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가 말한 대로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늙어간다. 그리고 이런저런 몸과 마음의 병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피안의 세계로 가게 된다. 2022년 기준으로 여자의 기대 수명은 85.6세 남자의 기대 수명은 79.9세다. 100살을 채우기에는 한참 모자란다. 그리고 여자가 비록 남자보다 5~6세 더 살지만, 삶의 질로 따지면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 여생을 보낼 뿐이다. 의학적 자료로 볼 때 2019년 기준으로 여자의 건강 수명은 74.7세이고 남자의 건강 수명은 71.3세다. 말하자면 이 나이를 지나면 살아있어도 건강이 나빠서 삶의 질이 매우 나빠진다.
평균적인 한국인의 일생을 보면 거의 30살이 되어야 겨우 본격적인 사회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30년 정도 지나 60살이 되면 사회에서 은퇴하고 여생을 보내게 된다. 80살 정도 살아도 30년 정도만 여러 의미에서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다. 30년 준비하고 30년 활동하고 20년은 갈 준비에 쓰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경우 노인 빈곤 문제가 심각해서 70이 가까워도 돈벌이해야만 하는 상황이 전개되기는 한다. 그리고 선진국 가운데 많은 나라에서 노령연금 수령 나이를 궁극적으로 70세로 늦추면서 정년도 그 나이에 맞추는 법 개정을 하고 있다. 결국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 열심히 일하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노쇠해서 더 이상 노동이 불가능해지면 10년 남짓 죽을 준비를 하라는 말이다.
인생을 다 살아보지 않아도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인생 별거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죽음이 가까운 노인들도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는 경우는 드물다. 젊은이들은 죽음이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령을 불문하고 공통적인 것은 늙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지만 죽는 날까지 젊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아 온갖 약물을 복용하고 시술을 해보지만, 근본적으로 젊어지는 경우는 하나도 없다. 노화를 늦출 수는 있을지 몰라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만 그런 것은 아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결국 언젠가 죽는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물론 우주 자체도 언젠가는 죽는다. 물질세계의 모든 것은 죽는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변한다. 지구라는 곳에서 인간의 형태를 지니고 살다가, 육체는 박테리아의 도움으로 다시 분해 과정을 거쳐 몸을 이루는 구성 성분, 곧 산소, 탄소, 질소, 그리고 철을 비롯한 각종 무기물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분해된 물질들이 다시 어느 사람의 몸을 이룰 수도 있고, 고양이나 강아지의 몸의 구성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 안에 담겨 있던 영이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싶은 욕망에서 인간은 철학을 하고 종교를 만들었다. 그러나 철학과 종교도 완전히 보편타당한 객관적 답을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결국 영의 문제는 믿음의 영역으로 가버리게 된 것이다. 과학적 검증가능성의 영역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철학과 종교의 ‘진리’가 인간의 정신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데 최선의 방편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인간은 적어도 육체만의 영생이라도 모색해보고 싶은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게 되었다. 피상적 관찰로 볼 때 육체가 생존하는 동안에는 정신과 영혼도 죽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 로마의 속담이 아직도 유효한 것이다. mens sana in corpore sana, 곧 몸이 튼튼해야 마음도 건강해지는 법이다. 이러한 신념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가 찾은 것이 바로 불로장생의 비법이다. 동양에서는 진시황이 찾은 ‘불로초’가 있다. 서양에서는 이른바 ‘젊음의 샘’이 있다. 여기에 더해 서양에서는 elixir, 곧 만병통치약이 있었고 동양에서는 중국 도교가 연단술로 만들고자 한 선단이 있었다.
그런데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된 이 전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에서 말한 대로 인간의 육체는 80살을 넘기면 대부분 그 수명을 다하고 영혼은 피안의 세계로 가버린다. 물론 어떤 사람은 영혼 불멸은 전혀 믿지 않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지금도 불로장생을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은 결코 환상이 아니다. 과학의 발달로 ‘텔로미어’가 세포 수준에서는 불로장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태아의 세포는 100회 정도 분열한 다음에 노화되고 노인의 세포는 20~30회 분열한 다음 노화된다. 곧 죽는 것이다. 이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염색체 끝에 달린 텔로미어다. 나이가 들면 이 텔로미어가 점점 더 짧아지고 결국 세포분열이 중단되어 더 이상 몸이 새로운, 곧 젊은 세포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텔로미어를 마냥 길게 만든다고 무조건 '장땡'은 아니다. 텔로미어의 DNA를 복구하는 효소가 텔로머레이스인데 이 효소가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세포가 무한 증식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암을 일으키게 된다. 물론 작은창자의 표피세포처럼 지속적으로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소장은 인간의 장기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암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기관이다. 이에 힌트를 얻은 과학자들은 암을 발생시키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세포를 불멸로 만들 방법을 발견하는 중이다.
그러나 불로장생이 텔로미어 하나로 해결되리라고 여기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인간의 육체는 여전히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 있고, 인간의 지식으로 다 이해하지 못한 메커니즘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AI의 도움으로 인간의 육체에 대한 분석과 연구가 급속히 진행될 것이 충분히 예상되기에 생각보다 빨리 인간의 생명 연장, 그것도 육체의 건강한 상태를 지속할 방법이나 물질을 발견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과연 누가 왜 불로장생을 누려야 하는지에 관련된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는 생물학과 같은 자연과학만이 아니라 철학과 신학을 포함한 인문학적 담론의 대상이 되는 질문이다. 불로장생의 묘약을 만드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독재자나 수전노가 권력과 돈을 이용해서 불로장생의 꿈을 이룬다면 과연 그것이 누구에게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인가? 불로장생의 묘약의 값이 너무 비싸서 극소수의 재벌과 상류층만 살 수 있다면 나머지 사람들의 박탈감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불로장생의 묘약을 먹고 실제로 육체의 노화를 멈춘다고 해도 자연재해, 전쟁, 기후 변화, 교통사고나 다른 변고로 죽임을 당한다면 그 불로장생의 약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리고 모든 생명체가 지상에서 일정 기간 머물다가 후세를 위해 자리를 내주지 않고 버틴다면 결국 지구가 포화상태가 되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못한 상황에 이르러 인류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 도래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인류의 숫자가 80억 명에 이른 현재도 환경 파괴로 미래가 매우 불투명해졌는데, 하물며 여기에서 인구가 무한히 늘어나서 800억 명이 되는 날이 온다면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지지 않아도 식량과 자원 부족으로 공멸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되면 그저 하늘이 준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잘 살다가 죽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날까지 건강을 최대한 유지하며 살기만 바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불로장생의 묘약이 과연 발견될지도 불확실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 약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천수를 누릴 때까지 건강을 유지할 결심을 하고 대체의학을 연구하게 된 것이다. 적당한 때가 오면 피안의 세계로 기꺼이 옮겨갈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육체의 건강을 최대한 보전하는 길을 찾아보아야 한다.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 깃드는 법이니 말이다. 그리고 대체의학이 기성 의학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음이 이미 증명되었고 그 증명은 진행 중이니 어느 정도 안심하고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