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냐 실존이냐, <미키 17>이 던지는 생존의 딜레마

영화 <미키 17>

by 씨네진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드디어 스크린에 올랐다. <기생충> 이후 세계가 주목하는 그의 차기작이라는 기대 속에서, 이번 작품이 다시금 걸작으로 평가받을지 혹은 논란의 중심에 설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봉 감독은 늘 그랬듯, 익숙한 장르 속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이번에도 그는 특유의 사회적 통찰력과 독창적인 연출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겉보기에는 다소 유치하고 저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설정. 얼빠진 표정의 주인공이 담긴 포스터를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을 시작했지만, 영화는 곧 묘한 불편함과 이질감을 조성한다. 나사가 빠진 듯한 남성들, 상대적으로 냉철한 여성들, 그리고 차라리 인간보다 이성적인 외계 생명체 ‘크리퍼’까지. 상투적인 SF 문법을 비틀며, 영화는 점점 관객을 딜레마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야기는 마카롱 가게 창업 실패로 거액의 빚을 진 ‘미키’가 사채업자의 위협을 피해 지구를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가 택한 곳은 얼음행성 ‘니플하임’ 개척단, 그중에서도 ‘익스펜더블’이라는 존재. 위험한 일을 맡고 죽으면 새 육체로 출력되는, 소모 가능한 인간. 4년의 항해 끝에 도착한 행성에서 미키는 죽음을 반복하면서도 점차 그 삶에 적응해간다.


그러나 어느 날, 행성의 생명체 ‘크리퍼’와의 조우 이후 위기를 넘긴 미키 17은 자신이 이미 ‘죽은’ 존재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시스템은 그의 복제본인 미키 18을 출력해버렸고, 하나의 행성에 두 명의 미키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익스펜더블은 오직 한 명만 존재해야 한다는 규칙 아래, 이들은 생존을 두고 충돌하기 시작한다.


“자알 죽고, 내일 만나.”

“죽는 기분은 어때?”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동료들이 건네는 가벼운 인사들. 죽음은 이제 끝이 아닌 재출력의 일상일 뿐이다. 이 설정은 단지 가상세계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노동과 존재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복제된 인간이 소모품처럼 사용되는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 자아를 지키려는 존재의 몸부림.


행성 개척이라는 거대한 명분 아래, 인간은 ‘크리퍼’라는 외계 생명체를 장애물로 간주한다. 그들은 인간과 완전히 다른 생태계를 이루고 있으나, 인간은 이들을 실험 대상이자 자원 추출의 대상으로만 본다. 인간은 자원을 얻기 위해 크리퍼의 몸을 해부하고, 그 생명체의 고유한 존재 방식을 침탈한다.


"우리가 원하는 건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더 맛있는 소스일지도 몰라.”


이 대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통렬한 진단이다. 인류가 말하는 ‘개척’은 실제로는 새로운 가치의 창조가 아닌, 더 강한 자극과 욕망의 연장선일 뿐이라는 것. 그 탐욕은 결국 인간 자신에게도 되돌아온다. 크리퍼가 인간을 무심히 바라보는 장면은 강렬한 울림을 남긴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간이 결국 자신들을 멸종시킬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키 17과 미키 18의 갈등 역시 단순한 자아 복제의 문제를 넘어선다. 같은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면서도, 서로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그들.


“네가 사라지면, 나는 진짜가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곧 관객을 향한 것이다. ‘나와 똑같은 존재가 있다면,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는가?’ ‘생존을 위해 타인을 지워야 한다면, 나는 누구를 선택할 수 있는가?’ 인간은 끊임없이 대체될 수 있지만, 동시에 결코 대체될 수 없는 존재라는 이중성 속에 살아간다.


연출 면에서 봉준호 감독의 시그니처는 여전하다. 흔들리는 카메라, 롱테이크, 빛과 어둠의 명확한 대비는 인물의 내면을 시각화한다. 특히 미키 17과 18의 대립 장면에서는 거울 반사, 흐릿한 초점 전환 등이 사용되며, ‘같지만 다른 존재’의 분열을 강조한다.


로버트 패틴슨은 미키 17과 18을 전혀 다른 인물처럼 연기하며, 하나의 육체 안에 담긴 두 개의 정체성을 성공적으로 표현한다. 토니 콜렛과 스티븐 연 역시 개척단의 이기성과 시스템의 무자비함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원작 소설이 강조한 자원 부족과 복제 인간 간의 생존 갈등은 영화에서 다소 약화되었고, 미키들의 심리적 충돌이 더 깊이 다뤄졌다면 몰입감은 훨씬 강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키 17>은 단순한 SF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본질, 실존의 무게, 사회 시스템 속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묻는, 철학적 이야기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은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질문의 끝에서, 우리는 또 다른 ‘미키’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봉준호#미키17#크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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