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자유의 파괴자

[ 감정 탐구서 ]

by 은빛고래





인생을 살며 누구나 한 번쯤은 겁에 질려 보았을 것이다. 자신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대상 또는 환경과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겁을 먹게 된다. 인간은 겁에 질리게 될 경우 교감신경계의 흥분으로 인해 동공의 확장과 혈류의 증가로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근육이 경직되어 자신의 몸을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기도 하지만, 어떠한 경우 자신의 신체 능력을 뛰어넘는 반응을 보인다. 이성 또한 그렇다. 보통의 경우 겁에 질린 사람은 판단 능력이 마비되어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지만, 누군가는 생존 본능이 발휘되어 기민한 판단력으로 위험에서 벗어난다. 이처럼 겁 또는 공포, 두려움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순식간에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강력한 감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겁에 질리게 되는 것일까?



< '겁'에 대하여 >

인간이 겁을 먹는 이유는 두 단계로 나뉜다. 표면적인 겁과 근원적인 겁이다. 표면적인 겁의 원인은 근원적인 겁에 있다. 그리고 모두 존재에게 일어나는 하나의 상황을 전제한다. 그것은 '상실'이다.


1. 표면적인 겁

표면적인 겁이란 사회에서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습득하게 된 금전, 지위, 물질, 정신, 관계 등을 상실하게 될 경우 나타나는 감정이다. 우리는 예기치 않게 큰 금전적 손해를 보게 될 경우 그 뒤에 따라올 자책감, 주위 사람들의 원망 경제적 빈곤을 두려워하며 겁에 질린다. 또한 자신의 명예와 지위, 평판이 훼손되어 자존심, 자존감의 상실을 예견하거나 맞이하게 될 때 겁에 질리게 된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이 가까워졌을 때. 둘도 없는 친구와의 우정에 금이 갔을 때. 우리는 상대방이 없는 삶을 생각하며 겁에 질린다. 이처럼 표면적인 겁이란 현재 자신의 삶에서 영위하고 있는 것들의 상실로 인해 정신적 물질적으로 삶에 질적인 저하가 일어나게 될 경우 나타나는 감정이다. 표면적인 겁에 속박된 자는 늘 불안하다. 자신이 누리는 것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인기가 높아질수록 많은 영광을 누리지만, 한편으로는 한순간 차갑게 식어버릴 대중의 무관심을 두려워하며 정신적 공황을 겪는 연예인들을 비근한 예로 들 수 있다.


2. 근원적인 겁

근원적인 겁은 생명의 상실이 감지되었을 때 발현되는 감정이다. 높은 곳에 올랐을 때 인간은 공포를 느낀다. 상대방의 물리적인 힘에 압도당하여 인신에 위협을 받게 될 때 우리는 겁에 질린다. 또한, 심각한 병을 앓게 됐을 때. 생명을 위협하는 자연재해나 사고를 겪게 될 때. 우리는 겁이라는 감정과 직면하게 된다. 이처럼 생명의 위협이 느껴졌을 때 발현되는 겁이란 감정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 심연에 내재되어 있다. 표면적인 겁의 근원 또한 마찬가지다. 궁핍, 외로움, 수치심, 도탄은 우리를 삶에 대한 괴로움과 우울, 무기력, 의욕의 상실로 이끈다. 이러한 심연의 종착지는 결국 죽음이라는 공포다. 결국 인간이 갖는 모든 겁의 근원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내재해 있다. 우리는 강건한 신체와 정신력의 사람이 겁을 잘 느끼지 못하며, 여린 마음과 신체의 사람이 대체로 겁이 많음을 볼 수 있다. 미약한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생존본능이 예민하게 작동하여 겁이라는 감정으로 자신을 위험한 상황에 노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겁이란 인간의 생존본능에 의해 여러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감정의 장치다.



< 이용하려는 자, 이용당하는 자 >

겁 또는 두려움은 인간의 육체와 이성을 무력하게 다. 하여, 불안에 지배당할 경우 겁을 발생시킨 주체에게 종속되거나 혹은 겁의 근원으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존재에게 의존하게 된다. 겁에 지배된 인간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기에 더 큰 힘에 의존하여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포심의 속성으로 인해 내재된 인간의 약한 고리를 이용하여 부와 권력을 얻는 개인 또는 계층, 집단이 존재한다. 이들은 어떠한 것으로부터 공포에 지배된 자들을 수단 삼아 사리사욕을 채운다. 원리는 다음과 같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도속에서 빨갱이, 사탄, 지옥, 귀신, 악마와 같이 절대 악을 심어 놓는다. 거대한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하거나,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을 세뇌시키며 두려움에 지배된 자들의 의식을 조종한다. 그리고 그들의 두려움을 먹이 삼아 자신들의 배를 불려 간다. 악마적 이분법은 인간을 공포 늪에 빠지게 하는 아주 효율적인 수단이다.



< '겁' 자유의 통과의례 >

세상이라는 거대한 성벽 앞에 개인의 존재는 한 없이 초라하다. 세상 속에서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향할 때. 어떠한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에 부딪쳤을 때. 존재는 필연적으로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러나 자신이 열망하지 않는 것에 두려움 따위는 없다. 두려움이 클수록 뛰어오르려는 열망 또한 크다. 두려움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을 때. 두려움을 추진력으로 전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두려움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동력으로 재배치할 때 존재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렇게 두려움을 뛰어넘을 때, 우리는 자유의 경지를 만끽한다. 결국 두려움이란, 자신의 도전에서 궁극적으로 자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통과의례인 것이다. 두려움의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자유는 허울뿐이며, 두려움의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는 자유는 기만이다. 두려움의 통과의례를 온전히 극복한 자는, 자유의 경지에서 그다음의 자유를 향해 또 다른 두려움을 기꺼이 품을 것이다. 그는 겁에 지배당하지 않으며, 겁을 지배하는 강력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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