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침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뜬금없는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다시 세계는 전쟁의 공포에 짓눌리고 있다. 그런데 전쟁의 시작에 관한 여러 뉴스를 접해보니 뜬금없는 공격이 아니었다. 매우 오랫동안 준비해 온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이번에도 가장 큰 희생자는 민간인이다. 전쟁의 구호는 민족주의와 종교이지만 결국 자기 민족과 자기 신자를 죽이는 전쟁을 다름 아닌 그 나라 지도자가 도발하고 있다. 사실 네타냐후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치적 위기에 몰린 처지에 있다. 그래서 이번 전쟁도 지난번의 팔레스티나 공격과 마찬가지로 네타냐후의 정치적 승부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자업자득 아닌가? 그 네타냐후를 다름 아닌 이스라엘 국민이 선출하지 않았던가? 물론 의원내각제라 국민이 직접 선거로 네타냐후를 직접 선출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역사를 보면 전쟁은 늘 관련 집단의 지도자가 사적인 이익을 위해 대의명분을 내세워 일으켰다. 전쟁을 혼자 수행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그 지도자는 선전 선동의 수단을 통해 국민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선에 나서게 만들었다. 이때 가장 흔히 사용된 이데올로기가 민족주의였다. 내 민족과 타민족의 대결 상황에서 내 민족을 지킨다는 명분의 애국심은 반대를 허용하지 않는다. 애국심에 반대하는 것은 민족반역자로 '숙청'의 대상이 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쟁의 광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면 전쟁은 저절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 어느 전쟁이든 초기 석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소모전에 돌입하게 된다. 그러면서 전쟁 당사국의 국민은 실존적 위기에 처하게 된다.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생존본능을 최대한 발휘하게 된다. 어떻게든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에 충실하게 되는 것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면서 맹목적인 생존을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이런 실존적 위기에 몰린 국민은 지도자의 선전선동에 더욱 쉽게 넘어가게 된다. 그 국민에게는 오로지 애국이냐 반역이냐, 둘 중의 하나의 선택만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반역을 택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억지로 애국을 책하고 전선에 나가 총알받이가 되는 것이다. 그들의 희생을 조장한 지도자는 멀쩡히 살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더욱 강력한 권력을 누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런데 그런 애국심 못지않게 전쟁에 잘 활용되는 것이 종교 이데올로기다. 특히 유대교를 대표하는 이스라엘과 이슬람교를 대표하는 이란 사이의 전쟁에서는 이런 종교적 광기가 더욱 강력한 전염력을 지니게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이란은 같은 신을 믿고 있다. 유대인과 아랍인의 공통 조상인 아브라함의 신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아랍인의 조상인 이스마엘이 유대인의 조상인 이사악과 형제라는 것은 구약에 나와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은 형제간의 싸움이라는 말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인간을 자신의 모습으로 창조하고 너무나 사랑해서 어떤 죄를 지어도 결국 용서하는 자비하며 무엇이든 다 알고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이 형제가 문자 그대로 죽도록 싸우도록 놔둔다는 말인가?
사실 형제간의 싸움은 창세기 때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카인이 아벨을 죽여도 신은 개입하지 않았다. 그리고 살인은 십계명에서도 금할 정도의 죽을죄인데 신은 그 누구도 카인을 건드리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유대교의 신화를 받아들인다면 인류는 살인자, 그것도 형제를 죽인 의 후손이다. 그래서 유사 이래 늘 살인과 살육을 저질러 온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런 살인죄를 저질러도 신은 인간을 살려둔다. 아니 살리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보호한다. 관련 구절을 보자.
카인이 아우 아벨에게 “들에 나가자.”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아우의 피를 받아 낸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네가 땅을 부쳐도, 그것이 너에게 더 이상 수확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다.” 카인이 주님께 아뢰었다. “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 당신께서 오늘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하고,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어, 만나는 자마다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카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카인은 주님 앞에서 물러 나와 에덴의 동쪽 놋 땅에 살았다.(창세 4, 12~16)
카인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처음 낳은 맏아들이다. 그다음 낳은 것이 아벨이다. 상식적으로 세상에 '사람'은 아담과 이브 그리고 카인과 아벨뿐이어야 한다. 그런데 카인은 아벨을 죽이고 나서 자기를 죽일 자가 있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어차피 신화이니 논리를 따질 필요는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아무리 신의 뜻에 어긋나는 짓을 해도 신이 직접 인간을 해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믿음이다. 신은 그토록 인간을 애지중지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유대인과 아랍인의 다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천 년의 역사에서 진행되어 온 일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보면 모든 유대인이 이사악의 후손이 아니고 모든 아랍인이 이스마엘의 후손도 아니다. 특히 유대인은 70년 경 나라가 망한 이후 2000년 가까이 디아스포라 생활을 하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땅의 인종과 혼합되어 이른바 '순수' 유대인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오히려 아랍인들이 팔레스티나 지역에 계속 거주하면서 어느 정도 '순수성'을 유지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란은 엄밀한 의미의 아랍인, 곧 이스마엘의 후손이 아니다. 언어도 아랍어가 아닌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나라다. 