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현재 자신의 역량을 대면하고 또한 타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매개체다. 자신의 면모를 낱낱이 밝힐 수밖에 없다. 개인에 따라 고통과 두려움을 수반한다. 따라서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는 자기와의 대면을 피해 숨어버리거나 도망간다. 자기와의 대면을 피하거나 숨어버리면 자기반성, 자기 비하로 빠지며 일기 형식의 글이 생산된다.
글의 수준보다는 자신과의 대면 속에서 피어나는 진실함이 우선이다. 내용의 수준은 지성이 깊어질수록 자연스레 상승한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과감히 대면하고, 크게 사유하고, 용기롭게 쓴다.
<사심>
글쓰기는 곧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일 뿐. 이것을 포장하기 위한 마음이 사심이다. 남에게 보이고 싶다거나, 남에게 알리고 싶다거나, 잘하고 싶다거나, 요행을 찾거나(정해진 계획대로 하지 않을 때, 게으름으로 인한 공백을 메꾸기 위해 요행을 찾는다) 이런 것이 사심이다.
사심으로 붕 뜬 마음은 자신의 사유와 언어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자기화되지 않은 기존의 이론을 그대로 옮긴다. 읽는 사람은 이것을 그대로 느낀다. 사심은 겉멋 든 글, 공허한 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글로 귀결한다. 잡념이 섞이지 않는 마음으로 오직 글과 자신에 집중한다.
<문제의식>
책 내용에서 환기되는 부분을 나에 대한 문제의식,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과 연결한다. 내게 절실한 문제 또는 해결하고 싶은 세상의 문제를 치열하게 사유한다. 주어진 질문을 돌파하기 위해 나를 정신적, 육체적 한계로 몰아붙인다. 그래야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문제의식이 없으면 글의 중심축이 없다. 중심축이 없으면 중언부언 삼천포로 빠져버린다. 글이 산만해진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만 나열하다 끝난다. 이런 글쓰기는 존재의 성장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가꿔온 지성이 문제의식과 융합하여 자신만의 사유와 언어로 재조합되어 터져 나오는 것. 이것이 문제의식(질문)으로부터 촉발하는 창의다.
<용맹정진>
글쓰기 동호회가 아님. 힐링과 친목을 위한 글쓰기 아님.
존재의 상승과 도약을 위한 존재적 글쓰기. 분발하고 철저해야 한다. 용맹정진해야 한다.
합평할 때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되, 감정의 개입 없이, 가감 없이 평가하며, 입에 발린 말은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