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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소영이 최태원을 놓아주는 현명한 방법은?

이제 조강지처론은 필요 없다.

by Francis Lee

<연합뉴스>에 “최태원 ‘노소영, 십수 년간 남남 … 재산분할 위해 논란 일으켜’”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링크: https://v.daum.net/v/20231112100404451) 노소영이 이른바 ‘여론몰이’를 하는 것을 참다못한 최태원이 일갈을 한 모양이다.


남의 집 일에 특히 부부의 일에 참견하는 것은 가장 바보짓이라고 한다. 그러니 최태원과 노소영이 이혼을 하든 말든, 그리고 최태원이 새 여자를 사귀든 말든 아무 문제 삼을 것이 없다. 그야말로 사생활 아닌가? 그러나 최태원과 노소영의 싸움에 ‘페미의 시각’이 반영된 여론이 나타나면서 해묵은 논쟁이 다시 대두되기에 한마디 하게 된다. 바로 조강치처론이다.


고전에서 조강지처는 문자 그대로 술지게미와 겨를 먹을 정도로 어려운 때 아내로 ‘데리고 살던’ 여자를 말한다. 이 사자성어의 기원은 광무제의 누이 호양공주와 그가 사모한 송홍 그리고 송홍의 아내의 삼각관계에서 나온 말이다.


광무제가 젊은 나이에 과부가 호양공주에게 맘에 드는 남자를 골라보라고 하자 황제의 최측근으로 유부남인 송홍을 지목했다. 황족인 누이가 첩이 되는 꼴을 참지 못한 광무제는 송홍과 술자리를 마련하여 마음을 떠보았다고 한다. 본래 남자가 출세하면 친구를 바꾸고 부유하게 되면 아내를 바꾼다는데 너는 어떠냐고 한 것이다. 그러자 송홍이 한 말이 고사성어의 시작이 되었다. 臣聞 貧賤之交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 곧 ‘신이 들은 바로는 가난할 때 친했던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내보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결국 그 당시에 많은 남자가 출세하고 부자가 되면 친구와 아내를 잘 버렸다는 말이다. 황제가 그런 식으로 캐주얼하게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뭐 솔직히 말해서, 사실 오늘날에도 별다르지 않다. 신분이 달라지고 돈이 생기면 마음이 변하기 마련인 것이, 원래 사람의 본성이 아니든가? 수천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다. 특히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에서 아내를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겨 부와 명예도 헌신짝처럼 버린다는 것은 솔직히 소설에 불과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이 조강지처론이 회자되고 있다. 특히 페미 진영에서 매우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조강지처는 이제 더 이상 합당한 논리가 아니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부부가 갈라설 때 남자가 여자를 ‘버렸다’라는 전 근대적인 표현을 쓴다. 그것도 페미를 자처하는 무리에게 남자를 도덕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부부 가운데 누구도 다른 사람을 버릴 수는 없다. 남자나 여자나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부는 법적으로 맺어진 계약 관계다. 그래서 그 관계를 해소하는 것도 법적인 절차로 해소된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부부의 인연이 하늘이 맺어준 것이니 인간이 풀 수 없다는 논리로 매우 거룩한 성사라고 간주된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가? 전 세계에서 이혼이 불법인 나라는 필리핀밖에 없다. 그렇게 이혼이 불법인 이유는 국교가 가톨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았던 서양의 모든 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이혼이 합법인데 말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 식민지 경험을 한 나라에서 자주 벌어지는데 이것이 그 한 경우이다.


