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칼럼 ]
모든 것이 넘쳐나는 과잉의 시대
우리는 단호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햄릿처럼 결정장애를 앓고 있다
[ 일상에서의 햄릿 증후군 ]
#1)
몇 년 전 선배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 차를 마시며 간단하게 얘기를 나눈 후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헌데 그녀 메뉴판을 보더니... "저는 결정장애가 있어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에게 메뉴를 골라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결정장애라고는 얼핏 들어본 것 같았지만 실제로 겪고 있는 사람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 후 몇 번의 만남 동안 그녀의 결정장애는 나를 당혹스럽게 하였다. 또한, 결정장애는 곧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수 없는 선택의 연속인 우리 삶에서 그녀는 자신이 결정지어야 할 것들을 외면하고 있었다. 자신이 마주한 상황을 자칫하면 극단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시한폭탄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2)
내가 즐기고 있는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글들이 올라온다. 재밌는 것은 남성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공간에서도 자신이 구매할 상품에 대해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묻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주로 패션과 관련된 상품이었고 단순히 성능이나 제품의 정보를 묻는 것이 아닌 주관적인 느낌을 묻는 말이었다.
"두 개의 셔츠 중 어느 것이 더 괜찮을까요?" 오 마이 갓! 자신이 입을 셔츠 아닌가? 심지어 입고 있는 모습도 아닌 그냥 달랑 셔츠의 모습이다. 주위에 봐줄 사람이 없어 내게 잘 어울리는 셔츠인지 물어볼 수는 있겠지만, 이것은 그냥 어떤 셔츠가 더 당신의 마음에 드는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내가 입을 셔츠를 다른 사람이 선택해준다???
과연 궁금하다. 이처럼 스마트하고 지적인 현대인들이 '결정장애'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 결정장애의 현대인을 만드는 사회 ]
1) 과잉보호에 길들여진 나약한 존재
주지하듯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이다. 이것을 넘어서 자식의 일생 전반에 개입하여 사랑이란 미명 하에 자식을 온전히 부모의 아바타로 만드는 현상이 점점 심화하여 가고 있다. 부모들은 사교육과 서비스를 이용하여 유년기, 청년기를 넘어 취업과 결혼 후에도 자식을 위해 모든 길을 내어 주고 닦아 놓는다.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과 신체로 자란 젊은이들은 한없이 나약하기만 하다. 온실 속의 화초로 길들여진 존재는 실패를 접해 본 적이 없으며 실패로 인한 쓰라린 고통을 견뎌 낼 수 있는 몸과 마음이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인생의 대소사는커녕 자기가 입을 옷조차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결정하기도 두려워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2) 이미지에 잠식된 현대인들
현재 우리의 시공간에는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화려하고 감동적이며 감각적인 광고가 매일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광고들은 일상의 모든 공간에서 우리의 시각을 도배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잠자리에서 눈을 감기 직전까지 온갖 광고와 상품들은 삶을 잠식하고 이미지의 끝없는 주입을 통해 현대인을 세뇌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은 그 동력을 이어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상품을 생산하고 이미 과잉으로 축적된 삶에 새로운 것을 더 채워 넣으라고 부추긴다. 쏟아내는 광고 이미지와 신상품에 무방비로 노출된 현대인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3)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들
이것은 주로 한국인들의 특화된 성향일 것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는 다른 사람의 평가와 시선에서 우월함을 가지고자 한다. 하여, 자신이 진정 욕망하는 것이 아닌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삶을 살아간다. 자신만의 기준이 확고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들일 것이다. 자존감이 부족하다는 것은 내가 원하고 욕망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외부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평가를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외부의 시선과 자신이 욕망하는 것의 사이에서 늘 갈등하며 자신의 선택을 대부분 후회하며 살아간다.
[ 실패를 직면하고 온전히 감당하라 ]
시각은 인간의 감각기관 중 대상의 본질을 통찰하기 가장 어려운 감각이다. 주로 대상의 표면에 나타나는 현상만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각은 오감 중에 가장 빠르게 실체 또는 현상을 인식한다. 그만큼 쉽게 판단하고 이끌리게 되는 감각이다. 오로지 시각에만 이끌려 삶의 선택들을 결정한다면 그러한 결정은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시각은 본질을 감추고 의식을 현혹할 수 있는 힘을 내제하였다. 쏟아지는 광고의 유혹과 현혹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한다면, 보이는 현상을 넘어 본질과 진실을 통찰할 수 있는 시야를 길러야 할 것이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욕망에 충실할 수 있도록 자존감을 갖추어야 한다. 자신이 하는 모든 결정의 책임은 오로지 자신이 짊어진다. 실패를 대면하고 그에 따른 책임과 고통을 감내하여 부단한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 기준, 색깔을 찾아야 한다. 나의 선택이 곧 최선의 선택이다! 누구도 내 삶과 나의 운명을 대신하여 결정지을 수 없다.
"당신의 삶에 주인은 바로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