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교회가 금지한 죄를 교회가 조직적으로 저지른 죄의 역사는 길다.

by Francis Lee

인간의 역사에서 ‘죄’라는 개념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잘못을 넘어서 공동체의 질서와 영성의 방향을 규정하는 중요한 주제였다. 특히 가톨릭 전통에서 정립된 ‘칠죄종’(七罪宗, Septem peccata capitalia)은 기독교 역사 속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가장 깊이 논의된 죄의 체계이다. 오늘날 일반 대중도 ‘칠죄종’이라는 말을 들으면 교만, 탐욕, 색욕, 분노, 탐식, 나태, 질투라는 일곱 단어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도덕 교과서의 금지 목록이 아니라, 교부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 이해와 영성 훈련, 사회윤리, 나아가 문화예술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친 사유체계라는 사실은 자주 간과된다.


기독교 신학은 고대 철학의 유산을 계승하였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인간 영혼의 세 부분 곧 이성, 기개, 욕망을 말하며, 각 부분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사회적 혼란과 개인적 타락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반대로 조화를 이루면 이성에서 지혜가 나오고 기개에서 용기가 나오며 욕망에서 절제가 나와 마침내 사회의 정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정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인간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중용의 덕’을 강조하며, 탐식이나 분노 같은 과도한 욕망을 악덕으로 규정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εὐδαιμονία)은 덕(ἀρετή)을 따르는 훌륭한 삶에서 나오고 이 덕은 이성적 선택을 통해 형성되는 데 그 근본 원리가 바로 중용(μεσότης)인 것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II권 6장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덕은 정서와 행위에 있어서 과도함과 부족함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는 성품이다. 이 중간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상황과 사람에 따라 합리적으로 결정되어야 하며, 이성에 의해, 또 실천적 지혜(φρόνησις)를 가진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중용을 적용할 때 만용과 비겁의 중간인 용기(ἀνδρεία), 방탕과 무욕의 중간인 절제(σωφροσύνη), 낭비와 인색의 중간인 관용(ἐλευθεριότης)이라는 덕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중용은 아리스토텔레스만이 아니라 공자와 부처 그리고 예수도 각자의 언어로 강조한 개념이다. 그러나 헬레니즘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기독교의 초기 교부들에게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데 중요한 지적 자원이 되었다. 그 결과 기독교는 이러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 사상에 신학적이고 종말론적인 의미를 추가하여 기독교 고유의 사상을 확립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뿌리인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성경도 이미 죄악의 목록을 여럿 제시한다. 예를 들어 잠언 6장 16~19절에는 ‘야훼께서 미워하시는 것 일곱 가지’를 나열하고 있다. 여기에는 교만한 눈, 거짓된 혀, 무죄한 피를 흘리는 손, 악한 꾀를 꾀하는 마음, 악으로 달려가는 발, 거짓 증언, 형제 사이에 이간하는 자가 있다. 신약성경에서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서 육체의 일들, 곧 음행, 더러움, 우상 숭배, 마술, 원한, 시기, 분노, 분열을 나열하며,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이처럼 성경은 기독교 차원의 죄악을 열거하고 분류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이 교부 신학을 통해 하나의 체계로 발전해 간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기도교 교리에서 말하는 칠죄종의 구체적인 역사는 4세기 이집트 사막에서 수도생활을 하던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가 말한 인간 영혼을 괴롭히는 여덟 가지 악념(logismoi)에서 시작된다. 여기에는 탐식, 색욕, 탐욕, 슬픔, 분노, 나태, 교만, 허영심이 있다. 그는 수도승들이 기도와 묵상 중에 이 악념들을 분별하고 이겨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의 제자 요한 카시아누스는 갈리아 지방으로 가서 수도원 운동을 이끌며, <수도원 회담집>과 <규칙서>에서 여덟 가지 악념의 개념을 알렸다. 요한 카시아누스는 죄를 영적 전투의 관점에서 설명하며, 수도승이 내면의 악념과 싸우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가르쳤다.


이후 6세기에 들어 그레고리우스 1세 교황은 기존 전통을 종합하여 칠죄종을 확립하였다. 그는 허영심과 슬픔을 제외하고, 질투를 추가하여 오늘날 우리가 아는 칠죄종의 목록을 만들었다. 그의 권위 아래 칠죄종은 서방 교회의 표준적 교리로 자리 잡았고, 중세 도덕신학과 설교, 교회법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중세에 들어서면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 개념을 <신학대전>에서 ‘근원적 악덕’(vitia capitalia)’으로 규정했다. 그는 이 죄들이 다른 죄를 낳는 뿌리 역할을 한다고 본 것이다. 예컨대 교만은 모든 죄의 근본이 되고, 탐욕은 불의와 부정직을 낳으며, 나태는 영적 무관심을 가져오는 식이다. 중세 교회는 칠죄종을 사제들의 고해성사 지침서에 포함시켜, 신자들이 자신의 죄를 성찰하는 기준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이리하여 칠죄종은 ‘십계명’과 함께 그리스도교 도덕 교육의 양대 기둥이 되었다. 칠죄종은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과 연옥의 맥락에서 해석되며 죄의 무게와 인간 구원의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했다. 이런 칠죄종의 개념은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조각, 연극으로 시각화되어 신자들의 삶을 통제하는 주요 수단이 되었다.


칠죄종을 각 개념에 따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교만(Superbia)


교만은 인간이 자신을 신보다 더 높이려는 태도를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죄의 뿌리가 교만이라고 규정하면서 아담의 타락도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현대 사회에서 교만은 권력 중독, 기술 만능주의, 자기중심적 개인주의로 나타난다.


탐욕(Avari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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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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