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의학의 가치 회복을 위한 길을 가본다
손가락을 크게 다쳐서 아무리 상처 부위를 눌러도 지혈이 안 되었다. 명절이라 병원문도 안 열어 응급실로 향했다. 그런데 창고 접수 수속을 끝내고 응급실 대기실에 들어서는 순간 정신이 아뜩해졌다. 문자 그대로 그 좁은 대기실이 인산인해였다. 그 모든 사람이 나처럼 응급 상황이 발생해 몰려온 것이었다. 대기 시간을 물어보니 최소한 족히 2~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피는 계속 흘러서 멈출 줄을 몰랐다. 그래서 밖으로 나와서 약국으로 달려갔다. 급한 마음에 군대 시절에 야전에서 상처나 날 때 응급조치로 큰 상처에도 뿌리던 가루로 된 지혈제 생각이 난 것이다. 가격은 5천 원에 불과했다. 상처 부위 전체에 가루를 잔뜩 뿌렸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피가 멈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피가 응고된 부분에서 여전히 조금씩 피가 솟아 나왔다. 그래서 가루를 또 뿌렸다. 그렇게 서너 번 반복적으로 동일한 조치를 하니 피가 멈추고 삼출액이 조금씩 배어 나왔다. 일단 밴드에이드로 상처 부위를 감으니 견딜만했다. 일단 지혈은 되었으나 염증이 걱정되었다. 휴일이 지속되어 응급실 말고는 대안이 없어 집에서 염증을 막을 방법을 궁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발을 크게 데어서 2년 가까이 치료를 받았던 생각이 났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물어보니 두말하지 않고 마누카 꿀을 가져와 상처 부위에 발라 주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다시 상처 부위를 밴드에이드로 감싸주었다. 그렇게 응급조치하고 하룻밤이 지나고 다음 날 상처 부위를 열어보니 피부가 사각형으로 노출되어 있었지만 더 이상 피도 안 나고 붓기도 전혀 없었다. 다시 마누카 꿀을 바르고 밴드에이드로 감싼 다음 라텍스 장갑을 끼고 하루 종일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했다. 그다음 날도 동일한 처치를 하고 상처 부위를 확인하니 발적 현상이 없고 통증도 전혀 없었다. 이제는 새살이 차오르기를 기다리면 되었다. 아내가 전업주부로 생활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직업은 간호사였던 것이 이럴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아내는 서양의학을 공부하고 간호사가 되었지만, 오래전부터 사지 접합 수술이나 장기 치료와 관련된 외과, 치아 관리와 재생과 관련된 치과의 처치 그리고 진통제와 항생제 처방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신뢰를 하지만 그 나머지 분야에서는 그다지 큰 의미를 찾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후 아내는 이른바 대체의학 또는 동종요법에 대해 큰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번에 마누카 꿀 사용도 그런 동종요법에 관한 공부에서 얻어낸 지혜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가 이제 흔히 동종요법이나 대체의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적인 치유 방법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엄밀히 말해서 현대의학이 등장하기 전에 모든 문화에 존재했던 의학이었다. 그런데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의학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서양의 현대의학은 마치 식민지를 점령하듯이 세계의 모든 전통 의학을 무너뜨려 왔다. 그 결과 현대의학은 과학적이고 최첨단이며 전통 의학은 미신적이고 후진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래서 전통 의학을 대체의학이라고 명명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현대의학이 인류의 수명을 늘려주고 많은 과거에 불치병으로 여겨진 것을 치유해 주는 기능을 한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예수가 귀신에 들린 이를 치유한 기적으로 묘사된 뇌전증을 오늘날 의사들은 뇌의 기능 장애로 판단하고 과학적인 치유를 하여 또 다른 차원의 기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대의학의 한계는 너무나 명백하다. 무엇보다 현대의학은 인간을 기계로 여기면서 고장이 난 부품을 수리하는 식으로 인간의 몸을 고친다. 이는 무엇보다도 기술이 발달하고 의학 분야가 세분되면서 인간을 온전한 단일체로, 곧 전체성의 시각으로 파악하고 접근하는 관점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과 의사는 내과 분야에 감히 접근할 생각을 못 한다. 정신과 의사는 외과 수술은 생각도 못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팔다리와 몸통을 조립해서 그 위에 머리를 얹은 로봇이 아니라 전체성을 지닌 단일한 통일적 존재인데 그러한 인간의 온전성(wholeness)에 대한 이해가 상실된 것이다. 예를 들어 그나마 한의학에서는 여전히 인간을 그러한 전인적 존재로 파악하는 치유 방법으로 인간의 병리 현상에 접근하는 데 비하여 서양의학은 인간의 몸을 기계적으로 이해하면서 망가진 기능의 회복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서양의학은 인간 몸의 부분적 기능 회복에는 탁월한 효과를 보이지만 치유 대상이 감정과 주관,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적 역사를 지닌 단일한 전인적 인격체라는 인식이 전제되지 못한 접근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은 마치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하나의 커다란 수리 공장처럼 돌아간다. 환자를, 영혼을 지닌 인격체가 아니라 고장이 난 기계나 부품처럼 대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현대의학의 비극이 시작된다. 