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판에 ‘어나더 레벨’이 나올 모양이다.
이재명 대표가 정치 테러를 무사히 극복하고 정상 업무에 복귀했다. 그런데 그의 ‘환한’ 미소가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그의 복귀의 변도 남다르다. 그가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한 말에 관한 기사를 인용해 본다.(링크: https://v.daum.net/v/20240117220012113)
“이 대표는 "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보고 그러고 안되니 칼로 죽여보려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며 "국민께서 저를 살려준 것처럼, 이 나라와 미래를 제대로 이끌어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쉬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래도 역시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살자고 하는 일이고 살리자고 하는 일인데 정치가 오히려 죽음의 장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대를 제거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내가 모든 것을 다 갖겠다는 생각 때문에 정치가 전쟁이 되고 있는 것"이라며 "국민의 삶도 전쟁터 비슷하게 변해가고 있다. 각자의 삶을 스스로 알아서 챙겨야 하는 각자도생의 세상이라 힘겹게 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이번 선거는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이자 권력에 대한 심판 선거"라며 "국민께서 이 정권이 과연 국민과 국가를 위해 주어진 권력을 제대로 행사했는지 판단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한 자에 대한 증오는커녕 언급도 없다. 분노도 찾아볼 수가 없다. 분명히 죽을 수도 있었는데 세상에 대한 저주도 없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런 이재명 대표를 보면서 문득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가 떠 올랐다.
<시지프의 신화>의 끝 문장은 다음과 같다.
La lutte elle-même vers les sommets suffit à remplir un cœur d'homme; il faut imaginer Sisyphe heureux.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정상을 향한 투쟁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리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은 시시포스(Σίσυφος)를 죽이려고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했으나 실패했다. 그래서 화가 난 신들이 그에게 큰 바위를 밀어 올리도록 하는 형벌을 내렸다. 그런데 그 바위를 산 정상에 거의 다 올리면 신의 계략으로 그 바위는 다시 산 아래로 굴러 내리고 시시포스는 그것을 다시 밀어 올려야 했다. 이른바 천형이다.
그런데 알베르 카뮈는 이 신화에서 오히려 시시포스를 승자로 해석했다. 어마어마한 신들이 시시포스에게 고통을 주고자 계략을 동원하여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도록 하고 그것도 모자라 다시 굴러 내려 같은 일을 되풀이하게 했지만, 시시포스는 그런 신들의 간계에 대해 호탕하게 웃어대며 기꺼이 그 바위를 다시 굴러 올리기 위해 산을 걸어 내려간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부조리한 신의 계략을 이기는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이른바 '부조리한 승자'의 모습이다. 오늘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대중 앞에 다시 나타난 이재명 대표에게서 그런 시시포스의 ‘포스’가 느껴졌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이재명 대표만큼 욕먹고 무시당하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말한 대로 법과 펜도 모자라 심지어 칼이 그를 죽이자고 덤볐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는 그에 굴복하지 않고 웃으며 다시 산 아래로 내려왔다. 또 다른 바위를 굴릴 마음 자세를 가지고 말이다. 이재명 대표를 반대하는 자들은 온갖 상스러운 한국말을 동원하여 그를 비난한다. 검찰은 그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을 부린다. 언론은 이재명 대표 매도에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이른바 수구 세력은 소셜 미디어에 이대명 대표에 대한 인격 모독적인 발언을 거의 신흥 종교 집단의 광신도처럼 매일 반복해 배설한다. 그 모든 것이 이재명 대표에게는 바로 시시포스의 바위와 같은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런저런 것이 다 진절머리 나고 지겨워서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포기할 것이다. 그리고 정치계를 떠날 것이다. <시지프의 신화>의 첫머리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Il n'y a qu'un problème philosophique vraiment sérieux: c'est le suicide.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참으로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다. 그것은 자살이다.”
그렇다 많은 이재명 대표 반대자들은 그가 죽기를 바란다. 그것도 자포자기해서 스스로 죽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 자기들이 다리를 쭉 펴고 하고 싶은 대로 욕망을 불태우며 살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러나 오늘 이재명 대표에게서 그런 기미가 하나도 안 보인다. 이재명 대표는 문자 그대로 죽다 살아난 사람 같아 보인다. 세례로 다시 태어난 사람만 같다.
기독교에는 세례라는 것이 있다. 기독교인이 되려는 자는 반드시 거쳐야 되는 과정이다. 교파마다 약간 다르지만 결국 모두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기에 원형은 동일하다. 세례는 물로 받는다. 성경에 예수가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은 것을 따라 하는 것이다. 대부분 교파는 머리에 물을 끼얹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데 일부 교파는 정말로 강에서 아니면 커다란 수조에 사람을 완전히 물속에 집어넣었다가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전에 교파 대부분은 세례 받는 자의 이마나 머리에 기름을 바른다. 유대교에서 사람이 죽으면 기름을 바르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곧 세례는 사람을 죽이는 예식이다. 어차피 시체가 될 사람이기에 이마나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물속에 잠겨 죽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죽은 사람이 다시 물속에서 일어나 살아 나온다. 과거의 죄인으로서 살던 삶에서 죽고 기독교인으로 죄 없는 새사람이 되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세례의 참된 의미다. 이 세례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인 부활을 미리 맛보는 예식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표는 이제 이런 식으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이재명 대표에 대해 한동훈이 ‘조선 제일의 혀’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은 말을 했단다. 관련 기사를 인용해 본다.(링크: https://v.daum.net/v/20240117220012113)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중진 오찬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 정도면 망상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한 비대위원장은 "제가 이상한 얘기를 안 하려고 했는데, 칼로 죽여본다? 누가 죽여본다는 건가. 제가? 국민의힘이? 아니면 국민들이?"라고 반발했다.”
