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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May 20. 2024

15.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신앙마을

내 마음의 고향은 영원히 사라졌다.

부산으로 가는 길은 늘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중학교 때부터 기장에 있는 신앙마을에 엄마와 둘이 열심히 가던 추억의 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다른 많은 신도와 함께 갔지만 이제는 남편이 모는 차로 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남편은 기장의 신앙마을이 아니라 부산의 해운대를 즐겨 찾았다. 남편은 바다를 워낙 좋아해서 동해를 자주 찾았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특히 속초에 있는 펜션이나 리조트를 즐겨 찾았다. 롯데리조트는 대포항이 가까워 남편이 좋아하는 해물 요리를 먹기에 편했다. 델피노는 울산바위가 바로 보여서 저녁 무렵 경치가 아름다웠다. 속초 시내에 있는 펜션도 편해서 자주 이용했다. 내가 좋아하는 설악산에 가기도 편했다.     


그러나 파라다이스호텔은 1층에서 해운대 모래사장으로 바로 나갈 수 있기에 좋았고 무엇보다 내 마음의 고향인 기장과 가까워서 자주 찾았다. 그런데 그동안 부산에 가서도 기장의 신앙마을에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내가 이미 결혼을 해서 신앙마을의 교리에 따르자면 ‘타락한’ 사람이라 그 신앙마을을 찾을 면목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슨 일인지 그 신앙마을을 찾고 싶었다. 이제라도 용서를 빌고 나를 받아주면 들어갈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서 세속적으로 사는 것은 내게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 죄를 이제라도 빌고 거룩하고 깨끗한 삶을 다시 추구한다면 나의 고통이 끝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파라다이스 호텔에 도착하고 방에 짐을 풀자마자 저녁을 먹기도 전에 바로 기장을 향해 차를 몰았다. 30분 정도 달려서 신앙마을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물건을 사러 왔다고 하니 그대로 통과시킨다. 가슴이 떨려왔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 살아있는 하나님을 만나러 정기적으로 새벽 일찍 일어나 고속버스를 타고 반나절을 달려온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있는 하나님이 내리는 성령의 이슬의 향기를 맡으면서 천국을 느끼며 영혼이 정화되는 체험을 한 곳이다. 그런데 너무나 황량하다. 그때 나와 함께 기숙사에서 먹고 자면서 정화 예식을 하던 그 맑은 얼굴의 여자 신자들은 간 곳이 없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아줌마와 할머니만 보인다. 판매점으로 들어가 보았다. 옥으로 만든 팔찌가 눈에 뜨인다. 그러나 거기에 있는 물건들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마침 저녁 시간이라 그곳의 신자들이 식당으로 몰려간다. 나도 그곳에서 밥을 먹었었다. 밥이라고 해봐야 매우 소박했다. 국과 밥 그리고 간단한 반찬이 전부였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행복했다. 천국을 맛보는 데 그깟 음식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데 지금 보니 그 식당도 누추하기 그지없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죽고 나서 신앙마을이 무너졌다는 소문을 나중에야 들었다. 그러나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물론 여전히 두부와 요구르트는 생산 판매를 하고 있다. 공장도 여전히 돌아가고 있어 보였다. 그러나 내 어릴 때의 그 활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를 계속 따라오던 남편의 얼굴을 보니 아무런 감동을 받지 못한 모양이다. 내 어릴 때 느낀 그 엄청난 종교적 체험을 남편은 전혀 감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놀라운 영적 체험이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지금 여기 내가 다시 들어온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두부 공장이나 요구르트 생산 시설보다는 중고등학교 신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할 수 있을까? 대학생 시절에 서울에 있는 교회에서 주일 교사 일을 했으니 못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아이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주차장도 황토 먼지가 가득하다. 나를 남편을 채근하여 호텔로 돌아가자고 했다. 내가 꿈꾸던 신앙 마을은 사라졌다. 주차장에서 낯익은 죽성항이 내려다 보였다. 항구는 그대로인데 내 맘에 남아 있던 신앙마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부산에 올 때마다 자주 가던 해동용궁사 안내판이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늦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호텔로 돌아왔다. 갑자기 시장기가 몰려왔다. 밖에 나가서 먹기가 귀찮았다. 그래서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온더플레이트에서 뷔페를 먹었다. 문자 그대로 미친 듯이 먹었다. 그러나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해변의 불빛이 슬퍼 보였다. 바다 위를 지나가는 배에서 나오는 불빛도 우울해 보였다. 방으로 돌아오자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남편은 아이를 돌보느라고 내  상태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욕실로 들어가 욕탕에 물을 틀어놓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도대체 내게는 왜 이렇게 계속 맘에 안 드는 일만 계속 일어난다는 말인가. 도대체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침대에 누워 있는데 계속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에 민감한 내 귀에 매우 거슬렸다. 눈을 떠 보니 아이가 냉장고를 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꺼내 장난을 하고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 놓은 채 말이다. 갑자기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야.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아이가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본다. 화장실에서 이를 닦고 있던 남편도 놀라서 눈을 크게 드고 뛰어나온다.

  

“여보.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당신은. 애가 저렇게 말썽을 피우는 데 왜 가만 두는 거야?”     


남편이 급히 화장실로 다시 들어가 간단히 입을 헹구고 나와서 대답한다.  

   

“왜? 어때서? 애가 장난 할 수도 있지.”   

  

“물건을 저렇게 함부로 만지면 어떻게? 그러다 깨지면 돈을 물어주어야 하잖아.”     


