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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한국은 누구를 도와야 하나?

판단 기준은 국익이 될 수밖에 없다.

by Francis Lee

하마스의 기습작전으로 이스라엘이 커다란 피해를 보자마자 즉각 보복에 나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의 사상자가 수천 명에 이르고 난민도 수십만 명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러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양측을 지지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번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이른바 ‘하버드 팔레스타인 연대그룹’ 명의로 페이스북에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성명을 올린 것이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한국의 여러 대학교에서도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대자보가 연속으로 게재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런데 이러한 의견 발표가 파당적인 분위기로 흐르면서 결국 정치적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유대인이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에 이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커다란 불이익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하버드 팔레스타인 연대그룹’ 소속 단체와 학생들도 현재 미국 사회의 집단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대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미국 사회에서 거의 역린을 건드리는 일과 다름없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팔레스티나 지역을 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직접적으로 촉발한 것은 영국이다. 그런데 엉뚱하게 두 나라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20세기의 역사를 본다면 분명히 팔레스타인 주민이 살고 있는 지역에 유대인이 들어와 이스라엘 국가를 세운 것이 맞다. 그렇지만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과연 이 지역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이다.


과연 누가 팔레스티나 지역의 ‘진짜’ 주인이고 누가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순전히 역사적으로만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미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민족이 여럿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그 땅에 들어가려던 모세는 결국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곳에 정착한 유대인들은 결국 70년 로마 제국에 초토화되어 1948년 이스라엘 국가가 수립될 때까지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았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그 땅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그 지역에 합법적인 국가를 수립한 데 비해 팔레스티인은 여전히 정상적인 국가를 수립하지 못한 상황이다. 미국의 인디언처럼 팔레스타인 국민도 사실 그런 법적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수천 년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비해서 모든 면에서 뒤처지고 있다. 한 마디로 상대가 안 되는 것이다. 냉혹한 국제 정치에서 약소국은 늘 밀리게 되어 있다. 팔레스타인도 예외가 아니다. 군사적으로 강력한 이스라엘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형제국’인 아랍 제국과 소련의 도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국가의 인도적 지원에도 크게 의존하여 왔다. 그러나 이번 하마스의 기습 사태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을 처지에 놓였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이 물러설 가능성은 적다. 비록 팔레스타인의 ‘정규군’의 규모는 이스라엘에 비해 형편없지만 게릴라전에 능한 전사들로 이루어져 있고 실질적으로 팔레스타인 국민 전체가 잠재적 전사들이기에 쉽지 않은 전쟁이 될 것이 뻔하다. 세계 최강의 미국이 이스라엘을 적극 지원하고 있지만 결국 이스라엘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미국의 전력 손실은 커질 것이고 미국 국내 정치와 경제에 부담이 되는 순간 미국의 참전 열기는 시들해질 것이 뻔하다.


이번 전쟁에서 최대의 수혜자는 당연히 네타냐후다. 사법 농단에 가까운 ‘사법 개편 갈등’의 무리수를 두다가 궁지에 몰린 네타냐후는 하마스의 공격을 핑계로 이른바 거국 내각 수립에 성공했다. 혼자 다 뒤집어쓸 뻔했던 책임을 야당과 분산하는 전략에 성공한 것이다. 이제 전쟁을 네타냐후의 의중대로 치를 수 있는 합법적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공이 다시 네타냐후에게 돌아온 셈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민간인 희생자가 수천 명에 이르고 난민도 수십만 명에 이르는 상황이 되었지만 결국 누군가는 이렇게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전쟁 상황이다.


기가 살아난 네타냐후는 ‘하마스를 지구상에서 쓸어내겠다.’하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네타냐후 자신이 그 말이 허풍인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다. 하마스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마스를 기르는 자양분은 분노와 분쟁이다. 이스라엘이 중동 지역에 존재하는 동안 하마스와 헤즈볼라도 계속 자라날 것이다. 사실상 모든 팔레스타인 국민이 잠정적인 전사이기 때문이다.


1987년에 아메드 야신이 무슬림 형제단에서 떨어져 나와 설립한 ‘하마스’의 정식 명칭은 이슬람항쟁운동(حركة المقاومة الاسلامية, 발음: 하라카 알무카와마 알이슬라미야)이다. 이 단체의 산하에 무장 항쟁을 목표로 하는 이즈 앗딘 알 카삼 여단(كتائب الشهيد عز الدين القسام)이 있다. 이 명칭은 이스라엘 건국을 촉발한 영국에 맞서 싸운 민족주의 지도자 셰이크 이즈 앗딘 알 카삼(عز الدين القسام)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1935년 영국군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하여 팔레스타인의 영웅이 되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탄압에 맞선 팔레스타인의 봉기, 이른바 1차 인티파다가 발생한 것에 맞추어 설립된 단체다. 1차 인티파다에서 이스라엘은 무자비하게 이 봉기를 진압했다. 이 1차 인티파다의 원인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영토확장 야욕에서 촉발된 것이다. 1948년에 차지한 땅도 모자라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로 영토를 확장해 갔다. 이는 확실히 국제협정을 어긴 불법적인 제국주의적 행위였다. 이에 맞서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살던 팔레스타인 국민이 봉기한 것이 바로 1차 인티파다 사태이다. 처음에 팔레스타인 국민은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맞섰다. 그러나 시위가 격화되자 이스라엘은 8만 명에 이르는 정규군을 파견하여 시위를 무자비하게 제압하기 시작했다. 이때 죽은 팔레스타인 국민의 숫자는 822명인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여자와 어린이였다. 이스라엘은 닥치는 대로 팔레스타인 국민을 죽인 것이다. 이스라엘 측의 피해자는 민간인 100명 군인 60명 사망에 불과했다.