그러나 이슬람교가 국교가 되면서 이란도 아랍권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나라가 된 것이다. 사실 이란은 아랍세계에 속하지 않은 나라다. 아랍세계는 아랍연맹이라는 느슨한 22개 회원국 단체로 뭉쳐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 느슨하다. 인구는 다 합쳐도 3억 명 정도다. 이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무슬림세계가 있다. 여기에는 중동과 아프리카 중심의 아랍연맹에 더해 아시아 지역의 무슬림이 주요 종교인 국가가 포함된다. 인구는 약 15~18억 명 정도 된다. 문제는 이들의 경제력이 매우 부실하다는 점이다. 다 합쳐봐야 전 세계 명목 GDP의 8%에 불과하다. 인구는 25%나 차지하는데 경제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인가? 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 대부분은 아랍과 북아프리카 지역 출신이다. 그런데 유럽은 거의 대부분 기독교 국가다. 그래서 종교적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PEW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유럽의 이슬람 신자는 약 8%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숫자로는 5천만 명이 넘는다. 아직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지만 특히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공포심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슬람권이 힘을 못쓰는 이유는 한 마디로 돈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이슬람권에 속하는 나라는 튀르키에 한 나라뿐이다.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 기독교권에 속한다. 튀르키에 이외에 한국과 일본, 이스라엘만 비기독교 국가에 속한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이 대립할 때 이슬람권이 궁극적으로 '깨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이슬람권을 대표하영 이란이 군사력 강화를 위해 핵무기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미국의 대리자를 자처한 이스라엘에 철저히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 한대로 이란은 이슬람권이기는 하지만 페르시아라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나온 나라이에게 아랍연맹과의 유대는 이룰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래서 지금 보고 있는 대로 아랍 국가 가운데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상대하면 무참히 깨지는 것이 뻔한데 누가 그 수고를 할 것인가 말이다. 과거 아랍연맹의 맹주였던 이라크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아프가니스탄도 비록 미국이 못 견디고 철군했지만 후진국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맞짱 뜬 나라 가운데 일본과 베트남은 전후에도 경제적 성공을 이루었지만 아랍권에서는 아무도 그런 일을 해내지 못했다.
사실 정교분리가 이루어진 이후 법적으로는 기독교와 정치는 별개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최초의 정교분리를 헌법에 명기한 나라는 미국이다. 1791년 연방수정헌법에 명기한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미국은 엄연한 기독교 국가다.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할 때도 성경책이 등장한다. 법으로 규정된 바가 전혀 없는 데도 그렇다. 유럽 대부분 국가도 정교분리가 이루어졌지만 기독교는 정치 사회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도 정교분리가 법으로 규정되어 있음에도 비록 '개독교'가 되었어도 기독교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렇게 기독교의 영향이 강한 나라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매우 강력하게 깔려있다. 이런 정서에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열세에 있는 이슬람권은 늘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립 구조 안에서 이스라엘은 매우 독특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영국이 이슬람권에 속하는 팔레스티나 지역에 느닷없이 유대교 국가인 이스라엘을 심어 놓은 이후 중동 지역은 늘 갈등과 분쟁을 겪게 되었다. 기독교권이 이슬람권에 유대교 국가를 세워 주었으니 그 은공을 잊지 못하는 것인가? 이스라엘은 틈만 나면 아랍권을 공격했고 그 뒷배는 늘 기독교의 맹주인 미국이 담당하였다.
헌팅턴의 유명한 Clash of Civilization에서 갈파한 대로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문화권 간의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헌팅턴은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의 분쟁에 이어 기독교권과 유교권의 분쟁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그 예언은 현재 진행되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으로 증명되고 있다. 종교는 지독할 정도로 정치적인 요소다. 근세까지는 기독교 종파끼리도 싸움을 벌였다. 그 와중에 사실 유대교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저 기독교권 안에서 박해받는 종교였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결 전선에서 기독교를 대리하여 이슬람과 싸우는 첨병이 된 것이다.
모든 종교는 사랑과 평화를 노래한다. 그러나 그 어떤 종교도 심지어 불교도 전쟁과 무관한 적이 없었다. 인류의 화해와 공존을 노래하지만 실제로는 종파적 파벌적 종족적 갈등에 불씨가 되어 온 것이다. 이번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도 거시적인 측면에서는 그런 종교의 특성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다 알고 있듯이 유대교의 야훼나 이슬람의 알라나 기독교의 신이나 모두 동일한 존재다. 그런데 그렇게 서로 죽자고 싸운다. 이름이 셋인 그 신적인 존재는 과연 누구 편을 들까? 예루살렘은 이 세 종교의 성지다. 그 성지가 있는 지역에서 3차 세계대전 운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도 그 신적인 존재의 뜻인가?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야훼의 별명이 '만군의 주님'(צְבָאוֹת יהוה)으로 불리는 것이 우연이 아닌가보다. 그 신적 존재는 처음부터 치고받는 싸움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그래서 수천만 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죽어나간 세계 대전에도 침묵한 것이고. 그러니 '겨우' 몇 십만 명 죽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 전쟁은 일도 아닌 것 아닌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를 가리지 않고 모든 종파가 숭배해 마지 않는 그 신적 존재는 왜 침묵만 이어오는가? 야훼와 알라와 신이 싸운다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신적 존재의 내적 갈등의 표상인가? 참으로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