지 30년도 채 안 되는 것이다. 그것도 순서가 거꾸로 된 채 말이다. 그래서 한국의 대통령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맘대로 설쳐대도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조선의 왕, 일제 강점기의 총독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여전히 군림하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가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 윤석열 정부도 그 질곡을 답습하는 중이다. 한국 대통령은 외교를 맘대로 하는 국가수반과 내치를 자기 맘대로 하는 행정 수반을 겸직할 뿐만 아니라, 선전포고권, 계엄선포권, 긴급조치권, 긴급명령권과 같은 비상대권, 헌법 개정 발의권, 국민투표 부의권, 입법 거부권, 법률안 제출권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모든 정부 요직의 인사권을 장악하고 군대와 경찰을 맘대로 부릴 수 있는 공권력도 독점하고 있다. 전광훈이 말을 빌리자면 한국의 대통령 앞에서는 ‘하나님도 까불면 죽을 수 있을’ 정도다. 물론 한국도 제도로는 계몽주의에서 나온 제도인 삼권분립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대통령은 그 삼권분립 위에 군림할 수 있다. 국회가 아무리 제동을 걸어도 대통령은 자기 맘에 드는 자들을 얼마든지 요직에 앉힐 수 있다. 국회를 통과한 법도 대통령이 거부할 수 있다. 설사 법이 통과 돼도 대통령 시행령으로 막아버리고, 대통령의 맘에 안 드는 조직, 단체, 인물은 검찰과 경찰을 동원하여 ‘잡아 족칠 수’ 있는 것이 한국의 대통령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겨우 5년짜리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기 멋대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법에 전혀 안 걸린다. 법이 보장한 무한대의 권력을 멋대로 부린 것이니 말이다. 그런 고삐 풀린 권력자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탄핵과 시민 혁명뿐이다. 그러나 이미 대한민국이 체험한 대로 대통령의 탄핵이든 시민 혁명이든 시민들의 어마어마한 희생이 전제되는 엄청난 일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른바 의원내각제를 하자는 의견을 제시한다. 만약 그 제도에서 권력을 독점한 수상이 맘에 안 들면 총선을 다시 해서 갈아버리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당제를 이용하면 특정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는 폐해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한국의 지정학적 특성에서 순수 의원내각제는 효과가 없다. 이미 독재자 이승만이 하와이로 튄 다음 세워진 장면 내각이 보여준 혼란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국민의 의식이 후진적인 나라에서 제도만 바꾼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 경우다.


그래서 또 다른 이들은 이른바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그래서 정부 수반과 행정 수반을 분리하여 권력을 나누자는 것이다. 이 제도에서는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외교를 담당하고,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대통령은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국정원만 책임지고 총리가 그 나머지 모든 행정 부서를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총리지명권, 외교권, 군 통수권, 비상대권, 국회 소집·해산권, 법률안거부권,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관 임명·사면권도 가진다. 그리고 국회는 총리와 장관의 신임·불신임권, 총리는 장관 임명권, 조각권, 국정 통할권을 가진다. 지금까지 대통령 한 사람에게 모인 권력을 세심하게 분립하고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여 건국 이후 한반도에서 벌어진 정치적 사달과 비극을 막자는 것이다.

그러나 통일신라 이전부터 이천 년 가까이 중앙집권제도에 철저히 길든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권력 의식이 제도 한두 개를 바꾼다고 쉽사리 바뀔 것으로 믿는 것은 대단히 나이브한 생각이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의식이다. 독재자 이승만 시절부터 3명의 독재자가 무려 40년 가까이 군왕으로 군림해 온 나라다. 비록 6·10 시민 혁명으로 독재가 전두환의 얕은꾀를 박살을 내고 직선제를 쟁취하고 실질적인 문민정부의 터를 닦았지만, 이명박과 박근혜 같은 부패 하고 무능한 대통령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이 깨어 있지 않으면 그 어떤 제도를 도입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국민을 ‘개·돼지’ 쯤으로 여기며 우습게 보는 정치가들이 널려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제도만의 개선은 아무 효과가 없다. 국민의 의식 개혁, 의식 혁명이 동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깨어 있는 백성만이 자신이 원하는 나라에서 살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은 어떤가? 맘에 안 들면 다 ‘빨갱이’로 몬다. 미국과 일본이 한국을 이용해 자기 이익만 취하는 것이 눈에 보여 반대하면 ‘매국노’ 취급을 받는다. 한국의 우파는 민족주의를 혐오하고 친미 친일만 부르짖는다. 그것도 모자라 전라도와 경상도가 신 삼국시대처럼 서로 으르렁대고, 한남과 된장녀는 철천지원수인 것처럼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다. MZ로 불리는 젊은이들은 꼰대로 불리는 기성세대를 원망만 한다. 이렇게 같은 민족이 서로를 원수로 여기고 죽이지 못해 안달을 내는 것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국민이 이런 지경인데 무슨 제도가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니 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를 논하기 전에 먼저 국민의 계몽 운동부터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인권, 자유, 삼권분립, 정치, 계몽주의, 시민의식과 같은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 교육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본이 안 되고 준비가 전혀 안 된 나라에서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근대 제도를, 그것도 Made in USA 제도를 수입한 결과로 여전히 나라가 이리 질퍽대고 있다. 그래서 결국 근대 시민의 기본 의식이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리니, 남은 것은 돈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국민 대다수가 ‘돈 귀신’에 들린 것이다. 그래서 개 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다 죽으면 그만인 사람으로 넘치는 나라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정승 놀이도 하필이면 이웃을 돕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정신으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피땀 흘려 번 돈을 모조리 외국의 사치품 회사 자본가에게 가져다 바치는 기형적인 과시 소비문화로 변형되어 버렸다. 벤츠나 베엠베로도 시시해서 잘못하면 과속 사고로 죽기 십상인 람보르기니 회사 사장에게 수십억을 가져다 바치고, 루이뷔통도 똥 냄새날 정도로 시시해져 에르메스의 사장에게 별로 뛰어나 보이지도 않는 가방 한 개를 사고 수억 원을 바쳐야 직성이 풀리는 ‘미친’ 소비 광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금도 수천만 명이 자기 집이 없는데 수백억 원짜리 집을 텔레비전 방송에 비추며 자랑질하는 것들로 넘치는 나라다. 그래서 그런 과소비와 사치를 비판하면 돌아오는 소리는 늘 똑같다. 부러우면 너도 돈 벌어 사치하라고! 이런 ‘미친’ 국민이 넘치는 나라에서 무슨 주제에 정치 제도를 고치라 말라한다는 말인가?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사회 혼란의 원인이 아니라 하나의 표징일 뿐이다. 그러니 누구를 탓할 것 없다. 다 내 잘못이다. 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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