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의 극우만 반민족주의적인가?
한반도에서만 전개된 매우 불행한 기형적 역사의 산물이다.
by Francis Lee Nov 24. 2023
네덜란드의 총선이 극우 포퓰리스트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많은 사람이 놀라운 일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전혀 놀랍지 않다. 이미 미국의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당선된 때부터 이런 흐름은 예고된 일이었다. 그 바람이 독일과 이탈리아, 영국에서 불었고 아르헨티나에 이어 네덜란드로 향한 것뿐이다. 한국도 윤 대통령이 이런 극우 포퓰리스트 바람을 타고 당선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의 극우 포퓰리스트는 민족주의자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왜 이런 극우 포퓰리스트 바람이 불고 있는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1980년대부터 판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폐해로 빈부 격차가 심화하고 세계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르면서 빈민 노동자 계층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고전적 자본주의 시대에는 이렇게 경제가 불안하면 노동자 계층이 자본가 계층과 대립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나타났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경제 파탄의 주범인 탐욕스럽고 무능한 자본가는 한 발 뒤로 물러나 국가 제도 뒤에 숨어버리고 착취 대상인 노동자들끼리 싸우는 프레임이 정착되었다. 2008년 월가에서 극악한 가상 수익 창출을 위한 서브프라임모기지 파생상품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시작된 금융 사고는 전 세계 국가의 재정 문제를 일으켰다. 그런데 이때 일부 금융기관은 파산했지만, 대부분 금융기관과 기업은 국가의 재정 지원으로 살아남았다. 그 재정은 금융 위기로 죽음의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를 살릴 수도 있는 돈이었다.
이제 자본과 정치가 결탁하여 그 어떤 경우에도 자본은 무너지지 않고 자본이 일으킨 파국적 상황에서 노동자만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몰락하는 구조가 정착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분노한 노동자가 경제 파탄의 책임을 자본가보다는 정치가에 물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정치가들은 이미 자본가와 결탁하여 권력 유지를 제일의 과제로 삼고 있기에 노동자의 고통에 대해서는 둔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로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는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시스템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정치적 지원을 받지 않으면 수익 창출을 지속할 수가 없기에 정치와의 결탁은 필연적인 것이다. 정치가들은 정치에 필요한 돈을 자본가에게 받고, 그 반대급부로 자본가들은 정치가들의 법적 제도적 보호를 받는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실 중도 좌파나 중도 우파나 근본적으로 아무런 정책적 차이가 없다. 문자 그대로 그놈이 그놈인 것이다.
이런 와중에 세계화 경제 체제와 지역 분쟁의 여파로 확장된 해외 무역 확대와 난민의 증대는 국내 경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노동자 계층에 위협적인 요소로 다가오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세계화된 경제 구조에서는 상품의 국제 경쟁력을 위해서는 단순히 국내 업체와의 경쟁이 아니라 국제적인 무한 경쟁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품의 원가에 들어가는 원료의 가격이 동일한 상황에서는 결국 임금을 줄여서 상품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필연적으로 감소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돈이 돈을 먹는, 다시 말해서 공중에서 갑자기 나오는 이자로 수익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에서 인플레이션은 고질병이 되어 버렸다. 실질 임금은 줄어들고 물가는 오르는 상황에서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일자리는 줄어들기에 노동자는 더욱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에서 궁지에 몰린 노동자는 당연히 분노하게 된다. 그런데 그 분노마저 정치가들이 세운 계략에 이용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곧 기성 정당은 자본과 결탁하여 노동자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좌절한 노동자의 분노를 이용하여 또 다른 정치 세력을 형성하려는 극단주의적 포퓰리즘이 판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 포퓰리즘은 노동자의 분노를 먹고 산다. 실질적으로 경제 파탄과 사회 혼란을 초래하였기에 그 문제를 책임져야 하는 자본가와 정치가에 맞설 힘이 없는 노동자는 대타를 찾게 되어 있다. 그 대타가 바로 노동자보다 더 힘이 없는 계층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유색인종과 난민이 주요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트럼프의 경우는 중국이 타깃이 되었다. 마침 코로나가 중국의 연구소에서 시작되었다는 음모론이 판치면서 더욱 좋은 먹잇감이 된 것이다. 이러한 ‘트럼피즘’이라는 질병은 미국에서 시작되어 유럽으로 번져 나갔다.
프랑스의 르팽을 선두로 이탈리아에는 현 총리 조르자 멜로니 소속의 이탈리아 형제들당, 핀란드의 핀란드인당, 에는 극우 정권이 들어섰고, 스웨덴은 스웨덴민주당이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우며 제2당으로 연정에 참여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선두를 달리는 오스트리아 자유당은 원래 중도 우파 정당이었다가 극우로 색깔을 바꾸었다. 스페인에서는 극우 정당 복스가 지난 총선 압승했다. 독일에서는 독일을 위한 대안당의 인기로 이미 여당인 사민당의 지지율을 넘어섰고 전통적인 중도 우파인 기민당도 더욱 우경화하고 있다. 여기에 드디어 위에서 말한 네덜란드도 우경화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한마디로 유럽 전체가 우파 민족주의 정당이 득세하고 있다. 극우나 우파나 민족주의가 아닌 경우는 단 하나도 없다.
