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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고래 May 28. 2022

나의 기본학교

최진석의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2기를 졸업하며





철학적 사유와 글쓰기의 삶을 처음 마음먹었을 때 그것은 소망이었다. 모든 것이 수포가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눈앞이 캄캄할 때, 사유와 쓰기는 한 줄기 빛이었다. 잉태한 소망의 불꽃을 어떻게든 키워 나아가려 했다. 하지만 생계와 일상의 무게로 불꽃은 점점 빛을 잃어갔다. 그러던 중 접한 스승님의 철학은 소망을 소명으로 상승시킨 불쏘시개였다. 소망의 희미한 불씨가 꺼지기 직전,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기 위해 '새말새몸짓'이라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을 만들어 준 것이다. 물질, 정신, 에너지, 시간. 기본학교는 이 모든 것을 한계치로 끌어올려야만 온전히 통과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이제 기본학교 졸업을 앞두고 지난 6개월의 과정을 되새겨본다. 기본학교는 과연 내게 무엇이었나. 삶에 어떤 의미였나.


<함평, 수행자의 길>

전라남도 함평, 살면서 거의 들어본 적 없는 고장. 자가용으로 함평 호접몽가까지의 거리는 278km. 살면서 이렇게 먼 거리를 오랜 기간 주기적으로 왕복한 경우는 없었다. 주말을 쉬어야 하는 직장인에게, 거의 매주 함평으로의 여정은 감당하기 힘든 피로를 가져왔다. 손익의 이해관계 속에서만 철저히 움직이는 오늘날의 관점으로는 참으로 비효율적인 행태다. 이러한 고행 속에서 내가 얻은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수업 일에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를 쓰며 함평으로 향했다. 4~5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결코 운전만 하는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다. 함평으로 향하는 길은, 곧 나를 수행자로 변화시키는 길이었다. 함평으로의 긴 여정은 일상에서의 치열함, 분주함, 번다함을 하나씩 벗어내는 시간이었다. 물리적으로 현실의 시공간을 벗어나니, 의식 또한 현실의 시공간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지는 단순한 이치다. 그리하여 함평에 도착했을 때는 속세의 일상을 벗어나, 온전히 기본학교의 수행자로 남겨진 것이다.

만약, 지척에서 기본학교가 진행됐다면 어땠을까? 기본학교 수행의 강도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을 것이다. 스승님의 충만한 수업, 동지들과 즐거운 커뮤니케이션만 있었을 것이다. 여기선 결코 절실함이 생산되거나 유지되지 않는다. 강렬했던 절실함도 모든 게 편한 환경에서는 중화되고 약화한다. 절실한 무언가를 쉽게 취할 수 있기에, 절실함은 더 이상 절실함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절실하지 않다면 존재의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 절실함이 없는 기본학교는 내 삶에 큰 의미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함평으로의 고난의 수행 길은 나를 속세에서 벗어나 수행자로 변화시키며, 소명을 향하는 절실함을 다지는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장치였다.


<스승, 지혜의 생명수>

기본학교 입학 전, 스승님의 동영상 강의와 서적을 거의 모두 섭렵했다. 기본학교 커리큘럼 또한 앞서 섭렵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실제 수업에서도 내 안에 이미 담겨있는 이론보다는, 이론의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비밀스러운 통찰이 내게 번개를 내리쳤다. 나는 그것을 인간의 삶을 상승시키는 고귀한 통찰로 여기고 '예술적 통찰'이라 명명했다. 이론의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예술적 통찰이란, 이것과 저것의 사이, 이론과 현실의 사이, 사유와 현실의 사이에 존재하며 또한 양단을 모두 포섭할 수 있는 탁월함을 말한다. 탁월함은 어느 한쪽에 치우쳐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탁월함은 오묘하다. 그것은 양단의 경계에 위치하며, 때와 상황에 따라 변하기에 지속성을 위한 부단한 정진이 필요하다. 생의 원숙기에 접어든 노장의 혜안은, 그 오묘한 탁월함을 짚어내는 '예술적 통찰'을 뿜어냈다.

한편, 오묘한 탁월함이 드러날 때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간과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기본이다. 기본은 모든 것의 베이스, 근본이기 때문에 어떤 쪽에도 쏠리지 않으며 치우칠 수 없다. 그렇기에 기본이야말로 경계에 위치한다. 온갖 고급기술이 창발하고, 전문가들이 넘치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에 기본은 촌스럽고, 수준 낮고, 따분한 것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기본이 부실하다면 고급기술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아닌 현란한 포장의 기술로만 쓰일 뿐이다. 기본이야말로 모든 것의 알파이며 오메가다. 내 안에 필요한 그 무엇. 베일에 싸인 그 무엇이 필요할 때, 그것은 결국 기본이었다. 스승님이 강조한 기본은 나의 지적 목마름을 해소한 지혜의 생명수였다.

  

<동지, 별들의 에너지>

33인의 동지들은 기본학교라는 우주에서 마주친 하나하나의 별이었다. 별들이 발산하는 광채와 에너지가 내게로 들어올 때, 내 안에 일어나는 반작용으로 나는 반응한다. 그들의 열정은 안주하는 나를 긴장시킨다. 그들의 정성은 모자란 내 마음을 각성시킨다. 그들의 용기는 나를 감동케 한다. 그들의 현명함은 내 어리석음을 일깨운다. 그들의 배려는 부족한 내 인격을 돌아보게 한다. 그들의 치열함은 피로에 지친 나를 일으킨다. 그들의 에너지는 곧 영감이다. 그 모든 에너지는 절대 소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게 들어와 내 안의 소명과 융합하여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분출된다. 여기서 에너지 보존법칙은 물리적 영역을 벗어나 생명 대 생명으로 성립한다. 나는 별들의 충만한 에너지를 흡수했고, 그 에너지는 기본학교 6개월 동안 나를 상승시키는 최상의 연료가 되었다. 이제 별들의 에너지를 나만 소유하는 것이 아닌 세상을 위해 분출한다. 내게 들어온 별들의 에너지는 나의 글과 사유로 환원되어 세상의 소금으로 뿌려질 것이다.


<다시, 정재윤>

다시, 정재윤은 소명을 세웠던 초심으로 위치했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우물쭈물하는 것이 아닌, 용기와 탁월함이 갖춰진 초심이다. 기본학교 과정은 나와 소명이 완전히 합일하도록 내게 주문을 거는 의식이었다. 오직 내게 이르는 주문을 통해, 나와 소명 사이에 존재하는 "내가 과연 높은 수준의 사유와 글을 쓸 수 있는 재능을 가졌는가?" 하는 두려움의 간극을 없앤 것이다. 두려움은 더 이상 나를 초조하게 하지 않는다. 나는 더욱 단단해졌다. 이제 누구에게 증명하는 것이 아닌, 내 안에 진실하게 솟아나는 사유와 글을 내뱉는다.

기본학교는 소명을 향하는 삶에서 가장 중추적인 기본 정신을 세우게 했다. 기본 정신의 튼튼한 토대로 중심이 잘 잡혀있다면, 어떠한 고난과 시련에도 균형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운명을 내 뜻대로 디자인하기 위해, 세계를 내 뜻대로 디자인하기 위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분투하는 존재로 변이했다. 결코 피상적이 아닌 진실하게 나 자신이 모든 가능성을 지닌 존재. 곧 신(神)임을 자각했다. 이것이 나의 기본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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