이스라엘의 입장은 과격 시위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희생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기나 힘에서 상대가 안 되는 민간인을 상대로 정규군이 발포한 것은 마치 전두환이 5·18 민주항쟁 때 국민을 상대로 발포한 것과 똑같은 만행이 아닐 수 없다. 법과 질서를 명분으로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하는 것은 그 어떤 말로도 변명이 될 수가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지도자인 칼릴 알 와지르를 제삼국인 튀니지에서 암살하기도 하였다. 이스라엘의 명분은 테러리스트의 제압이었지만 제삼국에서 다른 나라 정치인을 살해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국제연합조차 경의 안을 통해 이스라엘을 비난했지만, 이스라엘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이스라엘의 배경에는 든든한 미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연합에서 이스라엘이 제네바협정을 지키지 않은 것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내는 것조차 미국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이것이 국제 정치의 현실이다. 국제연합의 결의안은 아무런 실질적 효력이 없는 것임에도 이 모양이었다.


이후로 이스라엘은 독일의 히틀러 나치에게 당한 것을 그대로 팔레스타인 국민에게 자행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6년 이스라엘은 멀쩡한 가자지구 해변에 포격을 가하여 민간인을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명분은 지뢰 제거였지만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다. 이루 하마스는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항전에 나섰다. 2012년에는 당시 하마스 지도자 아흐메드 알 자바리를 미사일로 공격해 사살하는 과정에서 멀쩡한 어린이도 죽었다.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분쟁이 이어지다가 이번에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허를 찔리는 큰 피해를 보았다. 즉각 복수에 나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측에 큰 피해를 줬지만, 완전히 제압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역사가 말해주는 대로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제압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하마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완전한 독립국의 수립이다. 과거 이스라엘이 꿈꾸던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의도는 좋아도 하마스가 사용하는 무차별적인 살육은 국제적 비난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래서 하마스는 현재 많은 국가에서 국제 테러단체로 간주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이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확보하고 자기편을 들도록 압력을 가하는 상황에서 중동 지역의 미국의 첨병 역할을 하는 이스라엘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번에도 서양의 모든 국가가 하마스, 더 나아가 팔레스타인을 비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한국이 마냥 이스라엘만 지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국의 생존에 필수적인 에너지를 중동 아랍 국가에서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랍 국가는 형제국인 팔레스타인이 눈엣가시 같은 이스라엘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내심 반가운 것이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무턱대고 이스라엘 편만 들고 나서면 반드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2022년 한국의 주요 가스 수입국은 호주(153억 달러), 미국(119억 달러), 카타르(85억 달러), 말레이시아(55억 달러), 오만(47억 달러)이었다. 석탄은 호주(124억 달러), 러시아(57억 달러), 인도네시아(35억 달러), 캐나다(26억 달러), 남아프리카공화국(13억 달러)이었다. 원유는 사우디아라비아(376억 달러), 미국(140억 달러), 쿠웨이트(107억 달러), 아랍에미리트(92억 달러), 이라크(85억 달러)이었다. 카타르,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이라크와 같은 중동 아랍 국가에서 수입하는 에너지의 비중이 792억 달러로 전체(1,908억 달러)의 42%에 달한다. 중동 아랍 국가와 관계가 불편해지면 한국은 문자 그대로 생존을 못하게 되는 형국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데올로기만 내세워 미국에 줄을 서고 이스라엘을 맹목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외교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실리가 가장 중요한 전쟁터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우군이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것이 국제 관계다. 어쭙잖은 냉전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매달리다가는 국가의 존망이 걸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일부 수구 세력은 미국의 뜻에 따르는 것이 선이고 그 반대 진영을 지지하는 것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집착한다. 그러나 이는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하는 고집인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이 그동안 저지른 만행은 지금 하마스가 보여준 만행과 비교해서 전혀 나은 것이 없다. 폭력을 폭력으로 제지하는 방법은 영원히 악일 뿐이다. 그러니 이 시점에서 누가 선이고 악인지 흑백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백해무익한 짓이니 당장 중단하는 것이 마땅하다.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국민을 향해 저지르는 폭력은 분명히 히틀러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인종 말살 정책을 떠올리게 하는 짓이니 비난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하마스의 폭력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비인간적 만행이다. 모두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니 누구 편을 들기보다는 대한민국의 국익에 무엇이 도움이 되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외교에 나서야 할 것이다. 외교만이 아니라 국내 여론 형성에서도 가장 중요한 잣대는 국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다 보면 소탐대실을 낳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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