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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투쟁의 원동력

[루쉰에 대한 단상 (2)]

by 은빛고래


“아버지의 기침은 퍽이나 오래갔고 그 소리를 들으면 나도 매우 괴로웠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를 도와줄 수 없었다. 때로 나는 순간적으로나마 “아버지가 얼른 숨을 거두었으면...”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들곤 했다. 하지만 이내 그것을 옳지 못한 생각이며 죄스러운 일이라고 느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 생각은 실로 정당한 것이며 나는 아버지를 몹시 사랑한다고 느꼈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버지의 병환」,『아침 꽃 저녁에 줍다』,188~189쪽


아버지의 임종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죽어가는 아버지의 기침은 당신뿐만 아니라 루쉰에게도 무척 괴로운 것이었다. 기침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아버지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고 그런 아버지를 도울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루쉰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다. 이런 괴로움이 루쉰으로 하여금 아버지가 얼른 숨을 거두었으면 하는 마음을 솟구치게 했을 터.


그렇다면 아버지가 빨리 숨을 거두었으면 하는 루쉰의 마음은 아버지의 고통이 빨리 끝나길 바라는 연민의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아버지가 전해오는 고통으로부터 어서 벗어나고 싶은 치기 어린 마음이었을까? 두 개의 마음이 모두 혼재하였을 수도 있다. 그것이 아마도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마음일 것이기에. 한편 이러한 생각 후에 그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유야 어쨌건 자식으로서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시길 바라고 있는 건 자식 된 도리가 아니며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불효(不孝)이기 때문에. 손쓸 수 없는 아버지의 병환 앞에서 효(孝)라는 표상은 루쉰으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무엇이 효(孝)인가? 다만 부모님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일 텐데. 그저 아버지가 병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되셨으면 하는 마음이 『24효도』와 같은 표상으로 인해 죄스러운 마음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루쉰은 효(孝)라는 표상의 억압을 꿰뚫고 자신의 마음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길 바라는 마음이 실로 정당한 것이라 하며. 이 문장을 통해 앞서 질문했던 루쉰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오직 연민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고통이 빨리 끝나길 바랐다는 것. 그저 아버지의 고통이 전해져오는 것이 괴로워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랐다면 루쉰은 효라는 표상 앞에 묵묵히 반성만을 했을 것이다. 실로 정당했다 함은 오직 연민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바랐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이렇듯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에 대한 강한 연민이 아버지를 몹시 사랑한다고 느끼게 한 것은 아닐까? 루쉰은 자신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손쓸 수 없는 병환에 고통스러워하는 한 인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시해야 할 것은 연민을 느끼는 루쉰의 감수성이다. 연민이란 다른 이의 아픔에 대한 깊은 이해다. 평생을 민중을 위해 적들과 투쟁하며 글을 썼던 루쉰. 그를 살게 하고 투쟁하도록 이끌게 한 원동력이 이렇듯 타인의 아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아니었을까? 그는 무엇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오직 권력과 정인군자들에 의해 이용당하고 모함당하고 죽임당하는 민중을 위해 글을 썼다. 철저한 자기 해부로 계몽의식에 빠지지 않는 것 또한, 어두운 자신의 글로 인해 누군가가 잘못될 것을 우려한 연민의 마음이었을 터. 한편, 그것은 고통이었을 것이다. 타인의 아픔, 민중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피할 수 없는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오직 쓰는 것. 쓰는 것만이 그를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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