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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Oct 21. 2020

예수는 누구인가?

예수 이야기 시리즈 I


역사적인 인물 가운데 예수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존재도 드물다. 현재 전 세계 77억 인구 가운데 25억 정도가 기독교 신자이다. 그러나 정작 예수가 누구인가를 물어보면 대답을 잘 못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성경을 숙독하고 연구했다는 사람들조차 예수가 누구인지를 잘 모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예수에 관한 자료가 매우 빈약하다. 성경 이외에 예수에 관한 ‘신뢰할만한’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경도 그 편집된 내용을 보면 예수에 관하여 알기 위한 자료로는 빈약하다. 유대교의 타나크(TANAK)를 재구성한 구약 성경, 예수를 직접 보았거나 관련된 인물들이 기록했다는 복음서 그리고 예수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바울의 편지들과 그리고 사도들의 글이 전부이다.    

  

게다가 예수에 관한 가장 생생한 기록인 복음서마저도 서로 맞지 않는 서술이 많이 담겨 있다. 그러니 누가 말한 것이 ‘진짜’ 예수인지를 식별할 ‘객관적’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인류는 예수에 관하여 이야기해 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예수 이야기는 왜곡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 분열을 낳았다. 가톨릭 교회가 동방정교와 갈라서게 된 공식적 이유는 예수의 본성에 관한 논쟁 곧 ‘filiusque’ 문제 때문이었다.     


게다가 예수의 본모습을 아는 데에 더 큰 문제가 된 것은 이른바 예수의 직제자 12명이 세운 ‘오리지널’ 교회는 77년 로마제국이 예루살렘을 초토화시킬 때에 사실상 소멸되고 말았다. 이때에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기독교인들은 북아프리카로 건너가 바울이 세운 것과는 별도의 자체적인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현재의 기독교 교회는 예수의 12사도의 정통성을 부여받지 않은 바울이 소아시아 지역에 세운 교회들이 뿌리가 되어 성장해 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적자는 사라지고 서자가 그것도 스스로 서자라고 자처한 자가 기독교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서 말고는 예수를 본 적이 없는 바울이 이야기하는 예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를 이해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예수 제대로 알기에 문제가 된 것은 기독교의 국교화에 따른 이른바 이단의 배척이었다. 기독교 안에서 기득권 세력에 반대되는 주장은 모두 이단으로 몰려 극단적인 배척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세력이 비슷할 경우에는 서로를 파문하며 각자의 길을 가기도 하였다. 그것이 교회의 분열이다.    


 

그래서 신앙이나 파벌에 따라 왜곡된 것이 아닌 ‘과학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방법으로 예수의 모습을 보고자 하는 노력의 결실은 19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이 연구 결과 오늘날 합의된 내용은 ‘예수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다.’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로마 총독 빌라도의 명령으로 사형을 당했다.’ 정도이다. 그러나 예수의 언행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파벌과 학자마다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앞에서 말한 대로 원천 자료가 워낙 빈약해서이다. 그리고 그 자료마저도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읽는 사람의 주관적 해석이 없이는 이해가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복음서마저 그것을 저술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단독으로 기술했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있다. 마태복음을 마태가 썼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요한복음은 더욱 문제다. 결코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학자들의 정설이다. 예수를 이야기하는 원천 자료의 신뢰성이 없는 상황에서 예수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비과학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 비과학적 문서는 원래 그리스어나 아람어로 쓰인 것인데 번역하는 과정에서 많은 오역과 자의적 번역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의 ‘본모습’을 어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현대의 학자들은 일단 성경에 나온 예수의 이야기만이라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해석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여 읽는 전통을 이어왔지만 가톨릭의 경우 불가타 성경만을 정경으로 고집하며 오랜 세월을 유지해 왔다. 그리고 개신교도 성경의 ‘해석’은 성직자의 몫이었다. 평신도가 ‘감히’ 성경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경죄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많은 ‘평민’들이 성경을 적극적으로 읽고 이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야 비로소 예수의 참모습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개인적으로도 독일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받는 과정에서 자세히 알게 된 예수의 ‘본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언젠가는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었다. 그래서 여기에 올려보고자 한다.     



교회의 신학이나 신앙에서 말하는 것 이외의 예수의 역사적 ‘참모습’을 연구하는 것은 18세기 말 계몽주의에서 시작되었다. 그 선구자는 독일 철학자 라이마루스(Hermann Samuel Reimarus, 1694–1768)이다. 그의 연구 결과는 사후에 독일 철학자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이 ‘익명의 저자의 원고’(Die Fragmente eines unbekannten Autors)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하였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불러일으킨 것은 튜빙엔대학교에서 공부하고 강의한 독일 신학자 슈트라우쓰(David Friedrich Strauss, 1808-1874)가 1835년에 출판한 ‘예수의 생애, 비평적 연구’(Das Leben Jesu, kritisch bearbeitet)이다. 참고로 비슷한 무렵에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von Feuerbach, 1804–1872)가 출판한 ‘기독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은 아예 기독교 자체의 허구성을 지적한 책이라 여기에서 논외로 하겠다.   

  

예수의 역사성에 관한 연구와 더불어 진행된 것이 성경의 진실성에 관한 연구였다. 과연 성경이 제대로 쓰인 책인지, 단지 신자들만이 공유하는 신앙의 경전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책인지를 연구한 것이다. 이 분야를 성경 해석학(biblische Exegese)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역사-비평적 방법(historisch-kritische Methode)이다. 이 방법을 제시한 사람은 프랑스의 신학자 시몽(Richard Simon, 1638–1712)이다. 그는 1689년 출판한 ‘신약 본문에 대한 역사 비평’(Histoire critique du texte du Nouveau Testament, 1689)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방법을 체계화하였다. 칸트 또한 종교를 신앙이 아니라 이성의 영역에서 파악해보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 결과가 그가 1793년에 출판한 ‘단순한 이성의 한계 안의 종교’(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ßen Vernunft)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역사-비평적 성경 해석의 바탕을 다진 데에는 여러 신학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 가운데 독일의 신학자인 세믈러(Johann Salomo Semler, 1725-1791)는 역사-비평 방법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튜빙엔학파를 창시한 바우어(Ferdinand Christian Baur, 1792-1860)야 말로 역사-비평적 방법의 체계를 완성한 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 모든 학자들은 개신교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사실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는 성경 자체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수의 언행이 담긴 성경을 역사적 방법으로 비평적으로 분석한 결과 나온 예수의 모습은 어떤가? 이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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