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격의 차이는 국민이 만든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이른바 <서천시장 약속 대련> 자리에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활짝 웃는 모습이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상가가 거의 전소되어 수백 명의 상인이 졸지에 생계의 위협을 받게 된 상황이었는데 혼자서 웃고 있는 모습이 찍혔으니, 구설에 오를 만하다. 더구나 그 전날 감기가 지독해 중요한 회의에도 불참한 윤 대통령이 화재 현장에 특별열차를 타고, 달려와서는 국민의 아픔을 돌보기보다는 한동훈 비대위원장과의 화해 장면 연출에 더 공을 들였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차에 이런 장면이 보도되었으니, 민심이 동요될 만도 하다.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니 누리꾼들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달에 관한 기사를 내보낸 <국민일보>를 인용해 본다. (링크: https://v.daum.net/v/20240124141315231?f=p)
“24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전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 장관 등 정부 당국자가 상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서천특화시장을 방문할 당시 찍은 사진 한 장이 퍼졌다. 사진 속에서 이 장관은 대통령을 보고 웃으며 손뼉을 치고 있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국민의 안전을 관리한다는 (행안부 장관이) 직업적 사명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 “바로 옆에 전 재산과 생계 수단을 다 날린 사람들이 있는데 손뼉을 치냐?”고 비판했다.
하지만 “저 사진은 대통령의 전격 방문과 사후 조치에 감사하는 상인들과 정부 인사가 함께 박수치는 장면이었다”며 지나친 비판을 경계하는 반응도 나왔다.”
그렇다. 사진은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니 그 전후 사정을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름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상민 장관은 이미 이태원 압사 사태, 오송 지하차도 수몰 참사 등으로 이미 탄핵을 받은 경력이 있던 차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아직 그 자리에 버티고 있다. 그를 바라보는 정치권만이 아니라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사실은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늘 몸가짐을 진중히 해야 마땅한데 이러고 있다. 물론 그래도 버틸 것이다. 윤 대통령에게 계속 기쁨을 주고 사랑받는다면 말이다. 결국 이런 비슷한 일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스리슬쩍 넘어가는 것이 대한민국 아닌가?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호령하는 ‘나으리’가 좀 웃었기로서니 뭐 그리 대수냐면서 말이다. 결국 지난번 이태원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이상민 장관의 ‘웃은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흐지부지 넘어가지 않은 나라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에서 매우 비슷한 일이 일어났었다. 2021년 7월 독일 아르강이 홍수로 범람하여 그 주변 지역이 큰 피해를 보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 대통령 Walter Steinmeier가 그 재난 현장을 찾았다. 그 자리에는 당시 9월로 예정된 총선에서 여당을 이끄는 기민당 소속 수상 후보였던 Armin Laschet도 대통령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대통령이 재난을 당한 주민을 위로하는 연설을 하는 동안 뒤에서 측근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Armin Laschet는 파안대소하였고 기자가 이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당연히 이 사진은 그해의 독일 최고의 보도 사진이 되었다. 그리고 Angela Merkel의 뒤를 이어 기민당 당수의 자리에 오를 것으로 모두가 기대했던 Armin Laschet는 국민의 엄청난 질타를 받고 결국 총선에서 패배하여 권좌에서 밀려났다. Angela Merkel의 황태자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현재 기민당 당대표는 사실 별 볼 일 없던 Friedrich Merz가 맡고 있다.
단 한 번의 웃음으로 최고 권력의 자리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운명의 장난이지만 또한 그것이 독일 국민 정치의식의 수준이었다. 국민의 아픔을 두고 웃을 수 있는 정치가는 나라를 이끌 자격이 없기에 용서하지 않는 것이 독일 국민이다. 그리고 그러한 국민의 심판은 바로 총선 결과로 나타났다. 이해 9월 26일 치러진 제20대 연방의회 총선에서 기민당·기사당 연합(CDU/CSU Union)은 야당인 사민당(SPD)에 16년 만에 패했다. 사민당과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득표율 차이는 겨우 1.6%p였다. 정말로 아슬아슬한 차이였다. 바로 사민당과 녹색당의 득표율이 각각 5.2%p와 5.9%p 늘어났지만,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8.8%p 줄었다. 진보적인 사민당과 녹색당은 보수 색채가 강한 자민당을 끌어들여 이른바 신호등 연정을 수립하여 Angela Merkel 총리가 16년 동안 집권한 보수 세력을 물리치고 마침내 진보 세력이 권력을 잡게 되었다. 이 선거에서 사민당의 총리 후보인 Olaf Schloz에 맞선 보수당인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총리 후보가 바로 Armin Laschet였다.
