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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Oct 21. 2023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는 전혀 다르다.

팔레스티나와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이 곧 발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서방의 모든 정치 세력은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은 직접적으로 이스라엘을 위한 군사적 지원도 하고 있지만 막상 유럽 국민의 태도는 다르다. 소련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유럽과 미국 정부는 전폭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지를 선언하고 실질적으로 군사적 지원도 나섰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일반 국민도 우크라이나 깃발을 들고 거리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지지 데모를 하였다. 그러나 이번 중동전쟁의 경우 이스라엘 깃발을 들고 거리에 나서서 이스라엘을 열화와 같이 지지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언론 인터뷰를 해보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전폭적인 지지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유럽에서 진행된 유대인들의 독특한 역사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20세기 초반, 곧 히틀러의 나치가 유대인을 대량으로 학살하기 전 유럽에는 약 1천만 명의 유대인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 남은 유대인은 130만 명 정도 된다. 거의 80% 이상의 유대인이 유럽에서 사라진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 유대인의 숫자는 1,400만 명 정도 된다. 이스라엘과 미국에 거의 각각 650만 명 정도의 유대인이 있고 프랑스에 50만 명 정도가 있다. 독일에는 10만 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다. 그런데 유럽에 살고 있는 아랍인은 거의 천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그 숫자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 세계로 확대해 보면 아랍인은 약 4억 3천만 명으로 유대인의 1,400만 명과 상대가 안 되는 많은 숫자이다. 그리고 아랍인들이 중심인 이슬람교와 유대인이 중심인 유대교와 비교해 보면 그 격차는 더욱 커진다. 이슬람교 신자는 16억 명이고 유대교는 1천만 명 정도다. 인구와 관련된 모든 수치로 볼 때 유대인들은 아랍과 상대가 안 되는 ‘극소수’ 민족이다. 유럽에서 무조건 이스라엘 편만 들다가는 유럽에 있는 아랍인들의 강력한 반발을 살 것이고, 그들의 반발이 과격해지면 사회적 불안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아랍인의 정신적 지주인 이슬람교는 모든 연구 기관의 예상으로 21세기말이 되면 현재 세계 최대의 종교인 기독교를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랍 지역은 세계 에너지 공급의 최강자로 여전히 군림하고 있다. 아랍 지역은 최대의 석유 공급처이고 천연가스도 1위 공급 국가인 미국을 능가하는 양을 생산하고 있다. 한 마디로 아랍을 건드리면 당장 경제적 위기가 올 수 있다. 그러니 유럽에서도 무작정 이스라엘을 지지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종교적으로도 21세기 중반까지 반유대주의는 기독교의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가톨릭교회의 경우 1960년대 초반에 들어서야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비로소 반유대주의를 공식적으로 철회하였다. 그리고 일부 개신교는 여전히 유대인을 혐오하고 있다. 주님이신 예수를 죽인 살인자라는 이유로 말이다. 여기에 더해 현재 유대인이 ‘사악한 자본주의’의 중심이 되어 세계 경제 질서를 마음대로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소문도 유대인에 대한 인상을 나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남의 땅’에 들어와 과거에 자기네 땅이었으니 빼앗겠다고 나서며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중동 화약고를 만든 장본인이 된 사실로 아랍 세계의 미움을 단단히 사고 있다.     