이들의 특징은 노동자뿐 아니라 먹고살기 힘들어진 시민의 분노 배출구로 외국인, 특히 난민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민족주의라는 포퓰리즘의 전형적인 무기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한국도 이런 바람을 타고 우파인 윤 대통령을 당선시켰지만 다른 나라와 전혀 다른 비민족주의 노선을 추구하고 있는 매우 특이한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극우 포퓰리즘의 전형인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보여준 민족주의, 더 나아가 민족 우월주의를 한국의 우파 정당인 국민의힘이나 극우적인 언행을 시전 하는 윤 대통령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홍범도 장군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민족주의를 ‘빨갱이’로 매도하고 ‘위안부 문제’를 일본의 입장에서 스스로 ‘해결’하는 놀라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대외 정책에서도 친중 세력을 ‘빨갱이’로 규정하고 ‘자유민주주의’와 대립시키며 그 이데올로기의 원조라고 자처하는 미국과 아시아에서 미국의 충견 역할을 다하는 일본과 연대하는 비민족주의적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비민족주의를 지지하는 경상도 콘크리트 층은 민족주의에 전혀 관심이 없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이들에게는 한국과 한국인, 더 나아가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낯설거나 어색한 것인가? 이들에게는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살리는 것이 부담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세계사적으로 민족주의는 우파, 더 나아가 극우의 전유물이었다. 공산주의는 이와는 반대로 ‘국제주의’를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였다. 곧 세계 노동자의 단결이라는 이념 아래 민족주의는 공산주의의 적이 되는 이데올로기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이 제국주의,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추축국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이 세 나라가 극도로 혐오한 공산주의 세력과 협력하는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공산주의 세력과의 협력은 다름 아닌 미국이 주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공동의 적인 민족주의 극우 세력 독일, 이탈리아, 일본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미국은 소련과 적극적으로 협력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민족주의자들은 공산주의 세력과의 연대를 스스럼없이 택한 것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미국과 소련은 전후 냉전 체제로 대립하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결장의 한가운데에 한반도가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독일을 미국이 주축이 된 연합국과 소련이 분할 점령하였고, 한국은 미국이 남한을 소련 북한을 분할 점령하면서 공산주의는 하루아침에 적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 더해 한국전쟁으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소련과 미국의 패권주의의 극한 대결장이 바로 한반도가 되어 버리면서 민족주의는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실제로 한국전쟁에 한국군이 참전했지만, 전적으로 유엔군의 통제를 받았다. 휴전 이후에도 여전히 한국의 국군통수권은 실질적으로 유엔군의 대표인 미군이 독점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독자적인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매국노’로 매도되는 매우 모순적인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한국을 구해준 것은 미국이며, 미국이야말로 한국의 실질적 ‘주인’인 나라고 한국은 그러한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민족주의를 함부로 내세울 수 없다는 말이다. 더구나 이제는 한때 제2차 세계대전 때 공산주의 세력과 협력한 민족주의 세력은 이제 ‘빨갱이 딱지’까지 붙이는 짓까지 서슴지 않고 자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자칭 ‘애국자’들이 시청 앞에 몰려가서 데모할 때는 반드시 성조기를 함께 들고 가게 되어 있다. 그들에게 한국의 실질적인 ‘아버지 나라’는 미국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독자적인 민족주의적 정체성은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통일 신라 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대국’에 대한 조공 문화가 더해지면서 ‘소국’인 한국이 독자노선을 걷는 것은 ‘무도한 짓’까지 되어 버렸다. 또한 일제 강점기 때 권력을 장악한 세력의 후손이 여전히 한국 사회의 지배층을 장악하고 있고 미국에 흠씬 두들겨 맞고 정신이 번쩍 든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개를 자처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개는 미제이니 그 개를 미워하면 미국에 반항하는 것이 된다는 논리로 친일 세력이 애국자로 둔갑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친미와 친일이 민족주의를 대신하여 군림하게 된 것이다. 이런 논리로 과거 공산주의 세력의 도움을 받은 독립운동가의 민족주의는 ‘빨갱이’가 되어 매국노로 단죄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아마 이런 한국의 극우 세력의 전후 사정을 외국의 극우 세력이 알게 된다면 기가 막혀할 것이다. 아마 트럼프도 한국의 이런 사정을 알면 ‘이게 뭔 일이여?’라고 말하며 기뻐할 것이다. 자청해서 일본처럼 아시아에서 ‘미국의 개가 되겠다는데 트럼프가 왜 말리겠는가? 그것도 원자폭탄을 안 맞고도 자청해서 그러겠다니 말이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금시초문의 이른바 ‘사대적 극우 세력’이 세상에서 오로지 한국에만 존재하니 말이다. 어쩌다 이런 나라에서 살게 된 것인지 탄식만 나올 뿐이다. 민족주의를 부인하고 친미·친일을 해야만 ‘애국자’가 되고 민족주의를 내세우면 ‘반국가 세력’이 되는 나라가 세상천지에 한국 말고 어디 또 있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