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묘약'을 찾아서

[ 인문 에세이 ]

by 은빛고래



그것은 끊임없이 서로를 새롭게 하는 사랑의 묘약!





[ 조금은 다른 그들의 사랑 ]


그녀와 만남은 작은 독서모임에서 시작되었다. 두 번째 모임에서 나는 그녀에게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을 선물하였다. 우리는 책에서 얻은 영감과 지혜를 이야기하며 교감을 나누었고 짧은 시간 안에 서로가 비슷한 고민과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몇 번의 모임을 가지며 나는 그녀의 인생과 생각, 삶의 방식에 대해 알 수 있었고 나 또한 그녀에게 나의 모든 것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았다.


그렇게 서로의 내면을 탐구하며 관계는 깊어져 갔고 내 안에서의 울림이 어느 순간 느껴졌다. "아~ 내가 그리던 바로 그 인연이구나!" 지성으로부터 촉발되어 상대의 내면에 심취된 우리의 사랑은 서로의 배경과 환경 따위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 후에도 우리는 독서와 강의, 배움과 탐구를 함께하며 연인이지만 때로는 도반이자 때로는 스승으로 서로를 고양하며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사랑은 지성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서로를 충만하게 하는 원동력 또한 지성이었다. 보통의 연인들과는 조금은 다른 나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이다.



[ 우리의 사랑 우리의 몸 ]


외로움에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솔로들은 짝을 찾아 나선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생활 패턴 및 삶에 동선이 일정하고 일상에 별다른 예외성이 없으므로 인간관계의 영역이 협소해진다. 따라서 지인에게 소개팅 주선을 부탁하거나 SNS의 각종 모임에서 이성과 접속한다. 그리고 아주 운이 좋을 경우 드디어 꿈에 그리던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그렇게 사랑을 속삭이며 다음과 같은 루틴을 무한정 반복한다. '밀당, 맛집, 여가, 쇼핑, 여행, 술, 섹스, 다툼' 서로를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연애 초기 시절에는 이 같은 패턴을 반복해도 그저 좋을 뿐이다. 그 시기에 중요한 건 무엇을 하느냐보다는 그와 그녀와 함께할 수 있다는 그 차제이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만물이 생성 소멸하는 우주의 법칙과 생명의 리듬처럼 우리의 신체도 어느 시점이 지나면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듯이 사랑을 주관하는 호르몬의 분비가 중단된다. 동양 의학적으로 해석하여 보면 사랑은 화(火)의 기운이다. 사랑으로 인한 뜨거운 불의 기운은 맥박, 호흡을 뛰게 하고 높아진 혈압은 온몸을 뜨겁게 달군다. 이것이 바로 가슴이 뛰고 몸이 흥분되는 사랑에 반응하는 몸의 원다. 그리고 이런 뜨거운 몸의 상태는 우리의 수명을 단축하게 할 수밖에 없다. 항진된 신체 상태를 계속하여 유지한다면 우리의 생명 에너지는 급속히 고갈되어 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호르몬의 작용을 중지하여 사랑을 멈추는 방어 기제를 작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호르몬의 분비 기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우리는 사랑에 중독된 신체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항상 똑같은 언어, 생각, 습관, 삶의 패턴을 보이는 상대방에 대해서 점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연인과 부부관계를 지속적으로 충만하게 할 동력은 사라졌으며 의무감과 정 또는 생명력과 활기가 없는 깊은 의존만으로 관계를 지속하게 된다. 이런 시기 바람기가 다분한 사람들은 외부로 시선을 돌리는 자연스러운 불상사도 발생한다. 결국,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영원히 지속시킬 수 없는 몸을 가졌으며 오랜 시간 익숙해져 버린 상대방에게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다.



[ 사랑의 묘약이란? ]


니체는 말했다. "싫증을 느끼는 이유는 자신의 성장이 멈췄기 때문이다." 즉 대상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흥미를 잃는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인간은 계속 변화하기에 똑같은 사물과 인간에게 조금도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렇다! 공부가 필연적이다. 이쯤에서 솔로들은 이렇게 격분할 것이다. "아니! 평생을 입시와 취업을 위해 공부에 파묻혀 살았는데 사랑까지 공부하라고?"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목적을 세우고 돈이나 물질로 환원되는 지식과 스펙을 쌓는 공부가 아니다. 존재의 자유, 삶의 지혜, 자연과 우주의 통찰을 통해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마음의 공부이다.


끊임없는 배움의 자세로 독서와 탐구를 지속한다면 새로운 지성과 언어는 나의 내면, 정신, 육체를 변화시킨다. 머물러 있지 않으며 계속해서 변이하는 존재는 항상 새로운 마음과 생각, 시각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다.

추상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지성과 함께 하는 사랑처럼 끊임없이 존재와 관계의 충만함을 이루어주는 사랑의 묘약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왜 사랑의 영역에선 공부와 지성의 담론이 부자연스럽고 낯설게 느껴지는지를 반문해야다. 자본은 오로지 사랑을 소비의 영역으로만 가두어 놓고 원초적인 감각만을 자극할 뿐이다. 기업과 결탁한 미디어는 소비로 얻어지는 쾌감과 행복감에 중독된 모습의 연인들을 보여줄 뿐이다. 미디어에 현혹된 우리는 지성과 함께하는 사랑이 낯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의 관계에 끊임없는 성장과 변화, 생명력을 제공해 주는 '사랑의 묘약'이 있다. 그것은 인간 본성의 '배움의 욕망'과 '사랑의 욕망'이 한데 어우러진 '지성과 사랑의 크로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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