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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처음 만난 예수?

우연의 연속은 기적 같은 필연이 된다.

by Francis Lee

The perception of reality is more real than the reality itself. 직역하자면 실체(사실)의 인식은 실체(사실) 자체보다 더 사실적이라는 말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어느 영화 대사다. 인간의 뇌가 인식하는 것은, 특히 매우 강력하게 인식하는 것은 실체 자체보다 인간에게 더 강력한 확신을 준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보니 정말 그렇다. 특히 내가 믿는 신과 관련해서 이는 더욱 사실이다. 신의 존재 증명은 많은 교부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시도했지만 그 누구도 보편타당한 '증명'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Nikolas von Kues는 docta ignorantia, 곧 신을 아는 데에는 무지의 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간파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가 말한 coincidentia oppositorum, 곧 대립의 통합을 받아들여야 신을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고 신이 보낸 성령의 일치는 인간의 실체에 대한 인식에는 대립을 초월하는 실체의 본질에 대한 직관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을 알기 위해서 많은 지식을 쌓고 생각을 거듭해 보지만 결국 인간은 신의 실체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자각에 이르러야 비로소 신을 '알고' 그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그런데 그 과정은 매우 길고, 인간이 전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필자의 신을 향한 여정, 더 정확히는 예수를 향해 나가는 여정도 그런 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 여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 시작은 필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길로 필자를 이끌었다. 결국 모든 것은 신의 섭리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실 필자는 독일에서 처음부터 신학을 공부할 예정은 아니었다. 원래 공부한 Max Scheler의 철학적 인간학을 더 파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쉘러의 종교가 가톨릭이었고 그의 인간학의 요체인 인간 존엄 개념은 철저히 기독교에 기반을 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한 체험으로 신학을 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내 인생의 길을 완전히 규정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물론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에 그 공부가 얼마나 영향을 끼칠지는 몰랐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간 아닌가?


독일에서 공부를 시작하려면 무엇보다 어학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그 당시 이 시험의 명칭은 PNDS였다. 일단 Stuttgart 대학교 철학과에 적을 두고 이 학교에서 특별히 개설한 어학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 굳이 입학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 과정의 특수성 때문이다. 이 대학교에서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일종의 실험을 실시했다. 독일어를 잘 모르는 외국 학생을 대상으로 최단기간 내에 최고급의 어학 교육을 시키면 과연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이끌 수 있는지를 목적으로 한 실험이었다. 이 '실험'에는 많은 중국인들이 참여했다. 그 당시 독일과 중국은 본격적으로 교역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중국 학생이 일종의 교환 학생 제도를 통해 독일 대학교에 문자 그대로 물밀듯이 몰려왔다. 그다음으로는 프랑스와 이탈리와와 같은 유럽 국가 출신 학생이 많았다. 다양한 인종과 출신 배경을 지닌 학생들이 모인 과정을 진행하는 선생은 Fr. Jelkmann이었다. 키가 매우 큰 금발의 전형적인 독일인이었다. 40대 초반의 옐크만의 눈이 사파이어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특히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그에게서는 이른바 '무한 긍정'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강의한다는 느낌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누구나 다 그럴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과정이 끝날 때까지 그 태도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Jelkmann의 훌륭한 가르침 덕분에 단 3개월의 과정을 거쳐 필자의 독일어 실력은 문자 그대로 일취월장하게 되었다. 이 과정을 마치고 나서 필자는 강의를 큰 불편 없이 듣고 독일인과 어려움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오로지 옐크만 덕분이었다. 무엇이 이 사람에게 저런 타인을 '인간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가지도록 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독일어를 배우는 일반적인 과정은 노동자와 이민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설 학원을 다니거나 Goethe Institut와 같은 최소 1년 걸리는 힘든 과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Stuttgart대학교에서 개설된 이 속성 과정 덕분에, 그것도 완전 무료인 이 단기 과정 덕분에 독일어라는 어려운 관문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이 과정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것도 Stuttgart대학교에서만 개설된 것이었다. 그런 과정이 개설된 때와 장소에 필자가 우연히 있게 된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인식으로 이는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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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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