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정치는 결국 파멸만 낳을 뿐이다.
여권이 한동훈을 키워온 그동안의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결국 총선에 내보낼 모양이다. 사실 한동훈 정도 알려진 인물이 없지 않은가? 조국도 먼 양산까지 내려가서 출마 선언식이나 다름없는 북 사인회를 열었다. 조국의 팬덤이 상당한 상황에서 야권도 버릴 수 없는 카드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과연 한국 정치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될까? 현재로서는 처절하게 갈린 진영 논리의 제물이고, 그 제물은 대결과 분열을 즐기는 팬덤에 기쁨을 주고 사랑받는 이상의 역할을 못 할 것이 뻔하다.
사실 한동훈이나 조국이나 정치력은 전혀 검증된 적이 없다. 독일이나 미국과 같은 정치 선진국은 정치가가 되는 이른바 ‘정규 과정’이 마련되어 있다. 곧 정당에 가입하여 정당 활동을 하고 지방 선거에 출마하여 작은 단위의 정치 제도 안에서 단련한 다음 중앙 정계에 진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같은 분명한 정치 후진국에서는 정치가가 연예인과 비슷하다.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이른바 ‘붕 뜨면’ 스타가 되어 팬덤이 형성된다. 그러고 나면 그의 정치 능력과는 전혀 무관하게 하루아침에 국회의원도 심지어 대통령도 될 수 있는 나라다. 독일에서 오래 살아본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그런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동훈과 조국을 보면 이런 팬덤 현상을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관종’이다. 한국 사회 자체가 관종 신드롬에 젖어 있으니 이 두 사람이 그런 ‘짓’을 하지 말라는 법은 물론 없다. 물론 현재 정치판에서 최대의 관종은 이준석이다. 현재 좌충우돌하면서 자기 몸값을 최대한 키우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사실 한동훈과 조국에 비하면 많이 밀린다. 그의 쓰임새가 다해서 토사구팽을 당한 지 오래지만, 마약보다 무섭다는 권력의 맛에 한번 중독이 되었으니 이 바닥을 떠날 생각은 조금도 없을 것이다.
과연 내년 총선에서 한동훈과 조국이 맞짱을 뜰까? 물론 각자의 팬덤은 그런 ‘세기의 대결’을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주를 보나, 그동안 살아온 행적을 보나 결코 그럴 짓을 할 그릇은 못 된다. 둘 다 꽃가마 탈 일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과연 누가 이 두 사람에게 꽃가마를 제공할까? 이른바 기성 정치인들 사이에서 이들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실력이 전혀 검증이 안 된 상태에서 대중의 인기만으로 버티고 있는 자들이 어찌 이쁠 것인가? 그러나 윤 대통령도 바로 이런 ‘바람몰이’ 과정을 통해 그 자리에 오르지 않았는가? 한동훈과 조국이라고 못 할 것도 없다. 이런 전혀 검증이 안 된 ‘스타’가 정치판에서 ‘날뛸’ 수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 이상 이들이 ‘활약’을 두고 보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이들을 두고 속을 끓여보아야 아무런 이득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들을 꽃가마에 태우려면 기존의 판세를 뒤집어야 한다. 총선에 나서려고 몇 년 아니 몇십 년 동안 지역구에서 칼을 갈아온 정치 지망생이 널려 있고 재선, 삼선도 모자라 오선을 넘긴 관록이 있는 정치가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여권은 인요한을 내세워 물갈이 판을 다지고 있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나? 특히 윤핵관이 대들고 나서는 판을 다른 정치가들도 내색은 못 해도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특히 한동훈의 경우 나이도 어리고 정치 경력도 전혀 없는 데도 줄을 잘 타고 언론의 띄우기 덕분에 내년 총선을 총지휘한다든지 국무총리에 오른다든지 하는 배가 아픈 소리만 들리는 마당에 고운 시선을 보낼 의원이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조국도 마찬가지다. 물론 윤석열 검찰의 ‘프레임’의 희생을 당한 것은 분명하지만 끝까지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고 꽃길만 걸으려는 그의 행태를 곱게만 보지 않는 이들이 진보 진영에 넘쳐난다. 더구나 정치 경력이 전혀 없는 조국을 위해 지역구나 비례대표에 자리를 마련한다? 배가 아픈 정도가 아니라 분노가 치밀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동훈과 조국이 정치에 품은 뜻의 진정성을 보이려면 문자 그대로 진검승부를 해야 한다. 서로 험지나 사지에 출마하든지, 아니면 정치 1번지에 경쟁자로 나서서 승부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둘 다 그럴 그릇이 아니니 이런 생각은 그저 상상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당연히 직접 후보로 나서지 않고 ‘얼굴마담’을 하는 방법이 있다. 곧 총선에 출마한 각 진영의 후보들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꽃길만 걸어온 두 사람의 성정을 볼 때 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앞에서 말한 대로 지역구에 나서는 것은 교통정리가 힘들고 비례대표로 나서는 것도 너무 속보이고 체면이 안 서는 일이다. 그러니 결국 신당 창당만이 유일하게 남은 길이다.
