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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한의 김여사나 북한의 김주애나 디올을 사랑할까?

‘성형 중독’과 더불어 ‘명품 중독’은 이제 한반도를 덮는 아편이 되었다

by Francis Lee

김여사의 이른바 ‘디올 가방 선물 수수’ 사달로 남한이 들끓고 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북한의 자칭 후계자 김주애가 입은 옷도 디올 상표를 단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게다가 김정은은 전용차로 마이바흐를 즐겨 타고, 시계도 스위스제를 차고 다닌단다. 남한에서도 윤 대통령은 마이바흐를 즐겨 타고 다닌다. 윤 대통령의 장모나 김여사도 한국에서는 벤츠라고 부르는 메르세데스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목격되고... 이런 식으로 남한이나 북한이나 이른바 ‘최고 존엄’을 비롯하여 기득권층은 디올과 마이바흐와 스위스 시계와 같은 서양의 ‘명품’을 사랑한다는 말인데. 남북한의 체제를 초월하는 명품 사랑이라는 놀라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도대체 왜 이리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북한은 이른바 ‘빨갱이’ 동네로 미 제국주의를 ‘원쑤’로 여기는 나라인데 그 동네 ‘최고 존엄’의 디올을 비롯한 서양의 이른바 명품 사랑은 남한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어 보이니 말이다. 남한이야 경제 발전으로 돈이 남아돌아 주체하지 못하는 계층이 생겨나면서 과소비로 과시하는 삶을 살려는 뇌에 과부하가 걸린 계층이 생겨난 것으로 이러한 신드롬에 대한 해석이 일단 가능한데, 북한은 세계적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는 데 왜 그 모양일까? 말로는 인민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보듬어 준다는 데 서양 제국주의 국가가 만든 ‘명품’을 공공연히 사용하는 것은 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남한에서는 김여사가 받은 디올을 비롯한 모든 선물을 창고에 보관하여 나중에 반환한다고 했는데, 북한도 ‘최고 존엄’이 사용하는 명품은 다 선물이고 잠시 쓰다가 나중에 창고에 보관할 것도 없이 바로 반환하는 모양인가? 남한이야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김여사의 ‘선물 창고’가 열리는 것을 지켜보면 그만이지만 북한은 감시할 도리가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남한은 1인당 명품 소비가 세계 1위인 나라이다. 그만큼 ‘성형 중독’만큼 ‘명품 중독’에 심각하게 걸린 나라다. 사실 미국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충실한 나라이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다. 더구나 자본주의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이른바 ‘개 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다가’ 벽에 X칠할 때까지 그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아 보는 것이 꿈인 나라이니 말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런 자본주의를 극도로 혐오하는 나라 아닌가? 그런데 그 나라에서도 미 제국주의를 중심으로 한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 만든 물건, 그것도 최고급 사치품인 ‘명품’을 다름 아닌 ‘최고 존엄’이 애정하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보이니 놀라울 따름이다.


