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에게만 충성하는 인의 장막을 거두어야 한다.
<시사저널>에 “지금, 누가 윤석열 대통령을 움직이는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링크: https://v.daum.net/v/20231113100705322) 윤석열 정권이 수립될 무렵만 해도 이른바 ‘윤핵관’이 세간에 회자되었다. 그러나 1년 반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른바 ‘삼인방’이 거론되고 있다. 이에 속하는 이들이 김한길, 김대기, 이철규다. 그런데 이철규는 윤핵관 명단에도 들어 있던 인물로 현재 윤한홍과 더불어 확실히 살아남아 권력의 최측근으로 버티고 있다. 나머지 윤핵관, 윤핵관 바라기 멤버로 자칭·타칭 알려진 인물들은 대부분 자천·타천으로 권력의 핵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장제원과 주호영은 노골적으로 용퇴를 거부하며 세 과시 중이다. 확실히 권력 실세에서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김은혜는 안철수에게 내준 분당을 다시 접수하러 가는 모양이고 윤한홍은 내년 총선에서 깃발 들고 앞장설 모양새다. 아마도 한동훈을 지원하는 참모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히 윤한홍은 김여사 지킴이를 자처하며 국회에서 총대 메는 모습을 자주 보여온 결과 충성심이 이미 충분히 검증된 것으로 보인다. 윤한홍은 지난번 국감에서 김여사 조부 이야기가 나오자 5.18 유공자 명단 제출 운운하면서 흥분했던 인물이다. 이 정도면 기쁨을 주고 사랑받는 데 아무 문제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지역구가 창원시 아닌가? 국민의힘 막대기만 꼽아도 당선 완료되는 곳에서 내리 2선을 했으니 두려울 것이 없을 노릇이다. 마산에서 크고 서울대 독문과 나와서 시립대 행정학 박사를 하고 행시 합격 후 이명박 밑에서 컸다. 그러다가 홍준표 밑에 들어가 이런저런 감투를 쓰더니 줄을 잘 갈아타고 이제 윤석열 정부에서 클 작심을 한 모양인데 지금까지는 잘 버티고 있다.
이철규는 강서구 보선 참패로 당 사무총장직을 내놓았으나 바로 인재영입위원장 자리를 꿰차면서 실세임을 과시하는 중이다. 특히 당과 용산의 다리 역할을 잘 해내어 기쁨을 주고 사랑받는 자의 명단에 올라오게 되었다고 한다. 김대기는 경남 출신으로 서울대를 나와 행시 합격한 것이 이철규와 비슷한 행로를 거쳤다.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다가 2006년 대통령 비서실에 들어가면서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권력 측근으로 남는 신공을 발휘해 온 인물이다. 둘 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전문 관료의 냄새가 물씬 난다. 윤핵관에 들어있던 장재원이나 권성동이 물 먹고 있는 상황과 크게 대조된다.
그런데 ‘삼인방’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역시 김한길이다. 물론 인연을 억지로 따지자면 윤 대통령이 검찰의 여주지청장 시절에 김한길은 민주당 대표로 윤석열 검사를 적극 지원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크게 부상한 것은 지난 1년 반 동안 윤 대통령 측근이 이런저런 사달을 겪고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며 공백이 생기면서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덕분으로 보인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권력 핵심에 세력이 전혀 없기에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장재원이나 권성동같이 권력을 따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철새와는 다른 부류다. 구권력 측근 가운데 상당수가 이제 토사구팽의 대기자 명단에 오른 상황에서 다른 측근의 형성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검찰 출신의 이른바 ‘윤석열 사단’에 속하는 오른팔 한동훈을 비롯하여 이복현, 주진우, 이원모, 이시원, 윤재순, 복두규, 강의구 8인방은 핵심 중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윤 대통령 주변에는 윤핵관과 윤석열 사단에 이어 삼인방이 삼각편대를 이루고 있는 모양새다. 과연 이들의 충성 경쟁을 윤 대통령이 얼마나 잘 이끌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지금까지 1년 반 동안의 ‘치적’을 보면 그리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지지율은 문자 그대로 지지부진하고, 경제는 파탄을 향해 폭주하는 기관차이고, 사회 분열은 거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주군을 섬기는 자들이 문자 그대로 인재라면 현재 한국의 상황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과가 진실을 말해주는 법이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등장한 인요한을 바지 사장으로 내세워 윤핵관을 비롯한 국민의힘 내부의 기득권 세력을 몰아내고 윤 대통령 한 사람에게 충성하는 이들로 채울 모양인데 당연히 반발이 심하다. 대표적으로 장재원은 전가의 보도처럼 관광버스 동원으로 세 과시를 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겨우’ 관광버스 92대에 4,200명을 모았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신천지가 대구에 모은 인원이 10만 명이라는 소식을 보니 더욱 비교된다.