모든 면에서 약세인 이스라엘이 현재 아랍 지역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미국이다.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아랍 지역의 미국 전초기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덕분에 나라를 세웠고 미국 덕분에 그 나라를 유지하는 이스라엘이니 이른바 앵글로·색슨에만 기쁨을 주고 사랑을 받는 프레임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 그 나머지 국가들이 사실 이스라엘을 그저 닭이 소 보듯이 하는 지경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대인이 특히 돈과 관련되어 곱지 않은 시선을 끌게 된 역사는 오래되었다. 특히 극렬분자 유대인인 유다가 ‘겨우’ 은전 30개에 신의 아들이고 주님이신 예수를 팔아넘겼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다고 확신하는 기독교인의 정신에서 유대인은 단순히 수전노가 아니라 지옥에 갈 만한 대죄를 지은 죄인이었다. 그래서 유대인은 2000년 가까이 유럽에서 주기적으로 핍박을 받아 왔다. 그런데 유대인 핍박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70년 유대 왕국이 소멸하고 모든 유대인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이른바 디아스포라 생활을 하면서도 유대교와 유대인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 그들이 사는 나라에서 미움을 사는 원인이 되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상식을 깨고 민족적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 화를 자초한 면도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근세까지 기독교에서 돈을 직접 관리하는 것을 죄악시하는 분위기에서 돈을 만지는 일에 종사하여 부를 축적한 것이 더 큰 화근이 되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이 어차피 죄인이니 좌와 관련된 돈의 관리를 유대인에게 맡긴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은 일찍이 자본의 축적과 고리대금업에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이 단순히 반유대주의적 상상력의 산물만은 아닌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유대인에 대한 일반적인 반유대주의가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인종학살이다. 당시 유럽에 살던 유대인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를 나치 정권이 죽였다. 이유는 그저 유대인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20세기 중반부터 세계적인 시대정신이 된 인권과 인본주의에 가장 어긋나는 사례가 되었고 그 이후 유대인은 대표적인 희생자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2000년 가까이 유럽인들의 정신에 새겨진 반유대주의가 쉽사리 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유럽에서는 나치가 유대인을 상대로 저지른 인종학살은 반대하지만, 유대인을 적극적으로 더 나가 본능적으로 좋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유대인과 돈을 연결시켜 현대의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곧 맹목적인 잉여 이익 추구라는 악의 화신으로 간주하는 정형화된 반유대주의는 사실 쉽게 사라지기 힘들 것이다. 2000년 전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기면서 돈을 준 것도 유대인이고 그 돈을 받은 것도 유대인이고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겨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친 것도 유대인이다. 유럽의 유일한 국교였던 기독교에서 그려온 유대인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주님인 예수를 팔아넘기고 박해하고 죽인 살인자가 유대인인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도 지상에서는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을 유럽인들은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유대교의 개혁을 요구한 예수를 못마땅하게 여긴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예수의 정치 세력화를 두려워한 헤롯의 협잡으로 예수가 종교적·정치적 사형을 당한 것이다. 논리적으로 여기에서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프레임은 생성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2000년 가까이 예수가 유대인이 아니었다. 예수는 백인 유럽인의 구세주이고 유대인이 그 구세주를 팔아넘기고 박해하고 살해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죽인 죄로 유대인들은 지옥에 갈 존재였다. 게다가 현실에서 예수가 거부한 돈을 만지는 더러운 일만 하는 자들이었다. 그런 유대인을 증오하고 박해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었다. 이는 거의 모든 유럽인의 무의식에 잠재해 있는 반유대주의의 근간이 되는 정신이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현재 유대인이 진짜 유대인이 아니라는 주장도 한다. 다시 말해서 2000년 가까운 디아스포라 생활로 이민족과 피가 섞였을 뿐만 아니라 아예 유대인의 피와 전혀 무관한 민족이 유대인이라고 자신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카자르인(Khazar)  음모론’이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1976년 쾨슬러(Arthur Koestler)가 출판한 <13번째 부족 - 카자르 제국과 그들의 유산>(THE 13TH TRIBE-THE KHAZAR EMPIRE AND ITS HERITAGE)이라는 책에 잘 나와 있으니 관심 있으면 읽어 보기 바란다.   

   

실제로 유대인이 단일 민족인 것 같지만 구약에 나온 대로 12지파가 있었다. 그리고 디아스포라 이후 오늘날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뭉친 사람들도 다양한 지역 출신이다. 로마의 국교가 기독교로 정해지면서 그 당시 로마 제국을 떠나 중동과 소아시아 살던 유대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다시 더 먼 지역, 곧 지금의 동유럽과 러시아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버티면서 중세에 이르자 유대인은 다시 모여 지금의 프랑스 지역과 동유럽 지역에 퍼져 살던 아시케나지, 지금의 스페인 지역에 살던 세파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살던 미즈라힘의 세 인종으로 나뉘게 되었다. 근대에 들어와서 특히 동유럽에 살던 유대인도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평등을 추구하면서 독립 국가를 꿈꾸게 되었다. 이들의 주류를 이룬 것이 바로 아시케나지 유대인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유럽과 소련의 박해가 강해지자 결국 만만한 현재 팔레스타인 국민과 이스라엘인들이 함께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지역으로 무작정 이주를 시작한 것이다. 무작정 밀려 들어와서 숫자로 밀어대니 그 지역에 살던 팔레스타인 주민도 이들을 막을 방도가 없어 결국 공존을 택했지만, 여전히 그 공존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어느 한 민족이 소멸하여야 끝날 분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유럽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중동에 떠밀어 놓고 멀리서 불구경만 하고 있는 유럽인들이 현재 중동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유럽으로서는 ‘귀찮은’ 유대인 문제를 해결했으니 좋을 수밖에 없는 일 아니겠나? 중동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이 죽든 이스라엘 사람이 죽든 그들에게 직접적 피해만 없으면 그만이니 말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국민의 대다수가 전쟁으로 비인도주의적 재난의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오늘도 버티고 있지만 유럽의 대다수 백인은 직접적 피해를 보지 않는다. 아주 멀리 떨어진 미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골치 아픈 문제를 누군가에게 대신 떠맡기고 그들이 쩔쩔매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끔 위로나 전하고 죽지 않을 만큼 지원하는 것으로 도덕적 책임을 다했다고 하는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당연하다. 세계 3대 화약고인 한반도에서 유럽인과 미국인의 골치 아픈 문제를 떠안는 바보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판에서 돌아가는 ‘꼴’을 보면 안심이 안 된다. 아니 안심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극도로 불안하다. 한국의 그 잘난 보수 세력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이 선이고 소련의 지원을 받는 팔레스타인은 악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한국은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 이유로 이제는 성조기도 모자라 이스라엘 깃발을 들고 시청 앞으로 뛰어나가는 '태극기 부대'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유럽에서도 꺼리는 일을 중동과 멀리 떨어진 한반도의 수구 세력은 거의 맹목적이고 광신도적인 광기로 이런 극히 위험한 짓을 한다. 이스라엘 지지 국가로 낙인찍히게 되어 중동 아랍 국가의 미움을 사서 석유 수입 길이 막히면 어쩌려고 이런 짓을 하는가? 태극기 부대는 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작정을 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런 짓을 방관만 하고 있다. 정말로 이제는 이런 이데올로기 분쟁이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슈퍼맨이라도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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