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빛고래 Jun 12. 2022

1. 불통(不通), 불행의 씨앗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여기, 갈 데까지 간 막장 가족이 있다. 예순이 넘은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다 정신병을 앓지만 일을 놓지 못한다. 장성한 두 아들은 변변한 직업은 고사하고 사회 구성원의 역할도 제대로 못 한다. 어머니는 서로를 향한 분노로 가득 찬 남편과 자식들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 한다. 출구 없는 막장에서 시작된 가족의 이야기는 점점 걷잡을 수 없이 파국으로 치닫는다. 가정을 위해 죽어라 일하던 세일즈맨은 어쩌다 파멸하게 됐을까? 한때 행복했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은 어떻게 몰락했을까? 그들의 이야기는 물질, 욕망, 관계의 왜곡된 가치관. 그리고 가족에 대한 원망으로 신음하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 불통(不通), 불행의 씨앗 >

부모와 두 형제, 이렇게 간결한 관계에도 이 가정은 도무지 소통이 안 된다. 아버지 윌리, 그는 집안의 독재자다. 독재자란 무엇인가. 권력으로 아랫사람을 주무르며, 권위에 대한 도전을 허락지 않는 존재. 하여, 독재자는 소통하지 않는다.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는다. 지시하고 명령할 뿐. 그는 가족 모두를 무시한다. 아내 린다는 가장 만만한 상대다. 윌리는 아내가 입만 벙긋해도 끼어들지 말라, 조용히 하라는 말로 그녀의 의견을 묵살한다. 자신의 기준에 패배자인 두 아들과도 불통이다. 이런 아버지에 대해 첫째 비프는 말한다.


비프 : 왜 아버진 항상 나를 업신여기지?
해피 : 업신여기는 게 아니라.....
비프 :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아버지는 비웃는 표정이라니까. 가까이 갈 수가 없어.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21~22쪽)


윌리는 자신의 기대를 저버린 아들을 무시한다. 온전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힘을 잃어가는 자신의 권위를 사수하기 위해 자식을 제압하려 한다. 물론 자식도 이에 반발한다.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니, 대화는 늘 감정싸움으로 번진다. 윌리와 두 아들의 불통 이유다. 독재는 더 강력한 힘으로 제압하는 방법밖에 없다.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고 종국에 분노가 극에 달한 비프독재자와 똑같은 모습으로 아버지를 제압한다. 월리는 안과 밖으로 처참히 무너지는 자신을 감당하지 못한다. 자아와 현실의 간극을 메우려는 정신분열증을 앓는다. 밖으로 소통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은 내면을 갉아먹는다. 그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벤이라는 환을 만들어 자기를 확신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결국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환각 속에 파멸을 향해 질주한다.

윌리의 가정에선 누구도 존중받지 못한다. 존중하지 않는 건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리는 상대방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본색, 치부, 한계를 낱낱이 알기 때문이다. 서로를 격하(格下)하는 마음속에 오해는 점점 깊어간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기에 자신도 인정받지 못하는 고립된 인간. 외로움과 무력에 허덕인다. 소통은 서로를 인정하는 준거이며 공동체의 결속으로 귀결한다. 불통은 서로를 무시하는 준거이며 공동체의 분열로 귀결한다. 소통과 공감의 부재. 불통은 불행의 씨앗이다.







작가의 이전글 존재의 성장을 위한 글쓰기, 네 가지 키워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