문제는 윤 대통령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과연 윤 대통령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바른길’로 움직일 수 있느냐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그 누구도 바른길로 안내하는 데 실패한 모양새다. 물론 무역과 외교는 한국의 힘만으로 어쩔 수 없는 변수가 많지만, 국내 정치와 경제는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정치가만이 아니라 국민이 사분오열되어 서로 으르렁대고 있다. 분명히 같은 언어를 쓰고 한 조상의 후예인 동포인데 서로를 일본과 중국인 대하듯 한다. 아니 때로는 그보다 더 나아가 아예 원수로 여긴다.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악다구니로 싸우자고 덤빈다. 마치 한 가족이라고 여겼는데 한순간에 의절하여 남남이 되어 버린 기분이다. 특히 소셜 미디어에 올라오는 욕지거리를 보면 문자 그대로 정나미가 뚝 떨어질 지경이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싸고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느니 마느니 하고 있고, 경제는 붕괴 직전인데도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할 생각조차 안 하는 모양새다. 그저 서로 손가락질만 하면서 책임 전가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윤 대통령 주변의 참모가 정말로 능력이 있다면 이런 사달이 날 리가 없다. 국민 통합과 경제 성장은 모든 국민이 정치 지도자에게 바라는 것인데 윤 대통령은 대구 시장만 방문하고 있다. 스트레스를 풀러 갈 곳이 해외와 대구밖에 없는 서글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최측근 참모들 가운데 정신이 제대로 박힌 자가 있다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그 어마어마한 학력과 경력을 가지고도 도대체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연 학연 혈연으로 뭉쳐서 이데올로기 싸움만 벌이고 있다. 도대체 한국의 엘리트는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아니면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이 한국 엘리트의 참모습이란 말인가?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윤 대통령을 움직여야 하는가? 당연히 국민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민심을 천심으로 여겨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주변에는 이미 인의 장막이 형성되어 국민의 소리가 다 막혀버리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신문고를 두드리나?
사실 조선의 신문고는 조선의 3대 왕인 태종이 중국 송나라 태조가 설치한 등문고를 벤치마킹한 것이지만 아무나 두들겨 왕에게 읍소할 수 있는 장치가 아니었다. 일단 지방 관청에 민원을 제기했다가 문제 해결이 안 될 때 신문고를 두들겨 중앙 관청이 직접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는 절차를 밟지 않으면 오히려 처벌받았다. 그리고 한양 대궐 안에 있으니, 지방에 있는 백성이 아무리 억울한 사정이 있어도 이를 이용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했다. 더구나 철저한 유교적 가부장제가 지배한 조선 사회에서 자기 윗사람의 횡포를 고발하는 것은 신문고를 통해서도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존 질서를 흔드는 이해다툼은 국가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신문고는 조선 후기에 가서는 대부분은 소수 지배층이 사사로운 이익을 촉진하는 도구로 악용되었을 뿐이다.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 특히 권력자와 기득권자의 욕심이 앞서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법이다.
2023년 현재 대한민국의 경우는 어떤가? 민주주의 제도를 통하여 5년 임기의 국가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지만 그 뒤에는 그 지도자를 통제할 방도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 지도자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어도 헌법과 법률을 어기지 않는 한 탄핵하고 바로 쫓아낼 도리가 없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모조리 기득권자들이 손아귀에 잡고 있는 상황에서 오로지 국회의원과 선출직 공무원만 선거로 선출할 수 있는 현재의 민주주의 제도로는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한국 사회처럼 사분오열되어 있고, 이데올로기 대립이 극한까지 간 상황에서는 그 어떤 정치적 행위도 다 패거리 이익으로 환원될 뿐이다. 한때 윤 대통령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는 말로 많은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서 마침내 그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다음에도 국민이라는 사람을 섬길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인의 장막을 치고는 그들에게 나라라는 조직이 아니라 윤 대통령이라는 사람을 섬기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도 바른말을 못 하고 눈치만 보는 안타까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대선 당시에는 48.56%의 국민이 지지했지만, 이제는 70%에 가까운 국민이 지지하지 않는 이유를 아무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윤 대통령 주변에 형성된 현실에서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최후의 수단인 시민 불복종 밖에는 없다. 그러나 과거의 사례가 말해주듯이 결국 이러한 행동도 국민에게 가장 커다란 희생이 따른다.
다 같이 잘살아 보자고 국가 지도자를 뽑았는데 극소수의 기득권자만 호의호식하고 국민 대다수는 하루하루 견디는 것을 근심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 나라의 장래를 뻔한 것 아닌가?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국민이 모래알처럼 분열되어 단합된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고, 결국은 경제 파탄이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불안으로 나라가 크게 흔들리게 될 뿐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지금 서로 물어뜯기에 정신이 없는 국민이 고스란히 입어야 하는 것이고. 대통령을 움직이는 사람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데, 지금 측근 가운데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이니 문제다. 그저 한 사람에게만 충성하느라고 오늘도 할 말을 제대로 못 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 측근들에게 아무런 기대를 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그 충성도 진심이 아니라 오로지 5년짜리 권력을 누려보려는 사리사욕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 더욱 한심하다. 그저 내년 총선에서 선출될 300명 국회의원 가운데 '사람'인 국민에게 충성하는 이들이 많이 있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