물론 한국의 정치사에서 신당 창당으로 ‘재미’ 본 경우는 거의 없다. 정주영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여 31석을 얻어 원내교섭단체도 만들고 1992년 14대 대선에 나가 400만에 가까운 표를 얻는 속이 시원해지는 경험을 했지만,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지는 못했다. 게다가 대선 이후 ‘뒤끝 작렬’하는 김영삼으로부터 정치보복을 당해 정몽헌과 정몽준이 아버지 대신 죽을 고생을 했다. 물론 김영삼에게 학을 뗀 정주영은 김대중을 밀었고 김대중 당선 이후 ‘대북 사업’의 일환으로 소르망이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이라고 칭송한 소 떼 몰이를 시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현대가는 밀리기 시작했다. 정치에 한 번 발을 담그면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었다. 그의 아들 정몽준도 월드컵 열기가 남은 때에 대선에 출마했지만, 사퇴와 번복 ‘쇼’로 스타일을 많이 구겼다. 정치라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었고 한 때 제2의 박정희라는 별명까지 얻은 이인제도 후보 경선에서 이회창에게 패하자, 당을 나가서 국민신당을 세워 15대 대선에 출마하였다. 그러나 김대중과 이회창에 이어 3위에 머물고 말았다. 당시 500만 표에 가까운 득표로 저력을 보였지만 보수 진영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말만 듣게 되었다. 국민신당은 진보 진영인 민주계와 민정계를 포섭하는 중도 정당을 자처했지만 지방 선거와 보궐 선거에서 모두 참패하면서 해체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신당으로 재미를 본 사람으로 안철수를 뺄 수는 없다. 안철수가 세운 국민의당은 이른바 ‘제삼지대’를 내세워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의 호기심을 끌었다. 그리고 안철수라는 이름값이 먹힐 때라서 20대 총선에서 38석을 얻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었다. 사실 안철수가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된 것은 김제동, 박경철과 함께 진행한 ‘청춘콘서트’ 덕분이었다. 이때 형성된 팬덤의 힘으로 2011년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 시장 후보로 나서면서 정치의 길에 들어섰다. 19대 대선 후보로 나와 21%의 득표력을 보이면서 주가를 한창 올렸지만, 그 후에 보인 갈지자 행보로 몰락의 길을 걷다가 결국 국민의힘에 흡수되어 분당에서 겨우 자기 자리 하나 건지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이처럼 한국에서 신당을 창당해서 두 발로 서는 것은 거의 mission impossible 수준의 도전이다. 그런 창당을 배포만이 아니라 조직과 돈도 없는 조국과 한동훈이 주동해서 할 리가 만무하다. 그저 남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 얻는 일에만 능숙한 두 사람에게는 안 어울리는 일이다. 그렇다고 지금 이준석이 보이는 행태대로 ‘창당 카드’로 변죽만 실컷 울리다가 최대한 이익이 되는 길을 찾는 재주를 부릴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하동훈과 조국에게 남은 길은 창당은 아니다. 물론 정국이 요동치면서 여야가 다 분당의 길을 간다면 두 사람의 몸값은 최대한 오를 것이다. 이른바 ‘윤신당’과 ‘반명당’이 등장하여 정국이 춘추전국시대로 들어서면 ‘인재 영입’ 전쟁이 벌어질 것이니 고정 팬덤과 든든한 ‘스폰서’를 둔 두 사람은 문자 그대로 골라 갈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현재 두 사람이 간절히 바랄 일은 정국의 분열이다. 친윤, 반윤, 친명, 반명, 그리고 제삼지대까지 문자 그대로 사분오열되기만 한다면 한동훈과 조국은 꽃가마를 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그런 꿈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국민에게도 좋은 일일까? 두 사람이 국민을 기쁘게 하고 싶다면 앞에서 말한 대로 정치 1번지 종로에 출마하여 격투기를 벌여야 할 것이다. 어차피 파국으로 치닫는 한국 정치판에 시달리느라고 피곤한 국민에게 로마제국 시대의 검투사처럼 즐거움이라도 선사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 용기가 두 사람에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