생물학적 육체는 치유가 되었지만, 그 사람의 마음, 그리고 궁극적으로 영혼은 여전히 고장이 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엄청나게 부풀어진 의료비용은 개인의 경제적 부담만이 아니라 사회적 비용의 인플레이션을 일으켜서 특히 의료보험 체계의 위기까지 초래한다. 그래서 결국 돈이 있는 사람은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노후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그러한 대상이 되지 못하여 삶의 질이 현저하게 낮은 생활을 하면서 수명도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현대의학은 사회적 불평등의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대의학의 인간학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는 복합적이어서 쉬운 해결책이 나올 수는 없다. 일부 사람들, 특히 관료화되고 기계화되어 인간을 단순히 수익 구조 안의 숙주로만 여기는 현대의학에 실망한 이들은 대체의학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과학적 검증이 되지 않은 대체의학에 맹종하다 보면 거의 미신이 되기 쉽다. 그래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현대의학과 대체의학의 합리적 종합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의학적 지식이 부족하고 과학적 검증 도구가 부족한 일반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많은 이른바 전문가들이 나서서 대체의학의 전문가를 자처하지만, 그들 가운데 적지 않은 경우 신흥종교 집단과도 연결되는 극단적 형태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식별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이러한 대체의학은 뉴에이지와도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뉴에이지가 모두 사이비 종교는 아니지만 그런 경향으로 기우는 경향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대체의학도 미신이나 광신의 분위기와 결부되어 그 신뢰성이 떨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건강은 거의 모든 인간의 깊은 관심사이기에 대체의학의 인기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현대의학이 대체의학의 방법을 메인스트림에 끌어들여서 이용하는 경우까지 있다. 예를 들어 특정한 물질이 만병통치약 수준의 효과를 주는 것으로 선전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심지어 현대의학 분야에 속해 있는 의사나 약사가 특정 물질이 특정 질병의 특효약이 되는 듯 선전해 주고 뒷돈을 받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사달의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나약함 때문이다. 부처가 갈파한 대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늙어가면서 온갖 질병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숙명을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유사 이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를 너무나 잘 알기에 노화와 질병을 두려워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바로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돈을 벌려는 사기꾼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과연 내게 좋은 대체의학적 재료를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그런 궁금증에서 시작한 지적 여정을 여기에서 전개해 보고자 한다. 이제 시작할 이야기는 전적으로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 가운데 자기 몸을 실험 도구로 사용한 이들이 존재한다. 엑스레이를 발견한 뢴트겐은 X선으로 가장 먼저 자기 손을 찍어 보았다. 마리 퀴리도 방사성 물질에 자기 몸을 노출해 가며 실험했다. 베리 마셜은 헬리코박터균이 위궤양을 일으키는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 이 박테리아를 배양한 액체를 마셔보았다. 베르너 포르스만은 카테다를 팔에 삽입하여 X레이에 몸을 노출하여 카테다가 심장까지 이른 것을 확인하였다. 미모시 리리는 LSD와 같은 환각 물질의 효과를 알기 위해 자신이 직접 이 물질을 사용해 보았다. 요나스 설크는 소아마비 백신을 발명하고 나서 자기 몸에 주사했다. 스터빈스 퍼쓰는 황열병의 전염 경로를 알기 위해 황열병에 걸린 환자의 분비물을 자기 몸에 바르는 실험을 했다. 제임스 린드는 자기 몸을 비타민C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실험 도구로 사용했다. 알렉산더 슐진은 향정신성 물질을 만들어 자신을 실험 도구로 사용했다. 이러한 위대한 과학자들의 ‘미친’ 노력으로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의학의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이다.
물론 나는 이 정도 경지에 이른 과학자는 아니기에 몸에 이로운 물질로 알려진 것을 직접 사용하여 그 효과를 확인하는 실험을 해보았다. 이러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이 분야에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아내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결과를 글로 남기고자 한다. 나의 개인적인 직간접적인 체험이 특히 대체의학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 글은 treatment가 아닌 healing을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정신에서 시작한 탐구의 여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