적어도 북한의 김일성 정권 시절이나 나중에 들어선 남한의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남한이나 북한에서 ‘명품 사랑’을 드러내놓고 하지는 않았다. 김일성이 서양 제국주의 국가가 만든 물건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박정희도 술은 양주나 일본주를 즐겼지만, 그의 가족도 명품에 ‘중독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박정희의 아내 육영수의 경우도 한복을 주로 입으면서 맵시를 냈기에 ‘외제 빽가방’에 눈이 가는 일은 별로 없었다. 또한 박정희 정권 때는 서양의 사치품은 물론 양주, 전기밥솥과 같은 것조차 아예 사치품으로 간주하여 이를 밀수해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고 부끄러운 일로 여겨져 드러내놓고 자랑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 때부터 시작된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군사독재 정권 시대의 제도를 부당한 억압으로 규정하여 모두 풀어놓으면서 세상이 확 달라졌다. 과거에 사치품으로 여겨 수입 금지 조치를 시킨 물건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가운데 서양에서조차 최상류 층 외에는 거의 구매하지도 사용하지도 않는 이른바 명품도 따라 들어왔다. 그런데 이 물건들이 한국에서 부자 아니면 사기 힘든 귀중품이 되어버리자, 이것이 갑자기 사회적 신분을 과시하는 물건의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었다. 그래서 돈이 있는 자들만이 아니라 돈을 숭배하는 서민도 짝퉁이라도 사야만 하는 ‘명품’으로 둔갑해 버렸다. 원래 영어로 luxury goods, 곧 사치품인데 장사꾼들이 마케팅 전략으로 ‘명품’으로 번역해 팔면서 더욱 한국인의 허영병을 도지게 하였다. 외국의 엄청난 부자나 연예인, 또는 전통적인 귀족이 들고, 차고, 입고 신고 다니는 ‘명품’을 나도 들고, 차고, 입고, 신고 다니니 나도 그들의 반열에 오른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일종의 마약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한국의 여자들이 ‘명품 중독’에 걸리면서 비슷하게 퍼지기 시작한 ‘성형 중독’과 더불어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가난한 여자들은 계를 들어서 몇 년 동안 알뜰살뜰 모은 적금을 탈탈 털어서는 사치품 판매로 이미 재벌이 된 서양의 부자 사장들에게 제발 팔아달라고 사정사정하면서까지 돈을 바치는 웃지 못할 진풍경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현재 아시아 국가 가운데 이 지경의 ‘명품 중독’에 걸린 나라는 한국과 중국밖에 없다. 동남아시아 국가도 이 대열에 서기 시작했지만, 아직 한국과 중국의 수준에 전혀 이르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 국내에서 흔히 살 수 있는 것은 끼나 고동이나 다 들고 다니게 되자 일부 돈이 남아도는 여자들이 한국에서는 도저히 구매할 수 없는 물건만 골라서 사기 위해 해외로 명품 구매 여행을 가는 일까지 벌이게 되었다. 그 물건을 사 들고 와서는 다른 여자가 가지지 못한 ‘명품’을 소유하는 것을 과시하며 기뻐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마저 ‘남들이’ 따라서 하자 이제는 아예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찐 희귀 명품’을 외국에 나가 사냥하는 일까지 벌인다. 에르메스, 루이 뷔통, 샤넬은 아무나 들고 다니게 되자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해도 외국의 귀족이나 유명 연예인이 사용하는 ‘찐 희귀 명품’을 구매하여 원숭이처럼 따라 해 보며 만족감을 누리는 것이다. 물론 이는 상당히 심각한 정신병자나 하는 짓인데도 이 모양이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 전체적으로는 루이 뷔통 샤넬, 에르메스, 구찌, 카르티에, 디올, 티파니, 프라다, 버버리 정도는 입고, 끼고, 들고, 신고 다녀야 체면이 서는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다. 이런 한국과 중국의 명품 사랑에 힘입어 2023년에도 세계 명품 매출액이 1조 6천억 달러, 곧 2,14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22년에 비해 약 10% 정도 성장한 금액이다. 세계적으로 경제 불황의 여파가 몰아치면서 많은 사람이 경제적 곤궁에 몰리고 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에르메스와 디올 상표가 달린 빽가방을 주무르며 희열을 느끼는 여자들이 한국에 차고도 넘치는 이 현상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남한에 허영기 넘치는 ‘성형 중독’에 걸린 여자가 ‘명품 중독’에 빠진 것은 사회가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이고 소비주의적인 경향에 물든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도대체 사회주의를 천명하는 북한은 왜 그 모양인가 말이다. 물론 이것도 철저히 유교적인 프레임으로 국가를 통치했던 유교의 유산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에도 이미 극소수의 귀족층은 중국에서 수입한 사치품을 사용하면서 대다수의 백성 앞에서 권세를 더욱 과시했다. 많은 백성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어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 사치품을 팔면 많은 백성을 굶주림과 병에서 구해 낼 수 있음에도 그럴 생각도 의지도 없었다. 그저 권력을 잡아서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 패거리가 중국에서 수입한 사치품을 사용하며 쾌감을 느끼고, 99칸 고대광실의 집에서 살면서 집 자랑을 하고, 쌀밥과 고깃국으로 내 배만 부르면 그만인 타락한 지배층이 호의호식하며 사는 동안 백성이 굶어 죽었던 조선 후기 시대의 사회적 불평등의 프레임이 지금에 와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을 것뿐이다. 그것도 남한만이 아니라 북한에서도 말이다. 실질적으로 북한은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거쳐 민주화에 실패하고 실질적인 ‘김 씨 왕조’를 세운 나라다. 그저 이 씨 조선 왕조에서 김 씨 조선 왕조로 이름만 바뀐 것이다. 북한의 공식 명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 것은 그저 명분일 뿐이다. 그러니 조선시대의 이원적인 통치 프레임이 그대로 유지되어서 북한 주민은 이런 지배층의 사치에도 봉기해야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사회의식을 지니게 된 것이다. 아무리 사회주의 국가라고 해도 ‘최고 존엄’은 혈통이 다르니 말이다.


남한의 경우 타락한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의 병폐가 사회적으로 드러난 것이 ‘성형 중독’과 ‘명품 중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와 정반대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에서도 남한에서 볼 수 있는 ‘명품 중독’이 스스럼없이 퍼지고 있는 것을 별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중국이 한국과 더불어 세계적인 명품 소비국으로 서양의 명품 회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어 보인다. 유교적 통치 제도의 본산인 중국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극소수 지배층의 사치 문화가 국가 주도 자본주의라는 독특한 중국식 경제 체제 안에서 사회주의적 평등 분배주의에서 자본주의적인 차별적 소비주의로 전환되어 ‘명품 중독’을 낳게 된 것이다. 그런 중국을 보고 북한의 지배층도 더욱 ‘안심하고’ 명품 소비를 하고 있는 것이고.


그런데 남한이든 북한이든 이런 ‘명품 중독’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결국 서양의 이미 돈이 차고도 넘치는 기업가들이다. 그것도 남한의 경우는 국제 시세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임에도 돈을 싸서 들고 가서 줄을 서서 기다려서라도 ‘명품’을 구매하는 중독자가 넘치니 너무 쉬운 장사 터 아닌가? 북한은 모든 ‘명품’을 밀수해야 할 것이니 그 가격은 더욱 비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도대체 남한이나 북한이나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물론 많은 사람은 ‘내돈내산’, ‘욜로’, ‘네가 보태준 거 있냐?’는 논리들을 내세우며 오늘도 디올을 사고 구찌를 산다. 그러나 정말 그러고 싶을까? 그깟 ‘명품’들 창고에 쌓아 두어 봐야 헐고 냄새만 날 것인데, 그리고 아무리 ‘명품’으로 몸을 휘감아도 늙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인데, 왜들 그러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명품 중독’은 사회주의 체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북한이 증명했으니, 재활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참으로 오늘 날씨처럼 쓸쓸한 세상이다. 어쩌다 한반도와 그 주민이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풍수에 문제가 있나? 아니면 그놈의 ‘돈 귀신’이 한반도 전체를 빙의한 것인가? ‘성형 중독’과 더불어 ‘명품 중독’은 이제 한반도를 덮는 아편이 되었다. 아편전쟁은 아직도 진행중인 모양이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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