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라쉬는 원래 헝가리 음식이다. 헝가리에서는 이를 푀르쾰트(Pörkölt)라고 부른다. 그러나 독일에서도 매우 즐겨 먹는 것으로 한국 음식에 익숙한 사람들도 대부분 좋아한다. 매콤하고 걸쭉한 양념이 어쩐지 많이 먹어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야전식 굴라쉬 수프
헝가리어로 굴리아스(gulyás)는 소치는 목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굴리아(gulya)는 소떼를 의미하였다. 이 단어가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를 통하여 독일에 전해지면서 굴라쉬(Gulasch)로 변형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에 주둔한 헝가리 군대가 퍼뜨린 푀르쾰트(Pörkölt)의 변형으로 비인 굴라쉬(Wiener Gulasch)가 탄생했다. 처음에는 헝가리 토속음식으로 군인들이 즐겨 먹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오스트리아의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즐겨 찾을 수 있는 요리가 되었다.
사슴고기로 만든 굴라쉬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는 무슨 관련이 있기에 헝가리 군인들이 비인까지 왔는가? 유럽 근대사가 굴라쉬에도 영향을 미쳤다. 흔히 헝가리가 과거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것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공산화되기 이전인 1867년부터 1918년까지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와 함께 ‘제국 회의 대표 왕국과 영토와 신성 헝가리 슈테판 왕관령’(Die im Reichsrat vertretenen Königreiche und Länder und die Länder der heiligen ungarischen Stephanskrone)이라는 어마어마한 명칭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결성한 나라이다.
1878년부터는 여기에 ‘또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und Bosnien-Herzegowina)가 추가된다. 그런데 이것이 후일 유럽 역사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원인이 된다. 지금 오스트리아는 독일 남동쪽의 작은 나라에 불과하지만 이때만 해도 이렇게 여러 민족이 하나로 뭉친 막강한 제국이었다. 이 제국의 수도는 비인과 부다페스트였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야경
근세의 민족주의 바람이 불면서 각각의 민족들이 독립을 추구하자 오스트리아는 그 가운데 가장 강한 헝가리와 협약을 맺어 제국의 형태를 유지한 것이다. 이 제국은 그 크기가 독일과 프랑스를 능가하여 당시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큰 면적을 차지할 정도였다. 인구로는 독일 다음으로 유럽 3위였다. 그러나 민족주의 정신을 막는 데에 구체제는 그 효용을 다했다. 결국 무리하게 제국을 유지하려던 오스트리아의 욕심이 제1차 세계대전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문자 그대로 산산이 부서져버리게 된다. 오늘날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첸,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이 제국에 속한 나라였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루마니아, 몬테네그로, 폴란드,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세르비아의 영토도 이 제국에 속한 적이 있었다.
한 마디 더 하자면 1914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은 보스니아-세르비아 민족주의자였던 프린치프(Gavrilo Princip, 1894-1918)가 오스트리아의 황태자인 페르디난트 대공(Erzherzog Franz Ferdinand Carl Ludwig Joseph Maria von Österreich-Este, 1863-1914)과 그의 아내를 암살한 사건에서 촉발되었다. 근대 이후 민족주의 정신을 이기는 이데올로기는 아직 없다. 그 강력한 민족주의가 막 발흥할 무렵이니 더 강할 것이었다. 프린치프는 지금도 유고슬라비아와 세르비아에서는 국민 영웅으로 추앙되고 있을 정도이다.
전형적인 헝가리식 굴라쉬 한 접시
그러나 그런 역사와는 무관하게 이제는 유럽 전역에서 헝가리식 굴라쉬를 즐겨 먹는다. 세월이 약인 것이다.
굴라쉬에 사용하는 고기는 원래 소고기이지만 말, 돼지, 양의 고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재료에는 고추, 양파, 마늘이 있다. 여기에 케러웨이 열매를 향신료로 사용한다. 중요한 것은 소스가 걸쭉해질 때까지 중불에 오래 끓이는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 먹는 고기찌개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사실 굴라쉬 만드는 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고기와 채소를 먹기 좋은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오래 끓이면 그만인 것이다. 게다가 영양도 풍부하다. 그래서 제국 시대의 군대에서 병사들의 주식으로 자주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약간 매콤하고 짭짤한 맛이 중독성까지 있다. 그래서 처음 맛보는 사람들도 거부감이 적다. 매운 것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일단 한국식으로 매콤한 굴라쉬를 만들어 보자. 기본적으로 양파 500g, 소고기와 돼지고기 섞은 것 500g, 소고기 육수 500ml가 필요하다. 여기에 소금과 후추 그리고 고추 가루를 매운 것과 안 매운 것을 준비한다. 만약 매콤 달콤한 맛을 원한다면 당근을 추가로 넣어도 된다. 여기에 붉은 포도주와 토마토 페이스트 그리고 밀가루를 준비한다.
양파를 얇게 썰어 둔다. 그리고 고기는 먹기 좋은 적당한 크기로 잘라 소금과 후추를 뿌려가며 프라이팬에 굽는다. 고기가 어느 정도 구워지면 양파를 넣고 3분 정도 볶은 다음 약한 불에 국물이 없어질 때까지 자작하게 졸인다. 다만 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고춧가루와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고 다시 중불에 5분 정도 볶는다. 매운맛을 기호에 따라 조절한다. 달달한 것을 바란다면 이쯤에서 당근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같이 볶으면 된다. 그러고 나서 밀가루를 넣은 다음 강한 불에 한 번 더 짧게 볶는다. 여기에서 눌어붙지 않게 조심한다. 마지막으로 포도주와 육수를 넣고는 중불에 1시간 남짓 푹 끓인다.
한국식으로 말한다면 고기찌개가 되겠다. 그러나 밥보다는 감자나 슈페츨레 또는 파스타를 곁들이는 것이 금상첨화이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도 굴라쉬에 바게트 빵이나 쌀을 같이 먹기도 한다. 독일 유학 시절 학교 식당에 굴라쉬가 나오면 한국 학생들이 더 많이 보였다. 그만큼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