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없는 한동훈을 누가 지지하나?
팬덤에게도 시민·정치의식 교육이 필요하다.
by Francis Lee Nov 26. 2023
한동훈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하여 대구를 시작으로 대전 찍고, 이른바 ‘전국투어’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행태가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일단 지역구를 다지거나 비례대표 협상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지역구의 경우 경쟁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동훈이 보여준 것이라고는 몇 명의 기레기들이 ‘한비어천가’를 부르게 한 것밖에는 없다. 찌라시가 띄어준 ‘조선 제일의 혀’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런 실력도 보여준 적이 없는 한동훈을 기레기가 이리 본격적으로 띄우는 이유는 물론 뻔하다. 한동훈이 보여줄 ‘찐 실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공부 잘해서 서울대 법대 가서 소년 급제하고 검사가 되어 줄 잘 선 덕분에 장관까지 한 것이 전부다.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정치가의 자질인 포용력과 공감 능력은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그저 대구 찍고 대전 가서 ‘팬이에요!’를 외치는 ‘철부지 애들’ 몇 명과 사진 찍은 것이 전부다. 그 팬들이 외친 말은 그저 ‘잘 생겼다.’라는 것이 전부다. 한동훈의 메시지는 아예 모르고 있다. 한동훈이 메시지를 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의 국가관과 정치관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인간관은 전혀 모르는 데 팬덤이 생겼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대구와 대전에서 보여준 이른바 ‘보수 진영’의 시민·정치의식 수준이다. 팬덤은 자기의 ‘우상’이 무슨 자질을 지녔는지, 그의 국가관과 사회관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국가에 도움이 될 것을 실천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언론에서 띄워주는 entertainer, 곧 신기한 볼거리를 보니 반가울 뿐이다. 마치 시골구석을 찾아온 트로트 가수를 보고는 하늘에서 내려온 ‘영웅’을 본 듯이 그 앞에서 흥분하고 엎어지는 매우 ‘촌스러운’ 의식이다.
한 나라가 진정한 민주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제도만으로 안 된다. 그 제도에 맞갖은 시민·정치의식이 함양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 그런 시민·정치의식을 키울 기회는 거의 없었다. 이것이 바로 현재 한국이 정치 후진국이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과연 한동훈 앞에서 흥분하고 엎어지고 자들이 ‘민주주의’의 역사와 의미를 알까? 더 나아가 사회 정의와 공동선은? 그리고 민주주의에 반대되는 것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독재라는 사실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아마 모를 것이다. 안다면 지금 이렇게 정치를 포퓰리즘과 분열로 몰아가고 경제를 파국으로 이끄는 윤석열 정권을 지지하고, 그의 황태자를 자처하지만 아무런 메시지나 역량을 보여준 것이 없는 한동훈을 지지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서양의 근현대사를 보면 민주주의가 정착될 때까지 많은 곡절이 있었고 계급투쟁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계급투쟁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투쟁이 앞섰다. 그래서 한 정치가의 자질보다는 그의 진영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아무리 무능해도 ‘내 편’이면 그만인 것이다. 더구나 그가 파당적이어서 내가 싫어하는 ‘네 편’의 미움을 산다면 무조건 OK다. 이 무슨 ‘후진’ 판단 기준인가?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이런 학연, 지연, 혈연에 더해 철저히 이데올로기에 몰든 패거리 정신이 먹히고 있다. 이 좁은 한반도에서 내 편과 네 편 갈라서는 것도 모자라 내 편 안에서도 다시 위편과 아래편이 갈린다. 또 그 안에서도 젊은 편과 늙은 편도 갈린다. 그것이 성에 안 차면 여자 편 남자 편으로 더욱 갈라진다. 아주 모래알처럼 산산이 부서지기로 작정한 민족으로밖에 안 보일 정도다.
사실 이런 파당적 사고방식의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다. 조선 시대 당파 싸움은 처음에는 사림파와 훈구파의 대립으로 시작되었다. 여기에 권력에서 멀리 있던 이른바 재야 선비 세력도 한 파벌을 이루었다. 이들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궁극 목표는 권력과 부귀영화였다. 돈과 권력을 놓고 문자 그대로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인 것이 바로 사화다. 무오사화(1498년), 갑자사화(1504년), 기묘사화(1519년), 을사사화(1545년)로 한국의 무수한 엘리트가 피 흘리고 죽어갔다. 그런데 내 편 아니면 다 죽여버린다는 독기로 시작하고 진행된 사화는 반드시 명분이 있었고 지기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욕심이 있던 왕의 권세를 등에 업고 일어났다. 다 한통속이 되어 권력과 돈 귀신에 들은 결과로 벌어진 일이다. 이러한 사화의 결과로 나라를 지킬 인재도 국가 재정도 거덜 난 상황이었다. 권세가들의 호의호식을 위한 재물로 국가의 부동산과 재물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 결과 삼포왜란(1510년), 임진왜란(1592년), 정유재란(1597년), 정묘호란(1627년), 병자호란(1636년), 을유왜란(1905년)으로 이어지는 난리로 나라는 문자 그대로 풍비박산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경술국치(1910년)로 나라가 망해버렸다. 오랜 역사를 지닌 나라는 외세의 침략으로 갑자기 망하지 않는 법이다. 그 이전에 그 침략을 막을 힘이 줄어든 긴 역사가 흔히 있기 마련인 것이다. 특히 기득권층인 권세가들 사이의 돈과 권력을 놓고 죽기를 각오하고 벌이는 내분으로 붕괴하는 것이다.