가톨릭 신자는 여전히 교회법으로 이혼이 금지되어 있다. 많은 가톨릭 신자가 이혼한다. 혼인 무효라는 ‘꼼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혼인할 진정한 의사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면 혼인은 무효가 된다. 다시 말해서 혼인했다는 흔적마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법적으로 처녀와 총각이 되어 새로 결혼할 수 있다. 물론 혼인 무효의 조건은 엄격하다. 그렇지만 바오로 특전 베드로 특전과 같은 여러 예외 조항을 통해 그 조건이 사실 거의 유명무실해진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둘이 살기 싫어 죽겠다는데 굳이 붙여 놓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교회에서는 혼인을 하늘이 맺어진 것이나 인간이 해소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가? 당연히 성경에 나온 예수의 말 때문이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마르 10,6~12)


간음은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끔찍이 여기는 십계명에서 금지하는 것이다. 그러니 십계명을 안 지켜도 죽지 않는다. 그리고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니 십계명을 온전히 지키고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리고 예수 당시에도 이혼하거나 아예 여자를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사실을 다 아는 데 예수는 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당연히 그 사회에서 약자인 여자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예수 당시에 유대인은 4명까지 아내를 둘 수 있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그 가운데 싫어지는 여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늙거나, 병들거나, 성질이 더럽거나, 애를 못 낳거나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철저히 가부장제를 강조한 유대인 사회에서 그런 여자를 ‘버리면’ 그 여자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남자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여자가, 그것도 이혼녀가 혼자 살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창녀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혼은 여자에게 죽음을 의미했다. 예수와 같은 사랑의 종교를 설파하는 존재가 그런 상황을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혼인은 신이 맺어준 것이라고 단언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오로지 예수 자신의 생각이다. 구약 어디에도 이혼하지 말라는 내용은 안 나온다. 다만 신명기에서 이혼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어떤 남자가 여자를 맞아들여 혼인하였는데, 그 여자에게서 추한 것이 드러나 눈에 들지 않을 경우, 이혼 증서를 써서 손에 쥐어 주고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 그 여자가 그의 집을 떠나가서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는데, 두 번째 남편도 그 여자를 싫어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손에 쥐어 주고 자기 집에서 내보낸 경우나,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인 남자가 죽은 경우, 그 여자가 이미 더럽혀졌으므로, 그를 내보낸 첫 남편은 다시 그를 아내로 맞아들일 수 없다. 그런 일은 주님 앞에 역겨운 짓이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시는 땅에 죄를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신명 24,1~4)


실제로 유대교에서 이혼이 이보다 더 간단하다. 한 마디로 여자가 살림을 제대로 못 하거나 현재 아내보다 예쁜 여자가 나타나면 남편은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 이때 여자의 동의는 필요 없다. 그러나 여자에게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 위자료는 많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혼장도 싸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여자가 그 돈과 서류를 가지고 재혼할 수 있다. 유대교에서 재혼은 흠결도 아니고 대단한 일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간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예수 시절에 남자는 이혼장만 싸주고 돈도 안 주고 여자를 내쫓는 치사한 경우가 많았을 것으로 여겨져서 예수가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구약 어디에도 혼인이 신이 맺어준 것이라는 계명이나 조항은 없다. 그래서 이혼은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상적 행위인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가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를 배타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유럽이, 특히 예수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바울의 신학을 기초로 한 경건주의에 물들면서 기독교가 사람의, 특히 피지배층의 삶을 규제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래서 출생하면 세례를 받고 장부에 등록하고 죽으면 장례 미사를 거쳐 땅에 묻혀야 했다. 그 중간에 혼인도 교회가 간섭했다. 인간의 일생이 교회의 통제 아래 놓여야 했던 것이다. 유대교가 유대인을 율법으로 얽매었던 식으로 기독교도 교회의 법과 규율로 피지배층을 철저히 통제했다. 그 근본적 이유는 물론 그들을 착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명분은 신의 뜻에 맞는 삶으로 이끈다고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교회의 권위가 강화되면서 이는 귀족, 더 나아가 왕의 혼인에도 적용되었다. 이러한 혼인이라는 사생활에 대한 교회의 간섭에 염증이 난 영국의 헨리 8세는 아예 성공회를 창시하여 이혼과 재혼을 마음대로 하는 사달까지 벌였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권력을 막을 재간은 없었다. 이혼하지 말라는 신의 뜻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으니 사실 막을 논리는 부족했다.