가뜩이나 보수 정치에 염증이 나서 정권 교체를 바라지만 딱히 현 정권을 반대할 만한 결정적 이유를 모르던 독일 국민의 마음에 Armin Laschet의 파안대소가 불을 지른 것은 분명했고 그 대가는 정권 교체라는 혹독한 것이었다. 그 웃음 사달이 총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발생했기에 인과 관계는 분명히 있었다. 총선 기간 내내 모든 독일 국민의 기억에 그의 웃음이 여전히 생생하게 각인되어 잊히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180명의 국민이 목숨을 잃은 자리에서 이유가 어찌 되었든 웃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몰상식하고 불공정한 일이었다.
도대체 Armin Laschet는 많은 국민이 재난을 당해 고통스러워하는 현장에서 왜 그리 파안대소를 한 것일까? 이 사건의 전모를 자세히 알아보자.
2021년 7월 독일 중동부 지방에는 큰 홍수로 180명이라는 많은 인명 피해를 낳은 재난이 발생했다. 이에 독일 연방 대통령 Walter Steimeier가 재난 지역인 Brühl을 방문하여 어려움에 부닥친 주민을 위로하기로 하였고 이 자리에 당시 여당인 기민당의 당수인 Armin Laschet도 함께 참석하였다. 그런데 대통령이 위로의 말을 하고 있는데 뒤에 있던 Armin Laschet이 갑자기 파안대소하였다. 이를 놓치지 않고 기자가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하필 그가 웃은 시점이 대통령이 ‘커다란 손실을 본 이들’(diejenigen, die große Verluste erlitten haben)에 관해 말하던 때였다. 그가 왜 웃었는지는 정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사진을 찍혔고 바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갔다. 특히 당시 WDR 텔레비전 방송이 유튜브에도 생중계하고 있었고 그 대화창에 누리꾼들이 벌 떼같이 달려들어 Armin Laschet를 비난하는 꼬리글을 남겼다. 그리고 이 문제가 되는 30초 정도의 영상을 누리꾼이 편집하여 온라인에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독일 전체가 난리가 났다. 야당인 사민당은 물론 언론과 일반 시민이 일제히 Armin Laschet에 대한 비판의 융단 폭격을 시작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한 Armin Laschet와 측근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즉각 사과 성명을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하도 급해서 일단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Uns liegt das Schicksal der Betroffenen am Herzen, von dem wir in vielen Gesprächen gehört haben ... Umso mehr bedauere ich den Eindruck, der durch eine Gesprächssituation entstanden ist. Dies war unpassend, und es tut mir leid.” 재난을 당한 분들이 처한 어려움에 대해 가슴이 아픕니다. 이분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일이며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9월에 있는 총선에서 이 사진은 계속 Armin Laschet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가 아무리 사과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도대체 왜 웃었느냐는 질문이 수없이 쏟아졌지만 정작 Armin Laschet는 그에 대해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 추측건대 누군가 농담을 했고 그에 Armin Lashcet가 반응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사건의 진상은 영원히 비밀로 남게 되었다.
사실 Armin Laschet에는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평판이 좋은 정치가였다. 그리고 16년 동안 권좌에 머물다가 독일 정치사에서 거의 전례가 없는 스스로 물러난 총리인 Angela Merkel의 후계자로 독일 보수 진영을 이끌 강력한 차기 주자였다. 그런 그가 이런 사달로 권력을 눈앞에 두고 겨우 1.6%p 차이로 미끄러져 회생 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사실 독일에는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과거 통일 직후 차기 통일 독일의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던 보수 기민당의 Lotha Späth도 친구가 공짜 여행을 시켜준 이른바 ‘꿈의 배 스캔들’(Traumschiff-Affäre)로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지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와 친분이 있는 회사의 사장이 공짜로 유람선 여행 비용을 지불한 것을 들킨 것이다. 일종의 뇌물을 받은 것이다. 이 사건으로 보수의 아이콘이었던 Lotha Späth는 다시는 정치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독일의 중도 진보정당인 사민당도 종종 스캔들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대가는 혹독하다. 그러나 독일도 이상하게 보수정당과 관련된 부패 비리가 많다. 그 이유는 당연히 전후 수립된 독일연방공화국에서 보수당이 정권을 더 오래 장악했기 때문이다. 권력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부패가 있다는 속담이 독일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이 다른 점이 권력이 부패하면 국민이 나서서 심판한다는 것이다.
이상민 장관은 이번에 재난 현장에서 웃은 일 이전에 이미 많은 스캔들을 일으켰지만, 번번이 윤 대통령의 은총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독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물론 국민의 의식 수준 차이다. 부패하고 무책임하고 국민의 아픔을 모른 척하는 정치가가 발을 못 붙이는 나라가 바로 선진국 아니겠는가? 그런 선진국은 정치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국민 자신이 만드는 법이다. 깨어 있는 국민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총선이 석달 남았다. 과연 이상민의 웃음이 총선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