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cis Lee Jun 23. 2024

글쓰기를 멈출 수가 없다

어차피 팔자소관 아닌가?

한 달 정도 글쓰기를 완전히 그만두어 보았다. 이른바 번아웃이 왔다. 글을 쓰는 의미와 재미가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큰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내 글이 아무런 힘이 없다는 자괴감이다. 아무리 열성을 다해 글을 써서 온라인에 공개해도 그뿐이다. 그저 나의 개인적인 감정 배설에 머물고 만다는 허무감이 밀려왔다. 한국 사회의 병폐와 부조리가 보이고 그 문제 해결의 긴박성은 명료하지만, 그 해결책이 마땅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글만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비난하는 입만 놀리는 강남의 ‘입진보’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나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뚜렷하게 보인 것이다. 이런 주제에 무슨 글을 써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글솜씨가 부족하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도 없다는 자각이 너무나 강렬하게 들어 글이 더 이상 써지지 않았다.     


다음으로 경제적인 문제다. 의식주 문제가 심각한 현실로 다가오면서 한가하게 자리에 앉아 팔리지도 않는 글만 쓰고 있는 나 자신의 무능이 글쓰기의 동기를 앗아가 버렸다. 실존적인 삶을 영위하는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한가하게’ 글이나 쓰고 온라인에 공개하는 행위는 일종의 언어의 유희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 자신을 건사하는 힘도 없는 상황에서 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힘이 글에서 나온다고 믿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아니 부끄러웠다. 조선 시대 남산골에서 생계유지도 힘든 상황에서 글만 읽던 백면서생이 된 기분이었다.


흔히 글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도 아직도 그 믿음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일회용품처럼 순식간에 소비되고 버려지는 인터넷 시대에 글은 이제 그 고전적인 힘과 빛을 잃어가고 있다. 유튜브가 대변하는 영상 정보 시대에 힘들게 읽고 이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글이라는 매체는 매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시간을 따로 내어 정독하고 깊이 생각하고 또 반추해야 하는 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런 시대에 글을 쓰자고 덤비는 내가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런 자괴감에 글을 단 한 줄, 아니 한 자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다시 본 영화 Vanilla Sky에서 톰 크루즈가 연기한 주인공 데이비드 에임스의 삼촌 토마스 팁을 연기한 티머시 스폴이 데이비드 에임스의 생일잔치에서 한 말이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People will read again!’     


그렇다. 좋은 글은 사람들이 읽고 감동한다. 문제는 글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읽을 만한 글을 쓰지 못하는 작가에게 있다. 사람들이 글을 읽지 않고 영향력이 없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읽고 그들이 영향을 받을만한 글을 쓰지 못하는 자신의 역량을 탓해야 하는 것이다. 좋은 글을 읽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런 각성에 이르자 다시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생겼다. 비록 솜씨가 부족하고 생계유지에 도움이 안 되는 글이라도 사람들이 다시 읽을 만한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절차탁마해야 하는 것이 글쟁이의 도리 아닌가? 적어도 글쟁이로 평생을 살겠다고 결심했다면 남이 내 펜을 부러트리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절필한다는 것은 비겁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어딘가에서 내 글을 기다리는 독자가 한 사람만 있어도 그를 위해 내 글을 바치는 것이 진정한 작가의 자세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된 지난 한 달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토마스 팀에게 늦은 답변을 해본다.    

 

‘Then I will write again!’     


비록 그가 내 글을 읽지는 못하겠지만 세상 어딘가에 있을 나의 독자 한 사람을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 나의 팔자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