그런데 2023년 대한민국에서도 권세가들 사이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형식은 분명히 민주공화국이라서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지만 일단 나온 권력을 차지한 권력층은 국민을 소외시키고 자기들끼리만 ‘놀아난다.’ 정치 경력이 전혀 없는 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 후보가 0.73%p 차이로 당선된 사건이 벌어진 이후, 공신을 자처했던 이른바 ‘윤핵관’과 이준석이 토사구팽을 당하고는 화가 나서 신당을 꾸미느니, 지역구를 사수하느니 하면서 ‘배신의 계절’을 선언한 지 오래다. 그들을 버린 윤 대통령은 이제 ‘검찰 사단’을 꾸려 그 선두에 실력 검증이 전혀 안 되고 입만 살아있는 한동훈을 내세우고 있다. 이용 가치가 떨어지니 서로 ‘배신 때리는’ 중이다. 민주당 진영도 비슷한 형국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힘깨나 쓰던 인사가 버티는 듯하더니, 결국 ‘친명’과 ‘반명’ 구도를 형성하면서 마치 조선 시대의 사림파와 훈구파의 대립을 연상케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입으로는 국민을 내세우지만 오로지 권력만 눈에 들어온다. 이 와중에 이낙연은 수박들의 우두머리가 되어보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사실 이런 권력 싸움으로 정치판이 사분오열된 상황에서 한동훈처럼 팬덤을 만드는 정치가가 되기는 무척 쉬운 일이다. 그저 어느 한 편, 그것도 판단력이 매우 낮은 편을 내 편으로 만들어 버리고 나면 그만이다. 지금 한동훈이 바로 그런 짓을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면 물론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 ‘콘크리트’ 지역이나 강남의 현 국민의힘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당선되어 윤 대통령이 온 길을 그대로 짝퉁처럼 가는 것이 대한민국과 그 국민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조선 제일의 고집탱이’ 다음으로 ‘조선 제일의 혀’를 국가 지도자로 맞이하는 것을 기뻐할 사람이 ‘콘크리트 층’의 팬덤 말고 누가 더 있을 것인가?
윤석열 정권이 연말로 가면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적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윤 대통령 부부의 비상식적인 행보다. 그러나 그 못지않은 것은 그런 비상식을 측근은 물론 국민의힘 의원 가운데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현실이다. 이유는 물론 공천이다. 공천권을 지닌 윤 대통령의 눈에 들기 위해서라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소금물도 퍼마시는 자들로 넘치는 국민의힘에 정의와 민생을 챙기는 의원이 누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정작 그 권력을 쥐고 있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오로지 30%대 초반의 경상도와 강남 ‘콘크리트’만으로 버텨내는 중이다. 나머지 70%는 윤석열 정권이 죽어도 싫거나 관심이 없다. 이 위기를 막기 위해 한동훈을 조기 소환하였지만, 그의 역량을 증명할 길은 문자 그대로 여전히 안드로메다에 가 있기에 검증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저 ‘조선 제일의 혀’라는 사실만 더욱 강하게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른바 수구 찌라시들은 오늘도 ‘한비어천가’를 부르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 대선 때 ‘윤비어천가’를 불러대던 그 프레임 그대로다. 한번 써먹은 방법이 이번에도 먹힐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2020년 1월 셋째 주에 갤럽이 벌인 여론조사에서 당시 검찰총장 윤석열의 지지율은 1%였다. 당시 이낙연이 24%로 1위였다. 그런데 바로 다음 주에 <세계일보>가 벌인 여론조사에서는 윤석열의 지지율이 갑자기 10.8%로 뛰었다. 이낙연은 32.2%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결국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고 이낙연은 후보도 되지 못했다. 현재 윤 대통령은 30% 초반의 지지율을 얻고 있는데 이낙연은 1%대에 머물고 있다. 2023년 11월 한동훈의 지지율은 13%다. 이재명 대표는 21%이고. 여권에서 한동훈 다음의 지지를 받은 오세훈은 9%다. 2020년 윤석열이 당시 강력한 여권 대선 후보였던 황교안의 10.1%를 능가한 것과 비슷한 추세다. 과연 한동훈이 ‘윤석열의 길’을 갈 수 있을까? 이는 전적으로 앞에서 말한 국민의 시민·정치의식에 달린 문제다. 물론 지난 대선에서 0.73%p 차이를 만들어 낸 데에는 이낙연을 필두로 한 ‘수박’과 국민의힘 2중대를 자처한 정의당의 심상정, 그리고 이준석이 만들어 낸 ‘여성 혐오 프레임’에 속은 ‘이대남’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건전하고 성숙한 시민·정치의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그런 프레임에 속아 넘어갈 리가 없다. 문제는 국민의 의식 수준이다. 늘 말하는 대로 한 나라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치가를 맞이하기 마련이다.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우리나라 국민이 높은 시민·정치의식을 보이기를 기대하고 싶다. 조선 시대 엘리트들이 권력과 돈에 눈이 어두워 나라를 파국으로 몰고 갔어도 결국 그 나라를 구한 것이 백성 아니었던가? 그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몰래 의주로 도망가고, 이승만이 한강 다리를 폭파하게 시키고 일본 망명을 꿈꾸고, 일본 장교였던 박정희가 쿠데타로 군사독재를 시작하고 듣보잡이었던 전두환이 짝퉁 쿠데타로 군사독재를 연장하는 모진 수난을 겪으면서도 이 나라를 포기하지 않은 그 민초가 여전히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다고 믿고 싶다. 내가 찍은 한 표가 나의 온 지성과 의식과 양심을 반영하며,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나의 하나 밖에 지문을 남긴다는 그 의식을 지닌 민초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