그저 한동훈답다는 말만 나오게 된다. 아무리 정적이라고 해도 이재명 대표는 연배이고 칼에 맞아 죽을뻔한 사람이다. 그런데 ‘망상’이란다. 평생 죽다 살아나는 것은 고사하고 ‘삶의 고뇌’를 전혀 안 겪어본 사람의 언행을 정신없이 시전 하는 한동훈이 이제는 오히려 측은해 보인다. 전에는 이재명 대표가 측은해 보였는데 말이다. 언제나 철이 들지 모르겠다.
한동훈은 학교에 다니면서 1등은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단다. 서울대 법대 3학년 때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에 단번에 합격하고 검사가 되고 서울대 법대 선배이며 검찰 선배인 장인을 두고 서울대 법대 동창이며 변호사인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딸은 미국 명문대에 유학 보내고 장관이 되고 마침내 비대위원장이 되어 국민의힘의 모든 의원을 난도질할 수 있는 칼자루까지 쥐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엘리트다.
그에 비해 이재명 대표는 경상도에서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하고 너무 가난해서 서울도 못 오고 그 당시 빈민촌인 성남에 올라와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중앙대 법대에 들어가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그 뒤 성남 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쳐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가 낙선한 다음에 기사회생해서 민주당 당대표가 되었다.
이런 두 사람이 지금 맞수가 되었다. 이재명 대표는 위에서 말한 대로 평생 시시포스처럼 바위를 되풀이하여 굴려 올렸고 오늘도 그렇게 하고 있다. 한동훈은 그에 비해 단 한 번도 바위를 굴려본 적이 없어 보인다. 그 힘든 바위를 왜 한동훈이 직접 굴려야 하겠는가? 남을 시키지. 엘리트답게 칼자루를 쥐고 휘두르면 다들 고분고분 말을 더 잘 듣는데 말이다. 그리고 언론도 날마다 앞다투어 ‘한비어천가’를 불러댄다. 학력과 경력은 더 말할 나위 없으니, 그의 헤어스타일, 그의 양복, 그의 구두 굽, 그가 들고 다니는 책, 그가 입은 티셔츠, 그가 먹는 도넛까지 찬미와 숭배의 대상이 된다. 이야말로 ‘컬트’다. 그가 끌고 다니는 팬덤은 아이돌을 방불케 한다.
그에 비해 과거나 지금이나 언론은 이재명 대표에 대해 비아냥거리고 맘대로 조롱하고 맘대로 욕하고 맘대로 꾸짖는다. 소셜 미디어에서도 늘 ‘전과...’, ‘찢...’을 주문처럼 읊어댄다. 민주당 안에서도 그를 떨어뜨리려고 매일 흔들어 댄다. ‘이비어천가’는 고사하고 그를 칭찬하는 말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다. 이재명 대표가 이루 말할 수 없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고초를 겪은 끝에 대학교도 졸업하고 사법고시도 합격하고, 변호사도 되고, 시장, 도지사, 대선 후보, 당대표까지 되었는데도 그를 인정하기보다는 굴러 떨어뜨릴 생각하는 사람들로 넘친다. 이재명 대표는 아마 평생 그런 사람만 만나며 살아온 모양이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목에 칼이 들어오다 못해 스쳐 피가 나는 경험을 하고도 그렇게 잔잔하게 웃을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런 이재명 대표를 보고 무섭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무섭다기보다는 이른바 ‘어나더 레벨’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이재명 대표는 죽다 살아난 인물이라는 말이다. 그는 스스로 말한 대로 이제 절대로 죽지 않을 것만 같다. 그를 죽이려고 덤비는 자들이 이토록 많은데 그는 ‘자살’ 하지 않는다. 알베르 카뮈가 말한 그 '부조리'가 느껴진다. 추접하게 부조리한 세상에 고양된 부조리한 삶의 태도로 맞서는 그 부조리말이다. 아무래도 그는 이제 우리의 ‘부조리한 영웅’이 될 모양이다. 그렇게 바위를 굴려 결국 대한민국의 추접한 부조리를 몰아내는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 국민이 ‘이게 나라냐!’라는 말을 더 이상 안 할 수 있는 세상이 오도록 하는 그런 인물 말이다. 그래서 결국 이재명 대표도 시시포스와 같은 행복을 누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