유교는 어떤가? 삼국시대부터 남자는 여자를 여러 이유로 버릴 수 있었다. 가부장제에서의 남자의 권리였다. 그러다가 고려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내를 버리는 남자에 대한 규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여기에 더해 귀족 층에 속하는 여자의 재혼도 금지하는 추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 유교 덕분이다.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이혼 규정은 더 까다로워졌다. 그러나 이때도 이혼은 남자만이 요구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여자는 처분만 바랄 뿐이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유명한 ‘칠거지악’이다. 역으로 이 일곱 가지의 악행을 여자가 하지 않는다면 이혼할 수 없다는 규정으로 활용되었다. 그런데 그 일곱 가지 조항은 사실 여성을 탄압하기 위해 좋은 구실이 되는 것뿐이었다. 시부모에 대한 불효, 불임, 음란, 질투, 심각한 질병, 수다, 도둑질이 칠거지악인데 사실상 그 어느 조항이든 걸면 다 걸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혼은 남편만이 일방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수단이니 여자는 그저 ‘나 죽었소’ 하고 시집의 귀신이 될 때까지 버틸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이혼당하면 죽은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삼불거 조항도 있어서 여자를 구제하는 모양은 갖추었으나 그 내용도 시부모 상을 치르고, 가난했다가 부자가 되고, 돌아갈 친정이 없는 경우로 모두 여자의 노력과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근대적인 합의이혼은 일본 강점기 때인 1915년에 비로소 도입되었다. 이때 유책주의도 함께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때도 여전히 가부장제의 요소가 그대로 살아 있어서 남자가 첩을 많이 두어도 여자는 그저 참고 살아야만 했다. 현재의 협의이혼 제도는 1960년 비로소 마련되었다. 그리고 이른바 숙려기간이 도입된 것은 2007년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에서 여자가 이혼과 관련하여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인 것이다.


이런 역사적 고찰을 해보면 최태훈과 노소영의 이혼 사달의 답답한 사정이 이해된다. 여전히 한국은 이혼이 남자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어 여자는 어쩔 수 없이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겨우 붙잡을 수 있는 것이 남자에게 이른바 조강지처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과 그에 따른 수오지심을 촉발하는 것인데 실정법 차원에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그러니 이제 조강지처라는 카드는 그만 사용해야 한다. 단순히 남녀평등이 아니라 존엄을 지닌 인격체로서의 독립된 여성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남성에 종속된 존재라는 의식에서 해방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조강지처를 버리면 천벌을 받는다’라는 식의 수천 년 된 미신에 의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실제로 역사를 보면 조강지처를 버리고도 잘 먹고 잘 산 남자들이 차고도 넘친다. 그리고 역으로 착한 남편을 버리고 더 강하고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사는 여자도 천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혼인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근본적인 인권에 속하는 일이다. 그러니 그런 사적인 것을 대의명분은 내세워 공적인 문제나 도덕적 종교적 차원의 것으로 과장할 필요가 전혀 없다.


특히 탈근대를 넘어 탈세속, 더 나아가 트랜스휴머니즘의 세계가 전개되는 21세기에는 말이다. 21세기를 살면서 수천 년 전의 조강지처를 들먹이는 것은 이제 부끄러운 일이다. 여자도 이제는 남자와 동등한 인격체로 맘에 안 들면 이혼하고 맘에 드는 남자와 재혼도 하고,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닌 존재라는 자의식을 키워야 할 때다. 그리고 기왕 이혼할 것이면 법적으로 다툼을 해서라도 최대한 유리하게 재산을 분배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돈은 치사하지 않다. 그 돈을 놓고 싸우는 인간이 치사하지. 그런 차원에서 노소영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양이니 두고 볼 일이다. 싫다는 남자에게 유교적 명분을 내세워 버티는 것은 이제 명분이 없는 일이다. 현대적인 페미니즘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안 맞는다. 그러니 여자들이 이제부터라도 주체적인 의식을 기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수천 년 된 남성중심주의적인 종교적, 사회적, 제도적 이데올로기를 여자 단독의 힘만으로 극복하는 것은 지난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소영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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