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유학하는 동안 학생 식당, 곧 Mansa를 주로 애용하였는데 어느 날 아펠슈트루델(Apfelstrudel)이 나왔다. 그런데 그것이 다였다. 나는 처음에는 그것이 디저트이고 메인 메뉴는 어딘가에 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래서 허무해하면서도 그 달디 단 페스츄리로 배를 채우던 기억이 난다. 역시 한국 사람은 뜨끈한 국물에 밥을 먹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메뉴를 미리 보고 아펠슈트루델이 나오는 날에는 멘자에 가지 않았다. 기왕에 같은 돈을 내고 고기가 아닌 사과만 들은 과자를 식사로 먹는 것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기골이 장대한 독일 학생들은 이 영양가 없어 보이는 아펠슈트루델을 먹고도 오후 강의 시간에도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허기증을 느끼기 시작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더 세월이 흐르면서 알게 된 것은 독일 사람들이 식사를 한국처럼 푸짐하게 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이었다. 아침에는 빵 한 조각과 치즈 한 조각 그리고 커피, 점심에는 식당에서 나오는 것만, 저녁에는 다시 빵과 소시지 한 조각 정도. 그것이 그들이 먹는 주식이었다. 내가 그 흉내를 내다가 영양실조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분명히 그랬다. 기골이 장대한 데도 먹는 양은 적었다. 그래도 며칠을 밤새 공부하면서도 끄떡없다.
그러나 동양에서 온 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격의 나는 ‘미친 듯이’ 먹고 버텨도 3일 이상을 밤샘을 할 재간이 없었다. 나중에 이리저리 정보를 얻어 보니 유럽인들, 특히 북구의 기골이 장대한 유럽인들은 골격이 큰 만큼 근육량도 한국인에 비하여 월등하여 근육 자체에 축적된 에너지가 많아 외부에서 영양을 공급받지 않아도 힘을 지속적으로 쓸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나와 같은 아시아인들은 근육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음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독일 학생은 아펠슈트루델 한 개만 먹고도 밤새 논문을 쓸 수 있었지만 나는 계속 먹으며 공부해야 했다. 근육량의 차이는 특히 운동 경기에서 잘 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분데스리가의 축구 선수들을 보면 문자 그대로 ‘괴물들’이다. 90분 동안 정말 ‘미친 듯이’ 운동장을 달리고 나서도 별로 피곤해하지 않는다. 그런 괴물들 사이에서 버티는 손흥민이 얼마나 기특하고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그래도 어쨌든 내 개인적으로 아펠슈트루델은 쓸쓸한 추억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 달달하고 바삭한 페스츄리가 그리워진다. 원래 아펠슈트루델이 비인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더 깊은 뿌리는 아랍이다. 커피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많은 달달한 음식들은 아랍에서 유럽으로 건너왔다. 그 중간 기착지가 로마나 비인인 것은 사실 큰 자랑거리는 아니다. 아랍이나 터키와의 전쟁의 와중에 그러한 기호 식품들도 전수받은 것이니 말이다.
말이 난 김에 커피 이야기도 잠깐 해보자. 원래 커피는 아프리카 북부 에티오피아에서 홍해를 건너 예멘의 도시 모카(Mocha)로 수입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지금도 유명한 모카커피도 여기에서 온 것이다. 아랍 사람들은 이 커피를 주로 긴 종교의식을 거행하면서 졸지 않기 위해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16세기부터 커피는 북부 아프리카와 터키 페르시아로 퍼져 나갔고 마침내 이탈리아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면서 유럽 전역에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최초의 유럽 커피점은 1645년 로마에 그리고 1659년에는 파리에는 1659년에 커피점이 세워졌다. 유명한 비인 커피점은 1685년에 세워졌다. 그러나 그보다 몇 년 앞선 1673년 독일 북부 브레멘에 커피점이 들어섰다. 그러나 이때 만해도 커피는 귀족들만 마시는 것으로 평민은 접근할 수 없었다.
다시 아펠슈트루델로 돌아가 보자. 아랍에서 먹기 시작한 이 페스츄리는 오스만 제국이 1453년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이후 유럽으로 전해졌다. 이때 동로마제국의 지식인들이 대거 서로마로 피난하면서 본격적인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게 된다. 터키가 동로마를 멸망시키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터키는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겠지만 사실 이때부터 유럽은 암흑의 중세를 벗어나 계몽된 근세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는 유럽이 세계를 제패하게 되는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는 일이다. 암튼 이 와중에 아펠슈트루델은, 정확히 말해서 그 조리법은 헝가리를 거쳐 마침내 비인에 전달되게 된다. 그러면서 이제 세계는 아펠슈트루델이 오스트리아 비인의 고유 음식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렴 어떠랴. 맛있게 먹으면 그만인 것을.
아펠슈트루델의 조리법은 간단하다. 슈트루델(Strudel)이라는 독일어의 뜻은 ‘소용돌이’이다. 이 페스추리의 단면이 돌돌 말려 있는 모습에서 그리 부른 것으로 추측된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얇게 민 다음에 그 위에 얇게 썬 사과를 올려 돌돌 말아서 만들어 그런 모양이 나오게 된다.
반죽의 재료로는 밀가루 220g, 소금 약간, 달걀 1개, 식용유 한 찻숟가락이 들어간다. 속을 만드는 데에는 사과 1.2kg, 설탕 80g, 계피 약간, 레몬 약간, 럼주 약간, 빵가루 50g, 건포도 100g, 버터 50g이 필요하다.
일단 밀가루를 위에 나온 재료를 섞어 물 80ml에 반죽한다. 밀가루가 찰 져서 덩어리가 될 때까지 반죽한다. 그리고 반죽에 기름을 발라 30분 정도 뚜껑이 있는 그릇에 둔다. 그다음으로 속을 준비한다. 사과를 4등분 한 다음에 얇게 썬다. 그러고 나서 위에 나온 재료들과 잘 섞는다. 밀가루 반죽을 꺼내어 막대기로 얇게 민다. 이때 최대한 얇게 밀어야 한다. 크기는 가로 50cm 세로 35cm 크기로 자른다. 밀가루 주변에 버터를 바른다. 그 반죽의 하단 3분의 1 부분에 사과 버무린 것을 넓게 펴서 넣고 잘 말아 올린다. 다만 밀가루가 얇아 찢어질 수 있기에 김밥을 말듯이 큰 광목 같은 것으로 받혀가며 말아야 한다. 다만 반죽의 주변은 4-5cm 정도 비워 두어야 한다. 그래서 속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다음으로 오븐을 180도에 맞춰 예열을 한다. 구이판에 아펠슈트루델을 잘 얹어서 버터를 바른다. 40분 동안 굽는 과정에서 몇 번 버터를 바른다. 그러면 훨씬 고소한 맛이 난다. 다 굽고 나면 식힌 다음에 커피와 함께 간식으로 먹는 것이 무난하다. 한 끼 식사로는 뭔가 모자란다. 특히 나 같은 한국 사람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