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다.
윤석열의 명은 이제 다 했다. 대선이 언제냐는 문제만 남아있을 뿐이다. 빠르면 올 상반기에 치러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분위기는 이재명 대표가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이른바 반이재명 정서도 만만치 않다. 사법 리스크도 문제지만 그동안 수구 세력의 집요한 선전 선동이 상당히 먹히고 있기 때문이다. 막상 이재명이 왜 싫으냐는 질문에는 하나같이 전과 4범, 그리고 ‘찍’만 답으로 나온다. 수능의 정답 외우기에 익숙한 국민답다. 전과 4범의 구체적인 내용과 전후 사정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찍’이 나오기까지의 가족사 전후 사정을 깊이 알아보려는 관심도 전혀 없다. 선전 선동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사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선전 선동에 완전히 속은 것이라기보다는 진보 진영에 대한 뼛속 깊은 증오와 거부감이 있던 차에 이재명 배싱의 선전 선동이 나오자 올타구나하고 동의하는 모양새이기는 하다.
해방 이후 남북 분단으로 촉발된 좌우 대립은 이제 한국인의 DNA에 각인된 고질병이 되어 버렸다. 이 문제를 근심한 많은 이들이 해결 방안을 고민해 보았지만 한국전쟁이 있은지 70년이 넘어도 아직 마땅한 방안이 없다. 더구나 ‘토착 왜구’와 ‘빨갱이’ 딱지 붙이기가 국민 스포츠가 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과연 이런 문제를 누가 해결할 것인가? 흔히 말하는 국민 통합을 이루자면 좌우 대립과 동서 대립을 극복해야 하지만 묘안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대선이 치러지면 나라는 다시 두 쪽이 날 것이다. 선거 때마다 통합은 불가능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체세포 분열 때 염색체가 복제되어 동일한 세포 두 개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기성세대가 분열되었어도 젊은 세대는 각성을 하고 다른 통합적 사회 인식을 형성할 것 같지만 결국 그 기성세대를 그대로 닮아가는 꼴이다. 체세포 분열 후 딸세포가 모세포와 동일한 형질을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좌우 대립 동서 대립은 치유 불가능한 질병인가? 단정할 수 없지만 그렇게 보인다. 그렇다면 어차피 치유 불가능한 병에 대한 대책은 그 병을 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도 질병의 완치가 불가능한 경우 그 병이 인간을 치명적인 상황으로 몰아가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있다. 사회적 질병도 마찬가지의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좌우와 동서 대립이 어차피 치유 불가능하다면 그 상황을 인정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고 사는, 다시 말해서 서로를 인정하고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른바 똘레랑스 정신이다. 좌는 우를 인정하고 우는 좌를 인정하는 것이다. 전라도가 경상도의 존재 방식을 인정하고 경상도가 전라도의 존재 방식을 인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번 대선에서 윤석열이 당선된 결정적 이유는 문재인이 싫어서였다. 그리고 그 집단이 윤석열 당선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비록 이 집단의 상당 수가 나중에 후회했지만 말이다. 다음 대선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국민의힘은 극우 세력과 반이재명 세력의 연대로 대선에 임할 것이다. 민주당은 그 반대 세력을 규합할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지난 대선 때 윤석열이 0.73%p의 신승을 거둔 데에는 심상정과 이낙연의 몽니가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똑같은 국론 분열이 이루어질 것이다. 어차피 윤석열과 이재명을 싫어하는 진영이 반대투표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진영의 분열만 막으면 민주당의 승산이 큰 것은 당연하다. 다행스럽게도 정의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심상정 같은 괴물의 출현은 없을 것이다. 수박도 어느 정도 정리되었으니 이낙연 같은 귀찮은 낙엽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대선이야말로 누가 정말로 더 싫은 후보인지 결판을 낼 것으로 보인다.
물론 좋은 후보, 좋은 공약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어차피 증오 정치가 판치는 상황에서 그런 것은 꿈에 불과하다. 르상티망(ressentiment), 곧 분노라는 정서가 정치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한국에서 말이다. 그래서 그 분노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후보가 대선에서 당선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참으로 암울하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지난 대선에서 전체 투표자의 성향을 보면 윤석열을 싫어하는 국민이 더 많았으니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희망을 품을 만하다. 더구나 윤석열이 헌법재판소에서 계엄을 희화화하는 말만 되풀이하여 이제 스스로 ‘입벌구’임을 천하에 증명하는 상황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모두가 좋아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좋겠으나 그런 일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물론 독재국가에는 있다, 시진핑이나 김정은 그리고 푸틴은 문자 그대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 않는가? 그러니 오히려 서로를 미워하면서 닮아간다는 말을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 혹시 아는가? 그러다가 국민의힘 지지층이 민주당 지지층을 닮게 될지? 그러다 보면 '내'가 더 잘났다에서 '너'도 잘났다는 생각을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가 더 낫다는 생각에 이르면 사회 통합은 저절로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