남편이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말없이 돌아선다. 그리고는 아이를 달래면서 물건을 냉장고에 넣기 시작한다. 남편은 늘 저 모양이다. 애가 무슨 짓을 해도 화도 안 내고 꾸짖지도 않는다. 그러니 애가 더욱 버릇만 없어지는 것이다. 시계를 보니 9시가 넘었다. 화장실로 들어가면서 남편에게 룸서비스를 신청해 달라고 했다. 정성스럽게 세면을 하고 머리를 감고 나오니 조식이 이미 들어와 있었다. 콘티넨털 브렉퍼스트와 설렁탕을 주문했다. 늘 내가 즐기는 것으로 남편이 주문했다.   

   

아침을 먹고 나서 해변으로 나갔다. 아직 시즌이 아니고 월요일이라 해변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의 촉감이 좋았다. 그렇게 계속 내 발을 보면서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남편이 아이와 모래놀이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계속 웃는다. 아이가 그렇게 좋을까? 문득 질투가 난다. 그래 나는 이토록 괴로운데 둘이 그리 좋다면 잘 살아봐라. 그런 생각이 든다. 왜 나의 고통을 아무도 몰라주는 것일까?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자낙스를 먹어야 할 시간이 된 모양이다. 남편에게 방으로 가자고 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아이를 안고 나를 따라온다. 아이도 남편의 목을 꼭 끌어안는다. 그 모습을 보니 묘한 기분이 든다.


12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다. 해동용궁사에 가 볼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아이를 뒷자리 카시트에 고정시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린다. 막내 이모다. 엄마와 함께 신앙마을에 열심히 다니던 막내 이모였다. 그러면서 회사에 취직하여 잘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회사의 유부남과 눈이 맞아 바람이 났다. 큰언니인 엄마에게 들킨 막내 이모는 억지로 끌리다시피 신앙마을에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막내 이모는 불륜을 용서하지 못하는 엄마의 강요로 시작된 신앙생활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막내 이모는 그곳의 생활을 저주하였다. 그래도 엄마가 계속 나오는 것을 막았다. 그래서 결국 50이 다 되도록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이제 신앙마을에서 간부가 되었지만 사실 그동안 신앙마을을 탈출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었다. 늘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을 꿈꾸던 막내 이모였다. 그런 막내 이모를 철저히 막던 엄마가 돌아가셨지만 이제 다시 사회로 나온 들 누가 반겨줄 것인가? 사실 어젯밤 마음이 너무 힘들어 막내 고모에게 기장의 신앙마을에 다녀왔다고 문자를 보냈는 데 이제 답이 온 것이다.     


“현주야. 나다. 신앙마을 다녀온 거야? 어땠어?”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냥 울음이 나왔다. 차에서 멀어지면서 대답을 했다.     


“막내 이모...”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 흐느끼며 울었다.    

  

“현주야. 많이 힘들구나. 남편이 너를 많이 괴롭히니?”    

 

“아냐. 남편은 아무 문제없어. 애가 너무 나를 힘들게 해.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들어. 내가 결혼을 잘못한 거 같아. 아이도 낳지 말았어야 했어. 시집이 나를 너무 괴롭혀. 특히 시모는 원수 같아. 남편은 우유부단해서 나를 전혀 돕지를 못하고 있어. 아무도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 정신과 의사조차도 내게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지 말래. 도대체 나의 괴로움을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갑자기 말문이 터진 아이처럼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막내 이모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런데 남편이 부른다.     


“여보. 출발해야 하는데...”     


“이모.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그래. 조심해라.”     


해동용궁사에는 사람이 많았다. 주차장에서 절로 내려가는 길에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입구의 벚나무에 꽃은 이미 지고 푸른 잎이 울창했다. 그리고 보니 초파일이 지난 지 얼마 안 되었다. 신앙마을에서는 불교를 악마의 종교라고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절에 오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남편에게 여러 좋다는 절을 가보자고 하여 전국을 다녔다. 통도사도 좋았지만 낙산사와 해동용궁사가 특히 마음을 끌어서 자주 왔다. 대웅전의 부처상을 바라보면서 늘 하던 대로 기도했다.      


“부처님. 저를 구해주세요.”     


신앙마을이 더 이상 나의 영혼을 구할 수 없다면 부처님에게라도 빌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의 종교인 가톨릭은 어쩐지 와닿지가 않았다. 저토록 우유부단한 사람이 믿는 종교라면 힘이 없을 것이 아닌가? 내게는 나를 이끌어 줄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나처럼 유약하고 심약한 여자에게는 강한 존재가 필요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부처님의 가피로 내가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좋을 일 아닌가 말이다. 대웅전에서 나와 해수관음대불상 앞에서도 기도를 드렸다.     


“부처님. 저를 구해주세요.”     


그런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남편은 아이를 유모차에 싣고 말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언제나 우유부단하고 무기력한 남편이 나를 구할 수는 없었다. 내게는 강한 존재가 필요했다. 과거에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느낀 그 권능이 있는 존재 말이다. 기장의 신앙마을에서 찾을 수 없다면 다른 곳을 찾아 나서야 했다. 이제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 존재를 찾을 때까지는 남편과 같이 사는 수 밖에는 없었다. 하루를 더 호텔에서 머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계속 그 생각뿐이었다. 내게는 강한 존재가 필요하다는 생각말이다. 남편은 나를 구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출가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보가 훨씬 힘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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