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한 건축 뒤의 민중 수탈.
교회가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린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15세기 초, 교황청의 재정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아비뇽 유수(1309~1377)와 서방교회의 분열(1378~1417)로 교황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유럽 각국의 군주들은 더 이상 교황세를 충성스럽게 납부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로마는 정치적으로 불안했고, 성 베드로 대성전은 노후되어 거의 붕괴 직전에 있었다. 새로운 성당 건축은 단순한 종교적 과제가 아니라, 교황권의 상징을 복원하기 위한 정치적 선언이었다. 레오 10세 교황은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새로운 재정 자원이 필요했다. 결국 그가 찾아낸 답이 바로 “면죄부의 대규모 발행”이었다. 1515년, 교황청은 독일 지역에서 이른바 “성 베드로 대성전 건축을 위한 특별 면죄부”를 공식 허가했다. 이를 담당한 인물은 바로 그 유명한 알브레히트(Albrecht von Brandenburg) 대주교였다. 그는 이미 여러 주교좌를 겸직하고 있었는데, 이를 합법화하기 위해 막대한 금액을 교황청에 지불해야 했다. 그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독일 은행가 푸거(Fugger) 가문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는 돈이 없어 그 빚을 갚기 위해 면죄부 판매를 조직적으로 실시했다. 이때 교황청과 푸거 은행, 지역 주교, 설교사들은 수익을 일정 비율로 분배했다. 이는 영적 사업이 아니라 완전한 오늘날의 금융 상품 거래와 마찬가지의 것이었다. 면죄부 판매는 철저한 마케팅 논리에 따라 진행되었고, 설교사들은 심리적 공포와 종말론적 언어를 사용해 신자들의 죄책감을 자극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도미니코회 수도사 요한 테첼(Johann Tetzel)이었다. 그가 외친 유명한 구호는 다음과 같았다고 전해진다.
“Wenn die Münze im Kästlein klingt, die Seele in den Himmel springt.”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금화가 헌금함에 떨어질 때, 영혼은 (연옥에서) 하늘로 솟아오른다!”
물론 테첼이 정말로 이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 신학적 논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문장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중에 마르틴 루터도 이를 인용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 짧은 문장은 면죄부 신학의 본질을 완벽히 요약한다. 사실 이는 신학이 아니라 오늘날의 상업적 슬로건과 같은 것이었다. 테첼의 구호는 복음이 아니라 광고였던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더 이상 ‘말씀의 공동체’가 아니라 ‘캠페인의 기업’이 되어 버린 것이다.
면죄부 제도는 교리적으로는 “신의 용서는 이미 이루어졌으나, 남아 있는 시간적 형벌은 교회의 권한으로 감면된다”는 논리에 기반했다. 문제는 그 논리의 중심이 ‘신의 은혜’에서 ‘교회의 행정’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교회는 자신을 신과 인간 사이에 은총을 중계하는 일종의 유통기관으로 설정했다. 그리하여 신자는 신과 직접 관계를 맺는 대신, 교회의 매개를 통해서만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신학적 구조는 곧 이른바 ‘중개 수수료의 신학’으로 변질된다. 이는 마치 오늘날 부동산 중개업자가 집을 거래하고 수수료를 받는 것과 다름없는 짓이었다. 더구나 교회는 은총의 유통망을 완전히 독점했고, 그 독점은 곧 재정적 통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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